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동의 요순이라 불리우는 세종대왕이지만, 그도 그릇된 정치로 백성을 힘들게 한 일이 없지않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 모르고있던 세종대왕의 실책들을 알아봅시다.
1. 4군 6진 백성 강제이주

4군 6진 개척당시, 백성들을 강제이주 시킨 사건입니다. 고향땅에서 잘먹고 잘살고있던 백성들을 강제이주시켰고, 날씨에 적응못해 동사하거나 먹을게 없어 인육을 먹었을 정도로 이주민들은 고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덕분에 압록강 두만강 이남의 모든 한반도 영토를 지금까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2. 수령고발금지법 + 부패한 관료들에 대한 비호

쉽게 말해서 자기 고을의 수령이 악한짓을 했을때,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고발할 수 없는 법입니다. 태종때 폐지되었던게 다시 부활합니다. 또한 능력이 출중하다고해서 부패한 관리를 벌주지 않은 사례도 있습니다..
3. 화폐개혁
세종의 가장 큰 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 물물교환 위주로 돌아가던 경제체제에 강제로 화폐를 도입하여 화폐로만 거래토록 한 법입니다. 이는 철저히 실패해서 백성들이 폭동 직전까지 가서야 비로소 정책을 취소합니다.
이게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몇가지 있는데
첫번째는 조선 중앙정부의 능력미달입니다. 중앙정부에 경제력 자체가 없었기때문에 화폐를 만들 구리나 금속이 부족했던 겁니다.
두번째론 교역경제가 발달하지 못했고 자급자족 형태의 경제였기 때문입니다. 코딱지만한 땅덩어리에서 교역을 위해 돈으로 굳이 바꿔서 거래할 필요부터가 없던겁니다.
이러한 이유로 화폐개혁은 철저히 실패했는데, 세종은 이를 밀어붙이기 위해 물물교환 적발시 유배를 보내거나 장형을 때리는 등 , 이때문에 백성들이 많이 고통스러워 했다고 합니다.
4. 왕자들의 대외활동 장려
문종 이외에 다른 왕자들의 대외활동을 장려함으로써 그들이 정치적으로 힘을 얻게됩니다. 물론 문종 생존당시엔 수양이 찍소리도 못했으나 그 이후엔 계유정난으로 이어지고, 훈구가 집권하게 되면서 조선은.. 그말싫
5. 대명 사대외교

대명 사신을 위한 접대때문에 엄청난 재정지출을 하게됩니다. 명 사신이 스라소니를 원해서 온 백성들이 스라소니 잡느라 난리가 나고, 처녀와 미녀를 바치라는 요구에 이를 피하기 위해 백성들이 연기를 하는 등. 피해가 심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대명사대외교의 시작이 세종이였고, 이에대한 비판에 백성의 고통은 작은 문제지만 큰 나라를 섬기는것은 큰 문제다 라며 명 사신 접대를 밀어 붙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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