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중국 문명의 시작
(1) 황허문명 [황하문명]
황하 문명(黃河文明)은 중국의 황하 중하류 지역에 성립한 옛 문명의 총칭이다. 문명의 성립이란 일반적으로 국가·청동기·문자의 성립 등이 요소가 되는데, 이런 의미에서 황하 문명의 성립기(成立期)는, 오리엔트나 인도보다 늦은 BC 2000년경이라 말하고 있다.
(2) 양쯔강문명 [장강문명]
양쯔강 문명(揚子江文明) 또는 장강 문명(長江文明)은 중화인민공화국 장강 유역에서 일어난 고대 문명의 총칭이다. 황하 문명과 함께 중국의 대표 문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장강 문명의 시기는 기원 전 14,000년경부터 기원 전 1,000년경으로 추측
3. 중국 고대 신화
삼황오제 [三皇五帝]
중국 고대의 전설적 제왕을 말하며 이들로 부터 중국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설화속의 인물
4. 중국 국가의 시작
(1) 선진 시기
① 하[夏]

존속기간: BC 2070년경 ~ BC 1600년경
기록상의 중국 고대 왕조. 요순시대 이후 우(禹)가 세운 왕조
② 상[商]

이칭: 은(殷)
존속기간: BC 1600년경 ~ BC 1046년
수도: 은허(殷墟)
상(商)은 문헌에 따라 은(殷)이라는 명칭도 나타나 한때는 국가의 명칭을 은(殷)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은은 상왕조의 마지막 수도일뿐이며, 은(殷)이라는 명칭은 상 왕조가 멸망한 뒤 주(周)에서 상의 주민들을 낮게 호칭하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정확한 명칭은 상(商)이다.
하(夏)·상(商)·주(周) 3대의 왕조가 잇달아 중국 본토를 지배하였다고 하나, 전승되는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왕조는 그 존재 자체가 아직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지 못했다. 다행히 상왕조는 20세기에 들어서 그 수도에 해당하는 은허(殷墟)의 발굴이 진행됨에 따라 적어도 그 후기에는 당시의 문화세계였던 화북(華北)에 군림하였던 실재의 왕조였음이 판명되었다. 따라서 상은 고고학적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중국의 가장 오랜 국가이다. 상나라 전기는 기원전 1600년부터 1300년까지이고, 도읍을 은으로 바꾼 상나라 후기는 1300년부터 1046년까지이다.
③ 주[周]

존속기간: BC 1046년 ~ BC 256년
수도: 호경(鎬京) → 낙읍(洛邑)
주(周)나라는 기원전 1046년 경부터 기원전 256년까지 상나라을 이어 중국에 존재했던 나라이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오래 유지된 나라로, 이 시기에 철기 시대의 사용이 시작되었다. 주나라는 기원전 11세기 중엽에 서쪽의 웨이허 강 분지에서 세력을 확대하여,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中原)을 지배했다. 주나라의 청동기문화권이 최근의 조사에서는, 중원에서 더욱 남쪽 지방인 장쑤(江蘇), 안후이(安徽), 후베이(湖北) 등의 양쯔강 유역에까지 미친 것이 확실해졌다. 이 광대한 지배권을 유효하게 통치하는 조직이 봉건제도이다. 주 왕조는 농업을 장려하고 농지의 개척을 진척하였으나 농기구는 목제나 석제의 기구였다.
견융이 침략하여 기원전 771년 유왕이 살해되고 제후에 의해 옹립된 평왕이 호경(鎬京, 현재의 시안 시 부근)에서 부도(副都) 낙읍(洛邑, 현재의 뤄양 시)으로 수도를 옮기게 되는데, 이를 기준으로 이전을 서주(기원전 1046년~기원전 771년), 이후를 동주(기원전 770년 ~ 기원전 256년)라고 구분한다.
* 주의 구분
서주(西周)
존속기간: BC 1046년 ~ BC 771년
수도: 호경(鎬京)
수도를 시안에서 뤄양으로 옮기기 전의 주나라를 말한다. 주나라의 판도는 상나라보다 대폭 확대되어 황하 일대에 세력을 미쳤다. 서주는 기원전 771년 내부 반란과 이에 합세한 견융(犬戎)의 침략으로 멸망하였으며, 이 일을 계기로 주나라 왕실은 유명무실해지고, 산하의 제후들이 사실상의 독립국으로 행세하게 된다.
동주(東周)
존속기간: BC 771년 ~ BC 256년
수도: 낙읍(洛邑)
기원전 771년서주의 유왕이 견융의 침공으로 호경이 함락되고 피살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제후들이 평왕을 옹립하였고 평왕이 수도를 호경에서 낙읍으로 옮긴 이후의 주나라를 말한다. 동주 시대에는 주나라 왕실의 힘이 약화되고, 제후들이 주나라 왕실을 명목상으로만 남겨둔 채, 독립적인 활동을 하였다. 이 때가 춘추 전국 시대이다.
④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존속기간: BC 770년 ~ BC 221년
BC 8세기에서 BC 3세기에 이르는 중국 고대의 변혁시대.
* 춘추전국시대의 구분
춘추시대(春秋時代)

존속기간: BC 770년 ~ BC 403년
중국의 역사에서 기원전 770년에서 기원전 403년 사이의 시기를 말하며, 주나라의 동천 이후 진나라의 중국 통일까지의 시기를 부르는 춘추 전국 시대의 전반기에 해당된다. 공자가 지은 《춘추》(春秋)에서 이 이름이 유래했다.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와의 경계는 춘추 시대에 열국의 강국 진(晋)이 조·위·한의 3국으로 분열되어 동주로부터 정식으로 승인받은 기원전 403년까지로 잡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진의 집정하에 있던 지백(知伯)을 멸망시키고 사실상 3국의 분립이 성공한 기원전 453년으로 올려 잡는 설도 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존속기간: BC 403년 ~ BC 221년
기원전 403년부터 진(秦)이 중국 통일을 달성한 기원전 221년까지의 기간을 가리키며, 그 시기의 이야기가 주로 《전국책(戰國策)》에서 보여지므로 전국시대라 불린다.
(2) 진한 시기
① 진[秦]

존속기간: BC 221년 ~ BC 206년
수도: 셴양(咸陽)
시황제에 의해 전국 시대를 통일한 제국이다. 그리고 중국 역사상 최초의 제국이다. 제 31대왕 진 시황제는 법가사상으로 하여금 중국을 통일하였다. 춘추전국시대의 진나라 제31대 왕 영정이 황제에 오른 뒤만을 따로 부르는 이름이다.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후 셴양을 수도로 삼고 약 30여년이 지속되었다. 멸망 원인은 강압적인 만리장성 축조와 아방궁 축조, 엄격한 형벌 등에 의해서이다.
기원전 221년의 진나라에 의한 중국 통일 이전의 시대를 특히 구분하여 선진시대(先秦時代)라고도 부른다.
② 한(漢)
존속기간: BC 206년 ~ AD 220년
수도: 장안(長安) → 뤄양(洛陽)
진 이후의 중국의 통일 왕조이다. 한 왕조는 고조 유방(劉邦)에 의해서 건국되었으며 약 400년을 지속하였으며, 중국의 역사상 가장 강대했던 시기 중의 하나이고, 오늘날에 중국인들을 부를 때 사용하는 한족 역시 이 왕조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이 시대에 중국은 유교를 공식 국교로 승인하고, 이 사항 아래 국가의 기본 틀을 잡아 나갔다. 인구는 5천 5백만에 달했으며 농업, 수공업, 상업 등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갔다. 이러한 문화적 발전은 주위의 한반도, 베트남, 몽골, 일본, 중앙아시아 등의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원전 111년에는 베트남의 남비엣을 정복하였다.
한 왕조는 그 시기에 따라 전한(前漢)과 후한(後漢)으로 나뉘는데, 전한과 후한 사이에는 왕망이 전한에 반란을 일으켜 세운 신이 존재한다.
* 한의 구분
전한(前漢)
존속기간: BC 206년 ~ AD 8년
수도: 장안(長安)
고조 유방(劉邦)이 항우(項羽)와 대륙쟁탈 뒤에 세운 황조로서 진(秦)에 이어 중국을 두 번째로 통일한 황조이다. 수도는 장안이었는데, 그 위치가 후세에 세워진 후한의 수도 뤄양보다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서한(西漢)이라고도 불린다.
신(新)
존속기간: AD 8년 ~ AD 23년
전한(前漢)의 외척 왕망(王莽)이 전한을 멸망시키고 세운 나라이다. 그러나 흥한의 기치를 내세운 후한에게 멸망한다.
후한(後漢)
존속기간: AD 23년 ~ AD 220년
수도: 뤄양(洛陽)
전한이 신나라의 왕망에 의하여 멸망한 이후, 한 왕조의 일족인 광무제 유수가 한 왕조를 부흥시킨 나라이다. 수도를 낙양에 두었는데 그 위치가 전한의 수도 장안보다 동쪽에 있기에 동한(東漢)이라고도 한다.
③ 삼국시대 [三國時代]

존속기간: 220년 ~ 280년
후한이 몰락하기 시작했던 2세기 말부터 위, 촉, 오가 세워져 서로 다투다가 서진이 중국을 통일하는 3세기 후반까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황건의 난을 시작으로 한의 천하가 무너지고 대륙의 군웅들이 지모와 무용을 다해 싸우던 시기로 조조, 유비, 손권이 솥발처럼 천하를 나눈 전란의 시기였다. 제갈량의 북벌을 막아낸 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에 이르러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다.
* 삼국시대의 국가
위(魏)
존속기간: 220년 ~ 265년
수도: 뤄양(洛陽)
후한이 멸망한 후 삼국 중 하나로 삼국 중 가장 강대했던 나라였다. 천부적인 전략과 재능을 가진 조조는 삼국 시대의 군웅들 가운데 두각을 일찌감치 드러내었고, 후한 헌제를 옹립함으로써 협천자 영제후(挾天子領諸侯) 즉, 천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여 천하쟁패의 시대에서 주도권을 확보하였다.
당대의 숙적 원소와의 회전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중원 일대를 평정하여 최강 세력으로 발돋움했다. 조조 사후 그의 아들 조비가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한나라를 멸하고 위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조씨 세력은 촉한 제갈량과의 대결에서 급격히 성장한 사마의에게 정권을 내주었고, 그의 손자인 사마염에 이르러 제위마저 내주고 말아 46년의 역사로 그 끝을 맺는다. 중국 대륙이 삼국으로 분할되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위나라의 영토가 당시 중국 영토의 3분의 2를 차지하였고, 병력과 인구 면에서도 압도적 우세를 보였다.
촉(蜀)
이칭: 촉한(蜀漢)
존속기간: 221년 ~ 263년
수도: 청두(成都)
중국 삼국 시대 때 유비(劉備)가 지금의 쓰촨 성 지역에 세운 나라이다. 한 황실의 후예가 세운 마지막 한나라이기에 계한(季漢)으로도 불린다. 220년 사실상 한나라의 실권을 잡고 있던 위왕 조비(曹丕)가 헌제(獻帝)를 내쫓고 제위를 찬탈하자, 당시 익주(益州)와 한중(漢中)을 점거하고 있던 유비가 한 황실의 후예라는 정통성을 내세워 황제임을 선언하고, 국호를 ‘한(漢)’이라 하였다(역사적으로 “촉한”이라 불린다). 수도는 성도(成都)이다.
유비 사후 후주(後主) 대에 이르러 진지(陳祗) · 황호(黃皓)와 같은 간신의 발호와 무리한 북벌로 점점 쇠망의 길을 걷다가, 263년 위의 대대적인 정벌에 멸망하고 만다.
오(吳)
존속기간: 229년 ~ 280년
수도: 건업(建業)
후한이 멸망한 후, 삼국 중의 하나로 친자 3대에 걸쳐 구축되었다. 비옥한 땅과 풍부한 인재를 갖추었으며, 잦은 군사적 진출 시도에서는 미흡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방어전에서는 양호한 전적을 보였다. 상황에 따라 촉한(蜀漢) · 위魏)와 화평을 맺는 유연한 외교술을 펼쳤다.
위촉오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건국되었으나, 가장 오랫동안 존속하였고 가장 나중에 멸망하였다. 손견(孫堅)과 손책(孫策)의 맹활약으로 강동에 기반을 잡았고, 수성의 달인인 손권(孫權)을 통해 제국으로 발돋움했다. 마지막 황제인 손호(孫皓)가 서진(西晉)의 사마염(司馬炎)에게 항복함으로써 삼국 시대는 그 끝을 맺는다.
오나라의 건국 이후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어 이른바 육조 시대가 열려 중국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 화북에서 강남으로 옮겨지게 된다.
(3) 위진 남북조 시기
① 진[晉]

존속기간: 265년 ~ 420년
수도: 뤄양(洛陽) → 건업(建業)
사마염이 위나라의 정권을 뺏고 세운 통일 왕조인 서진(西晉, 265년 ~ 316년)과 남북조 시대의 남조 왕조 중 하나인 동진(東晉, 317년 ~ 420년)으로 이루어진 왕조이다. (서)진이 동진으로 된 이유는 북방민족들에게 화북지방을 빼앗겨 하는 수 없이 강남으로 내려오게 되어서이다.
* 진(晉)의 구분
서진(西晉)
존속기간: 265년 ~ 317년
수도: 뤄양(洛陽)
촉한 제갈량의 북벌을 막아낸 위나라의 중신 사마의의 손자인 사마염이 건국했다. 건국 초기 무제 사마염은 안정적인 정치로 새로운 나라의 기반을 다져나갔으나, 말년에 사치에 빠져 온나라가 향락의 도가니에 빠지고 말았다. 국장의 문란이 더해가던 혜제 때에 이르러 군사력을 장악하고 있던 왕들이 팔왕의 난을 일으켜 국운이 기우고 만다. 무려 16년 동안 팔왕의 난이 중국을 휩쓸고 있던 중에, 중국 내륙에 이미 정착해있던 많은 유목 민족들이 중국을 침략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영가의 난을 초래하게 되었고 서진은 흉노의 유연이 세운 한나라에 건국 52년 만에 멸망했다.
동진(東晉)
존속기간: 317년 ~ 420년
수도: 건업(建業)
중국의 서진 왕조가 유연(劉淵)의 전조(前趙)에게 멸망한 후, 사마예에 의해 강남(江南)에 세워진 진(晉)의 망명 왕조이다. 서진과 구별하여 동진이라고 부른다.
* 오호 십육국 시대(五胡十六國時代)

존속기간: 304년 ~ 439년
삼국을 통일한 서진(西晉)이 멸망한 후, 5개의 비한족을 비롯한 16개의 국가가 회수(淮水) 북부에 여러 나라를 세우며 난립하던 시대를 말한다. 구체적으로는 전조(前趙: 304~329)가 건국된 304년부터 북위(北魏: 386~534)가 화북을 통일한 439년까지를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다.
② 남북조 시대[南北朝時代]

존속기간: 420년 ~ 589년
한족이 세운 남조와 유목민족이 세운 북조가 대립하다, 수나라가 통일할 때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 남북조시대의 국가
① 남조(南朝)
존속기간: 420년 ~ 589년
중국 남북조시대 중 5 ∼ 6세기에 양쯔강[揚子江] 하류지역을 점거하고 건강(建康:南京)을 국도(國都)로 한 4왕조에 대한 총칭.
4왕조: 송(宋:420~479) ·제(齊 :479~502) ·양(梁:502~557) ·진(陳:557∼589)
② 북조(北朝)
존속기간: 362년 ~ 581년
4세기 말~6세기 말 양쯔강[揚子江] 유역(강남지역)의 남조(南朝)와 대립하여 화북(華北)지역을 영유한 북위(北魏)·북제(北齊)·북주(北周)의 3왕조에 대한 총칭.
(4) 수당 시기
① 수[隋]

존속기간: 581년 ~ 618년
수도: 대흥(大興)
양견(楊堅:文帝)이 581년 북주(北周)의 정제(靜帝)로부터 양위받아 나라를 개창하고, 589년 남조(南朝)인 진(陳)을 멸망시켜 중국의 통일왕조를 이룩하였다. 문제·양제(煬帝:廣)·공제(恭帝:侑)의 3대 38년이라는 단명 왕조였으나, 남북으로 갈라져 있던 중국을 오랜만에 하나의 판도에 넣어 진(秦)·한(漢)의 고대 통일국가를 재현하였고, 뒤를 이은 당(唐)이 중국의 판도를 더욱 넓혀 대통일을 이룩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존립의의가 크다.
② 당[唐]

존속기간: 618년 ~ 907년
수도: 장안(長安)
618년 이연(李淵)이 건국하여 907년 애제(哀帝) 때 후량(後梁) 주전충(朱全忠)에게 멸망하기까지 290년간 20대의 황제에 의하여 통치되었다. 중국의 통일제국(統一帝國)으로는 한(漢)나라에 이어 제2의 최성기(最盛期)를 이루어, 당에서 발달한 문물(文物) 및 정비된 제도는 한국을 비롯하여 동(東)아시아 여러 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쳐 그 주변 민족이 정치 ·문화적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한국의 경우 삼국체제(三國體制)가 붕괴되고 정치세력 판도가 크게 바뀌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중기 안녹산(安祿山)의 난(亂) 이후 이민족(異民族)의 흥기(興起)와 국내 지배체제의 모순이 드러나 중앙집권체제의 동요는 물론 사회 및 경제적으로도 불안이 가중되어 쇠퇴의 길을 밟았다.
* 당의 구분
무주(武周)
존속기간: 690년 ~ 705년
측천무후가 당에서 바꾼 국호이다. 주나라라 정하였으나, 기원전의 서주, 동주와 구별하기 위해 그녀의 성을 따 무주라 부른다. 이후 측천무후는 15년간 주나라의 황제로서 중국 대륙을 통치했으며, 그녀가 죽고 나서, 중국은 다시 당 황조로 복고되었다.
* 오대 십국 시대(五代十國時代)

존속기간: 907년 ~ 960년
중국에서 당(唐)나라가 멸망한 907년부터, 960년에 나라를 세운 송(宋)이 전중국을 통일하게 되는 979년까지의 약 70년에 걸쳐 흥망한 여러 나라와 그 시대.
(5) 송원 시기
① 송[宋]

존속기간: 960년 ~ 1279년
수도: 카이펑(開封) → 임안(臨安)
960년 조광윤이 오대십국 시대 오대 최후의 왕조 후주로부터 선양을 받아 개봉(카이펑)에 도읍하여 나라를 세웠다. 국호는 송(宋)이었으나, 춘추시대의 송, 남북조 시대의 송 등과 구별하기 위해 황실의 성씨를 따라 조송(趙宋)이라고도 부른다. 통상 1127년 금나라의 확장에 밀려 장강 이남으로 옮기기 전을 북송, 이후 임안(지금의 항저우)에 도읍을 옮긴 것을 남송이라고 불러 구분하였다. 북송·남송 모두 합쳐 송, 송 왕조라고도 한다. 수도는 개봉(開封, 또는 변경), 남쪽으로 옮긴 후 실질적인 수도는 임안(臨安)이다. 훗날 원나라에게 멸망당한다. 세계 최초로 지폐를 발행한 정권이며, 상비 해군을 설치한 최초의 중국 왕조이다. 문치주의 국가로 사대부 사명 의식이 있었다. 또한 이전의 왕조들과는 달리 철권폭정을 하지 않고 문화 정치를 폈다. 시대적으로 북송과 남송으로 나뉜다.
* 송의 구분
북송(北宋)
존속기간: 960년 ~ 1127년
수도: 카이펑(開封)
조광윤(趙匡胤)이 오대 최후의 왕조 후주에게서 선양을 받아 개봉(開封)에 도읍하여 세운 나라이다. 국호는 송이었으나, 금나라에 의해 개봉에서 쫓겨나 남하한 뒤에는 남송과 구별하여 북송이라 불리었다.
남송(南宋)
존속기간: 1127년 ~ 1279년
수도: 임안(臨安)
조광윤이 건국한 송나라 왕조가 여진족의 금나라에게 정강의 변을 겪으면서 화북을 빼앗긴 후, 황족 조구 (훗날 고종)가 남쪽으로 옮겨 회화 이남의 땅 임안(현재의 항저우)으로 천도하여 재흥한 정권을 가리켜 남송이라고 부른다.
* 요(遼)
존손기간: 916년 ~ 1125년
수도: 임황부(臨潢府)
10~12세기에 거란(契丹)이 중국 북방의 네이멍구[內蒙古] 지역을 중심으로 세운 왕조로서, 916년 건국 당시의 명칭은 거란국(契丹国)이었지만, 938년 연운16주(燕雲十六州)를 획득한 뒤 나라 명칭을 요(遼)라 하였다. 1125년 여진(女眞)에 세운 금(金, 1115∼1234)에 멸망.
* 금(金)
존속기간: 1115년 ~ 1234년
수도: 회령(會寧) → 중도(中都) → 카이펑(開封)
여진족은 본래 10세기 초 이후 거란족이 세운 요(遼)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나, 12세기 초 북만주 하얼빈[哈爾濱] 남동쪽의 안추후수이[按出虎水] 부근(지금의 松江省) 아청[阿城]에 있던 완안부의 세력이 커지자, 그 추장인 아구다가 요를 배반하고 자립하여 제위(帝位)에 올라, 국호를 금(金)이라 하였다.
* 서하(西夏)
존속기간: 1038년 ~ 1227년
수도: 흥경부(興慶府)
1038년 중국 서북부의 오르도스(Ordos)와 간쑤(甘肅) 지역에서 티베트 계통의 탕구트족(Tangut, 党项族)이 세운 나라이다. 본래의 명칭은 대하(大夏)이지만, 송(宋, 960~1279)과 중국의 사서(史書)에서 중국의 고대 왕조인 하(夏)와 구분하여 서하(西夏)라고 불러 이 명칭으로 널리 알려졌다. 11세기~12세기에 동서교역을 매개하며 유목과 농경, 불교 문화가 결합된 독창적인 문화를 발달시키며 내몽골[內蒙古]에서 둔황[敦煌], 란저우[蘭州]에 이르는 지역에 세력을 넓혔다. 하지만 1207년 몽골에 복속된 뒤, 1227년 칭기즈칸(成吉思汗, 1155 ?~1227)의 공격을 받아 멸망하였다.
② 원[元]

존속기간: 1271년 ∼ 1368년
수도: 카라코룸(Kharakorum) → 대도(大都)
13세기 중반부터 14세기 중반에 이르는 약 1세기 사이, 중국 본토를 중심으로 거의 동(東)아시아 전역을 지배한 몽골족의 왕국(1271∼1368).
(6) 명청 시기
① 명[明]

존속기간: 1368년 ~ 1644년
수도: 난징(南京) → 베이징(北京)
몽골족이 세운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한족의 지배를 회복한 왕조이다. 명대(明代)는 중국이 근대화하는 시기와 직접 접속되는 시대로서 중요한 성장·변혁기였다.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실시하여 왕권이 강화되었고 이로 인해 정치는 안정되고 상공업이 번성하였다. 이러한 번성으로 도시가 번창하고 문화와 예술이 발달하였다. 하지만 상업의 발달은 부를 균등하게 분배하지 못했고 관리는 점차 부패하고 토지를 잃은 유민이 속출하여 명나라의 명운이 기울기 시작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몽골족과 왜구의 침입으로 혼란을 겪었으며 후기에는 만주족이 세운 후금(後金 : 이후 청나라가 됨)이 명나라를 압박하였다. 결국 1643년 이자성의 난이 일어나 16대 277년만에 명나라는 멸망하였다.
② 청[淸]

존속기간: 1616년 ~ 1912년
수도: 흥경(興京) → 베이징(北京)
여진족의 누르하치가 동북 지역에 건국한 이민족의 나라를 말하는데, 초기에는 금(흔히 “후금”이라 부름)이었다가 후에 세력을 강화하여 청으로 국호를 바꿨다.
이민족의 나라 청나라는 한족의 중국 명나라뿐 아니라 주변의 몽골, 위구르, 티베트를 모두 정복하여 몽골 제국(원나라)을 제외한 역대 중국 왕조 중에서 가장 큰 영토를 이루게 되며, 이민족으로써는 가장 오랫동안 중국을 지배하였다. 1912년 선통제 푸이 대에서 서구열강 세력 등의 영향으로 국력이 약해져 청나라는 멸망하고, 중국 역사에서 2천여 년간 이어졌던 제국의 시대가 끝나게 된다.
(7) 혼란기
① 군벌기(軍閥期)
존속기간: 1912년 ~ 1928년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한 이후, 군사력을 기반으로 전국 또는 지방의 일부에 웅거하면서 실질적으로 권력을 행사한다. 1928년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이 협력하면서 중국에 있던 군벌을 타도한다.
② 국공내전(國共內戰)
존속기간: 1927년 ~ 1949년
1927년부터 1949년까지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사이에 일어난 내전을 말한다. 1927년에서 1936년까지를 제1차 국공 내전, 1946년부터 1949년까지를 제2차 국공 내전으로 부르며, 결국 중국 공산당의 홍군(紅軍)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의 결과로 본토에는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으며 장제스가 이끄는 중국 국민당의 중화민국은 타이완(臺灣, 대만)으로 패퇴하였다.
(8) 현대
중화인민공화국(中華人民共和國)
[China,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PRC]

존속기간: 1949년 10월 1일 ~
수도: 베이징(北京 / Beijing)
집권에 성공한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은 곧 중화인민공화국을 건립하였다. 중국 공산당은 소비에트 연방과의 유대 관계를 통해 여러가지 경제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소련과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국경 문제로 소비에트 연방, 인도, 베트남과의 무력 충돌이 있었다. 덩샤오핑 시대 이후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통해 경제 대국에 진입하였다. 1990년대 홍콩, 마카오를 편입, 열강에 빼앗긴 땅을 모두 되찾았다.
중국의 역사 (중국사)|작성자 모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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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커피 쏟았는데 남일처럼 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