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공부하는 기계다
"나는 공부하는 기계다"
이 하나의 문장. 이 말 이외 어떤 것도 나의 그 시절을 대변할 수 없다. 아직도 생각난다. 필통을 열면 이 문구가 써 있었다. 나만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펜을 꺼낼 때마다 이 문구를 보며 스스로의 생각은 물론 나 자신을 지우려 노력했다. 이것은 1년간 공부에 모든 에너지를 쏟기로 한 나의 신조였다.
물론 나도 남들처럼 멋있는 나만의 좌우명을 적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말보다 나에게 필요한 말은 찾을 수가 없었다.
초중고 시절을 거치며 나는 나를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 강성태라는 인간. 그는 나약하기 짝이 없다. 수도 없이 유혹에 굴복당했다. 마음 잡기도 하지만 잠깐 뿐이었다. 끈기가 부족했으며 공부를 할라치면 금새 잡념으로 머리가 가득찬다.
나 자신을 통제 하지 못해 무너지고 좌절한 날이 얼마나 많았던가? 주말 하루 날을 잡아 공부계획을 세워도 30분을 못넘기고 티비를 켜고 들락거리기 일쑤다. 당장 내일이 시험인데도 마음은 PC방에 가있고 게임 전략 구상하시기에 바빴다. 나는 내 몸뚱이인 나 자신을 조금도 컨트롤하지 못했다. 한심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생각을 잃는 것이 낫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기계가 되는 것이다. 기계는 놀고 싶어 하지도 않고 땡깡을 부리지 않는다!”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생각을 지운다면 놀고 싶다는 생각도 사라질 것이다. 불안함도 좌절감도 결국 내 머리속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냥 생각 자체를 하지 말자. 혹여 생각이 들면 그 싹을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앞으로 1년 솔직히 잘 될지는 나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참을 자신은 있었다. 공부가 아무리 날 무너뜨려도 그저 묵묵히 버티는 건 할 수 있따. 일진 친구들에게 놀이개처럼 맞고 다닐 때처럼. 그 시절도 버텼는데. 그저 이 악마같은 시간이 지나가길 바라며 참는 것은 할 수 있다.
내가 포기했던 것들
가장 먼저 게임을 끊었다. 중3 기말고사가 끝난 이후 게임에 완전히 정신을 놔버렸다. 한 번 잡으면 새벽 4시가 넘어서 끝날 때가 비일비재했다. 고등학교 들어가서도 나는 쉽게 끊지를 못했다.
부모님이 나가시면 늘 컴퓨터를 켰다. 한참을 하다 현관쪽에서 소리가 들리면 번개같이 강제종료시키고 책상에 앉아 졸린 척 하품을 하며 공부했던 시늉을 하곤 했다. 전자동 오토매틱 시스템이었다. 이런 대회가 있었다면 나는 분명 동메달안에는 들었을 것이다.
나같이 공상 잘하는 사람에게 게임은 쥐약이다. 캐릭터를 가지고 이런 저런 상상하고 잡념에 블랙홀에 한 번 빠지면 헤어나오질 못했다. 인간이 아닌 기계라 생각하니 비교적 순식간에 끊을 수 있었다.
‘기계가 무슨 생각을 하나. 나는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이다.’
티비를 끊었다. 만화도 접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만화는 접지 못했다. 만화는 수능 날까지 모의고사나 학교시험이 끝나는 날 딱 하루만 봤다. 만화는 게임만큼 중독성이 강하진 않았다. 컴퓨터로 만화를 보진 않았기에 만화방에서 밤을 셀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만화책을 빌려오면 빌려온 것을 다보면 끝이 났다. 만화도 나름 독서란 생각에 크게 해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물론 시험 끝난 날만 봤을 뿐 이다. 그 다음 날이면 만화는 꿈도 꾸지 않았다.
말도 줄였다. 나는 원래 산만했고 어릴 적엔 말도 많이 했다. 영양가 없는 말들이었다. 말을 많이 하면 지치고 집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을 전부터 느끼고 있었다. 말을 줄이고 말을 꺼낼 때마다 내가 꼭 해야하는 말인가 한 번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며칠동안 해보니 내가 얼마나 쓸데없는 말을 많이하고 남들에게 해도 안될 참견을 많이 하고 살았는지 느끼게 됐다. 나 스스로를 더 돌아볼 수 있게됐다. 말로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친구도 있었지만 내 경우는 아니었고 말을 줄이니 오히려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 같았다.
옛날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들은 전투 전에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집중이 흩트러지고 에너지가 빼앗기기 때문이다. 하루 하루 전쟁이란 생각을 갖게 됐다. 내가 무찔러야 할 적군은 수도 없이 밀린 개념들과 문제, 교재들이었다.
음악듣는 것도 줄였다. 음악 들으면 공부가 잘될 때도 있었다. 음악엔 신경을 안쓰려고 하면 주변 시끄러운 것도 차단되고 오히려 음악 말고 책만 보게 되니 집중이 잘됐다. 하지만 항상 이렇지는 않았기 때문에 되도록 가사가 없고 집중이 잘 되는 클래식음악을 들었다.
나중엔 귀마개를 활용 했다. 귀마개를 꽉 줄여서 귀에 넣으면 팽창해서 거의 소리가 안들리는데 집중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요즘도 집중할 때는 귀마개를 사용한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귀마개를 꽂고 있다.
친구도 줄였다. 솔직히 고백하면 난 고3 시절 기억이 없다. 우리 반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어떻게 시간이 흘러 갔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내 삶엔 공부. 그것말곤 없었다.
사실 그 전까지 학교활동을 하면서 친구들을 많이 사겨서 그런지 미련도 별로 없었고 대학가서 해도 충분히 친해질 수 있다고 생각을 했다. 학생회 활동 동아리 활동 모두 줄였다. 사실상 그만 뒀다.
그 동안 그리고 나한테 가장 큰 문제였던 잡념을 끊기로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잡생각할 때가 많아서 이건 단순히 끊는다고 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말하는 것이며 게임이며 만화 같은 잡생각의 근원들이 대부분 사라지니까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잡생각이 나는 원인들이 제거 됐기 때문이었다.
식사도 줄였다. 저녁을 먹은 이후 자습 시간에 늘 나의 눈빛은 성태가 아닌 동태의 눈이 되곤 했다. 흐리멍텅하게 앉아 혼미해지는 정신을 겨우 붙들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 놓아버린다. 잠과의 싸움에 번번히 지곤했다.
‘학교에서 급식에 수면제라도 타는 것 아닌가. 도대체 왜 이렇게 잠이 쏟아지는 거지.’
결국엔 원인을 발견했다. 바로 저녁식사. 늘 폭식하던 저녁식사가 졸음과 집중력 저하의 원인이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식사량을 거의 절반으로 줄였다. 밥 먹는 와중 배고픔의 감정이 사라지면 바로 숟가락 젓가락을 내려놓고 모두 갖다 버렸다. 내 뱃속에 무엇 하나라도 더 주입하고 싶은 폭식의 욕구, 그 감정마저도 지우고자 했다. 포만감이 사라지니 생각보다 집중력에 큰 변화가 왔다. 졸지도 않고 또렷한 정신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당연히 군것질도 내겐 사치였다. 군것질을 하면 제때 제대로된 식사를 하지 못한다. 몸이 가볍지가 않다. 소화가 잘 안되면 집중력도 떨어진다. 돈도 아낄 수 있었고 시간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안될거란 생각을 집어치우기로 했다. 늦었다는 생각도 안하기로 했다. 뒤늦은 후회와 탄식은 며칠 내도록 해봐도 나아지는 것은 없고 내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렇게 보니 그렇게 절망적인 것도 아니었다. 더 늦기 전에 정신 차렸으니 된 것이었다. 고3 동안 죽음을 각오하고 해본다면 뭔들 못하겠는가란 생각이 들었다.
유혹을 이기는 방법
참는 방법은 간단했다. 일부러 다른 생각을 했다. 마치 기계처럼 생각 자체를 하지 말고 혹은 생각이 들면 잽싸게 다른 생각으로 돌리는 것이다. 생각이 날 때마다 그 즉시 단 1초의 틈도 주어선 안된다. 그대로 놔두면 잡념은 순식간에 독버섯처럼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지속된다. 한 시간이 멍하니 그냥 가버린다. 시작되기 전에 싹을 자르는 것이다.
게임 생각이 나면 하다못해 연습장에 영어단어라도 미친듯이 썼다. 그렇게 한참을 쓰다보면 잊혀졌다. 힘들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면 책을 소리내서 읽어보거나 일부러 친구한테 모르는 걸 물어봤다. 이러면서 참았다. 바보 같지만 이것이 나의 절제 비결이다. 참으로 멋 없 공부였다. 맞다. 나는 이렇게 절규하듯 하루 하루 공부해 나갔다.
이런 무미건조함의 극치. 힘들었다. 공부하는 그 순간엔 나라는 존재마저도 잊어야 한다. 한 인간으로서의 개성과 자유분방이 나 스스로가 포기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진리를 찾았다. 오히려 나를 버리니 내가 채워졌다. 숨막힘 뒤에 찾아오는 쾌락이 있었다. 하루 하루 성장하고 있다는 뿌듯함이었다. 나날이 발전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거부감이 들지도 모른다. 어떻게 공부의신이란 사람이 이런 비인간적인 공부를 이야기할 수 있나? 그리고 늘 나는 당신이 소중하고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신을 잊으라니.
이런 생각에 날 증오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수험생활은 누구에게나 지독할 정도로 단조롭고 지루함의 연속이다. 그것이 당연하다. 이런 생각이 든다면 그건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 선수들. 그들의 일상을 보면 그야말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밥 먹고 몇 년간 한 가지 동작을 수 천 수 만번을 한다. 펜싱에서 그 칼날같이 날렵한 찌르기가 나오기 위해 도대체 몇 년간 같은 동작은 연마한 것인가? 피겨 스케이팅에서 점프 하나를 위해 몇 만번의 도약과 쓰러짐이 있었겠는가? 셀수좋차 없다.
그 분들의 일상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어쩔 때는 감옥에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아니 감옥보다 더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이 지나야 세계 신기록의 점프나 사격 실력이 나오는 것이다. 꿈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하는 과정일 것이다.
인간이다 보니 나타나는 나약함이나 사사로움 따위는 없애 버려야 한다. 그럴 땐 차라리 나라는 존재을 버리고 기계라는 생각을 하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을 것이다. 거북할지 모르겠지만 진정으로 하나에 미치고자 한다면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된다.
나는 이제 모든 것이 우리 마음속에서 나온다고 믿게 됐다. 놀고만 싶고,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모두 마찬가지다. 내 마음속에 있다. 우리 마음을 다스릴 수만 있다면 무언들 못하겠는가? 처음엔 나는 나 자신도 제어하지 못하는 구제불능 찌질이라 생각했지만 생각은 바뀌었다. 나 자신을 제어할 수만 있다면 세상을 움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를 버리면 천하를 얻는 다는 말처럼 언젠가 얻게될 그 무언가를 떠올리며 나를 지워내고 또 지워냈다.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로 얻어낼 수 있다면 앞으로 1년간 기계가 되면 또 어떤가. 그렇다. 대를 이루기 위해 보잘 것 없는 소를 버리는 것이다.
무아지경(無我之境), 말그대로 내가 없어지는 지경에 이를 때까지다. 정말로 나는 공부하는 기계가 된 것이다. 그냥 글자 그대로 읽어보면 너무나 삭막하기 이를 데 없지만 반대로 이것은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살아 있음을 알리는 몸부림이자 내 의지의 표상이었다. 나를 이기는 주문과도 같았다.
이 글을 써야할까 좀 망설였어요.
저의 실제 이야기이긴 하지만 너무 공부만을 강요하는 듯해서요.
하지만 공신이 여러분들께선 제 진심을 알아주실 거라 믿어요.
앞뒤 내용이 더 필요한 상황인데, 그 부분이 더 궁금하시다면 더 올려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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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와이프가 생리대를 너무 많이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