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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0년 전 (2015/12/09) 게시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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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 슈틸리케

슈틸리케, 이 남자는 누군가? | 인스티즈

역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홍명보호

슈틸리케호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울리히 슈틸리케 (Ulrich Stielike)
생년월일
1954년 11월 15일
국적
독일
출신지
바덴-뷔르템베르크 케치
포지션
미드필더, 스위퍼

176cm
유스팀
SpVgg 케치 (1962~1972)
소속팀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 (1972~1977) 
레알 마드리드 CF (1977~1985) 
뇌샤텔 그자막스 (1985~1988)
지도자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1989~1991) 
뇌샤텔 그자막스 감독 (1992~1994) 
SV 발드호프 만하임 감독 (1994~1995) 
UD 알메리아 감독 (1996)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1998~2000)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U-19 / U-20 / U-21 감독 (2000~2006)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6~2008) 
FC 시옹 감독 (2008) 
알 아라비 감독 (2008~2010) 
알 사일리야 감독 (2010~2012) 
알 아라비 감독 (2013~2014)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4~)
국가대표
42경기 3골

꿈은 자유롭게 꿀 수 있지만 꿈이 우리를 결승전까지 데려다주지는 않습니다.
- 2015년 AFC 아시안컵 4강전 대한민국 VS 이라크를 앞두고 발표한 인터뷰에서.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우리 선수들 자랑스러워해도 됩니다.
- 2015년 AFC 아시안컵 에서 준우승을 거두고 기자회견에서 직접 한국어[1]로 이야기 하면서."내가 하는 축구가 단순히 TV를 통해 중계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감동시키길 원합니다." - 2015년 AFC 아시안컵이 끝나고 난 뒤 첫 휴가를 떠나기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한국에서 축구가 일상과 가정, 더 나아가 사회에서 끊임없는 화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국민들이 모여서 맥주를 마시거나,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정치나 경제, 업무가 아닌 축구를 이야기하는 풍토가 마련돼야 합니다.'' - AFC 아시안컵이 끝나고 난 뒤 첫 휴가를 떠나기 전, 한국 축구의 병폐를 꼬집는 인터뷰에서."잠시 후, 중·일전이 끝나면 우리가 우승을 할지, 준우승을 할지 결정된다. 그러나, 내게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여러분들이 이번 대회를 위해서 온 힘을 다해준 점이고, 정말 잘했다는 것이다. 자랑스럽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 동아시안컵 남북전 이후 선수들에게."어떠한 경우에도 선수들을 A급, B급, C급으로 나누지 않는다, 대표팀에 오면 동일하게 중요한 선수로 대접한다. 덕분에 선수들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였다" - 자메이카전 3-0 승리 후 인터뷰. F급 감독 부관참시[2]“축구인으로 40년을 살아왔다. 아마 2연패만 해도 평가는 180도 달라질 것” - 국내 축구팬들이 올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성적을 보면서 ‘갓(God)틸리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는 반응에 대해서.


1. 소개2. 선수 시절2.1.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2.2. 레알 마드리드 CF2.3. 독일 국가대표
3. 감독 시절3.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
4. 트리비아


1. 소개[편집]

Ulrich "Uli" Stielike

독일 출신의 축구선수이자 축구감독. 2015년, 현직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선수 시절의 포지션은 스위퍼 또는 미드필더였다.

2. 선수 시절[편집]

1975년에는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에서, 1985년에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UEFA컵을 들어올려 지금도 두 팀에서 전설로 불리며[3]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존재했던 그 어떤 인물보다도 뛰어난 선수 경력을 가진 인물이다.

선수 시절 초창기에는 분데스리가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당시에는 부동의 명문 바이에른 뮌헨조차도 분데스리가에서는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를 넘어서지 못했다. 당시에는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울리 슈틸리케는 수비의 베르티 포그츠, 공격의 유프 하인케스와 같은 걸출한 동료들과 함께 팀의 척추를 구성하며 분데스리가에서 3번이나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또한, 울리 슈틸리케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도 역시 주전 수비수였다. 프란츠 베켄바워의 수비수로서의 빈 자리를 파울 브라이트너와 함께 채워냈다. 유로 1980 우승,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준우승의 핵심 멤버로 활약했다. FIFA와 국제 축구 역사 통계 연맹이 20세기 최고의 명문으로 선정한 레알 마드리드에서 무려 8시즌 동안 미드필더와 수비수를 오가면서 4연속 라 리가 최고의 외국인 선수상을 받았고,[4] 3번의 프리메라리가 우승, 코파 델 레이 우승 2회, UEFA 컵 우승 1회에 기여한 레전드급 선수였다. 당시에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독일 출신 선수가 흔하지 않던 시절인 데다, 특유의 파이팅 넘치고 중후한 플레이 스타일이 돋보였고 레알 팬들에게독일산 "판처"로 불리면서 널리 사랑받았고, 과거 프리메라리가에서 매 경기마다 외국인 선수는 2명 이하로 출전제한이 있던 시절에 무려 8년간 주전으로 활약할 정도로 탄탄한 입지를 자랑했다. 지금도 레알 마드리드에 애정이 있어서, 레알이 조금이라도 부진한 모습을 보이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5] 또한, 울리 슈틸리케는 차범근과 함께 현재까지도 세계적으로도 단 9명밖에 없는 서로 다른 팀에서 UEFA 컵 2회 이상 우승을 경험한 전/현역 축구선수 중 한 명이다.

2.1.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편집]

슈틸리케, 이 남자는 누군가? | 인스티즈

외모의 리즈 시절 잭 블랙 닮으셨다

슈틸리케, 이 남자는 누군가? | 인스티즈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의 최전성기를 이끌던 시절.

뒷줄: 한스 유르겐 비트캄프, 디트마르 다네르, 유프 하인케스, 볼프강 크나이브, 울리 슈틸리케, 라이너 본호프

앞줄: 알란 시몬센, 헤르베르트 하이덴라이히, 크리스티안 쿨릭, 한스 클링크하머, 베르티 포그츠

SpVgg 케치 유스팀에서 활동한 뒤, 분데스리가의 명문구단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로 이적하여 팀의 중심이 된다.

당시 유럽에서 바이에른 뮌헨은 유러피언 컵 3연패를 하며 전 유럽의 패자로 군림하던 시기였지만, 상대적으로 리그 성적은 그리 신통치 못했는데 저 3시즌 간 10위-3위-7위를 전전하며 끽해야 중위권에 안착하는 정도에 그치는 변변찮은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바로 이 시기에 분데스리가 내에서 절대적인 강자로 군림하던 것이 바로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로, 69-70, 70-71 두 시즌 귄터 네처와 베르티 포그츠를 중심으로 분데스리가를 연패했던 묀헨글라드바흐는 이후 74-75, 75-76, 76-77시즌을 3연패하고 그 마지막인 76-77시즌엔 유로피언 컵 결승전까지 진출하게 된다. 70년대 중반 귄터 네처는 이미레알 마드리드에 이적한 이후였고, 당시 주축이 된 선수들은 독일의 올타임 베스트 라이트백인 베르디 포그츠, 지금은 감독으로 더 유명하지만 현역시절에도 대단한 공격수였던 유프 하인케스, 팀의 에이스이자 당시 활약으로 77년도 발롱도르를 수상했던 덴마크 출신의 알란 시몬센 등이었고, 후방에는 울리 슈틸리케가 든든하게 받치고 있었다.

특히, 울리 슈틸리케는 여러모로 프란츠 베켄바워의 후계자로 불리울 만큼 상당한 유사성을 보여주었다. 유소년 시절에 축구를 처음 접하면서 배웠던 포지션은 골키퍼였다가 선수 커리어를 미드필더로 시작했고, 센터백을 오가면서도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었다. 보통 국가대표에서는 센터백으로, 클럽에선 수비형 미드필더로 자주 출장했고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나 레지스타 포지션으로 뛰는 경기에선 엄청난 드리블을 선보이면서, 상대의 진형을 교란시키는 올라운드 플레이어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슈틸리케, 이 남자는 누군가? | 인스티즈

슈틸리케가 동료들과 마이스터샬레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울리 슈틸리케, 우도 라텍(감독), 유프 하인케스, 베르티 포크츠. 이 사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감독으로서도 승승장구했다는 점에서 전설적인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 슈틸리케만 감독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이제 한국에서 성공할 것이다.

그러나 이 사진을 마지막으로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는 아직까지 우승을 못하고 있다. 지못미

2.2. 레알 마드리드 CF[편집]

슈틸리케, 이 남자는 누군가? | 인스티즈

동료들도 다들 레전드다.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비센테 델 보스케, 가르시아 레몬, 산틸랴나, 후아니토...

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슈틸리케는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하게 된다. 레알 마드리드 CF 이적 계기가 특이한데, 당시 레알 마드리드 CF의 회장이 귄터 네처에 이어서 슈틸리케의 동료인 헤르베르트 빔머와 사인하려고 독일로 비행기를 타고 갔는데, 실제 경기에서 슈틸리케의 플레이를 보고 바로 마음을 바꿔서 계약을 제시했고 곧 승낙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위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비센테 델 보스케, 가르시아 레몬,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6] 등, 레알 마드리드 CF의 1980년대 레전드들과 함께 핵심멤버로 활약했다. 또한 8시즌 동안 총 306경기에 출장하며 당시 레알 마드리드 역대 외국인 최다 출전기록을 세웠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호베르투 카를로스마르셀루페페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이 그의 기록을 추월했거나 추월할 가능성이 높지만 여전히 상위권에 드는 기록이다. 지금도 레알 마드리드 CF의 역대 레전드 명단에 당당히 기재되어 있다.

레알 마드리드 CF에서도 마찬가지로 보통 중앙 미드필더로 출장했고, 레알 마드리드에서 마지막 무렵엔 독일 국가대표에서 뛰었던 것처럼 리베로로 주로 활약한다. 1950-1960년대 저승사자 군단 시절과 1990-2000년대 갈락티코 시기가 챔피언스 리그 우승 경력이나 축구팬들에게 주는 이름값이 높아서 보통 레알 올 타임 베스트를 선정할 때 이 두 시대에 몰리게 되는데, 이런 네임 밸류 문제만 아니라면 레알 마드리드 올 타임 베스트, 나아가 라리가 올 타임 베스트에도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할만한 선수이다. 중앙 미드필더로서 호세 마르티네즈 산체스 '피리', 페르난도 레돈도, 사비 알론소 등과 경쟁이 가능할 정도다. 마냥 언론의 수사가 아닌 게, 라 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인 돈 발롱을 1978-1979시즌부터 1981-1982 시즌까지 무려 4연패를 달성한다.돈 발롱 역대 연패 최다 기록은 물론이고 최다 수상 기록도 갖고 있다. 슈틸리케를 제외하면 4연패도 없고, 4번씩이나 받은 외국인 선수도 없고 루이스 피구조차도 3번에 그쳤을 정도다.[7] 괜히 토니 크로스가 레알 마드리드 CF로 이적하면서 슈틸리케를 언급한 것이 아니다. 선수가 이리 잘하고 팀까지 레알 마드리드니까 우승 트로피 정도는 당연히 따라오는 부산물로 1977-1978, 1978-1979, 1979-1980 3시즌 연속으로 라리가 우승 타이틀을 석권한다. 1차례의 UEFA컵 우승과 2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을 따냈고, 1980-1981 시즌엔 유로피언 컵 결승까지 진출하는데, 이때는 아쉽게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슈틸리케, 이 남자는 누군가? | 인스티즈
라리가 최고의 외국인 선수[8] 역대 최다 수상자.

2.3. 독일 국가대표[편집]


슈틸리케, 이 남자는 누군가? | 인스티즈

프란츠 베켄바워의 후계자는 맞지만, 여러모로 데뷔와 함께 쉽게 국가대표팀의 주전을 꿰찬 것은 아닌데, 유로 76과 78월드컵에는 참가하지 못한다. 76년까지야 베켄바워가 워낙 공고했기 때문에 유망주 티를 벗어난 슈틸리케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고 쳐도, 베켄바워의 국가대표 은퇴와 함께 슈틸리케 자신이 전성기를 보내던 시절인 78월드컵에는 엔트리에도 들지 못했다. 이것은 그의 클럽 커리어 때문인데, 지금은 꽤나 많이 약해졌지만 당시에 유럽축구 강국들의 국가대표팀은 자국리그가 아닌 선수에게 국가대표의 자리를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슈틸리케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최전성기를 보냈고, 그가 펄펄 날아다녀도 헬무트 쇤 감독은 그를 외면했으며, 78년 월드컵 이후 유프 데어발 감독이 부임하면서 겨우 슈틸리케의 본격적인 국가대표팀의 생활이 시작된다.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에서 슈틸리케는 프랑스와의 4강전에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월드컵 역사상 유일하게 승부차기에서 실축했다. 당시 시대적으로 리베로 시스템은 독일축구를 넘어서 세계축구의 트렌드 중에 하나였고, 슈틸리케는 아르헨티나의 다니엘레 파사레야, 이탈리아의 가에타노 시레아, 네덜란드의 루드 크롤, 칠레의 엘리아스 피게로아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앨런 한센과 함께 당대의 특급 리베로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 42경기는 확실히 선수의 이름에 비해 부족한 감이 있다. 슈틸리케의 상대적으로 저조한 국가대표팀의 출전 기록은 당시 유럽의 축구 국가대표 팀들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쇄국정책으로 인한 안타까운 희생양이었기 때문인 것이다. 이 때문에 슈틸리케는 "나는 독일 축구에 있어서 탈영병과 같은 존재다."라고 밝혔다.

따라서 세계적인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독일 축구계에서 배신자로 낙인이 찍혔기 때문에 은퇴 이후에는 독일의 축구계에서 주류로 머무르지 못하고 계속 야인으로 지내게 된다. 지도자 수업을 본국에서 제대로 받지 못한 것도 이러한 이유이기도 했다. 2000년대 이후 독일 청소년 대표 팀의 지휘봉을 잡게 된 것도 절친한 동료인 베르티 포그츠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나려던 1998년, 해외 팀의 감독직을 전전하면서 야인으로 머물던 울리 슈틸리케를 대표 팀에 지명해줬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9] 선수로서는 어디다 내놓더라도 밀리지 않는 레전드급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축구계에서는 야인에 가까운 차범근과 유사한 케이스다. 본인도 자신을 인정해주는 스페인이 편한지, 현재도 마드리드에 거주 중이며, 공식석상에서도 독일어보다는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일이 많다. 

어쨌든 칼 하인츠 루메니게베른트 슈스터(유로 1980만 출전), 파울 브라이트너(유로 1980만 불참), 만프레드 칼츠, 한스 페터 브리겔, 칼 하인츠 푀르스터, 하랄트 슈마허라는 라인업의 중앙에 자리 잡은 울리 슈틸리케는 독일 전차군단의 주역이 되어 서독의 유로 1980 우승과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베켄바워에게 건네받아 슈틸리케가 맡고 있던 리베로 자리는 디트마어 야콥스,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마티아스 잠머로타어 마테우스[10], 옌스 노보트니가 되었어야 하지만 현실은 부상... 등으로 면면히 이어지게 된다.

우베 젤러프란츠 베켄바워게르트 뮐러베르티 포크츠파울 브라이트너칼 하인츠 루메니게로타어 마테우스안드레아스 브레메, 제프 마이어 등으로 이어지는 독일 역대 올타임 레전드들의 네임밸류가 워낙 개인 커리어든 클럽 커리어든 워낙 끝판왕급이라서 이들에 비해 잘 언급이 안 되는 슈틸리케를 비롯해서 슈넬링거, 오버라트, 회네스, 칼츠, 리트바르스키, 슈마허, 콜러 등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이지만, 사실 이 선수들도 사실 어마어마한 클래스를 지닌 선수들이었다. 이 선수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아래로 평가받는 귄터 네쳐, 베른트 슈스터, 브리겔, 피셔, 유프 하인케스, 아우겐탈러, 위르겐 클린스만, 묄러, 해슬러, 마티아스 잠머슈테판 에펜베르크 등이 얼마나 실력이 대단했는지 생각을 해본다면 그냥 독일에서 태어난 것이 비운이었다고 봐야할 듯하다.

3. 감독 시절[편집]


1988년 선수로서 은퇴한 뒤, 1989년 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되었다. 감독 데뷔전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1-0으로 이기는 쾌거를 이뤄냈다.# 또한, 이 경기에서 스테판 샤퓌자를 국가대표에 처음 발탁하기도 했다.[11] 감독으로서 슈틸리케의 첫 공식 무대는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 유럽 예선에 참가한 것으로, 벨기에체코포르투갈룩셈부르크와 같은 조가 되어 룩셈부르크에게 이긴 것을 빼고는 3연패를 당하면서 전임 감독이 경질이 된 도중에 부임하여 남은 경기에서 1승 1무 2패로 지역예선에서 탈락한다. 포르투갈과의 홈경기에서 역전패를 당한 것과, 벨기에와의 홈경기에서 2-1로 이기고 있다가 자책골로 무승부를 기록한 것은 아쉬움을 남겼다.(사실 그 두 경기를 이겼어도 탈락했을 가능성이 높긴 했다.) 이어서 유로 1992 예선에 참가, 스코틀랜드, 루마니아, 불가리아, 산마리노와 같은 조가 되어 4승 2무 2패로 1위 스코틀랜드와 승점 단 1점 차이로 조2위를 기록해 예선에서 탈락한다.[12] 스코틀랜드와 루마니아 두 팀에게서 한 번만 이겼어도 본선 진출 가능성이 높았고, 스코틀랜드와의 홈경기에선 먼저 2골을 넣고도 동점을 허용해서 더욱 아쉬운 부분이었다.[13] 1991년 사임한 뒤[14] 은퇴했던 뇌샤텔 그자막스의 감독이 된 뒤, 유럽 여러 팀을 거치고 나서 1998년 모국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부임했으나[15] 에리히 리베크 감독의 3백 전술에 반대하고 선수들과는 훈련 방식의 문제 등 마찰을 빚으면서 유로 2000 본선 직전에 물러났다.

2000년부터는 독일의 U-19, U-20, U-21 국가대표팀 감독을 6년 동안 역임했는데 2003년 U-20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당시 박성화 감독이 이끌던 한국을 만나 0-2로 패했다. 이 때문에 일부 축구팬들이 박성화에게 발린 슈틸리케라며 깠지만, 축구 오래 본 올드 축구팬들은 당시에 독일 청대들이 선배들과 다른 패싱게임를 하는 것을 보고 심상치 않게 여겼다. 그리고 당시 독일 유망주들 중 프로 1군에 소속된 선수들 상당수는 구단의 차출거부로 빠진 상태였다. 원래 유럽 구단들은 U-20 월드컵 등 청소년 축구대회에 해당 연령에 포함되는 자기 팀 1군 선수들의 청소년 대표팀 차출에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다. 비약적으로 말해 1군 유망주들 다 빠지고 2군 유망주들만 모았는데도 선배들과 다른 심상치 않은 패싱게임을 보여줬다는 얘기가 된다. 프로 1군 유망주들까지 다 모였어도 박성화 감독이 독일 청대를 쉽게 이길 수 있었을 거라고는 단정할 수 없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2003년 세계대회에 출전했던 한국 선수들 중에 팬들의 기대만큼 성장해서 대표팀의 주축이 된 선수는 아무도 없으며, 어떤 사람은 아예 한국 축구를 통째로 말아먹을 뻔 했다.[16] 한편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의 전력분석관으로 일하면서 독일의 준우승에 기여했다.

그 후 앙리 미셸 감독 하에 2006년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던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대표팀의 후임 감독으로 선임되었는데, 4경기에서 13득점 무실점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으로 코트디부아르를 200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본선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아들의 심각한 병세 문제로 인해 본선 전에 사임[17]하고, 설상가상으로 아들도 결국 세상을 떠나면서 상명지통[18]의 아픔을 겪게 된다. 이후 스위스의 FC 시옹에서 잠시 감독직을 역임했다.

슈틸리케, 이 남자는 누군가? | 인스티즈
2012년 알 사일리야 SC 감독 시절.

2010년부터는 카타르 스타즈 리그의 알 사일리야 SC알 아라비 SC에서 감독 생활을 했다.
이 시절의 성적이 좋은 편이 아니었고, 그 때문에 슈틸리케 선임때 본프레레보다도 못하다며 까이기도 했다. 슈틸리케와 카타르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김기희의 증언에 따르면 슈틸리케는 자신과 같은 용병 선수들에게만 지시를 내리고 카타르 선수들은 마음대로 하라며 방치했다고 한다. 카타르 선수들이 프로로서의 자세가 결여되어 있는 게 원인이었다고 하고, 성적이 조금만 나빠도 감독 모가지 치는 게 중동 축구의 관례였기 때문에 슈틸리케 본인도 그다지 의욕이 생기지 않았던 듯 하다.

2014년 9월 5일,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계약기간은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까지. 핌 베어벡의 사임 이후 7년 만에 다시 등장한 외국인 감독이다.

3.1.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시절[편집]

슈틸리케, 이 남자는 누군가? | 인스티즈
핌 베어벡 이후 7년만에 등장한 외국인 감독.

조광래, 최강희, 홍명보가 이룩해놓은 한국 축구를 침체기에서 다시 일으켜 세운 장본인.

자세한 내용은 슈틸리케호 문서와 하위 문서를 참조하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슈틸리케호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5년 AFC 아시안컵
2015년 EAFF 동아시안컵


4. 트리비아[편집]


데프콘을 닮은 편이다. 그래서 별명은 슈프콘. 슬램덩크의 안한수랑도 닮은편이다. 박주호와 함께 있으면 형돈이와 대준이 완성 1박 2일에서 정준영이 배용준 가발을 쓴 데프콘에게 슈틸리케 닮았다는 이야기를 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 팬들이 생각하기에 다른 건 몰라도 옷만큼은 못 입는다는 평이 많다. 아무래도 나이가 좀 있고 풍채가 있다 보니 그런듯하다. 즉, 패션센스보단 옷걸이가 원인인 셈. 오히려 독일 쪽에선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 패션센스가 좋아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독일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시절 입은 2XL사이즈 체크무늬 수트가 워낙 충공깽이었다.

슈틸리케, 이 남자는 누군가? | 인스티즈
문제의 체크무늬 수트. 하필 넥타이도 체크무늬로 매고 와서 더 충격이다.

부임 초기만 하더라도 화려한 선수 커리어에 비해 빈약한 감독 커리어 때문에 슈틸리케를 반기지 않는 축구팬들이 많았지만 부임한지 4개월만에 2015 호주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거두고 그간 경험할 수 없었던 연승의 맛을 맛보게 해주었기에 현재는 평가가 좋은 편. 전임 감독이 너무 막장이러서 그런가
거기다 흙속의 진주를 찾는다고 끊임없이 K리그 클래식이나 챌린지, 심지어 U리그도 보러 돌아다니는 바람에 축구팬들이 오히려 감독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

슈틸리케, 이 남자는 누군가? | 인스티즈
표정관리가 안된다
병아리 오줌인가...?
흔한_독일인_고문법.jpg

7월 22일 2015 FA컵 8강전 서울 대 포항전을 앞두고 한 팬미팅에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다. 맥주의 본고장 독일 출신이라는 점과 사진에서 뭔가 분노가 느껴지는 듯한 강렬한 눈빛(...) 때문에 본격 물고문 짤 취급을 당하고 있다. 독일 살다온 사람에게 한국 맥주를 먹게 하다니...# 공교롭게도 슈틸리케는 두 달 전인 5월 18일에 독일대사관저에서 열린 독일 전직 대통령 호르스트 쾰러의 방한 기념식에서 흡족한 표정으로 선진 맥주를 마시며 관계자들과 담소한 적이 있다. 페이스북 포스팅의 댓글 참조.

맥주는 몰라도 한국 음식은 굉장히 자주 즐겨 먹는 듯 하다. 감독 커리어 동안 해외생활을 워낙 많이 해 봐서 각국의 식문화에 적응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고 한다. 회식 때는 소맥을 말아 먹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한국음식 중 외국인들에게는 난이도 최상에 드는 청국장도 뚝딱 해치운다고. 그런데 청국장이나 찌개 등을 먹을 때 양식의 수프를 먹듯이 먼저 다 먹어버리고 나서 밥과 반찬을 먹는다고 한다(...). 

슈틸리케, 이 남자는 누군가? | 인스티즈

여담으로, 선수 시절은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지만 감독이 된 이후부터는 26년간 단 한 번도 대회 우승을 이끌지 못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부임 이후에도 2015년 AFC 아시안컵에서 준우승을 하게 되어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2015년 EAFF 동아시안컵에서 우승컵을 차지하면서 지도자 생활에서 첫 우승컵을 들게 되었다. 사실 카타르 알 사일리야를 이끌 때 11-12시즌에서 2부리그 우승을 이끈 적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타이틀이 걸린 대회에서의 우승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5년 8월 27일, "초중고 선수들에게 들려주는 축구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여러모로 한국 축구 유소년 선수들에게 공개적으로 질문을 받고 그에 따른 조언을 해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역시 슈틸리케 감독이 실제로 독일 유소년 대표팀 감독을 맡은 적이 있어서 그런지, 한국의 유소년 축구에도 아주 관심이 많은 듯 하다.링크

독일인이지만, 오랫동안 스페인에 살고 있는 데다 아르헨티나 출신[19] 수석 코치를 배려해서인지 독일어가 아닌 스페인어로 말하고 있다. 추석 인사


대표 사진
우지호빵  영화보러갈까?
ㅜㅜㅜ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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