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하다가 우연히 봤는데 내용이 좋아서 긁어왔어요
우리 부모님도 아버지 주사+폭력때매 이혼하셨는데 읽다가 마음이아픔 흑흑 ㅜㅜ




(모바일배려)
2016. 6. 2 오전 12:11:47
시험 기간도 다가오고 해서 방 정리를 하다가 열여섯 살 무렵부터 쭉 써오던 일기를 오랜만에 꺼내 들었어요. 어린 시절 힘들었던 제 가족 얘기를 나누고 싶어져서 대숲에 올립니당ㅎㅎ….'아버지'와 '술'에 관한 얘기에요.
철없던 제가 시인이 되고 싶던 시절, 아버지는 매일같이 늦은 밤 술에 잔뜩 취해 집에 들어와 온 집안을 다 헤집어 놓고는 어머니에게 밥을 내놓으라고 소리를 질렀어요(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어요, 술 마시는 김에 밥까지 먹고 오면 얼마나 좋을까요). 술에 잔뜩 취한 아버지가 어린 여동생이 키우던 열대어 어항을 뒤엎고 킬킬대며 미친 소리를 중얼거리던 날, 방바닥에서 팔딱거리는 물고기들은 숟가락으로 다시 어항에 담았지만, 유치원생 아이의 마음에 남은 상처는 되돌릴 수 없었어요. 울다 지친 동생은 옆에서 금방 잠들었지만 저는 그날 밤 슬픔과 분노로 인해 단 한숨도 잘 수 없었어요. 그리고 아마도 그 날부터 저는 아버지를 그만 사랑하기로 했던 것 같아요.
뭐, 어찌어찌 해서 결국(모두에게 다행스럽게도) 부모님은 이혼하셨고, 전 어린 동생이 아빠의 빈자리를 느끼는 일이 없도록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요. 멀리서 통학하지만 웬만하면 집에 일찍 들어가려고 노력하고, 가끔 학원에 마중 나가기도 하고….
저는 술을 싫어해요. 주정뱅이들을 미치도록 싫어해요. 자신을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취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미워요. 되도록 술자리는 피해요. 엠티를 가도 술에 취해 얼굴이 벌게진 사람들을 보면 아버지가 생각나요. 몸을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을 재우고, 정신 못 차리는 사람들 찬 바람 쐬게 하고, 남의 토를 치우면서 드는 생각은 결국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뿐이에요. 한 잔, 두 잔, 즐거울 정도만 딱 마시면 모두에게 좋을 텐데. 하긴, 세상이 언제 모두에게 좋았던 적이라도 있나요. 어쩔 도리 없이 그냥 술자리를 피할 뿐이에요.
아래는 오늘 낡은 일기장을 펼쳤을 때 눈에 들어온, 철없던 제가 시인이 되고 싶던 시절 술에 잔뜩 취하고 들어와 밤새 티비를 틀어놓고 소파에서 주무시고는 느지막이 일어나 온종일 소파에 누워 게슴츠레 티비를 보던 아버지를 원망하며 썼던 글이에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1.
분노와 증오로만 살아가던 시절
아버지는 온종일 인터넷 바둑을 두고
애써 순수한 것만을 생각하던 나는
매일같이 꿈속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철없는 여동생은 온종일 날 쫓아다니고
아버지는 온종일 인터넷 바둑을 두고
견디어지지 않는 날에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아 바흐를 연주했다.
봄이 오고 겨울이 가고 가을이 오고 여름이 가도
아버지는 온종일 인터넷 바둑을 두고
여동생은 비구니가 되어 절간의 낙엽을 쓸고
나는 깨지 않을 꿈을 꾸려 한 움큼의 약을 먹고
2.
세월이 지나 세상이 많이 달라져
더는 인터넷 바둑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아
아버지는 술을 잔뜩 마시곤 돌아와서
미친 소리를 온종일 하고
군인이 된 형이 돌아와 집을 둘러보며
더는 아버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말해도
아버지는 술을 잔뜩 마시곤 돌아와서
온종일 배고프다며 밥을 찾고
분노와 증오로만 살 수 있던 시절
아버지는 술을 잔뜩 마시곤 돌아와서
온종일 인터넷 바둑을 두고
미친 소리를 하며 밥을 먹어 대고
3.
저 멀리 긴긴 여행을 다녀온 어머니가
출가했던 여동생의 손을 붙잡고 집에 들어서서,
술을 잔뜩 마시고 돌아와 온종일 인터넷 바둑을 두는
저 남자가 누구냐 물어봐도
태연하게 TV를 틀고 볼륨을 높이고는
돌아앉아 인터넷 바둑을 두는 당신은
언제나 내겐 개만도 못한 사람이고
공간을 차지하는 덩어리일 뿐이고
배를 세게 걷어차고 싶어
얼굴을 짓밟고 싶어 엉엉 울었으면 좋겠어
다시는 인터넷 바둑 같은 건 못 두게 손가락을
지워 버리고 싶어 인터넷 바둑처럼
4.
분노와 증오 없이 살아가던 시절
어머니는 바쁘게 하루를 살고
철없는 여동생은 식탁에 앉아 학습지를 풀고
나는 피아노 앞에 앉아 바흐를 연주했다.

인스티즈앱
현재 댓글창 터진 배달음식 대참사 답변..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