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1954년부터 1979년까지 4차례에 걸친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모두 승리
(근대 이전까지 포함하면 몽골 제국 상대로도 승리함)
제 1차 인도 차이나 전쟁
베트남 독립군vs프랑스
사이공시의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프랑스 본국의 군이 상륙하면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자본과 무기 등에서 뒤진 베트남 독립군이 엄청난 열세에 놓였지만 제국주의 반감을 가민 시민들의 지지를 업고 전세를 역전하였다.
1953년 총 반격을 개시한 베트남 독립군은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프랑스군을 초살시켜버리고 그 해 제네바에서 휴전 협정을 맺었다.
제 2차 인도 차이나 전쟁
북베트남vs남베트남 및 미국 포함 연합군
남북 베트남 사이의 내전임과 동시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대립의 양상을 띠고있는 전쟁이다.
1964년에 미국이 통킹망 사건을 구실로 참전함으로서 국제전으로 확산되었다.
미군의 화력이 워낙 압도적이었던 까닭에 초기에 상황이 종료될줄 알았지만 난생 처음보는 베트남식 게릴라 전투에 미군은 매우 고전하였다.
결국 미군은 국제적 군사 개입에 대한 정당성에 대한 논란에 시달림과 동시에 정치, 경졔 위기까지 겪게되며 베트남에서 철수한다.
베트남vs캄보디아 전쟁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가 베트남인에 대해 인종 청소를 실시하자 베트남이 캄보디아에 보복 침공을 가하였다.
결과는 캄보디아의 크메르 루주 정권이 퇴출되었고 베트남이 캄보디아 국토의 대부분을 점령하였다.
제 3차 인도 차이나 전쟁
베트남vs중국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크메르 루주가 쫓겨나 중국에 지원을 요청하여 시작된 전쟁이다.
1979년에 중국은 베트남의 국경을 넘어 공세를 시작했으나 베트남 북부는 열대 산악 지형이기 때문에 진격하는데 고생을 했다.
당시 주력 베트남군은 캄보디아에 있어서 중국 침공에 맞선 베트남군은 소수에 불과했는데도 불구하고 중국군을 거의 궤멸시켜버렸다.
이후 중국은 일방적으로 목표를 달성했다고 주장하며 철군했으나 캄보디아 주군 베트남군을 철군시켜러던 당초의 목적은 전혀 달성하지 못했다.

자신의 사위이자 미 해병대 중대장인 찰스 로브의 베트남 전쟁 상황 당시 음성 기록을 듣고 몹시 괴로워하는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 전쟁의 장기화에 이은 패전 탓에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결국 재선을 포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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