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차안 무표정한 얼굴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자가 기가차다는 듯 말했다
“야 너 몇 살이냐”
“..스물. 여섯입니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자신의 나이를 소개한 조금은 앳되 보이는 남자 박천호는 올해 첫 직장을 갖게된 신입이다 4년제 대학과 군복무를 마치고 바로 직장을 갖는 전형적인 신입 중 한명이었다
“근데 운전면허가 없다는게 말이 돼? 그거 학교다니면서 얼마든지 딸 수 있는거잖아”
조기석 그는 올해 5년차로 접어든 팀장이었다 얘기치 않게 지방 출장을 나간다는 것 자체가 그에겐 불만이었지만, 5년이라는 짬에 운전대를 잡고 신입을 데리고 가야한다는 것도 불만이었다 그 외에도 짜증도 잘 내고 여러 가지로 불만이 많아서 회사 내에서는 ‘투덜조’ 라고 불리고 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여유가 안되서.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꼭 시간이 나면은 면허를.”
천호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표했다 그 어린양 같은 모습에 기석은 더욱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야 박천호”
“예”
“너 그렇게 굽신대지 말라고 내가 그랬지”
“....”
“사내새끼가 좀 자신감 있게 말하란 말이야”
기석은 그런 천호에게 더욱 못되게 굴었다 이유인즉, 천호의 신입 때 모습이 기석의 신입 때와 판박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뼈아팠던 기억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 같아 기석은 천호의 연약한 면을 볼 때 마다 왠지 모를 화가 치밀어 올랐다.
기석은 사회 생활을 하면서 다짐한 것이 있다. '착하고 여리면 사회에서 물어뜯기기 일쑤다' 그것은 곧 상어가 들끓는 곳에 피를 흘리며 헤엄을 치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공격할 때는 가차 없이, 냉정하게 물어뜯다가 필요할 땐 다시 웃는 얼굴로 대하는 것
그것을 가르치고 싶었지만 기석의 성격상 그게 어려웠다 적당히 강한 말로, 때론 모진 말로 대하면 알아차릴까 싶었지만 심성이 착하고 여린 천호는 그게 조금 더딘 편이었다
“됐고 이번에 현장 가서 당장 뭐 조사할건지 말해봐”
기석은 악셀을 밟으며 말했다 가슴과 엉덩이 쪽에 느껴지는 압박을 느끼며 천호는 미리 적어두었던 수첩을 꺼냈다 하지만 기석은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보지 말고 언제까지 볼거야 외워야지 3개월차면 그 정도는 외울 수 있잖아”
그 말에 천호는 보이지 않는 한숨을 쉬며 조금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먼저 주민들에게 동의서를 얻어야 합니다 주민이 없을 시에는 이웃이나 연락처를 남기고. 다음으로 주민의 집이나 재산을 기존 자료와 비교해서 맞는 것과 틀린 것이 있는지 검수해야합니다 그리고.”
약간은 서툴지만 배운대로 잘 말하고 있는 천호를 보며 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수룩하지만 머리가 나쁜 놈은 아니었다
“배 안고프냐”
기석의 말에 시계를 본 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점심시간이네요”
“그래 뭐 먹을래”
그 말에 천호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무엇을 먹을지 정하기는 쉬웠지만 온통 도로와 숲이 자리잡고 있는 곳에서는 제대로 된 음식점을 구경하기가 힘들 것 같았다 그것을 기석도 알고 있었는지 캐묻지는 않았다
“....”
무거운 침묵이 지나 지루한 시간이 흘렀다 꼬르륵 거리는 생리적인 현상에 기석과 천호는 음식점을 찾기 위해 수시로 두리번거렸지만 온통 도로와 숲 뿐인 곳에서는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야 내비 다시 찍어봐”
남은 거리가 10키로였지만 이상하게도 목적지까지 제대로 안내하지 못했다 배고픈 마당에 자꾸만 빙빙도는 것 같아서 짜증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한 기석의 비위를 건들면 안되기 때문에 천호는 날렵히 내비를 만져댔다
[경로를 재탐색합니다]
모래시계가 여러 바퀴 돌며 경로를 다시 잡지만 마찬가지로 10키로가 남았다는 문구만 뜰 뿐이었다 기석은 이상함을 느끼며 어딘가에 도움을 청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주욱 뻗은 길로 가지 않고 옆으로 뻗은 샛길 같은 길로 차를 몰았다 울퉁불퉁 거리는 아직 포장이 안된 시골길을 천천히 주행하니 얼마가지 않아 작지만 허름한 식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밭으로 둘러 쌓인 곳에서 자리를 잡아 운영을 하고 있는 식당이 내심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장사가 잘 되고 있는지도 걱정이 됐다 하지만 둘은 거기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일단은 배가 고팠고 원주민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 식당으로 곧 바로 차를 몰았다
우우웅-
2층으로 이루어진 식당 앞에 마련된 주차 공간에 아무렇게나 차를 댄 기석이 스트레칭을 하며 주위를 살폈다그 옆으로 천호가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맛있어 보이냐?”
행복식당이라고 적힌 간판을 말 없이 보던 천호는 자신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기석은 별로 기대 하지 않은 얼굴로 ‘그럴 줄 알았다’ 라고 말한 뒤 식당안으로 들어갔다
딸랑-
오래된 초인종 소리가 둘의 귓가에 울렸다 곧 풍겨오는 구수하고 맛있는 냄새에 위장이 뒤틀리는 것 같았지만 기석은 최대한의 인내로 빈 테이블에 앉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래도 사람이 좀 있네?”
외딴 곳이라고 생각했지만 4테이블에서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천호는 그런 사람들이 뭐가 신기한지 가만히 바라보았다가 기석의 말에 얼른 고개를 돌렸다
“뭐 먹을거야”
어느새 나타났는지 기석 옆으로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서있었다
“아, 김치찌개요”
“같은 걸로요”
아주머니는 말 없이 식당으로 들어갔고, 테이블에 남은 두 사람은 왠지 모를 소외감을 느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자신들만 다르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내색하지 않았다 단지 현지인들이라고 생각했기에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여기 좀 이상한 것 같은데요 팀장님”
천호의 말에 기석은 영문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뭐가 이상해 그냥 적당히 들려서 먹다가면 되지 오늘 이내로 일을 다 끝내야 시내 쪽으로 가서 잘거 아니야”
“그, 그렇죠”
곧 식사가 나왔다 말 없이 무표정하게 반찬과 찌개를 내려 놓은 아주머니는 바로 가지 않고 둘에게 말했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기석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니, 가는 길에 있으니까 왔죠”
“잘 보였어?”
그 말은 자신의 식당의 위치를 걱정하는 말투가 아니었다 기석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천호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잡아 뗄 수도 없기에 잠자코 있기로 했다
“아뇨 조금 차 타고 왔어요 근데요 이모”
“왜”
“우리가. 그 뭐냐 야, 그 주소 뭐였지?”
기석의 말에 찌개에 수저를 가져가던 천호가 수첩을 꺼내들며 말했다
“아, 이 주소인데요. 어디보자”
천호의 수첩을 가로챈 아주머니가 말 없이 주소를 보고는 기석과 천호를 번갈아 보고는 물었다
“여긴 왜?”
“아, 우리가 그 토지 쪽에서 일하거든요 이번에 그. 재개발이 된다고 해서 사전조사차 나왔어요”
“..거기가?”
아주머니는 미심쩍은 듯 수첩에 적신 주소를 가만히 보기만 했다 그 덕에 멋쩍어진 둘은 어색한 손놀림으로 찌개를 뜨기 시작했다
“아직도 이 주소로 쓰고 있나 모르겠네.”
숟가락에 가득 찌개 떠서 입에 넣으려는 순간 아주머니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기석은 잠깐 멈칫하고는 찌개를 입에 털어 넣으며 물었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문제.는 아닌데 이 주소가 바뀌기 전 주소일거야 지금은 이런 주소로 쓰고 있지”
어디서 가져왔는지 볼펜으로 새 주소를 적어준 아주머니는 ‘먹고 가’ 라는 말과 함께 주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기석은 밥알을 우물거리며 새로 적힌 주소를 가만히 보았다
“야 이거 검색해 봐”
수첩을 조심스레 받아든 천호는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하여 주소를 쳤지만 정확히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비슷한 주소를 몇 개 찾아냈는데 가장 가까운 거리를 기석에게 보여주었다
“음. 여기인 것 같구만.”
그렇게 말한 기석은 ‘빨리 먹고 가자’ 라고 말하고는 말 없이 식사를 시작했다
***
“잘 먹었어요”
8천원이라는 생각보다 싼 가격이 마음에 들었는지 기석은 살짝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
“저, 아주머니가 잘못 받은거 아닐까요?”
“뭐 어때 어차피 다시 올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하며 기석은 목적지까지 재빨리 차를 몰았다
15분에서 20분정도가 경과된 것 같았다 생각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한 둘은 마을 입구에 주차하고는 필요한 서류들을 챙겼다
“와 이런 깡촌이 있었네 차 들어갈 데도 없다니. 참나”
마을 안까지 차를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이 큰 불편이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시간이 꽤나 지체됐기 때문에 둘은 빠른 걸음으로 마을로 걸어갔다
적당한 표지판도 없었다 그저 외길 하나였고 울창하게 자리 잡은 숲들이 전부였다 사람이 지나다니는 길을 제외하고는 관리를 아예 하지 않은 것 같았다 기석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이런 곳을 왜 재개발을 하려는거지 아무리봐도 좋은 땅 같지 않은데 말야”
“..그러게요 혹시 숨겨둔 자원이라도 있는 걸까요”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냐 아무튼 이런 곳을 사들이는 인간들도 이해가 안가요 왜 굳이 이런데를 봐갖고 이런 개고생을 시키냔 말이야”
그의 습관이 자연스레 튀어나온다는 것은 기분이 안좋다는 뜻이다 이럴 때엔 그냥 가만히 있으면서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면 된다 여러번 털리면서 익힌 천호의 처세술이었다
그렇게 투덜거림을 들으며 오분정도 걸어가니 작은 정자와 마을회관이라고 적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정자에는 서너명의 노인들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처음 모습을 보인 이방인 기석과 천호를 신기하게 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저희는 OOO토지에서 나왔습니다”
기석은 사람 좋은 미소로 노인들에게 다가가며 인사했다 그런 기석을 가만히 보던 노인 중 한명이 손가락질 하며 말했다
“아니, 여기는 어떻게 왔어?”
그 말에 기석은 밝은 얼굴로 답했다
“어르신들 보고 싶어서 없던 길도 찾아서 왔죠”
그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노인들은 말 없이 웃었다 하지만 그 웃음도 잠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한 노인이 말했다
“어여 돌아가 자네들이 올 곳이 못 돼 여기는”
“아, 저희도 가고 싶죠 빨리 가게 어르신들이 좀 도와주세요”
그러면서 동의서들을 모아둔 철을 꺼낸 기석이 어르신들에게 내밀었다
“여기에 그냥 이름 석자만 써주시면 됩니다 사전에 얘기 들으셨죠? 여기가 재개발이 된다구요”
노인들은 그 쪽으로는 관심없다는 듯 뚱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기석은 거기서 물러나지 않았다
“아, 이것만 써주시면 저희 바로 딴데로 갈게요 1시간 이내로 다 끝내고 돌아갈게요 불편하게 안할테니까 아들 뻘 되는 놈 돕는 셈치고 좀 도와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애교 섞인 목소리와 밝은 얼굴로 답하는 기석을 보며 노인들은 영 탐탁치 않는 얼굴로 천천히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1시간 이내로 꼭 나가야혀 안 그라믄 큰일나니께”
마지막 이름을 적은 노인이 그렇게 말했다 기석은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며 마을회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만히 뒤에서 보고 있던 천호는 내심 기석의 말빨에 감탄하며 노인들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아무래도 저 청년은 고집이 셀 것 같으니 자네가 꼭 데리고 나가게나 명심해. 마을에 오래 머물지 말어.”
정좌를 지나치려는 천호에게 그 말이 들려왔다 천호는 ‘알겠습니다’ 라고 말한 뒤 빠르게 기석의 뒤를 따랐다
“없어 정자에 계신 노인들이 전부인 것 같다 체크해”
그 사이 빠르게 회관 안을 확인했는지 기석이 나오며 말했다 천호는 미리 준비해두었던 인적사항이 적힌 비슷한 곳에 체크를 하며 기석의 뒤를 따라갔다
다시 주욱 펼쳐진 오솔길을 걷기 시작하는 둘
“가구가 적은 동네 같아요”
오분정도 걷자 허름한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둘은 망설일 것 없이 집 앞으로 갔다
“계세요?”
노인들은 청각이 좋지 않기 때문에 의식해서라도 큰 소리를 내야만 한다 그게 이곳 깡촌에서는 메아리가 되어 돌아왔지만 둘에게는 한시라도 이곳을 뜨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한 시간 이내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각보다 크게 자리 잡은 것 같았다게다가 오늘은 일차적인 조사기 때문에 너무 욕심을 내서 조사할 필요도 없었다
그것은 기석이 제일 절실했다 쉼 없이 차를 운전하고 걸은 탓에 온 몸이 피곤에 절어 있기 때문이었다
“뉘슈?”
노쇠한 소리와 함께 나이든 할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기석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는 기석을 가만히 보고는 느릿한 걸음으로 집 밖으로 나왔다 그는 곧 기석과 천호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청년들이로구먼”
“하하 그런가요? 어르신 다름이 아니라.”
기석은 적당히 알아듣기 쉽게 조리적으로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할아버지는 알 듯 말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곧 집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일단 들어와 뭐라도 먹으면서 혀야지”
“아, 아니에요 저희 방금 먹고 왔어요 괜찮습니다”
“그래도 먹고 혀 기다려”
막무가내로 집 안으로 들어가버린 할아버지를 끌어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기석은 입술을 달싹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곁에서 멍하니 서있는 천호를 보며 말했다
“야 다른 집 적당히 돌아보면서 서명 받아와 난 여기서 좀 쉬고 있을테니까 내가 하는거 봤으니까 동의서도 그런 식으로 받아오면 될거야”
멍한 얼굴로 서있었던 천호에게 살짝 화가 난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이것을 빌미로 자신이 웃으며 했던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몸소 깨닫게 해주고 싶었다
“예”
천호는 군말 없이 동의서를 받아들고는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기석은 왠지 모를 불안감이 느껴졌지만 이내 들려온 할아버지의 부름에 집안으로 들어갔다
***
“아,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밖에서 일행이 기다려서요”
“그럼 같이 데려와 왜 자네만 왔어 같이 와서 자고가”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근데 저 진짜 가봐야해요”
천호는 자신을 붙잡고 늘어지는 할머니는 간신히 떼어 놓고는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집마다 위치한 노인들은 전부 자신에게 무엇인가를 주려고 했고 말 끝마다 ‘자고가’라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마치 모두가 같은 사람이라고 느낄 정도로 똑같은 패턴에 천호는 지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후.”
한숨을 쉬며 스마트폰을 꺼낸 천호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지났음을 깨닫고는 주소록을 뒤져 기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비스 지역이 아닙니다]
라는 문구가 둘의 사이를 방해했다 천호는 하는 수 없이 빠른 걸음으로 기석이 있을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왜 이리 먼거야.”
집집마다 위치한 거리가 대략적으로 300~400미터는 족히 되어보이는 것 같았다 그 때문인지 노인들은 서로 간의 왕래를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실제로 4~5명의 노인들과 대화를 했을 때 옆집이나 마을에 같이 살고 있는 노인들에 대해 잘 아는 것이 없었다거의 평생을 같이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은 그만큼 왕래가 적다는 뜻이기도 했다
천호는 아예 뛰기 시작했다 헉헉거리며 숨이 금세 차올랐지만 멈추지 않았다 굵은 땀방울들이 비 오듯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거칠게 땀방울들을 닦으며 처음 기석이 들어간 집에 도착한 천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기석을 불렀다
“티, 팀장님!”
그 소리에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기석이 굳은 얼굴로 천호에게 손짓했다 영문모를 기석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린 천호는 느릿하게 걸음을 떼며 물었다
“왜 그러세요?”
“일단 들어와”
그 말에 천호는 거부감 없이 집에 들어섰다
“....”
집은 생각보다 단촐 했고 깔끔했다 필요한 생활용품만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혼자 살기에는 적당했다
“왜 그러세요? 팀장님”
방바닥에 힘 없이 주저 앉은 천호가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그 말에 기석은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아까 입구에서 봤던 노인들 있잖아”
“..예”
“그 사람들 이 곳 마을 사람들이 아니래”
“예?”
천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격한 숨을 몰아쉬며 설명을 바라는 천호를 보며 기석이 말하려는 순간 그 옆에 있던 할아버지가 대신 나섰다
“우리 마을에는 한 가지 전설이 있어”
“..전설요?”
“그래 누구든지 입구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 온전하게 살아가지 못한다는 전설이지”
천호는 신뢰하지 않는 눈으로 할아버지와 기석을 번갈아 봤다
“그 노인들은 분명 자네들에게 한 시간 이후 나가라고 했을거야 맞는가?”
“어? 어떻게.”
“두 명은 파마를 한 할머니들이고 두 명은 긴 백박을 기르고 있는 할아범들이지 그들은 붉은 꽃이 새겨진 흰색의 도포 같은 것을 입고 있어 항상”
천호는 그 말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다 마을 입구에 있는 노인들은 얼마든지 오고가며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 반대야 한 시간 전에 나가면 이곳에서 완전히 갇혀버리게 된다네”
“..전 믿을 수 없어요 애초에 그런건 미신아니에요?”
천호는 의심을 풀지 않았다 어째서 기석이 할아버지의 말을 믿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의 개방적인 말에는 항상 함정이 숨어 있다고 생각했다
“나도 처음엔 안 믿었는데 이 어르신 신통력을 갖고 계셔”
“..신통력이라면?”
할아버지는 몇 번 헛기침을 하더니 눈을 감았다. 곧 그는 입을 열며 느릿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자네 올해로. 만 25살이 되었구만 아버지는 초등학교 4학년때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현재 암으로 투병중이야 하나 뿐인 동생은 지금 고등학교. 3학년이고 대학진로는. 포기한 상태구만”
그 말에 천호는 두 눈을 부릅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이었다 친한친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을 단박에 그것도 정확히 꿰뚫어 본다는 것은 할아버지가 가진 힘이 예사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어. 어르신 그 비밀을. 어떻게 아무한테도 말. 말 안한건데”
얼떨떨해 하는 천호를 보며 기석이 다급히 말했다
“아무튼 그 입구에 있던 노인들 사이비 사람들이래 그런 식으로 해서 매번 사람들을 납치해서 장기를 털어간다고 한다더군”
천호는 심장이 철렁 내려 앉는 것 같았다 뉴스나 다큐에서나 있었던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난다고 상상을 하니 두려움이 온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그는 바들바들 떨며 기석에게 물었다
“팀장님. 그럼 우리, 우리 어떡해요? 여기 통화도 안되는 지역이란 말이에요 팀장님”
기석은 떨고 있는 천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침착해 다행히 저들은 마을 안으로 들어오진 못한다고 했어”
“..정말요?”
천호는 확인을 위해 할아버지를 보며 물었다
“그렇다네 어째서인지 저들은 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아 그러니 여기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가 가게나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저들도 자리를 비울 때가 올거야 그럼 그 때 가게나 아쉽게도 우리 마을은 다른 길이 없어”
“사, 산을 타면 되잖아요”
그 말에 할아버지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어느 지역을 통해서 가던지 간에 이미 그들은 모든 지역을 포위했을거야 그러니까 여기서 자고 가게나 이런 식으로 해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네”
천호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보니 어르신 말에 일리가 있어 왜 이런 지역을 재개발한다고 돈을 쏟아붓겠어 인구도 적지 있는거라고는 밭과 산 뿐이야 갈아엎는다고 해도 족히 20~30년은 걸릴거야 그런데 그 사전작업을 미리 한다고? 말이 이상해”
기석의 말에 천호는 두려움 가득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 그럼 팀장님 우리는 파. 팔린거에요? 사장님한테? 이사님한테?”
기석은 단단히 굳은 얼굴로 말했다
“모르겠어 하지만 우리 둘에게 물 먹이려는 수작임은 분명해 내 돌아가서 아주 아작을 내줄테니까.”
그렇게 말한 기석은 대자로 누워 분을 삭히는 듯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천호는 물끄러미 기석을 보고는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통화 버튼을 눌렀지만 서비스 지역이 아니라는 문구만 뜰 뿐이었다
“다행이야 자네들과 함께 있어서”
그렇게 말한 할아버지는 방과 연결된 쪽문으로 나가버렸다 천호는 멍하니 액정 화면을 보다 큼지막하게 적혀 있는 시간을 보았다
“!!”
곧 그는 이상함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시계를 확인할 때와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서비스 지역이 아니라고는 하나 시계까지 먹통일 리가 없었다 천호는 이상함을 느꼈다 뭔가가 수상했다
“팀장님 팀장님”
천호는 작은 목소리로 기석을 불렀지만 어째서인지 그새 잠들어버린 기석은 일어나지 못했다 천호는 입술을 바르르 떨며 기석을 좀 더 세차게 흔들었지만 약이라도 취한 듯 기석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
두근두근두근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심장 천호는 무겁게 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몸 속 어딘가에서 빨리 벗어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 같았다 천호는 거기에 따르기로 했다 비록 입구에 대기하고 있는 장기밀매 업자들이 두렵기는 했으나 지금은 여기를 벗어나야한다는 일념으로 가득찼다
“팀장님.”
마지막으로 기석을 흔들며 애타게 부르는 천호의 귀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그러나?”
작은 쪽문 사이로 얼굴만을 드러낸 할아버지는 어딘지 모르게 이상했다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었지만 방안에서 얘기를 나눌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아, 아니에요 팀장님이 많이 피곤한가 보네요”
그 말에 할아버지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좀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말야 몸에 잘 듣는 약초를 달여주었다네”
“..아, 네”
천호는 직감적으로 기석이 일어날 수 없을거라는 것을 느꼈다
“자네 혹시.”
“예?”
끼익- 작은 쪽문을 완전히 열어제낀 할아버지가 상체를 걸치며 말했다
“내 말을 듣고도 나가려는건 아니겠지?”
확답을 원하려는 듯한 대답에 천호는 마른침을 삼키며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할아버지는 ‘좋아 좋아’ 라고 말한 뒤 문을 닫아버렸다
그 안에서 무엇을 하고 있던지간에 천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미칠 듯한 초조함에 기석과 작은 쪽문에서 번갈아 보던 중 이상한 냄새가 그의 후각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뭐야. 뭐지?’
달콤한 냄새 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쾌한 냄새였다 천호는 다시 한 번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이상해.. 이상해.’
같은 화면의 액정이었다 천호는 바닥에 누워 일어나지 못하는 기석을 뒤로 하고 문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이 유일하게 살아남는 방법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 자네!”
다급한 목소리 그 소리에 살짝 뒤를 돌아본 선호는 기겁했다
“어딜가는가? 응?”
어느새 모인건지 그동안 동의서를 얻기 위해 만났던 노인들이 느릿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작은 미소를 띄고 있었는데 그것이 천호를 안심시키려는 억지 웃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천호는 헛바람을 삼키며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그의 뒤로 노인들의 말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지만 천호는 멈추지 않았다
“허억 헉. 헉!”
미친 듯이 달리고 달려서 마을 입구에 도착할 때쯤 자연스럽게 정자에 시선을 가져간 천호는 아무렇게나 잘려진 장승 네 개를 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헉. 왜, 왠 장승이.”
곧 천호는 두 눈을 부릅떴다 네 개의 장승에 입혀져 있는 낡은 옷이 아까 전 할아버지가 말했던 옷과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헛것을 본 것일까 귀신에게 놀아나기라도 한 것일까 천호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취조실 안 천호는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 그를 감흥없는 눈으로 보던 형사는 파일철을 펴며 물었다
“박천호씨 조기석씨를 마지막으로 본게 언제죠?”
“7월 20일. 그 마을에서 본게 마지막이에요”
탕탕 책상을 가볍게 두드린 형사는 기가 차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아니, 박천호씨 그러니까 그 마을은 지도상에서 존재하지 않는다니까요”
“..거긴 원래 지도에 안떠요 내비에도 안뜬단 말이에요 그 식당. 그 식당 아주머니가 위치를 알고 있을거에요”
고개를 숙이며 울먹거리는 천호를 보며 형사는 답답하다는 듯 물을 마셨다
“푸~ 그러니까 천호씨가 진술한대로 그 주소에 있는 식당도 없고요 그 마을도 없었어요 그 뭐야. 이사님인가. 사장님이라는 분도 없었고요.저희가 진짜 쥐 잡듯이 해서 수색한거라니까요 진짜 끝까지 거짓말 하실겁니까?”
“아니. 아닌데. 분명히 있는데.”
일관적인 태도에 형사는 깊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박천호씨 이런 식으로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면 곤란합니다 이러면 용의자 선상에서 천호씨가 내려오질 못해요”
그 말에 천호는 한참이나 망설이더니 고개를 들고는 말했다
“그럼. 제가 안내할게요”
***
다음날 박천호와 담당 형사는 빠르게 이동했다 천호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한채 몸을 달달 떨기 시작했고 남은 형사들은 감흥없는 얼굴로 창 밖을 주시할 뿐이었다 이번에는 9인승의 스타렉스가 비좁을 정도로 따라가는 형사들이 제법 있었다
“여기서 어디에요?”
운전대를 붙잡은 형사가 천호에게 물었다 천호는 그 때의 기억을 찬찬히 더듬어 안내하기 시작했고, 곧 마을 입구 쪽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와, 이런데가 있었네”
형사들은 예상치 못했다는 듯 저마다 작은 소감을 내뱉으며 차에서 내렸다 하지만 천호는 사시나무 떨 듯이 몸을 떨었다
“저, 전 못가요 전 못가요 저기. 저기 못가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만 같은 천호를 보며 담당 형사는 입맛을 다시며 다른 형사에게 말했다
“야 저 분 모시고 서로 돌아가 그리고 이쪽에서 연락 끊기면 지원요청해”
“예”
담당 형사는 바보처럼 울고 있는 천호를 가만히 보다가 마을 입구로 거침 없이 걸어가기 시작했다
“야, 니네 똑바로 조사 안하냐? 이런데 있다고 왜 보고 안했어? 엉?”
그는 후배 형사들을 갈구는 것을 잊지 않은 채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 그들에게 작은 정자와 마을회관으로 보이는 건물이 보였다 그 정자에는 노인 네 명이 형사들을 말 없이 보고 있었는데 천호가 진술한 것과 일치했다
담당형사는 큰 건을 해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노인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어르신들”
그 말에 백발의 할아버지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자네들은 여길 어찌 왔는가”
“어찌 왔긴요 발이 닿아서 왔죠 일단은 마을을 좀 둘러보고 싶습니다만 상관 없으시죠?”
그 말에 할아버지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가던지 말던지 마음대로 해 하지만 니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시간이야”
그 말에 담당 형사는 기분 좋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금방갑니다 가자”
“예”
마을 안쪽으로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하는 형사들 그런 형사들을 보는 노인들의 얼굴은 안타까움으로 가득했다
오유 - 삶이무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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