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에 잠 깨면
잠시 그대의 창문을 열어보라.
혹시 그때까지 안개의 자취가 남아있다면
당신을 가장 그리워하는 사람이 지금
안개가 되어 그대의 창문가에
서성거리고 있겠거니 생각하라.
떠나가는 사람의 뒷모습이여,
머리 풀고 흐느끼는 내 영혼의 새여,
당신을 나의 이름으로
지명수배한다.
-새벽안개

그냥 떠나가십시오
떠나려고 굳이 준비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당신은 끝까지 가혹합니다
떠남 자체가 괴로운 것이 아니고
떠나려고 준비하는 그대를 보는 것이
괴로운 것을.
올 때도 그냥 왔듯이
갈 때도 그냥 떠나가십시오.
-떠날준비

내 불행의 시작은
너를 알고부터 비롯된 게 아니고
너를 소유하고자 하는 데서부터
비롯되었네
아아 어찌 용서받을까.
내 탐욕의 마음이여,몸뚱어리여.
진실로 진실로 너를 가질 수 있음은
진정 너로부터 떠나는 데
있는 것인데.
-내 마음의 악마

그리우면 울었다. 지나는 바람을 붙잡고 나는 눈물을 쏟았다. 그 흔한 약속 하나 챙기지 못한 나는 날마다 두리번거렸다. 그대와 닮은 뒷모습 하나만 눈에 띄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들개처럼 밤새 헤매어도 그대 주변엔 얼씬도 못했다. 냄새만 킁킁거리다가 우두커니 그림자만 쫓다가 새벽녘 신열로 앓았다. 고맙구나 그리움이여. 너마저 없었다면 그대에게 가는 길은 영영 끊기고 말았겠지. 그리우면 가리라, 그리우면 가리라고 내내 되뇌었다마는 이 지긋지긋한 독백, 이 진절머리나는 상념이여.
-그리우면 가리라

내가 외로울 때 누가 나에게 손을 내민 것처럼
나 또한 나의 손을 내밀어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다
그 작은 일에서부터 우리의 가슴이 태워진다는 것을
새삼 느껴보고 싶다
그대여 이제 그만 마음 아파하렴
-조용히 손을 내밀었을 때

길에서 벗어나야
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듯
그대에게서 벗어나
나
그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되었네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다시 가지 않을 수 없었네
가도가도 막막한 그 길에서
내 영혼은 다 부르텄다
-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시인 이정하씨의 시입니다.
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
낮은 곳이라면 지상의
그 어디라도 좋다.
찰랑찰랑 물처럼 고여들 네 사랑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한 방울도 헛되이
새어나가지 않게 할 수만 있다면.
그래, 내가
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
너를 위해 나를
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
나의 존재마저 너에게
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내게 밀려오라.
-낮은곳으로


시집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이정하 의 뒷표지.
예 제가 바로 이정하 빠순이고요..종종 막이슈에 자작시를 올리곤 했는데 제 시를 본 사람들 몇몇이 이정하 시인 느낌이 난다하여 갱장히 행복했습니다. 롤모델이에요. 시집에서만 볼 수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시들을 모았읍니다. 제가 좋아서 올리는것. 다음에는 정호승 시인 시로 돌아오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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