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나는 나의 영혼을 견딜 수 없었다.
그 아이가 너무 좋았다.
─ 황인찬, 오수 中

나는 네 속에 사라지고 싶었다. 바람 부는 세상 너라는 꽃잎 속에 활활 불타고 싶었다 비 오는 세상
너라는 햇빛 속에 너라는 재미 속에 너라는 물결 속에 파묻히고 싶었다. 눈 내리는 세상 너라는 봄날 속에
너라는 안개 속에 너라는 거울 속에 잠들고 싶었다. 천둥 치는 세상 너라는 감옥에 갇히고 싶었다.
네가 피안이었으므로.
그러나 이제 너는 터미널 겨울 저녁 여섯시 서초동에 켜지는 가로등 내가 너를 괴롭혔다. 인연은 바람이다.
이제 나 같은 인간은 안된다. 나 같은 주정뱅이, 취생몽사, 술 나그네 황혼 나그네 책을 읽지만 억지로
억지로 책장을 넘기지만 난 삶을 사랑한 적이 없다. 오늘도 떠돌다 가리라. 그래도 생은 아름다웠으므로.
─ 이승훈, 너라는 햇빛

빛은 조금이었어
아주 조금이었지
그래도
그게 빛이었거든
─ 임영태, 아홉 번째 집 두 번째 대문 中

흐르는 물 위에도
스쳐가는 바람에게도
너는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을 남긴다
한때는 니가 있어
아무도 볼 수 없는 걸 나는 볼 수 있었지
이제는 니가 없어
누구나 볼 수 있는 걸 나는 볼 수가 없다
내 삶보다 더 많이 널 사랑한 적은 없지만
너보다 더 많이 삶을 사랑한 적도 없다
아아,찰나의 시간 속에
무한을 심을 줄 아는 너
수시로
내 삶을 흔드는
설렁줄 같은 너는,너는
─ 최옥, 너의 의미

아는가, 네가 있었기에
평범한 모든 것도 빛나 보였다.
네가 좋아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네가 웃을 때 난 너의 미소가 되고 싶었으며
네가 슬플 때 난 너의 눈물이 되고 싶었다.
네가 즐겨 읽는 책의 밑줄이 되고 싶었으며
네가 자주 가는 공원의 나무의자가 되고 싶었다.
네가 보는 모든 시선 속에 난 서 있고 싶었으며
네가 간혹 들르는 카페의 찻잔이 되고 싶었다.
때로 네 가슴 적시는 피아노 소리도 되고 싶었다.
아는가, 떠난 지 오래지만
너의 여운이 아직 내 가슴에 남아 있는 것처럼
나도 너의 가슴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싶었다.
사랑하리라 사랑하리라며
네 가슴에 저무는
한 줄기 황혼이고 싶었다.
─ 이정하, 네가 좋아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물통 속 번져가는 물감처럼
아주 서서히 아주 우아하게
넌 나의 마음을 너의 색으로 바꿔버렸다
너의 색으로 변해버린 나는
다시는 무색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넌 그렇게 나의 마음을 너의 색으로
바꿔버렸다
─ 이정수, 물감

괜찮아
너를 정말 좋아했어 그래서 다 좋아 난
원래 좋아하는 사람은 다 좋아 보이는 거야
널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재미있고 생각할 것도 많아서 참 좋아
시간이 계속 흘러가도 너를 좋아했던 마음은
똑같을 것 같아
좋아하는건 시간이 지나고 흐려지는 게 아니잖아
너를 정말 좋아했어 그래서 나는 참 좋았어
괜찮아
니가 그랬고 내가 그랬잖아
그래서 우리는 하나였고 떨어져 있으면 보고 싶어했잖아
난 너를 보고있을 때도 좋았지만
니가 보고싶어 질때도 좋았어
재미있고 아름다웠고
꼭 붙잡아두고 싶던 시간을 보낸 거 같아
니가 정말 소중했었어
그래서 잘 간직하려고 해
난 너를 보고 있을 때도 좋았지만
니가 보고 싶어질 때도 참 좋았으니까
─ 원태연, 괜찮아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 정호승, 미안하다

이별보다 더 큰 슬픔은 이별을 예감하는 순간이며
당신의 부재보다 더 큰 슬픔은 서로 마주 보고 있어도
당신의 마음은 더 이상 여기 있지 않음을 느끼는 순간이다
같이 있으면서도 늘 내 것이지 못한 사람아
너를 보면 눈물이 난다
─ 박성철, 너를 보면 눈물이 난다

잠시 훔쳐온 불꽃이었지만
그 온기를 쬐고 있는 동안만은
세상 시름, 두려움도 잊고
따뜻했었다
고맙다
네가 내가 해준 모든 것에 대해
주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도
─ 최영미, 옛날의 불꽃

무언가가 시작되고 무언가가 끝난다.
대부분 시작은 알겠는데 끝은 대체로 모른다.
끝났구나, 했는데 또 시작되기도 하고,
끝이 아니구나, 했는데 그게 끝일 수도 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아, 그게 정말 끝이였구나, 알게 될 때도 있다.
그 때가 가장 슬프다.
─ 황경신, 그 때가 가장 슬프다

잠시 눈감았다 뜨면 사라지는 순간이 있다
어제저녁 붉게 노을 졌던 태양의 한때처럼
오늘아침 초록으로 흔들리는 잎의 한때처럼
한순간이란 붙잡아두고 싶은 것이어서 새벽마다 물방울이 맺히는 것일까
물방울 같은 한순간
그 물방울만한 힘이 나뭇가지를 휘게 하는지
그때 붙잡고 싶었던 것은 네가 아닌 그 순간이었다
당신도 그렇게 왔다 가는 걸까
어느 순간 기척 없이 빠져나간 손바닥의 온기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의 그늘처럼
이미 예정된
한순간 속의 우리들
─ 이향, 한순간

아무리 채찍질해도 닿을 수 없는
벼랑처럼 아스라한 그대여
내 마음에 무수히 살면서도
도무지 삶이 되지 않는
어떤 꽃처럼
먹먹한 그대여
─ 이성호, 먼 여름

늘 지켜 보며
무언가를 해주고 싶었다
네가 울면 같이 울고
네가 웃으면 같이 웃고 싶었다
깊게 보는 눈으로
넓게 보는 눈으로
널 바라보고 있다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하기에
모든 것을 포기하더라도
모든 것을 잃더라도
다 해주고 싶었다
─ 용혜원,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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