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의 진실]은잊혀져 가는 역사 의식을 경각시키기 위해여시 일개 회원이시리즈로 연재하는 게시글입니다 [그 날의 진실]17살이 당한 성고문故 유관순 열사(1902~1920)서대문 형무소 검거 당시 17세3 · 1 운동 때 부모가 눈 앞에서 일본 헌병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고, 그녀 또한 헌병대에 체포되어징역 살이와 함께 모진 고문을 받게 된다.<유관순이 받은 고문 기록>01) 머리에 콜타르를 발라 가발 벗기듯 머리 가죽을 통째로 벗겨냄02) 펜치로 손톱과 발톱을 강제로 뽑음03) 위와 호스를 직접적으로 연결시켜 뜨거운 물, 변, 다수의 칼날들을 강제로 투입04) 면도칼로 귀와 코를 깍아내림05) 입과 호스를 연결하여 물 주입 - 결국엔 몸의 일곱 구멍으로 다 흘러나옴06) 달군 쇠로 음부를 지짐07) 다른 독립 열사들 앞에서 칼로 양쪽 가슴을 도려냄08) 물이 든 독 안에 알몸으로 가둔 후 미꾸라지를 풀어놓음 (※ 미꾸라지는 구멍을 찾아 들어가려는 습성이 있음) 09)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나무 상자에 긴 대못을 박아놓고 3일간 가둬놓음10) 상체를 벗겨 채찍으로 후려침11) 많은 일본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목에 개줄을 묶은 채 네 발로 기어가게 함이 밖에 셀 수도 없이 많습니다.<잔혹한 성고문>당시 나이 만 17세여자로써는 특히 치욕적이라 할 수 있는 성고문들 중유일하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고문 바로 '미꾸라지 고문' 일본의 잔인한 성고문들 중에서도 가장 최악으로 평가받고 있으나일본의 필사적인 은폐 작업으로현재 정식적인 고문 기록에 빠져 있음 [미꾸라지 고문을 간략하게 설명한 그림]미꾸라지는 습하고 어두운 곳을 좋아해구멍이 있으면 들어가려는 습성이 있다.일본 고문관은 이러한 미꾸라지의 습성을 이용해그녀를 알몸으로 독에 가둔 후 물에 미꾸라지를 풀어넣었다.기억하자.이 당시 그녀의 나이는 고작 만 17살이었다.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소녀>당시 고문으로 부어있던 그녀의 얼굴을3D 입체 그래픽으로 복원한 모습그녀가 고문으로 병을 얻자 새로 묵게 된 독방제대로 누울 수 조차 없는 열악한 환경을 보여준다.그리고 마침내1920년 9월 28일모진 고문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결국 18살의 꽃다운 나이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한다사인은무차별한 성폭행으로 인한 자궁파열당시 유관순 열사의 시신은자궁과 방광이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으며머리와 몸통, 사지 등이 여섯 토막으로 잘려 있었다.또한 고문의 흔적으로 코와 귀도 없었다.이화학당 교장이었던 미스 프라이와 미스 월터가형무소장에게 시신 인도를 요구했을 때에도, 일제는 시신 상태를 세상에 알리지 말 것 등의 조건을 붙여 마지못해 석유상자에 넣은 시신을 넘겨줄 뿐이었다.<잊혀진 대한민국의 잔다르크> [주요 교과서 4종에 유관순 내용 삭제] [순국 열사를 미이라고 일컫는 시인]무려 35년 만에 사과문 게재[유관순 코스프레랍시고 SNS에 사진 올린 연예인]유관순 열사는 술이 아닌, 매일 쇳가루가 섞인 똥물을 먹었습니다.※ 부연설명 ※ 사진의 주인공인 최소라이고 옥주현과는 뮤지컬로 같이 활동한 사이박칼린을 비롯해 뮤지컬계 동료들이 벌인 코스프레였는데옥주현이 SNS 계정을 통해 저 사진을 올리고 망언을 남김 항의가 빗발치자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긴 했으나자숙없이 나가수에 출연하고 활발하게 방송 활동을 이어가자비난이 걷잡을 수 없이 거세짐 사진의 주인공인 최소라는 네티즌들의 오랜 항의 끝에미니홈피에 사과문을 올렸지만결국 이 일로 옥주현은 역사 개념이 없는 연예인으로 낙인찍힘참고로SNS 활용의 좋은 예<유관순 열사의 유언>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내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나라를 잃은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이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끝까지 읽여준 여시분들께감사의 박수를..이 당시 유관순 열사 뿐만 아니라독립 운동을 위해 순국하신 수많은 분들이 계십니다.나라가 아무리 미쳐 돌아가도꾸준한 관심과 애정을포기하지는 말아주세요ㅠㅠ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