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지만젊은 시절에도 나는 젊지 않았어때때로 날은 흐리고저녁이면 쓸쓸한 어둠뿐이었지짐 실은 소처럼 숨을 헐떡였어그 무게의 이름이 삶이라는 것을 알 뿐아침을 음악으로 열어보아도사냥꾼처럼 쫓고 쫓기다 하루가 가고그 끝 어디에도 멧돼지는 없었어생각하니 나를 낳은 건 어머니가 아니었는지도 몰라어머니가 생명과 함께알 수 없는 검은 씨앗을 주실 줄은 몰랐어지금도 그 이유는 모르지만젊은 시절에도 늘 펄펄 끓는 슬픔이 있었어슬픔을 발로 차며 거리를 쏘다녔어그 푸르고 싱싱한 순간을함부로 돌멩이처럼문정희, 기억"이런 날이 다시 올까?"꽃사과를 따며 누군가가 툭 던진 말이 우리들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다."똑같은 날은 없어."우리들 중 누군가가 서글프게 맞받았다.신경숙,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中고비 사막에 가지 않아도늘 고비에 간다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내일 죽을 것처럼 살면서오늘도 죽을 고비를 겨우 넘겼다이번이 마지막 고비다정호승, 고비외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권태로워서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나는 쓴다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어차피 삶은 네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천양희, 밥 저녁에우는 새를 보았어.어스름에 젖은 나무 벤치에서 울고 있더군.가까이 다가가도 달아나지 않아서,손이 닿을 만큼 가까워졌어도날아가지 않아서.내가 허깨비가 되었을까문득 생각했어무엇도 해칠 수 없는 혼령같은 게 마침내 된 걸까, 하고그래서 말해보았지, 저녁에우는 새에게스물 네 시간을 느슨히 접어돌아온 나의비밀을, (차갑게)피 흘리는 정적을, 얼음이덜 녹은 목구멍으로내 눈을 보지 않고 우는 새에게한강, 거울 저편의 겨울 12 ㅡ 여름 천변, 서울한밤중에 골목에 나가서비닐 봉지처럼 시꺼먼 하늘 올려다보곤 한다세상이, 이 세계가 호흡을 하는 것에귀기울여보는 것이다이 조용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치욕스럽다(중략)나에게도 마음이 미쳐 날뛰던 시절이 있었다용광로처럼 뜨거웠으므로그때이 한 세계를 육체 속에 첨벙 던져버린 것이다건져지질 않는다김소연, 학살의 일부 12 中우리는 왜 죄를 짓기도 전에 용서하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하는 걸까조혜은, 장마 中지구의 한조각을 손에 쥐고 사는 것이 이토록 서럽더라니. 정말로 입술이 찢어지도록 아려오는 일, 경련이 일어나는 웃음. 우걱우걱 구겨 넣는 밥 한 숟가락은 비행기안의 멀미만큼 어지럽고.이이체, 추락한 부엌 中5시 44분의 방이5시 45분의 방에게누워있는 나를 넘겨주는 것슬픈 집 한 채를 들여다보듯몸을 비추던 햇살이불현듯 그 온기를 거두어가는 것나희덕, 어두워진다는 것 中몸이 굉장히굉장히, 굉장히어려운 방정식을 푼다풀어야 한다혼자서하염없이 외롭게혼자서.황인숙, 병든 사람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단추를 채우는 일이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잘못 채운 첫 단추, 첫 연애, 첫 결혼 첫 실패누구에겐가 잘 못하고절하는 밤잘못 채운 단추가잘못을 깨운다그래, 그래 산다는 건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단추를 채워보니 알겠다단추도 잘 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천양희, 단추를 채우면서거리에서한 남자가 울고 있다사람들이 오가는 도시 한복판에서모두가 타인인 곳에서지하도 난간 옆에 새처럼 쭈그리고 앉아한 남자가 울고 있다아무도 그 남자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그리고 아무도 그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거리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한 세기가 저물고한 세기가 시작되는 곳에서모두가 타인일 수밖에 없는 곳에서한 남자가 울고 있다신이 눈을 만들고 인간이 눈물을 만들었다고나는 생각하지 않는다나 역시 그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나는 다만 그에게무언의 말을 전할 수밖에 없다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눈물이라고류시화, 거리에서이 거대한 유기체인 자연조차 제길을 못 찾아 해메는데 하물며 아주 작은 유기체 인간인 네가 지금 길을 잃은 것 같다고 해서 너무 힘들어 하지는 마.가끔은 하늘도 마음을 못 잡고 비가 오다 개다 우박 뿌리다가하며 몸부림 치는데네 작은 심장이 속수무책으로 흔들린다해도 너무 괴로워하지 마.공지영, 사랑 후에 오는 것들 中아프지도 않은데 휘어진 시계처럼 의사는 의자에 달라붙는다 아프지도 않은데 간호사는 벌써 약을 짓기 시작한다 아프지도 않은데 택시는 위독하게 풍경을 잡아먹고 아프지도 않은데 측백나무 잎은 주삿바늘처럼 뾰족해진다 아프지도 않은데 잠자는 내 몸 구석구석을 아버지는 만지작거리고 아프지도 않은데 동생은 나를 이상한 벌레처럼 쳐다본다 아프지도 않은데 의료보험료는 과다 청구된다 아프지도 않은데 응급실 불빛은 비상구처럼 반짝이고 아프지도 않은데 이력서는 또 휴지통에 버려진다 아프지도 않은데 낮달은 링겔병처럼 떠오르고 불안하지도 우울하지도 않은데 항불안제와 항우울제는 보석처럼 빛나고 아프지도 않은데 나는 아픈 사람보면 같이 울고 싶어진다박진성, 기억의 고집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언제 끝이 날지도 모르겠는 삶의 중앙에 나 혼자 서서, 영원히 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기분.황경신, 한뼘노트ㅡ생각이 나서 中여시들,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즐거웠던 여시들도 있을 거고, 또 슬프고 아팠던 여시들도 있을 거예요.우리는 하루하루 시간을 떠나보내면서 많은 굴곡들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요.그래서인지 저는 가끔 너무 행복할 때엔, 동시에 불안감이 몰려올 때도 있어요.이 행복이 끝나면 또 나는 어떤 시련이 나를 감싸, 나를 아프게 할까 하는.그런 불안감이 들 때에는 즐거운 시와 글을 읽는 것도 좋지만, 어떤 시련 속에 우뚝 서 있는듯한 기분이 드는 시와 글을 읽는 것도 많은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오늘,제가 적어 올린 시와 글들이 여시들에게 작은 토닥임이 되길 간절하게 바라면서 이만 글 마칠게요.어떤 불안도 생각나지 않을 만큼 행복하고, 또 행복한 나날들이 여시들 앞에 가득하길 바래요.좋은 시와 글들로 다시 만나요, 우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