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그러세요”
우형사는 실소를 머금으며 천호에게 물었다 그것은 명백히 무시의 태도였지만 천호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했다 천호는 앞뒤로 몸을 움직이며 양손으로 어깨를 강하게 잡고는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진짜로 있을 줄이야 팀장님. 우리 팀장님은 어떻게 된거지? 죽은건가? 사라진건가? 한시간을 넘기면 안되는건가? 어째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거지?
바르르 몸을 떨며 조수석에서 중얼거리고 있는 천호를 보며 우형사는 고속도로 휴게소로 차를 몰았다
“좀 진정하세요 마실 것좀 사올테니까 여기서 기다리고 계세요”
우형사는 한심하다는 듯 천호를 보며 말했다 가볍게 자동차 문을 닫은 우형사는 휴게소 쪽으로 걸으며 스마트폰을 바라봤다 [13:13] 분을 가리키고 있는 액정을 보며 대충 아무거나 주워 담은 우형사는 바로 차로 돌아왔다
“천호씨”
어느 정도 진정이 된 것 같은 천호는 멍한 얼굴로 창 밖을 보고 있었다 우형사는 뜨거운 커피를 건네며 말했다
“전 천호씨가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
“왜냐면 눈을 보면 알 수 있거든 천호씨 같은 사람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만한 사람이 아니야”
“그때요”
멍하니 있던 천호가 입을 열었다 우형사는 커피를 마시며 귀를 열었다
“그때. 제가 억지를 써서라도 팀장님을 데리고 갔었더라면. 조금은 나아졌을까요? 팀장님이 돌아왔을까요?”
그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천호를 보며 우형사는 ‘이 사람은 범인이 아니다’ 라고 결단지었다 사건조사나 브리핑 때에는 모든 정황이 천호가 저지를만한 짓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었지만 실제로 만나 취조를 하며 짧은 시간을 보낸 끝에 내린 판단은 ‘누군가를 해할정도로 간이 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된다 요 근래 슬럼프인지 우형사가 속한 팀의 실적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것은 곧 무언의 압박으로 다가왔다
그 중에는 천호에게 강제로라도 자백을 받아내 사건을 종결시키라는 말도 안되는 것도 있었지만 우형사가 속한 팀의 형사들은 그렇게까지 양심을 팔지는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매스컴을 타지 않았다는 점이다 충분히 미스테리하고 사람들의 흥미를 끌만한 사건이지만 다행히 기자들의 눈을 피한 덕에 조용히 수사를 진행시킬 수 있었다
그렇지만 언제든지 터지면 언론이 주목할 수 있었기에 조심하고 신속해야만 했다 우형사는 깊은 숨을 내쉬며 커피를 마셨다
“천호씨 잘못이 아니에요”
“제 말 안믿으시겠지만요. 형사님 그 마을에서 한 시간 이상 있으면 영원히 나오지 못한다고 했어요”
우형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그 마을 입구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랬다면서요 장승노인들”
“형사님 지금이라도 동료분들을 데려오세요 저처럼 후회하지 마시고요 형사님은 아직 돌릴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잖아요”
촉촉이 젖은 천호의 눈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형사 나름대로의 직감이었다 형사 생활 나름대로 얻어낸 제 6의 감각이기도 했지만 이것이 놀라울만큼 잘 맞아 떨어질 때가 있다 지금은 그 감이 천호의 결백을 말하고 있었다 우형사는 다시 스마트폰의 액정을 보고는 말했다
“반장님이 연락하면 가야해요 괜히 갔다가 욕만 먹지 이 얘기는 원래 하면 안되는데. 요새 우리가 실적이 좀 안좋아서 반장님 심기가 여간 불편한게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 때는 좀 가만히 있는게.”
주저리 말하는 우형사의 손목을 거칠게 잡은 천호가 다급히 말했다
“그게 아니라구요! 왜 제 말을 믿어주지 않는겁니까! 지금이라도 가야해요 가야한다구요! 안그러면 형사님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구요!”
인상을 찡그리며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참고 있는 천호를 보며 우형사는 한숨을 쉬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곧 우형사는 천호를 보며 진중한 얼굴로 되물었다
“맹세합니까?”
“....”
“맹세해요? 천호씨 모든 것을 걸만큼 맹세할 수 있냐고요”
그 말에 천호는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 목숨을 걸 수 있습니다 제발 한 번만 믿어주세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부탁이라고 어려울게 뭐있습니까 제발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어요!”
그렇게 말하는 천호를 보며 우형사는 벨트를 매며 말했다
“벨트하세요 지금부터 좀 빨리갈겁니다”
***
빠르게 이동하는 스타렉스 안 천호는 울음을 그친 상태였고 어느정도, 안정이 되어 보였다 대신 그는 무언가를 결심한 듯 굳은 얼굴이었는데 우형사가 쉽게 말을 걸지 못할 정도로 강인한 무언가가 느껴지고 있었다
우형사 역시 오묘한 긴장감을 놓칠 수 없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상대해봤지만 진실을 말하는 사람과 거짓을 말하는 사람은 분명히 차이가 있었다 천호가 거기서 전자이길 바랐지만 만약의 경우 후자일 때에는 거기에 맞는 책임을 자신이 져야했기에 어느 정도 리스크를 짊어지고 가야만 했다
하지만 그는 길게 망설이지 않기로 했다 지원 요청이야 미리 해둔 상황이었고 40분가량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연락이 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천호의 말대로 분명 마을에 뭔가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 여기가 아닌가?”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을 입구 쪽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천호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같은 방향인 것 같은데 이리저리 빠지는 길 밖에 보이지가 않았다
“뭔가 이상한데.”
그렇게 중얼거린 천호는 창 밖으로 언뜻 보이는 허름한 집을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저기! 저기로 가요! 저 식당으로 가면 뭐라도 얻을 수 있을거에요!”
우형사는 천호의 말대로 허름해 보이는 건물로 차를 몰았다 우우웅- 빠르게 몰며 울퉁불퉁한 자갈길을 지나니 천호가 가리킨 허름한 건물이 보였다 OO식당이라고 써있는 간판을 보며 차에서 내린 우형사는 왠지 모를 이물감에 긴장한 상태로 천호의 뒤를 따랐다
“여기가 팀장님이랑 저랑 찌개를 먹었던 곳이에요 여기에 있는 아주머니가 분명.”
다급하게 말하며 문을 열고 들어간 천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붕어처럼 입을 벙긋거리며 뒤로 물러나려고 할 때 우형사가 그 옆을 지나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
우형사는 신음성을 흘리며 주위를 훑어봤다
“..여기에서 뭘 드셨다고요?”
우형사는 미심쩍은 눈으로 천호를 보며 물었다 천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 분명 여기 사람들이 있었고. 테이블들이 다 이렇게 정렬되어 있었는데 왜. 어째서. 아무것도 없죠?분명히 우린 여기서 찌개를 먹었는데.”
우형사는 말 없이 현장 안을 가볍게 돌기 시작했다 20평은 되어보이는 공간에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따금 보이는 털 뭉치와 먼지들은 이따금씩 동물이 왔다 가는 곳이라고 밖에 단정지을 수 없었다
우형사는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흡사 폐허와도 같은 가게 내부를 훑어 보며 말했다
“천호씨 정말 여기서 찌개를 먹었다고요? 이런 냄새나고 기분 나쁜 곳에서?”
“...정말이에요 어째서. 맞아 그 때 팔천원! 팔천원 냈어요 아주머니한테 분명 여기가 카운터였고. 여기에서 돈을 받았어요 맞아. 맞아요”
어수선하게 말하며 카운터가 있었던 곳이라고 주장한 천호는 바닥 이리저리를 훑어 보다가 오천원 짜리와 천원짜리를 집어 들고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라도 하듯 빠르게 말했다
“보세요! 여기 이 돈이요!”
천호가 내미는 돈을 물끄러미 보던 우형사가 다시 되물었다
“..요새도 이런 구권 지폐를 씁니까?”
그 말에 천호는 자신의 손에 들린 구권 지폐를 보고는 질색하며 돈을 떨어트렸다
“어, 이상해. 이상해요 분명히 우린 신권을 냈는데. 분명. 우린 신권을. 어째서 돈이 바뀌어있는거지”
“장난 그만해요”
“정말이에요! 분명히 우린 팔천원을 냈고 팀장님은 싸게 먹었다며 좋아했단 말이에요 요새 팔천원 짜리 이인분 찌개가 어딨어요”
창백한 얼굴로 해명하는 천호를 보며 우형사는 바닥에 깔린 지폐를 집어들곤 말했다
“천호씨 예전에 제가 어릴 적에는요 찌개 일인분이 사천원이었어요 그럼 천호씨 말마따나 두 분은 찌개를 먹으면서 시간여행이라도 했다는겁니까?”
“..그럴수가 분명히. 우린.”
바보처럼 입을 벌리며 아무 말도 못하는 천호를 보며 우형사가 걸음을 옮겼다
“일단 여기서 시간을 보낼 수 없어요 이동합시다”
빠르게 이동하는 우형사를 따른 천호는 일어날 수 없는 일에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것은 여지껏 보고 배워왔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그는 인정해야만 했다 미스테리가 실제로 일어나고 존재한다는 것을
“연락이 되지 않고 있어 서둘러요”
빠르게 걷는 우형사 앞으로 돌연 한 명의 노인이 나타났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겠지만 허름한 옷을 입고 있는 노인은 우형사와 천호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여길 어떻게 왔는가”
“예 지나가는 길에 한 번 들렸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우형사와는 다르게 천호는 뭐라도 본 것처럼 몸을 떨기 시작했다 겉으로 볼 때엔 평범한 노인 같았지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미묘하게 달랐다
“그래 신기하구먼 이런 곳에서 사람을 보게 될 줄이야”
“그러는 어르신은 어디 가시는 길이십니까?”
우형사의 말에 노인은 수염을 매만지며 답했다
“그냥 이리저리 떠도는 것이지 어서 돌아가게나”
그렇게 말하며 점차 멀어지는 노인을 보며 우형사가 다급히 불러세우며 물었다
“어르신 혹시나 해서 여쭙겠습니다 혹시. 이 마을 근처에서 사람들이 실종되지는 않았습니까? 그. 작은 마을인데요 입구 쪽에는 항상 어르신들이 계셨다고 합니다”
노인은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꽤 되었지 그 마을도”
우형사는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입을 열었다
“그럼 혹시 위치를 아십니까? 저희가 차를 타고 그곳으로 급히 가야하는데 도저히 갈수가 없습니다”
“자네 같은 사람들이 갈 곳이 못 돼”
그 말은 사전에 누군가에게 들었던 말이었다 천호는 천천히 노인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물었다
“..제가 그 마을에서 탈출했습니다 어르신 거기에는 저와 일하던 팀장님과 다른 형사님들이 들어가있어요 제발 우리를 도와주세요”
노인은 가녀리게 몸을 떨고 있는 천호를 보며 말했다
“그 가 한 시간 이내로 나가라고 했을터인데. 그 말을 듣지 않은겐가?”
“..나가려고 했는데 팀장님이 그 첫 번째 어르신 집에서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요 그래서. 저만.”
노인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거길 가야한단 말이지?”
생기가 없는 노인의 두 눈동자 천호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팀장님을 되찾아야 합니다 제발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막무가내였지만 왠지 이 노인이라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천호는 노인의 양손을 잡으며 사정했고 곧 노인은 천호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알겠네 하지만 그 사람들을 구하려면 마을 전체를 태워야하네”
“..예?”
“마을 전체를 태워야 해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을 구하기 힘들 것이야”
그 말에 우형사는 곤란한 얼굴로 반박했다
“아니, 어르신 그러면.”
우형사는 말을 잇지 못하고 놀란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것은 천호도 마찬가지였다
“어?”
놀란 음성으로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우형사는 천호를 보며 물었다
“천호씨. 그 노인분.”
천호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돌연 나타났다가 사라진 노인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천호는 재빨리 차에 올라타며 말했다
“빨리요! 빨리 가야해요!”
우형사는 조금은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몰기 시작했다
***
10분도 되지 않아 다시 마을 입구에 도착한 우형사와 박천호 그들 손에는 대충해서 만든 횃불이 하나씩 들려져 있었다 천호는 마른침을 삼키며 우형사에게 말했다
“지원 요청 다시 한 번 하세요”
우형사는 말 없이 지원요청을 하고는 천호를 보며 말했다
“천호씨 말대로라면 지금쯤 우리 동료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군요”
그들이 도착한 시각은 한 시간을 조금 넘긴 후였다 천호는 을씨년스럽게 보이는 마을 입구를 보며 말했다
“만약 제가 위험에 빠질 것 같은 기분이 들면 지체 없이 도망갈거에요 팀장님을 구하곤 싶지만 죽기는 싫거든요”
“..그러시죠”
우형사는 지금까지도 천호의 말을 완벽히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보다는 그 신뢰관계가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그가 겪은 일 그러니까 노인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미스테리였다 눈으로 보이는 것 외에 믿지 않는 그의 특성상 천호의 말이 정말 신빙성이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뭔가가 미심쩍었다
그것이 뭔지 정확히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 답답했지만 우형사는 걸음을 옮기기로 했다
빠른 걸음으로 마을 입구로 들어선 둘 천호는 벌써부터 몸을 지배하기 시작하는 오한을 떨쳐내기 위해 횃불을 몸 쪽으로 가까이 대었다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기는 했지만 금방이라도 잡아먹힐 듯한 한기에 힘 없이 꺼질 것만 같았다
‘제발.’
마음속으로 외치며 빠르게 걸은 끝에 정자에 도착한 천호는 한 명 밖에 보이지 않는 노인을 보곤 말했다
“..어르신 다른 분들은 어디에.”
그 말에 노인은 성난 얼굴로 천호를 꾸짖었다
“네 이놈! 그렇게까지 말을 했음에도 다시 오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목숨이 그렇게 아깝지 않은 것이냐?”
그 말에 천호는 조금 주눅이 들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어르신! 저 마을 안에 팀장님과 다른 형사분들이 있습니다 우린 그 분들을 구출해야만 합니다 제발 다시 한 번만 도움을 주십시오!”
그 말에 노인은 딱딱한 얼굴을 풀지 않은 채로 말했다
“틀렸다! 한 시간이 지나면 무슨 짓을 해도 살아남지 못해 그것이 여기 규율이고 법이다 그것을 어긴 자들은 모두 살아갈 수 없어! 네놈들이라도 늦지 않았다 당장 돌아가!”
둘의 상황을 지켜보던 우형사가 조심스럽게 나섰다 왠지 모든 말이 거짓 같았지만 어느 정도 중재를 하고 방법을 강구해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저희가 듣기로는 이 마을 전체를 불태워버리면 사람들이 돌아온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에 노인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몸만 돌아온다고 해서 그것이 완전히 돌아온 것이더냐?”
“..예?”
“영혼은 이미 이 세상에 없단 말이다 너희들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육신을 구하기 위해 불필요한 희생까지도 감수하겠다는 말이냐?”
그 말에 천호가 한걸음 나서며 말했다
“그래도. 그래도! 방법이 있을 겁니다”
노인은 여전히 완강했다
“미련한 녀석 어째서 깨우치지 못하는 것이냐 쯧쯧”
“하지만. 어르신!”
둘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우형사는 말 없이 걷기 시작했다 천호는 노인과 우형사를 번갈아 보다 이를 갈며 우형사의 뒤를 따랐다
“잠깐만요 형사님!”
천호의 부름에 살짝 보폭이 좁아진 우형사가 말했다
“천호씨가 말한 것들이 사실인 것 같아요”
“....”
“왠지 모르겠지만 그럴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이 불안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네요 빨리 이동하면서 불을 붙여야겠어요”
우형사는 무성히 자란 풀과 나무에 불을 붙이며 걷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느릿하게 번져가는 불길을 보며 천호는 슬쩍 뒤를 돌아봤다
“....”
거기에는 세 구의 잘려진 장승과 한 구의 멀쩡한 장승만이 있을 뿐이었다 천호는 이를 악물며 우형사의 뒤를 따랐다 그리곤 불이 붙지 않은 곳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느릿하게 붙는 불을 보며 우형사는 이상함을 느끼며 물었다
“..어째서 연기가 나지 않는거죠?”
그 물음은 천호가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르겠어요’ 라고 답한 그는 묵묵히 불을 붙이며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걸으며 첫 번째 집에 당도할 무협 천호는 다시 찾아오는 불안감에 격하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 반응에 우형사는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하고는 천호에게 물러나라고 한 뒤 집안으로 들어갔다
“....”
하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집에 우형사는 불을 붙이고 나오며 말했다
“아무도 없어요”
그 말에 천호는 안심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했다 어째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일까 그 많은 형사들을 데리고 어디로 이동한 것일까 그 정도의 인원을 수용할 공간이 있다는 건가 수 많은 물음을 던지며 불을 붙이며 걷고 있을 때 우형사가 멈췄다
“왜 그래요?”
천호의 물음에 우형사는 말 없이 서있을 뿐이었다 이상함을 느낀 천호가 슬쩍 우형사 옆으로 걸어오니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커다란 동굴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바들바들 천호는 몸이 떨려왔지만 직감적으로 모든 것의 종지부가 여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생각은 우형사도 같았다 그는 칠흑같이 어두운 동굴 입구를 보며 말했다
“천호씨는 이제 돌아가요”
“..예?”
놀란 듯 되묻는 천호에게 우형사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가서 지원와준 형사들에게 상황 설명을 해줘요 물론 미 취급 받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데까지 하고 도움을 청해요”
“형사님.”
우형사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작게 웃으며 말했다
“나 참, 원래 이런거 안믿는데 그냥 어릴 때 듣던 괴담일로만 알았는데 그게 진짜로 있을 수도 있네요 아무튼 저는 천호씨보다 겁이 없으니까 빨리 돌아가서 형사들에게 내 말을 전해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우형사는 동굴 안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점차 멀어지는 불빛을 보며 천호는 차마 발을 떼지 못했다 무서웠다 알 수 없는 어둠이 온 몸을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천호는 이제는 완전히 사라진 불빛을 떠올리며 몸을 돌렸다
화르륵 돌아가면서 남은 쪽의 숲에도 불을 퍼트리기 시작했다 느릿하지만 확실히 불에 타는 숲들 우형사의 말대로 특유의 연기 하나 없었다 편하기는 했지만 자연적인 현상이 일어나지 않아 더욱 불안했다
“....”
홀로 남겨지는 것이 이렇게까지 두려운 일이었던가 천호는 두려움에 온 몸을 떨었지만 착실하게 걸음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그런 그의 앞에 인영이 모습을 드러내며 말했다.
"다 됐어?"
***
낯선 공간에 홀로 남겨진 우형사는 한치 앞도 구분하기 힘든 곳에서 느릿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등골이 서늘하고 머리카락이 빳빳히 세워지는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고 낯설어서 우형사는 얘기치 않게 긴장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형사는 빠르게 뛰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걷고 또 걸었다
“....”
얼마나 걸었는지 모른다 고요하고 무언가가 온 몸을 휘감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우형사는 습관적으로 몸을 이리저리 털어내며 걷기 시작했는데 곧 어느 한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느낌이 달랐다 어두웠지만 어느 한 곳이 넓게 뚫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우형사는 조심스럽게 불을 비추며 아래를 살폈다
“..뭐지”
어두컴컴하지만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우형사는 찬찬히 불을 비추며 걷기 시작하다 곧 보이는 무언가에 크게 놀라 뒤로 나자빠져버렸다
“헉!”
등쪽에서 전해지는 충격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우형사는 멍한 얼굴로 있다가 이내 다급하게 불빛을 비추며 자신을 놀라게 한 물체를 향해 걸어갔다
“!!”
거기에는 사람의 몸통이 있었는데 사지와 목이 잘려져 있는 상태였다 그 주위로는 아직 마르지 않는 핏물들이 있었는데 오래 지나지 않아 보였다 우형사는 놀란 마음을 다잡으며 천천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도와.줘”
간신히 말을 뱉는 듯한 말에 우형사는 오감을 극대로 발휘해 소리가 난 곳으로 걸어갔다 찬찬히 불빛을 비추며 걸어가니 그와 익히 안면이 있는 같은 팀애 반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 반장님?!”
우형사는 얼빠진 얼굴로 반장 옆에 앉으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반장님 괜찮으세요?”
그 말에 반장은 대답할 기력이 없는지 간신히 손을 들어 우형사의 무릎을 강하게 움켜쥐기 시작했다
“우, 우형사”
“예 예 반장님”
쿨럭 한 움큼의 피를 토해낸 반장은 느릿하게 말을이었다
“소. 속았다 우리 모두. 속았.어”
우형사는 천호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이곳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이상한 마을이 확실했다 우형사는 반장의 몸을 부축하며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반장은 그것을 거부했다
“우형사. 내 말. 끄, 끝까지 들어”
“..반장님 지금 시간이 없어요 이대로 있다가는 반장님 죽는단 말이에요 말은 가서 들을테니까.”
그 말에 반장은 격하게 숨을 몰아쉬며 우형사의 멱살을 움켜 잡았다
“속았단 말이야 우리. 모두가! 그. 박천호라는 새끼. 그 새끼.!”
분노로 뒤덮인 눈동자를 보며 우형사는 불안함을 느꼈지만 애써 캐묻지 않았다 왠지 그래서는 안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반장에게는 남은 시간이 없었다
“그 새.끼 싸, 싸이코패스야 쿨럭 이 마을. 마을. 전체가 사이비 집.단. 집단.이야 쿨럭”
“....”
“주, 중요한건 이 마을이. 하나가 쿨럭 아니라는.거야 이건. 마을의 쿨럭 일부야 똑같은. 마을이 또. 또 있어”
허억 헉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우형사를 보는 반장의 낯이 창백해져갔다 우형사는 반장의 볼을 두드리며 말했다
“그게, 그게 무슨 말이에요 반장님 천호씨는 분명 그럴 사람이 아니.”
우형사의 말에 반장은 다른 손에서 쥐고 있던 낡은 사진을 건넸다 얼결에 사진을 받아든 우형사는 핏물에 더럽혀진 사진을 손으로 닦아 내고는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뭐, 뭐에요? 이게?”
“싸, 쌍둥이. 그 새끼들. 쌍둥. 쿨럭 이야 환각. 환각제를 사용, 해서. 우리를.”
“반장님 반장님!”
“조. 조심해 자네도 쿨럭 이미 중, 중독 되었을 수도 있.”
그 뒤로 반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우형사는 힘 없이 바닥에 누워버린 반장을 보고는 사진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
사진 속 박천호는 두 명이었다 한 명은 순한 눈매를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한 명은 조금은 날렵해 보이는, 사나운 눈매를 갖고 있었다 그 외에는 모든 것이 판박이라고 할 정도로 똑같았기 때문에 어느 기준을 두고 다른 사람인지를 구별해낼 수가 없었다
“..박천호 이 ”
그렇게 중얼거린 우형사는 품 속에서 권총을 꺼내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짙은 어둠이 깔려 왔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에겐 아무런 해가 되지 않았다
“허억 헉.”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동굴 밖으로 나온 우형사는 어느새 가라 앉은 숲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 빌어먹을 새끼!’ 곧 그는 망설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온 몸에 불이 붙어 있다는 사실을 뜨겁고 거대한 화염이 자신의 몸을 갉아먹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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