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초한쟁패기 시대인 BC 205년, 현재의 팽성 부근에서 벌어진 한나라의 대군과 초나라 군대의 대결. 팽성을 점령한 유방의 제후 연합군을 항우의 3만 정예병이 기습한 전투로, 무려 19배에 가까운 전력차를 극복하고 3만이 승리한, 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 팽성 대전 발단거록에서 진나라의 명장 장한을 대파한 항우였지만 진나라의 수도 함양에 먼저 입성한것은 항우가 아닌 유방이었다. 당초 초회왕이 주위 사람들의 충고를 듣고 서쪽으로 파견할 사람을 항우가 아닌 유방으로 선택했기 때문. 거록에서 대승리를 거둔 항우는 서둘러 함양으로 진격했지만, 유방 보다는 늦게 도착하였다. 바로 이떄의 이동 중, 항우는 진나라군 20만을 생매장하는 희대의 만행인 신안대학살을 저지르고 만다.유방은 잠시 항우와 대치를 이루는 듯 했으나, 장한을 물리치고 중국 최강자가 된 항우와 유방의 군세는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결국 항백, 장량 등의 조언을 들은 유방은 항우에게 굴복하였다. 범증은 이 참에 유방을 죽이기 위해 홍문연에서 흉계를 꾸몄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장한에 이어 유방까지 굴복시킨 항우는 스스로 서초패왕의 자리에 오르고각지의 제후들을 봉분하였는데, 유방은 이로인해 벽지인 파촉 지방으로 쫒겨나고 말았다.이것이 초한쟁패. 초한지의 서막이였다.유방의 진격항우는 유방을 저지하기 위해 삼진을 배치해 두었으나, 유방은 한신의 제안에 따라 옛날의 길을 이용해 우회하여 옹왕 장한을 공격했다. 당시 한군은 파촉에 들어오면서, 장량의 건의에 따라 여러 절벽 등에 만들어놓은 잔도(낭떠러지를 건너기 위해 만든 다리나 길)를 모두 불태워버린 상황이었다. 잔도가 모두 불탔으니 한군이 나오려면 시간이 걸릴 텐데……라고 생각했을 장한등에게 한방을 제대로 먹일 수 있는 것이다.장한은 이에 진창에서 한군을 막기 위해 달려나왔다. 진창은 현재의 섬서성 보계시로, 사천 땅에서 관중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요지였다. 하지만 여기서 패배한 장한은 지금의 섬서성 건현인 호치로 물러나서 다시 싸웠으나, 여기서도 또다시 패배했다. 이에 장한은 폐구로 물러났다. 이후 유방은 장한을 폐구에서 포위하고, 다른 장수들을 시켜 옹 땅을 모조리 평정했다. 잠시 양하에서 막혔던 한군은, 그러나 다음해 다시 진격을 시작하여 색왕 사마흔, 책왕 동예, 하남왕 신양 등을 모조리 격파하고 관중을 평정했다.당시 수도 함양(장안)을 중심으로 한 관중의 위치.그후 한군은 낙양을 함락시켰는데, 이때 신성의 삼로였던 동공이라는 인물이 "초회왕을 항우가 살해 했다." 는 천인공노할 사실을 알려주었다. 이에 유방은 죽은 의제를 위해 3일장을 치르고, 제후들에게 선포했다.요약하자면 항우가 초나라 왕을 죽이는 인간으로서 하면 안되는 패륜적인일을 저질렀으니 힘을 모아서 항우를 물리치자 뭐 이런내용임...(삼국지의 반통탁연맹이라고 보시면 쉽게 이해할수 있을듯)이일로 한마디로 표현하면 천하의 군사가 모두 한군에 붙었다는 의미라는 것이다.여하간에 어떤 의미에서건 수많은 제후들의 군사가 한군에 합류한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병력의 총 합계는 무려 56만명의 대군.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숫자였다.(이게 기원전에 일이다...)이 압도적인 군세는 4월 경 초나라의 수도인 팽성으로 아무런 문제 없이 진입했고, 간단하게 점령에 성공했다.적의 본거지인 수도를 함락하고, 수많은 제후들이 어울리고 있는데다 병력은 수십만에 달하는 상황. 누구라도 승리의 기쁨에 도취될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고, 팽성의 보물과 미녀들까지 일찌감치 접수해 한껏 들뜬 유방은 열석한 제후들과 함께 나날나날을 에브리바디 에브리데이 파티데이로 보내며 그 영화로움을 흠뻑 누려내고 있었다.하지만, 이 모든 것은 아주 착실한 사망 플래그였다.서초패왕의 귀환항우 3만병력의 귀환로당시 항우는 제나라에서 힘겨운 전투를 치르고 있던 참이었다. 제왕 전영을 물리치기 위해 시작한 싸움이었는데, 사실 전영 자체는 단 한번의 회전으로 격파 한 후,평원의 백성들이 전영을 살해해서 간단하게 해결 되었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그 뒤에 일어났다.이미 신안대학살 등으로 쓸데없는 잔인함을 보인 적이 있던 항우는 제나라 공략전에서도 제나라의 성곽과 가옥을 모조리 불태워버리고, 항복한 포로들을 생매장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포로 신세가 되게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이렇게 되자 백성들은 고분고분 해지기는 커녕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는 심정으로 항우에게 결사항전 하였다. 또, 이런 분위기를 틈타 전영의 동생이었던 전횡은 수만 명의 병사들을 또다시 모아 성양에서 버티면서 항우를 성가시게 하였다.항우는 성양을 수차례 공격했지만 도저히 함락을 시킬 수가 없었다. 이러는 사이에 유방을 위시로 한 제후 연합군은 팽성을 점령했고, 그 소식은 항우에게도 전해졌다. 제나라에서 발이 묶인 탓에 싸움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본거지를 내어준 것이다.그러나 이는 거꾸로 말하자면, 본거지가 함락된 상황에서도 항우의 전력은 건재하다 는 사실이 된다. 물론 현재 초나라의 군사는 제나라 원정에 동원하는 중이라 모두 뺄 수가 없었다.이에 항우는 휘하 부하들에게 성양에 대한 공격은 계속 하도록 하고, 본인은 단지 3만의 전력만 따로 추려냈다. 그리고, 그 3만 명의 병력을 통솔하여 56만이 버티고 있는 팽성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시작된 항우의 살육.성양을 공격하던 항우는 노현을 지나 호릉을 거쳐 새벽 무렵에는 팽성의 서쪽인 소현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곳에서부터 계속해서 동쪽으로 진격하면서, 눈에 보이는 한군을 개미 잡아 죽이듯이 박살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항우의 군대는 팽성에 이르렀고, 정오가 될 즈음에는 한군을 완전히 개박살을 떠나 우주 끝까지 보내버린다완전히 전투를 상실한 상태에 빠진 한군은 동쪽으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달아났고, 팽성의 동쪽에 있는 곡수와 사수 부근으로 밀려나고 말았다.항우는 이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무참하게 짓밞아 버렸고, 이 싸움으로 한군 10만 명이 몰살을 당했다.동쪽이 아닌 남쪽으로 달아난 한나라 군대도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것과 마찬가지였다. 영벽에 이르기까지 초군은 한군을 사냥감처럼 추격하였고, 이 과정에서 셀 수도 없는 한군이 무참하게 짓이겨졌다. 게다가 영벽 동쪽에 있는 수수 강안에 이르자, 완전히 몰린 한나라 군대의 병사들은 아예 수수에 몸을 던지는 병사들까지 있었다. 이 싸움으로 또 다시 한군 10만 명이 죽었다. 그리고 수수는 죽은 한나라 군대의 시체로 흐르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이 팽성대전을 아주 요약해서 말하면1.56만명의 대군을 3만명으로 개박살.2.60명의 장수를 항우 혼자서 참살시킴.성이 뺴앗기면 힘으로 성을 함락시켰고, 복병이 나타나도 힘으로 박살내었으며협공을 당하는 지경이 와도 이를 힘으로 무너뜨려 개박살 내버렸다.또한 포위를 당해도 힘으로 뚫어버렸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