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해 무왕 대무예(大武藝):???~737
즉위: 719~737
무왕은 왕위에 오르자, 인안(仁安)이란 연호(年號)를 제정, 발해가 자주국가임을 공표하였다. 그는 왕위에 오른 후, 대외확장을 지속적으로 시도했다. 그는 727년 발해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에 사신을 보내었는데 이때 보낸 국서(國書)에서 "여러 나라를 아우르고 여러 번국을 감독하니 고구려의 옛 거주지를 회복하고 부여의 습속을 지녔다."고 표현할 만큼 그의 확장정책은 성공적이었다. 발해는 건국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옛 고구려 영토를 빠르게 회복했다. 신당서-그가 영토를 크게 개척하니, 동북의 모든 이민족(東北諸夷)들이 겁을 먹고 그를 섬겼다. ▲무왕의 영토 확장 한편 당나라는 발해가 곧 과거 고구려처럼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하며, 동북지역에 걸친 자신들의 이익을 훼손할 수 있는 두려운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당 현종: 그러니까 너희를 우리의 예속지로 삼아달라? 아속리계: 우리도 발해가 두려우니까요... 동맹을 맺는 게 어떡하실런지?... 결국 발해의 성장에 위협을 느낀 흑수말갈과, 발해를 견제할 필요성을 가진 당나라는 서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722년 흑수말갈의 추장 아속리계는 당나라를 직접 방문했다. 그러자 당나라는 그에게 벼슬과 선물을 듬뿍 주는 등 크게 환대했다. 726년에는 당나라가 흑수말갈을 흑수주(黑水州)로 삼는다고 공포하여, 흑수말갈이 당나라와 특별한 관계임을 선언했다. 아니... 저 자식들이....진짜...




대문예: 저...형님... 흑수말갈을 치는 건 곧 당을 치는 것이므로...

뭐 어쩌라고?...너 지금 중국물 좀 먹었다는 거냐?!!

아..그래도...안되는데... 고구려도 당한테는....

이 빌어먹을 놈이... 내 동생이었단 말인가?...

투항한 자를 바로 죽이라는 건 좀 그러네... 대신 영남으로 유배보냄. 됐지?
그러나 그것은 당나라의 거짓말... 실제로 대문예는 영남에 없었으니...

뭐하는 짓거리야?! 이 망할 자식아?

왜? 우리에게 투항한 사람, 우리 맘대로 하겠다는데? ㅋㅋ

댁이 그리 나오신다? 어디 두고 봅시다...

흠...무모한 짓을...그래도 저놈들이 쳐들어 온다면 육로로 오겠지?...
그러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732년 9월 무왕은 장문휴로 하여금 해로를 통해 등주를 습격, 자사 위준을 죽이고 등주 북쪽 일대를 점령하였다...

?!?!??!!?!!?!!!!

못난 놈!! 감히 당의 앞잡이 노릇을 할 생각을 해?!!

이놈들 다시 보니... 한다면 하는 놈들일세...
그리하여 당군은 신라에 함께 10만 대군을 동원해 발해를 공격하고자 했으나...

이번에도 역시 강한 추위와 눈보라로 인해 전투도 치루지 못한 채 군사를 물린다...
그리고 무왕은 직접 당군과의 전투를 준비하는데....

육로를 통한 직접 공격. 바로 마도산 전투였다.
아래는 '신당서'에 기록된 마도산 전투에서의 당군 피해기록에 관한 2개의 서술이다.


마도산 일대를 지키기위해 당 조정은 계속해서 병력을 파견하지만 보내는 족족 무왕의 군대에게 영혼까지 탈탈 털린다.
결국 그 일대의 당나라 군사는 거의 전멸하고 남은 군사는 마도산에 남은 몇천의 병졸...
발해군이 만리장성까지 육박한 상황에도서 남은 당군의 생존자 수는 전면전도 할수 없을정도로 발해군보다 못 미치게 된 것이다.
결국 당나라 군은 발해군과의 전면전,토벌전을 포기하고 지형지물을 이용한 버티기 작전에 돌입한다.

그렇게 한참동안 마도산에서 당나라군과 발해군은 대치하게 된다... 그러나 국제적 사정은 급변하고 있었으니...
당나라가 그 와중 거란을 크게 격파하면서, 당나라와 발해 사이에 거란이라는 방파제가 사라졌으며 또한 돌궐마저 카한이 죽임을 당하면서 서서히 붕괴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국제 정세가 변해가자, 무왕도 달라진 태도를 보인다...

그간의 전쟁에서 잡은 포로들을 돌려드리지요...

좋소... 우리는 억류한 그대들 사신을 돌려주지요... 또한 앞으로
군사적 위협과 내정간섭은 일체 하지 않겠소이다.
그 이후 발해는 당과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좀 싱겁게 끝난 감이 있지 않냐고?
그러나 무왕이 당에게 보인 강경한 태도는 당과 평화적인 관계를 맺는데에도 효과가 있었다 볼 수 있겠다. 무왕이 흑수말갈을 강력하게 통제했기 때문에, 당나라가 발해를 앞뒤에서 견제하려는 정책은 무산되었으며 등주 공격을 계기로 741년까지 흑수말갈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지 못했다. 무왕은 당시 최강대국 당나라를 상대로 전쟁도 마다치 않는 정책을 펼침으로써, 당나라가 발해를 결코 얕잡아 볼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무왕이 흑수말갈 공격을 주저했더라면,또 당나라의 눈치만을 보고 움츠렸다면,발해는 주변의 여러 부족들과 소국을 거느린 강대국으로 결코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왕은 발해의 영토를 크게 넓히고, 발해의 국가적 위상을 크게 높인 임금이라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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