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7년(고려 공민왕 16년 정미년) 6월 13일 신묘일 고려 북동부 함경도 함흥부 이성계와 신의왕후 한씨의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남
15세 : 고려 우왕 9년 진사시에 합격
16세 : 고려 우왕 10년 문과에 병과 7등으로 패스.
(이방원은 어릴적 아버지 이성계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날마다 부지런히 글읽기를 게을리 하지 아니하여 날마다 학문의 성취가
진일보하게 되자 내 뜻을 성취할 사람은 반드시 너일 것이다라고 이성계가 칭찬하였다고 전해온다.
전장에서 일생을 마쳐야 하는 무인 이성계의 삶 속에서 아들이 뜻을 받들어 학문에 정진하였으니 기쁨이 컸다고 한다.
마침내 이방원은 아버지의 뜻을 현실로 실현 시킨다/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21세 : 명나라에 파견되는 정조사의 서장관으로 북경에 다녀온 이후 아버지가 위화도 회군을 일으키자 동북면으로 피신한다
23세 : 밀직사대언이 된다
24세 : 정몽주 일파가 아버지를 위협하자 그들을 제거할 계획을 꾸민다
25세 : 아버지가 말에서 굴러 떨어져 부상을 당하자 정몽주 세력이 이성계 세력을 축출하고 그간의 개혁 법령을 폐지하려는 계획을
세우니 정몽주,이숭인 등을 살해 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31세 : 부왕 태조 이성계가 와병 중임을 틈타 정도전,남은,심효생 등 개국공신들을 살해 하고 이복 동생 17세 이방번, 16세 이방석을 살해하고 정몽주를 충절의 상징으로 현창시켜 영의정부사에 추서한다.
33세 : 이방원의 넷째 형인 이방간이 난을 일으키자 쉽게 진압하고 형을 꼬드긴 박포는 죽이고 형은 살려준다. 얼마 뒤 정종 이방과는
이방원을 왕세제로 책봉하고 아홉달 뒤 양위한다.
33세 ~ 50세 : 사회 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관제 개혁을 통해 왕권 강화를 시켰으며 사병을 혁파하고 병권을 일원화.
중앙제도와 지방제도를 새로 정비해 고려의 잔재 제거, 의흥부를 폐지해 병조의 지휘권을 확정하는 등 국방력 강화
토지제도와 조세 제도의 정비를 통해 국가 재정 안정. 척불숭유 정책을 강화하여 사찰을 정리 사원전을 몰수.
호패법.서얼금고법을 실시. 6조 직계제를 통해 의정부와 6조의 관료들을 왕에게 직속시켜 관료 직접 제어
신문고 설치. 주자소를 세워 동활자 제작. 왕권의 안정을 위해 자신을 등극시킨 공신들 숙청
(이거이/이숙번 유배. 장인 민제는 병사. 네 처남 민무구.민무질.민무휼.민무희 모두 사형. 장모도 곧 사망으로 외가 완전 몰락시키고
왕비 원경왕후를 교태전으로 사실상 유폐시켜 외척이란 존재를 없애버림)
양녕대군을 폐위하는 과정에서 그의 장인 김한로가 반발할 가능성이 있다 생각해 김한로 역시 외지로 유배
51세 : 옥새를 충녕에게 넘기고 수강궁으로 물러 났지만 국정을 감독했고 병권과 인사권을 놓지 않았다.
52세 : 세종의 장인 심온을 제거 한다.
54세 : 상왕에서 태상왕으로 진봉되고 그간 장악하고 있던 병권과 인사권을 세종에게 완전히 넘긴다.
55세 : 4월 매사냥을 하고 환궁하였다 자리에 눕게 되었고 보름 뒤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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