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싶었던 5·18광주민주화운동마저 거센 반동의 바람을 타고 훼손되고 있습니다. 극우 사이트가 앞장서고 종합편성채널이 설치더니, 정부까지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하면서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 했습니다. 역사는 역시, 노력 없이 앞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5·18을 둘러싼 논쟁들이 지난 주말을 전후로 한창 뜨거웠지만, 저는 그보다 며칠 앞에 한 번 더 놀랐습니다. 그것은 ‘5·16민족상’의 존재를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벌써 48회째. 이 상은 1966년 3월 24일,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초대 총재를 맡고 김종필이 초대 이사장이 돼 만든 ‘재단법인 5·16민족상’에서 시상해왔습니다. 박정희가 직접 쓴 재단 창립취지문에는 “5·16은 오랜 혼미 속에서 민족의 진로를 옳은 궤도에 올려놓기 위한 ”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진취적인 발전을 억누르는 모해와 시기가 적지 아니 편재”한다며, “조국근대화의 밑거름이 되어 묵묵히 쉬지 않고 일하고 있는 수많은 숨은 일꾼들”을 위한 상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이사장 역시 “5·16혁명의 정신과 이념을 바탕으로 참다운 국가건설의 숨은 일꾼들을 발굴”하는 것이 이 상의 목적이라고 당당히 밝혔습니다. 세상에! 총칼로 정권을 뺏고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하루아침에 군홧발로 짓밟은 군사쿠데타를 대놓고 ‘혁명’이라 부르며, 그 정신을 기리는 상을 48년째 당당히 시상해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재단 누리집에 떡하니 올려둔 이들의 글을 보니 정말 탄식이 터져나옵니다.
학술, 예술, 교육, 사회, 산업, 안전보장 등의 부문으로 나눠 매년 시상하는데, 특히 ‘안전보장’ 분야에 우리가 알 만한(?) 수상자들이 많습니다. 2012년 고엽제전우회, 2011년 박세환 재향군인회 회장, 2010년 오윤진 해병대전우회 고문, 2009년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2005년 재향군인회, 2004년 이도형 한국논단 발행인, 1997년 박홍 서강대 명예총장. 이렇게 보니 어떤 사람들에게 주는 상인지 확실히 알겠습니다.
수상자 상금은 각 3000만 원. 이 돈은 다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누리집에 자랑(?)된 기부금 현황에도 낯익은 기업의 이름들이 보입니다. 1990년대 이전에는 현대, 삼성, 대우 등 대부분의 재벌 기업에서 최고 1억 원까지 골고루 기부한 바 있네요. 그 이후로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은 한국야쿠르트입니다.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17차례에 걸쳐 윤덕병 회장의 이름으로 모두 7억6500만 원을 기부했습니다. 지금까지 들어온 기부금 합계가 22억여 원이니, 전체의 3분의 1이 넘는 액수입니다. 윤덕병 회장이 5·16 직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경호실장이었다고 하니, 이유는 알 만하네요.
5·16민족상이라는 이름에 놀라고, 그 상을 만들고 받아온 사람들에 다시 놀랐습니다. 2013년 5·16민족상 산업부문 수상자는 윤홍근 제너시스 BBQ그룹 회장이랍니다. 최근에 남양유업과 배상면주가가 대리점에 대한 횡포로 불매운동을 자초하고 있다 하죠. 쿠데타를 기리는 상에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회사와, 그 정신을 잘 받들었다고 상을 받은 회사. 요구르트와 통닭을 먹을 때도 기억하고 피해야 할 이름이 생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