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 대학에서 학생회장을 뽑는 선거가 있었다. 투표율은 50%대였다. 회장을 뽑는데 오직 반의 의사만이 표현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정치외교학과의 투표율이 그닥 높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모 대학에서 보강이 잡혔다. 그 강의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보강 일시에 대해 투표를 실시했다. 하지만 그 투표율은 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교수님의 반강요로 투표율는 80%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대학생들에겐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 마치 투표는 권리 행사가 아닌 귀찮은 의무의 이행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들을 대변하는 학생회장을 뽑는 것에도, 자신의 보강 일정에 대해서도 투표 열의는 보여지지 않는다. 18대 대통령선거에서도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투표율은 70%를 넘지 못했다. 연령별 가장 낮은 비율을 차지했다. 하지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않는 자는 다른 이들의 결정에 따라가야만 한다. 자신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에서 권리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이를 표현하는 것,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권리인 것이다. 투표하지 않는 세력은 정치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하지만 투표를 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필요성만으론 젊은이들을 투표장으로 오게 하긴 역부족이다. 투표에 대한 교육이 많아짐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이 투표하지 않는 것은 젊은이들을 유도할 만한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인 것이다. 아무리 투표에 대해서 교육해도 실제로 젊은이들이 투표하고 싶게 만들지 못하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유태인들은 알파벳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때 꿀로 알파벳을 써서 그 알파벳을 먹게 함으로써 배움이 꿀처럼 달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처럼 투표가 나에게 꿀처럼 달다는 것을 젊은 20대에게 몸소 느끼게 하는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투표한 사람들에게 1. 구청에서 사용할 수 있는 투표마일리지를 주는 방법이나, 2. 헌혈을 사회봉사로 인정하듯이 투표를 인정하는 방법 등 작지만 투표한 사람들에게 일정한 혜택을 인정해서 유도할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3. 투표를 하면 투표복권을 나누어 주는 방법도 가능하다. 또한 수능 본 학생들을 위한 많은 행사 프로그램이 있듯이, 4. 생에 첫 투표를 한 젊은이들을 위한 행사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투표에 대한 직접적 혜택을 받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식당에 손님이 오지 않는 것은 그 식당의 맛이나 서비스의 질이 낮은 것이 원인이다. 음식을 사 먹는 사람들에겐 문제가 없다. 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게을러서 투표를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현재 20대에 대한 투표유인 제도가 없으니 그 결과 투표율이 낮았다고 생각한다. 투표의 소중함을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의 말씀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작지만 눈에 보이고, 직접 만질 수 있는 구체적 혜택을 주는 것이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165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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