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노벨상 그거 로비로 받은거 아닌가?">
노벨재단의 김대중 로비설에 대한 답변-
'그렇다. 한국으로부터 로비가 있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김대중 정부로부터의 로비가 아니었다.
정치적 반대자 등으로부터 상을 주면 안된다는 로비가 있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노벨상을 주기로 결정했다'
군나르 베르게, 노벨위원회 위원장
‘이상한 한국’
난 한국인에게 노벨상을 주지말라고 한국인들에게 로비 시도를 받았다.노벨상은 로비가 불가능하게 로비를 하려고 하면 더 엄정하게 심사한다. 한국인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김대중의 노벨상 수상을 반대하는 편지 수천통이 전달되었다(모두 경상도에서 날아든 편지였다)">
"내가 노벨 위원회에 들어온 이래, 처음있는 일이었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는 나라에서반대를 표시하는 편지가 날아온것은. 그것이 특정지역에서 날아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을때,나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그 지역의 사람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노벨상중에서도 가장 노벨의 염원을 담고있는 평화상이 로비로 받아 낼 수 있는 상이라면과연 세계 제일의 평화상으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그 편지를 보낸 사람들에게 묻고싶다. 노벨상은 로비로 얻어낼 수 있는 상이 아니다.돈으로 살 수 있는 상이 얼마나 가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그러기에 더더욱 그 가치가 찬란히 빛나는 것이다.왜 다수의 한국인들이 김대중의 위대함과 그의 민주주의를 향한 불굴의 의지에 감명받지 못하는지그 이유가 이해할수 없을 뿐이다">
노벨상을 받으려고 김대중이 로비를 한 것 아니냐며 집요하게 묻는 월간조선 기자의 질문에,앞서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동 티모르의 오르타장관(현 대통령)...
'멍청한 소리 하지 말라. 김대중은 가장 유명한 독재자에 목숨을 걸고 항거한 사람이었다.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위대한 지도자를 비난하는지 묻고 싶다. 질투 때문인가">
노벨상심사위원회 비상임간사인 노르웨이 스팔니치뇨 박사(노르웨이 국립대학 종신교수)는공평하고, 공정한 심사결과에 따른 노벨상수상을 자국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불공정하고 부당한 수상이라고 주장하는 한국에 또다시 노벨상을 수여하는 것은노벨상 취지에 어긋나는 행위라 판단하여대한민국에 '다시는' 노벨상을 수여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설명.
한편, 김대중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지금까지의 역대 수상중 가장 빛나는 수상이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과 노벨상] 후보 15번만에 영광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된 게 올해로 15번째다.
1986년 당시 미 에모리 대학 총장이던 제임스 레이니 전 주한 미 대사가몇 명의 교수들과 함께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헌신을 이유로 추천한 게처음이다.
`6월 항쟁'등 민주화의 물살이 거셌던 87년에는 서독의 사민당 의원들이김 대통령을 후보로 추천했다. 당시 독일 유학 중이던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이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를 방문, 노벨상 문제를 화제로대화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브란트 전 총리는 “김대중씨를 존경한다”면서 “그러나 내가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에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지만 간접적으로 조력, 사민당 의원들의 추천이 있게 했다.
이 때 김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야권 단일후보 협상에서 실패,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한 사실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지 못한 결정적 이유였다는 후문이다.
이 과정을 잘 아는 여권의 한 고위인사는 “그 해 한국의 민주화 열기는전 세계적인 이슈였다”면서 “DJ가 YS에 후보를 양보했다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을 것이라는 게 노벨위원회 관계자들의 전언이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외의 많은 유력인사들이 김 대통령을 추천했다. 98년에는 제프리 탐슨 뉴질랜드 국민당 당수, 게리 우다드 호주맬버른 대학 교수, 덴 히데오 일본 참의원 등이 추천했으며 99년에는 미국의 남캘리포니아 대학 조지 다튼 교수, 피츠버그 카톨릭 대학의 윌리엄 커총장, 토마스 포글리에타 주 이탈리아대사 등이 추천 작업을 주도했다.
김 대통령의 수상 가능성이 유력했던 때는 92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정계은퇴를 선언한 그 다음해인 93년. 김 대통령은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의장, 데 클레르크 남아공 대통령과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던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추천 작업에는 김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영작(李英作) 메릴랜드 주립대 교수의 역할이 컸다.
국내에서 정당 차원의 추천 작업은 95년이 처음. 이기택(李基澤) 당시 민주당 대표위원이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이었던 김 대통령을 추천하는 작업을했다. 99년에는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 등 107명의 서명으로 추천이 이루어졌다.
금년에는 국내에서의 추천 작업은 없었다. 정치적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대신 아태재단 고문으로 있는 오스카 아리아스 산체스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추천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여사, 남아공의 데스몬트 투투 주교, 폰 바이체커 전 독일대통령 등도 적지 않게 조력했다는 게 주변의 귀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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