
루이스 피구
포르투갈을 넘어 역사상 최고의 윙어 중 1명입니다.
1989년 스포르팅에서 데뷔했고, 이후 2년뒤인 1991-92 시즌부터 스포르팅의 주전 자리를 차지합니다.
94-95 시즌 스포르팅을 타카 데 포르투갈 정상에 올려 놓은 뒤 스페인의 명문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고,
이 곳에서 첫 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루이스 피구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기 시작합니다.
이후 갈락티고라는 정책 하에 스타 플레이어를 영입하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고, 마찬가지로 주전으로
5년을 뛴 뒤 이탈리아의 명문 인테르로 이적합니다.
통산 4번의 라리가 우승과 더불어 4번의 세리에A 우승, 통산 1번의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등을 따냈고,
에우제비우가 발롱도르를 따낸 뒤 35년 뒤인 2000년 포르투갈의 2번째 발롱도르 수상자로 이름을 올립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도
2002-03 시즌 데뷔한 호날두는 그 해에 좋은 활약을 펼치며 알렉스 퍼거슨에게 영입됩니다.
이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전이자 핵심 선수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성 시대를 이끌었고,
2007-08 시즌에는 세계 최우수 선수상인 발롱도르를 수상합니다.
이후 1년 뒤인 2009-10 시즌 스페인의 명가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 이후 경기당 1골이 넘는
엄청난 활약도를 보이며 통산 2번의 발롱도르를 따냈고, 2014년도에는 레알 마드리드에게 라데시마를 선물합니다.

파울로 푸트레
루이스 피구가 등장하기 이전 포르투갈 최고의 윙어 중 1명이였습니다.
1983-84 시즌 스포르팅에서 데뷔했고, 이후 84-85 시즌 포르투갈의 명가 포르투로 이적합니다.
그 후 2년뒤인 86-87 시즌 포르투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유럽 정상
즉, 유로피언컵 정상에 포르투를 올려놓았고, 이듬해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합니다.
마찬가지로 아틀레티코에서도 주전 자리를 차지했고, 자신의 기량을 스페인 팬들에게도 알립니다.
후에 라이벌 팀으로 이적한 라울 곤잘레스도 푸트레를 자신의 우상이라고 말하며 그에게 존경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호세 아우구스토
피구 등장 이전 포르투갈 역대 최고의 윙어였습니다.
1955년 데뷔 이후 1959년 스페인의 벤피카로 이적했고, 이 곳에서 전성기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경기당 0.5정도에 해당하는 뛰어난 결정력을 가졌었던 아우구스토는 59년부터 벤피카에서 활약하며
8번의 프리메이라 리가 우승과 더불어 2번의 유로피언컵 우승, 3번의 유로피언컵 준우승 등을 해냈고,
1966년 포르투갈이 월드컵 3위라는 업적을 세울 때 6경기에 출장하며 월드컵 3위에 큰 공헌을 합니다.

안토니오 시모에스
호세 아우구스토와 함께 했으며, 60년대 포르투갈을 대표하던 윙어였습니다.
1961년 벤피카에서 데뷔했고, 이후 통산 1번의 유로피언컵 우승과 3번의 유로피언컵 준우승을 차지했고,
통산 10번의 프리메이라리가 우승을 차지하게 도비니다.
이후 당시 나이 32살이던 시모에스는 에우제비우를 따라 미국의 보스턴으로 이적합니다.
포르투갈의 축구 영웅 에우제비우는 과거 시모에스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66년 북한에 0-3으로 끌려가던 그 때, 시모에스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시모에스는 우리가 4골차로 끌려가지 않는 한 여전히 기회가 있고, 우리는 뛰어야 한다라고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난 뒤 나는 그가 옳았다고 생각했다"

로게리오 피피
아우구스토를 더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면 바로 로제리오 피피의 이름이 거론될 것입니다.
1942년 벤피카에 입성한 이후로 포워드와 레프트 윙어를 오가며 리그에서 76경기에 출장해 57골을 넣었고,
이후 보타포구로 건너가나 큰 활약없이 48년 다시 벤피카로 이적합니다.
이 시기부터 자신의 재능을 마음 껏 발휘하기 시작 한 피피는 프리메이라리가 우승을 3차례 차지했고,
타카 데 포르투갈에서 통산 6번의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후 벤피카를 떠나 오리엔탈로 이적했고, 그 곳에서 은퇴를 선언합니다.
윙어와 포워드를 오가며 맹활약한 피피는 통산 310경기에 출장해 210골을 넣었고,
포르투갈 국가대표로는 15경기에 출장해 2골을 넣었습니다.
그는 매우 빠른 스피드가 인상적이였던 선수였습니다.

알바노 페레이라
로게리오 피피와 동시대에 활약했던 포르투갈 레전드입니다.
1943년 스포르팅으로 이적했고, 페르난도 페이로테우 등과 함께 1940년대를 스포르팅의 시대로 만들어 버린 선수였습니다.
통산 335경기에 출장해 162골을 넣었고, 그 기간동안 8번의 리그 우승과 4번의 컵대회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페르난도 샤라나
1970-1980년대를 대표하던 포르투갈의 윙어였습니다.
1976년 벤피카에서 데뷔했고, 데뷔 첫 해에 리그 우승과 함께 포르투갈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습니다.
이후 통산 6번의 포르투갈 리그와 3번의 포르투게사 컵을 따냈고, 보르도 시절에는 2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프랑스컵 우승 등을 따냈습니다.
또한 유로 84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호세 핀토와 함께 84 유로 베스트11에 선정되는 활약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 해에 2번째 포르투갈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습니다.

길레르미 산토
1936년부터 1950년까지 벤피카에서 활약했던 선수였습니다.
통산 117경기에 출장해 77골이라는 엄청난 골 기록을 만들었고, 통산 4번의 리그 우승과
3번의 타카 데 포르투갈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 선수는 조금 특이한 기록이 있습니다.
단순히 축구 선수가 아니였던 산토는 멀리뛰기와 더불어 높이뛰기, 세단뛰기 대표 선수로도 활약했고
1938년에는 높이뛰기와 세단뛰기 챔피언, 1939년에는 멀리뛰기와 세단뛰기 챔피언, 1940년에는
높이뛰기와 멀리뛰기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시망 사브로사
1996-97 시즌 스포르팅에서 데뷔했고, 이후 2시즌 뒤인 1998-99 시즌 주전 자리를 차지합니다.
주전 자리를 차지한 첫 시즌만에 스페인의 명가 바르셀로나에서 시망에게 관심을 보였고,
스포르팅은 시망을 15m에 바르셀로나로 판매하게 됩니다.
그러나 피구와 같은 활약을 펼치지 못한 시망은 2년뒤에 스포르팅의 라이벌인 벤피카로 이적합니다.
이후 벤피카에서 전성기를 보내기 시작한 시망은 리그에서 18골을 넣기도 하고, 15골을 넣기도 하는
맹활약을 6년동안 펼쳤고,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그런 시망에게 관심을 보입니다.
이후 아틀레티코로 이적 한 시망은 아틀레티코의 주전으로 2010년 유로파 리그 우승을 이끕니다.

세르지오 콘세이상
90년대 후반 ~ 00년대 초반 루이스 피구와 함께 포르투갈을 대표하던 윙어였습니다.
유로 2000에서도 맹활약하며 포르투갈을 유로 3위의 자리에까지 올려 놓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1993년 프로로 데뷔했고, 이후 레카, 포르투 등을 거쳐 98년 라치오에 입성합니다.
이후 알레산드로 네스타 등과 함께 라치오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그 기간동안 라치오는 1번의 스쿠데토를 포함, 총 5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립니다.

나니
윙어 뽑아내기의 神에 가까운 스포르팅의 유소년 팀에서 데뷔했습니다.
2005년 데뷔했고, 그 해부터 바로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포텐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후 2년뒤인 2007-08 시즌 알렉스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고,
나니는 그 해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프리미어리그와 유럽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를 들어 올립니다.
그 후 2011년도에는 PFA 올해의 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선수들이 뽑은 시즌 올해의 선수에 선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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