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18년의 어느 날
당시 '네덜란드가 지배하던 벨기에'의 루뱅 대학교에서
<프랑스 문학> 강의가 열리고 있었어

그런데 여기엔 중대한 문제가 하나 있었어
당시 네덜란드령이었던 이 지역 학생 대다수는 네덜란드어를 구사했는데

이 강의를 맡은 프랑스인 강사 조제프 자코토는 프랑스어만 구사할 줄 알뿐, 네덜란드어를 전혀 몰랐고
학생들 역시 프랑스어를 전혀 몰랐던거야
아니 학생이랑 선생님이랑 말이 안통하는데 뭘 어떻게 가르침?
고민에 빠진 자코토는 자신과 학생들을 연결할 끈을 하나 찾게 돼

당시 프랑스어-네덜란드어 대역판으로 출간된
『텔레마코스의 모험』이라는 이야기 책이 있었어
책에는 프랑스어와 네덜란드어가 함께 실려있었는데
자코토는 이 책을 교재로 삼아
학생들 스스로 네덜란드어 번역문을 참조해서 프랑스어를 익히도록 했는데
자코토와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영국의 교육자 '조지프 페인'의 책을 보면
자코토의 수업 내용을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자코토는 '칼립소의 슬픔'으로 시작하는 첫 구절을 자신이 읽고 학생들이 따라 읽게 한다.
먼저 '칼립소'라고 읽고 따라 읽게 한 뒤, 이어서 '칼립소의'라고, 다시 '칼립소의 슬픔'이라고 따라 읽게 한다.
따라 읽기 이후의 공부는 모두 학생들의 몫이다.'
스승과 학생 사이에 서로 통할 수 있는 공통의 언어가 없는 상태에서
학생들은 스스로 프랑스어를 학습하게 된거야
프랑스어 철자법, 동사 변화 등 가장 기초적인 것도 가르치지 않은 상황에서
그는 학생들로 하여금 책의 일부를 외우게 하고 그것이 잘되는지만 확인했어

얼마 간의 시간이 흐른 후
자코토는 학생들에게 읽은 내용에 대해 자기가 생각한 바를 프랑스어로 써보라고 했어
그런데 이게 웬 일?
학생들이 작가 수준으로 문장을 구사하게 된 거야
프랑스인들도 자주 곤란을 겪는 문법적 문제를 피해가면서.
이 말도 안되는 상황에서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거지
학생들은 네덜란드어에 상응하는 프랑스어 단어의 변화를 관찰하면서
프랑스어 문장이 형성되는 구조를 깨달았고
문법의 체계 역시 글을 쓰면서 스스로 깨우쳤어

자기는 가르칠 수 없었지만
학생들은 배울 수 있었던 그 과정에서
자코토는 큰 깨달음을 얻어.
'사람은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있을 때 설명해주는 스승 없이도 혼자 배울 수 있구나!'
통상의 교육은
스승이 학생보다 지적 능력에서 우월하다고 전제하고서
'우월한' 스승이 '열등한' 학생을 가르쳐야 한다는 교육관을 가지고 있지.
자코토 역시 스승이 해야 할 일은 학생들에게 자기가 가진 지식을 전달함으로써
그들을 스승이 가진 학식의 수준만큼 차츰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나 위 상황에서처럼
'무지한 스승'과 '무지한 제자'는 지적인 평등을 이루게 돼.
그 결과 무지했던 학생들은 자신들 스스로 프랑스어로 말하고 쓰는 법을 익혔어.
자코토는 그런 결과로
'학생을 해방한다면, 다시 말해 학생이 고유한 지능을 쓰도록 강제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것을 가르칠 수 있다'
라는 결론을 내려.
분명 자코토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학식'을 전달하지 않았어
그는 다만
1. 학생들을 고리 안에 가두고 스스로 빠져나오도록 했고
2. 그 과정에서 자신의 지능은 분리했으며
3.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으로 책과 씨름하도록 했을 뿐이었어
다시 말하자면
그는 아이들을 어떤 상황 속에 몰아넣었고
배움의 의지가 발휘되어야 하고 또 발휘될 수 있는 그 상황 속에서
배우는 자들이 혼자 설 수 있도록 한거야
그는 선생의 내면에 있는 지식에 도달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자 안에 있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게 돕는 선생이었던 거지.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저서 『무지한 스승』에서 자코토의 사례를 통해 '인간은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자코토를 '무지한 스승'이라고 명명해
'무지한 스승'이란 '학생의 지능이 쉼없이 자발적 의지를 통해 실행되도록 하는 자'라는 설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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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자코토 역시 학생들이 했던 체험을 겪어봤다는 거야

1792년, 중학교 수사학 선생이었던 그는 그 해 포병대에 입대해
우연한 상황에서 동료의 추대를 받아 장교가 된 그는 별 수 없이 포탄의 궤적을 이해해야 했는데
놀랍게도 수준급의 포수실력을 발휘하게 돼
수사학 교사이자 라틴 문헌학자였던 그가 대단한 포탄 사수가 된 거야
또 화약을 다루는 부서에 얼마 간 근무한 뒤
군에 입대한 노동자에게 속성으로 화학을 가르치는 임무도 수행했고
얼마 뒤에는 신설된 이공계 고등교육기관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하면서
수학자가 되어 디종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나중에는 히브리어까지 정ㅋ벅ㅋ해서 가르치게 됐다고 해
이러한 일련의 상황에서 그는 스승 없이 스스로 해내야 했는데
그 때마다 그는 자신에게서 배우는 능력이 발취되는 걸 느꼈다고 한다...
언뜻보면 대단한 능력자, 대단한 천재가 아닐 수 없어
그러나 자코토는 일련의 경험 속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얻게 돼
"나는 천재가 아니며 인간은 모두 똑같은 지적 능력을 갖고 있다.
내가 천재라면 모든 인간이 천재다."
(사실 이 결론을 내렸다는 게 그의 천재성을 보여주는 것 같음)
그런데
여기서 '인간의 능력은 평등하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당신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떤 한 가지의 믿음일 뿐 정당화될 수 없는 명제인 것 같지 않아?
나도 책을 읽으면서 '아니 그래도 대단한 위인들이랑 내 능력이 같다는 건 좀;' 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러나 자코토가 중점을 두고자 했던 건
'지능의 평등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지능은 평등하다'는 전제하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는 거였어
(맹자의 '성선설'이 '인간은 선한 존재'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는 선한 존재니까 선하게 살아야 하고, 또 그렇게 살 수 있다'는 주장을 위한 것이었듯이)
자코토는 누군가가 어떤 능력을 발취하지 못할 때
그것을 '능력이 불평등하다'는 증거로 삼지 않았으며
능력이 발휘될 수 있도록 현실적으로 돕고자 했어.
물론 자코토의 일화가 스승은 쓸데없는 존재라는 뜻을 내포하는 것은 절대 아냐.
다만 스승은 일방적 지도가 아니라 학생 자신의 고유한 지능을 쓸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배움의 과정에서 스승이 어디쯤에서 어떻게 개입하는가의 문제일 뿐이지.
자코토 스스로 '보편적 가르침'이라고 명명한 이 교수법은
자코토의 철학, 그리고 그에 대한 랑시에르의 해석에 의해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어
'의지가 지능을 다루게끔 노력하라'
철학자와 하녀 - 고병권
무지한 스승 - 자크 랑시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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