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객들이 ‘한국에서 만드는 영화 포스터는 왜 이렇게 이상하냐’ ‘영화만 다르고 포스터는 다 똑같다’는 생각을 종종 하신다는 것, 잘 압니다. 결론부터 얘기할게요.
디자이너가 클라이언트와 싸우다 싸우다 끝내 포기하면 그런 포스터가 나옵니다. 별의별 시안을 다 가져가도 결국엔 배우 얼굴 크게 나오고, 영화 제목 크게 나온 포스터로 최종 결정되는 경우가 허다하니까요. 영화마다 개성이 모두 다른 법인데 특정 포스터를 들고 와서 “이거랑 똑같이 만들어 주세요”라는 이해할 수 없는 요구도 가끔 듣습니다.
예를 들어 모든 포스터에 캘리그라피가 어울리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아트해 보인다”며 캘리그라피를 요구하세요. 요즘 제일 난감한 건 ‘리뷰 포스터’죠. 왜, 영화평이 줄줄 나열된 포스터 있잖아요. 단순히 글자만 채워 넣으면 시각적 공해에 불과해요. 어떤 톤 앤 매너를 가진 영화인지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게 포스터 아닌가요. 영화를 보아야 알 수 있는 정보들을 왜 포스터에 나열합니까?

그렇게 키운 글자 하나에 관객 100만 명씩 더 든다면 내가 말이나 안 해! 무조건 영화 규모를 크게 보이도록 해 달라는 요구도 잦아요. 포스터 카피만 한번 유심히 보세요. 액션 대작은 도대체 왜 그렇게 많으며, 한 해에만 지구가 몇 번 망하고, 인류가 최후의 전쟁을 얼마나 많이 치르는지(웃음).
최종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많을 때는 같은 포스터를 40~50번까지 수정해요. 한국 상업영화의 경우가 제일 심하죠. 포스터에 나오는 배우가 다섯 명이라면, 그건 곧 매니지먼트 회사 다섯 군데가 전부 만족할 때까지 수정해야 한다는 걸 의미합니다. 영화 제작사, 배급사, 홍보·마케팅 회사, 매니지먼트 회사까지 전부 만족하려면 얼마나 수정 사항이 많겠습니까. 그렇게까지 사공이 많으면 컨셉트가 산으로 가는 건 당연하죠.
A라는 배우와 B라는 배우가 자기 이름 먼저 쓰겠다고 기싸움이라도 벌이면,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게 아니라 배우들 싸움에 포스터 디자이너 등이 터지는 겁니다. 그러다 결국 ‘보여 주기용’ 포스터를 만드는 경우도 있어요. 1번 포스터에는 배우 A 이름 먼저, 2번 포스터에는 배우 B 이름 먼저. 시안을 다섯 개 만들었더니 "전부 하나로 섞어 달라”는 요구는 양반이에요. 메인 포스터, 캐릭터 포스터, 옥외 광고 포스터 등등 컨셉트를 나누어 찍어 놓고 막판에 다 뒤집어지는 경우도 허다해요. ‘설마 이건 안 쓰겠지’라며 예비용으로 만든 ‘안전빵’ 시안이 메인 포스터가 되는 일도 많고요.
제작사도 아니고 제작사 대표와 친한, 이 영화와는 하등 관계없는 감독이 툭 지나가듯 “별론데…” 하는 말 한마디에 메인 포스터가 바뀌기도 합니다. 세트 만들고 엑스트라 배우들 비용 지불해 가며 기껏 사진까지 촬영한 후에 주연 배우 얼굴 클로즈업해서 포스터 만들자고 하면 허무해서 말이 다 안 나옵니다. 그래 놓고 개봉해서 망하면 “포스터에 애꿎은 돈만 썼다”고 한다니까요.
제작사도 아니고 제작사 대표와 친한, 이 영화와는 하등 관계없는 감독이 툭 지나가듯 “별론데…” 하는 말 한마디에 메인 포스터가 바뀌기도 합니다. 세트 만들고 엑스트라 배우들 비용 지불해 가며 기껏 사진까지 촬영한 후에 주연 배우 얼굴 클로즈업해서 포스터 만들자고 하면 허무해서 말이 다 안 나옵니다. 그래 놓고 개봉해서 망하면 “포스터에 애꿎은 돈만 썼다”고 한다니까요.
갑과 을의 사이에도 대화는 필요해
미적 감각이라고는 제로에 가까운 제작사 대표가 포스터 시안을 직접 스케치해서 보내 준 적도 있습니다. 이대로 만들라며. 굴욕적이었죠. 그럴 거면 디자이너를 왜 씁니까? 거기에 대고 다른 의견 제시하면 “제작비가 수십억원 들어갔는데 포스터 때문에 영화 망하면 책임질 거냐”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글씨 잘 보이게 해 달라고 해서 남색 배경에 노란색 글씨 얹었는데, 그걸 검은 배경에 흰색 글씨로 바꿔 달라는 요청 같은 것도 흔해요. 왜 남색 배경에 노란색 글씨를 썼는지 이유를 물어봐 주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냥 무조건 바꾸라는 거죠.
최종 결과물을 보면 드는 생각이요? 신이시여, 이 구린 포스터가 정녕 제가 디자인한 게 맞습니까! 결국 욕먹는 건 디자이너예요. 인터넷에서 조롱당하는 건 기본이고, 심한 경우 회사로 항의 전화까지 와요. 왜 이따위로 포스터를 만드느냐는 거죠. 그럼 뭐라고 하냐고요? “죄송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더 좋은 디자인 하겠습니다”라고 하죠(웃음).
디자인만 넘어간다고 해서 끝이 아니에요. 옥외 광고판은 사이즈가 극장별로 전부 다르거든요. 건물 벽면에 포스터가 걸리는 극장이 200개라면, 사이즈가 다른 포스터 200개를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에요. 지면 광고 사이즈도 당연히 모두 다르죠.
이러니 개봉 직전에는 그야말로 ‘5분 대기조’예요. “매체 광고 새로 잡힌 게 있다”며 전화 걸어 단 몇 시간 안에 결과물 넘겨 달라는 식이죠. 요즘은 영화 관련 ‘굿즈(Goods·상품)’도 제작하는 게 추세라 포스터나 스틸 넣어서 엽서·컵·부채·담요 등 하여간 온갖 걸 만들잖아요. 이런 것들 만든다고 디자인 업체가 돈 더 받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만드는 것까진 괜찮아요. 속 터지는 건, 부채 하나 만드느냐 마느냐를 놓고 마케팅 단계에서 일주일 내내 고민하다 결국 이런 식이라는 거예요. “토요일에는 극장에 뿌려야 해서, 내일까지는 디자인이 나와야 해요.” 전화 오는 시간은 목요일 밤 11시. 뭐하자는 건가 싶죠.
요즘은 개봉일도 갑자기 정해지는 추세잖아요. 보통 ‘8주 마케팅’ 전략을 쓰는데, 개봉 10주 전에 연락 와서 2주 후부터 포스터 나가야 한다고 하면 그야말로 ‘멘붕’이죠. 작업하기로 한 영화들의 개봉 시기가 예상치 못하게 한꺼번에 몰리는 경우도 있어요. 하나의 디자인 회사에서 같은 날 개봉하는 영화 포스터를 두세 개씩 동시에 만들어야 하는 야단이 벌어지기도 하죠.
하지만 작업 단가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해서 우아하게 한 번에 한 영화만 작업하는 건 꿈도 못 꿔요. 그럼 회사 운영이 안 돼요. 마케팅 방식이 다양해지면서 만들어야 할 작업물은 늘어나는데 제작 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단가는 낮고, 제약은 많고. 회의감이 들 때도 많아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재미있는 게 다양성 영화 작업이에요. 단가는 상업영화에 비해 10분의 1이지만, 영화의 개성에 따라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반영할 수 있거든요. 관객 반응도 훨씬 좋아요. 포스터를 소장하고 싶은데 어떻게 구할 수 있냐는 문의도 많이 들어오는 편이죠. 한국영화는 물론이고 외국영화라 해도 해외에서 들어온 소스를 쓰는 게 아니라 직접 촬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음에 맞는 사진가와 일러스트레이터를 추천해서 함께 작업하기도 해요. 보통 친한 아티스트들에게 “밥 사 줄 테니 이번에만 같이 하자”고 끌어들이는 식이죠(웃음).
그래도 분명 그렇게 마음이 동해서 디자이너가 더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작업이 있어요. 영화가 좋고, 클라이언트가 디자이너의 의견을 존중해 주는 작업이라면 결과물은 100% 잘 나옵니다.

http://mnews.joins.com/article/19819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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