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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을 제작함에 있어 이방원만큼 매력적인 캐릭터가 또 있을까? 이방원이란 인물의 인생은 그 자체만 놓고 보아도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를 연상케한다. 그 누구보다 극적인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비교적 최근인 조선대의 임금인 까닭에 기록 또한 풍부하다.
이것이 많은 드라마, 영화 제작자들이 여말선초를 작품의 배경으로 삼고 이방원을 등장시키는 이유일 것이다. 실제로 그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은 동시대를 산 다른 어떤 인물들보다도 많았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배우의 뛰어난 연기와 훌륭한 캐릭터 재해석으로 시청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세 명의 각기 다른 이방원들을 만나보자.

<용의 눈물> 속의 이방원.
1996년에 방영을 시작해 1998년에 종영한 작품.
용의눈물은 대한민국 드라마의 역사를 논함에 있어 절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명작이다. 종영한 지 20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비슷한 시기를 소재로한 다른 작품들은 이 대작과의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위화도회군부터 태종 치세까지를 무려 약 160회에 걸쳐 담아냈는데 그야말로 정통 사극의 정수라 할 만하다.
주인공은 이성계와 이방원, 두 사람이다. 1화의 위화도회군을 시작으로 이성계가 본작의 전반부를 주도한다면, 조선이 개국 이후엔 아들인 이방원이 주인공의 바톤을 넘겨받아 중후반부를 책임진다. 작품 속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마치 대부 시리즈의 콜레오네 부자를 연상케한다.
배우 유동근이 연기한 용의눈물 속 이방원은 그야말로 비정한 권력의 화신이자 탁월한 정치감각의 소유자다.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과 고증에 충실한 정통사극의 사실적인 묘사가 잘 어우러지며 지금껏 이방원을 담아낸 다른 모든 작품들 중 캐릭터의 현실감이 가장 뛰어나다. 이후 김영철, 안재모, 유아인 등의 걸출한 배우들이 같은 역할을 준수히 소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고의 이방원으로 이 유동근의 이방원을 꼽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이것이다.
특이할 점은 다른 작품들에서 잘 다뤄지지 않은 이방원의 효심이 잘 드러났다는 점이다. 때문에 권력을 위해 형제를 살해하고 공신들을 숙청하는 냉혈한임에도 후반부엔 인간적인 면모가 상당히 부각된다. 용의눈물 속 이방원은 무인정사 이후 아버지 이성계에게 끊임없이 죄를 빌고, 용서를 받은 후엔 그 앞에서 아이처럼 재롱을 부리고 안겨서 오열한다. 이 같은 인간미는 아들인 양녕, 충녕과의 대립을 통해 그 역시도 한 사람의 아버지임을 보여주며 더욱 두드러진다.

<정도전> 속의 이방원.
2014년 작품.
용의눈물과 태조왕건의 대성공 이후 KBS는 대조영 정도를 제외하면 이전 시리즈들의 명성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작품들만을 내어놓으며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그리고 이러한 길고 길었던 암흑기를 단번에 끝내준 걸작이 바로 정도전이다. 정도전은 꽤 오랜 시간 명맥이 끊긴 KBS 정통사극의 부활을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주인공은 제목이 말해주듯 물론 정도전이나 애초에 실제 행적이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었던 까닭에 이인임, 이성계 등이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그리고 당연히 정도전을 살해한 장본인인 이방원 또한 후반부엔 사실상 주인공 노릇을 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배우 안재모가 연기한 정도전 속 이방원은 보다 비정하며 잔학한 면모가 크게 강조된 캐릭터다. 무인정사를 일으킨 이후 핏자국이 선명한 칼을 들고 그대로 궁에 들어가 아버지 이성계와 대면하는 장면은 심지어 패륜적인 풍모까지 느껴질 정도다. 다른 사람들에겐 지나칠 정도로 차가웠음에도 이성계 앞에선 한 사람의 아들이었던 용의눈물의 이방원과는 무척 상이한 모습이다.
태종 시대를 전부 다룬 용의눈물과 달리 정도전은 주인공 정도전의 죽음, 즉 무인정사를 끝으로 종영이 예정된 드라마였던 까닭에 오히려 작중에 이방원의 인간미를 녹아내면 전개가 설득력을 잃었을 것이다. 엄연히 정도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였기에 이방원의 냉혹한 면모가 과장될 수밖에 없었다.

<육룡이 나르샤> 속의 이방원.
2015년에 방영을 시작해 2016년에 종영한 작품.
육룡이나르샤의 경우는 앞서 소개한 두 작품과는 엄연히 성격이 다르다. 용의눈물과 정도전은 고증에 각별히 신경을 쏟은 정통사극인 반면, 육룡이나르샤는 아예 역사를 기반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꾸며낸 퓨전사극인 까닭이다. 때문에 본작엔 실존하지 않았던 가상의 인물들도 여럿 출연하며 아예 무협 사극을 표방하여 비현실적인 장면들 또한 숱하게 등장한다.
이른바 육룡에 해당하는 여섯 인물이 극을 이끌어가나 딱 한 사람만 주인공으로 내세우자면 역시 이방원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생애를 다룬 다른 어느 작품들보다도 인간 이방원의 감정 변화가 잘 묻어난 작품이다. 이는 실제 역사에 있어 그의 가장 큰 정적이었던 정도전이 본작의 초반부엔 오히려 본인의 스승이자 정신적 지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존경했던 인물이 반드시 없애야만 하는 인물로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퓨전사극만이 그려낼 수 있는 두 인물 사이의 드라마틱한 대립 구도를 잘 담아냈다.
배우 유아인이 연기한 이 작품 속의 이방원은 지금까지 소개한 이방원들 중 가장 입체적이다. 새로운 왕조의 개창을 바라는 순수한 야심이 한때 생사를 함께했던 동료들까지 죽음으로 내모는 비정한 권력욕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무엇보다 극 자체가 주로 이방원의 입장에서 주도되어 시청자들에게 인물의 감정 변화를 설득하기에 용이했을 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배우의 연기력 또한 워낙 탄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본작에서 이방원은 정도전과 이방석을 본인 손으로 직접 살해하는 과감함을 보인다. 과정만 놓고보면 지금껏 소개한 다른 이방원들 중 가장 비정하지만 그 직후에 주변 사람들을 잃고 싶지 않아 스스로 궂은 일을 떠맡았다는 설명을 더하며 역설적으로 인간미를 부각시킨다. 이렇듯 육룡이나르샤 속 이방원은 끊임없는 감정선의 줄다리기를 통해 마냥 한 쪽으로 정의하기 힘든 복잡한 성격을 지닌다. 어떤 의미에선 가장 현실적인 캐릭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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