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대표, 아버지 김용주 씨의 친일행적 미화 마라.
김무성 대표의 아버지 김용주 전 회장은 독립을 위해 투신한 인물이 아니었다. 친일 발언과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인물이다. 이는 기록이 증명하고 있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에는 김용주 전 회장의 친일 발언과 행동이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매일신보> 1941년 12월 9일자, 1943년 10월 3일자 기사에 따르면 김용주 전 회장은 일제 때 경북도회 의원과 조선임전보국단 간부를 지내면서 '황군에게 위문편지를 보내자'는 운동과 함께 '각 면에 신사를 건립하여 신을 공경하고 신앙생활을 하게 하자'라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천황의 뜻을 각지에 전파에 모두가 황국군이 되어 전투에 나가자는 주장도 했다.
1944년 1월에 발간된 <징병제시행 감사 적미영격멸 결의선양 전선공직자 기록대회>라는 책자에도 김용주 씨가 했던 친일 발언이 실려있다. 이 책자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다음과 같은 친일 발언을 했다.
먼저 가장 급한 일은 반도 민중에게 고루고루 일본 정신문화의 진수를 확실히 통하게 하고, 진정한 정신적 내선일체화를 꾀하여 이로써 충실한 황국신민이 될 것..">
"앞으로 징병을 보낼 반도의 부모로서 자식을 나라의 창조신께 기뻐하며 바치는 마음가짐과 귀여운 자식이 호국의 신으로 야스쿠니 신사에 신으로 받들어 모시어질 그 영광을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이 뿐만 아니라 그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후방에서는 전쟁물자를 공급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미국과 영국을 물리칠 때까지 2500만 부녀자가 취사는 아침·저녁 2번만 하고 점심은 도시락으로 해결하며 후방지원(전쟁물자 생산)에 힘쓸 것을 주문했다.
신라의 화랑 관창과 조선의 사육신 성상문의 사례를 들며 그들의 충성심과 의기를 되살려, 일본 천황을 위해 나아가 싸우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는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일제가 대구신사를 건립할 때 그는 2천원을 기부했고, 앞서 말한 것처럼 황군에게 위문편지 보내기 운동을 진행했다.
반민특위법에 따르면 김용주 전 회장은 제국의회의 의원이었던 것만으로도 처벌의 대상이 된다. 반민특위법 제 4조 8항에 따르면 도, 부의 자문 또는 결의기관의 의원이 되었던 자로서 일정에 아부하여 그 반민족적 죄적이 현저한 자는 처벌 대상이다. 그럼에도 김무성 측은 그의 아버지가 민족적 고난 앞에서 소리없이 자신을 희생했던 사람이라 말한다.
김무성 대표의 친인척들 면면을 보면 비단 그의 아버지만이 친일을 한 것이 아니었다. 김 대표의 장인인 최치환 씨는 만주국 신경 군관학교 출신이다. 김 대표의 누나인 김문희 씨의 남편, 현경원 씨의 집안도 만만찮은 친일 집안이었다. 현 씨의 아버지 현준호 씨와 할아버지 현기봉 씨 둘 모두는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였다.
친일 행적으로만 따지면 꽤나 '뼈대있는 가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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