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울먹임이 이젠 전생을 능가해버려요
당신 기침이 당신 몸을 능가하는 것처럼요
그랬니……
그랬구나……
우리는 무뚝뚝하게 흰밥을 떠
미역국에다 퐁당퐁당 떨어뜨렸다
백반 中/김소연

"언제 결혼하실 거예요?"
"많은 일들을 잊어버리면."
나는 줄리에트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았다.
"곧 잊어버리고 싶으세요?"
"언제까지라도 잊고 싶지 않아."
좁은문 中/앙드레 지드

더 이상 노르웨이가 느껴지지 않는 이 남자
노르웨이와 상관없이 코를 골고 잠꼬대 하는 이 남자
어깻죽지의 칼과 용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고
침울한 낯빛은 그저 침울한 낯빛일 뿐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겁이 난 소녀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네
새로 산 속눈썹이 떨어지도록
다 자란 젖가슴이 늘어지도록
화가 난 소녀는 밤새도록 발버둥쳤네
갑자기 뜨거워진 피부처럼
갑자기 싸늘해진 피부처럼
<중략>
소년은 잠이 덜 깬 얼굴로
발광하는 소녀를 바라보았네
'사랑은 환각이고,
우리는 나쁜 환각을 보았을 뿐……'
소년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누가 누구를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누구에게도 사랑받고 싶지 않아……'
세상의 멸망을 따르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소년은 모든 고독을 만끽하기 위해
울부짖는 소녀를 뒤로한 채
노르웨이 정서가 물씬 풍기는 이불 속으로 기어 들어갔네
세상의 멸망과 노르웨이의 정서 中/황병승

그곳은 이곳보다 일곱 시간 늦게 해가 뜨지요.
이제 멀지 않은 날에, 내가 정오의 태양 아래에서 필름조각들을 거내들 때 당신은 새벽 다섯시의 어둠 속에 있겠지요. 당신 손등의 정맥을 닮은 검푸른 빛은 아직 하늘에서 다 새어나오지 않았겠지요. 당신의 심장은 규칙적으로 뛰고, 타오르며 글썽이던 두 눈은 눈꺼풀 아래에서 이따금 흔들리겠지요. 완전한 어둠 속으로 내가 걸어들어갈 때, 이 끈질긴 고통 없이 당신을 기억해도 괜찮겠습니까.
*
네가 나를 처음으로 껴안았을 때, 그 몸짓에 어린, 간절한, 숨길 수 없는 욕망을 느꼈을 때, 소름끼칠 만큼 명확하게 나는 깨달았던 것 같아.
인간의 몸은 슬픈 것이라는 걸. 오목한 곳, 부드러운 곳, 상처 입기 쉬운 곳으로 가득한 인간의 몸은. 팔뚝은. 겨드랑이는. 가슴은.샅은. 누군가를 껴안도록, 껴안고 싶어지도록 태어난 그 몸은.
그 시절이 지나가기 전에 너를, 단 한 번이라도 으스러지게 마주 껴안았어야 했는데
그것이 결코 나를 해치지 않았을 텐데.
나는 끝내 무너지지도, 죽지도 않았을텐데
*
그 쓸쓸한 몸은 이제 죽었니.
네 몸은 가끔 나를 기억했니.
내 몸은 지금 이 순간 네 몸을 기억해.
그 짧고 고통스러웠던 포옹을.
떨리던 네 손과 따스한 얼굴을.
눈에 고인 눈물을.
희랍어 시간 中/한강

"사랑한다며?
"네. 사랑하죠."
"그런데 내일은 어떨지 몰라?"
"네."
"사랑하는 건 맞잖아. 그렇잖아."
"네 그래요."
"내일은?"
"모르겠어요."
*
"오늘도 어떻다고?"
"사랑하죠. 오늘도."
필용은 태연을 연기하면서도 어떤 기쁨, 대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불가해한 기쁨이었다.
너무 한낮의 연애 中/김금희

나는 신을 만나본 적이 있었다. 루카, 내가 너를 만난 것이 그가 존재한다는 증거였다. 내가 그 신에게 경배를 드리고 기도를 바칠 필요는 없었다. 그는 가만히 존재하는 것만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는 신이었고 나에게도 너를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았으므로.
*
삶이라는 이름의 그 완고한 종교가 주는 믿음 외에 내가 다른 무언가를 믿는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내 믿음을 지켰고 너를 잃었다. 그 사실이 나를 찌르지만 나는 대체로 평안하다. 그런데 루카, 너는 어떠니. 너는 그곳에서 평안하니. 루카였고 예성이었던 너는.
루카 中/윤이형

그날 밤 저희는 가마쿠라의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여자는 이 허리띠는 가게 친구한테 빌린 거니까 하면서 허리띠를 푸어서는 개어서 바위 위에 올려놓았고, 저도 망토를 벗어서 같은 곳에 놓아두고 함께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여자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
용서할 것도, 용서받을 것도 없었습니다. 요시코는 신뢰의 천재니까요. 남을 의심할 줄이라곤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로 인한 비극.
신에게 묻습니다. 신뢰는 죄인가요?
인간실격 中/다자이 오사무

"그냥 갈 거야?"
네 손길에는 소름이 끼치도록 부드럽고도 질기고 단호한 힘이 들어 있었다. 그건 사랑에 빠진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것.
"그래."
나는 너와 사랑에 빠질 정도로 어리석은 중학생이 아니었다.
*
우리는 서로 멀리 떨어져서 도는 행성과 같았다. 너는 슬픔에 잠겨 네 맘대로 했고 나는 시름에 겨워 내 마음대로 했다. 너는 연합고사를 몇 주일 앞두고 퇴학을 당했고 나는 지옥에서의 마지막 시험을 치렀다. 네가 사라지고 나서 그 처녀도 사라졌다. 그 처녀가 사라짐으로 해서 내 첫사랑은 끝났다.
*
"한번 안아보자."
"그래."
나는 처음으로 너의 부탁을 받아주었다. 너는 나를 안았다가 안았던 팔을 풀고 외투 단추를 급하게 풀면서 말했다.
"너, 다시는 안 오겠구나."
"그래."
너는 외투를 벌렸다. 나는 네 품 안에 들어갔다.
"사랑한다."
너는 나를 깊이 안았다.
"나도."
지나가던 아이들이 우리를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지옥의 빵공장에서 빵 트럭이 쏟아져나오고 딴 세상 바다에선 고래들이 펄쩍 뛰어오르던 그때, 나는 비로소 내가 사내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사랑 中/성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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