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순희, 가슴에 묻어 두겠습니다
하늘의 별들은
깜깜한 밤일수록 더욱 빛나고
거리엔 여전히 바쁜 풍경들
조금도 달라진 것 없는데
그대 떠난 내 마음엔
황량한 바람이 붑니다
우리 지나온 길 필름처럼 스치고
함께 했던 모든 것 변함없는데
달라진 건 오직 그대 마음 뿐
깜깜한 어둠이 차라리 편합니다
이 밤이 지나면
어김없이 따스한 햇살 비추고
나 또한 일상에 묻혀
그런대로 흘러가겠지요
왜 그래야만 했는지
더이상 묻지 않겠습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을테지요
그것이 그대를 행복하게 해 준다면
우리 사랑했던 기억
가슴에 조용히 묻어 두겠습니다

이승하,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리며
작은 발을 쥐고 발톱을 깎아드린다
일흔다섯 해 전에 불었던 된바람은
내 어머니의 첫 울음소리 기억하리라
이 발로 아장아장
걸음마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이 발로 폴짝폴짝
고무줄 놀이를 한 적이 있었단 말인가
뼈마디를 덮은 살가죽
쪼글쪼글하기가 가뭄 못자리 같다
굳은살이 덮인 발바닥
딱딱하기가 거북이 등 같다
발톱 깎을 힘이 없는
늙은 어머니의 발톱을 깎아드린다
가만히 계세요 어머니
잘못하면 다쳐요
어느 날부터 말을 잃어버린 어머니
고개를 끄덕이다 내 머리카락을 만진다
나 역시 말을 잃고 가만히 있으니
한쪽 팔로 내 머리를 감싸 안는다
맞닿은 창문이
온몸 흔들며 몸부림치는 날
어머니에게 안기어
일흔다섯 해 동안의 된바람 소리 듣는다

서안나, 푸른빛으로 기울어지다
쓸쓸하게 읊조리다 다물어 버리는 입술
외로운 것들은 꺽이지 않고 휘어진다고 누군가 말했다
제 마음속으로 식은 등을 돌리는
나는, 당신은
휘어지고 휘어져 슬픔의 뿌리에 닿아
활시위같이 팽팽한
나는, 당신은
밤새워 걷고 걸어 당도한 새벽
마음을 벗어나려는 지친 발자국들
이것은 찬란한 몸의 반란
함부로 저어놓은 페인트통처럼
나는 봄에서 여름으로 설레인다
가다 말고 망설이던 뒷모습을 기억하지
그는 끝내 돌아서지 않아
기다림 끝에서 얼굴을 숙이는 쓸쓸한 어깨
나는 가을에서 겨울로 기운다
당신은 전생부터 어깨 한쪽에 메고 온
쓸쓸한 기타 한 곡조
당신을 튕기면
푸른 빛 속으로 흩어지는 새벽의 곡조들
그곳은 사랑의 심연
한없이 퍼져가는 당신
나는 푸른빛으로 기울어진다

윤성택, 경운기를 따라가다
모퉁일 돌아나오는 경운기 소리
아버지보다 먼저 도착했네
결 굵은 앞바퀴가 땅 움켜쥐고 지나간 길, 언제나
멀미처럼 먼지 자욱한 비포장도로였네
그 짐칸 올라타기도 했던 날들은
덜컹덜컹 떨어질가 손에 땀나는 세월이었고
여태 그 진동 끝나지 않았네 막막한 시대가
계속될수록 나를 흔드는 울림, 느껴지네
밀짚모자와 걷어올린 종아리, 흙 묻은 고무신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길
양손 벌려 손잡이 잡고 몸 수그린 채
항상 전투적이었던 운전법
아버지
그만 돌아오세요 이젠 어두워졌어요
나는 보네
울퉁불퉁한 것은 이제 바닥이 아닌 바퀴이어서
일방통행길 높은 음역으로
더듬거리듯 가고 있을 때
숨죽이며 다라가는
한때 속도가 전부였던 자동차 붉은 꼬리의 생각들
나는 아직 아버지를 추월할 수 없네

정호승, 빈 손의 의미
내가 누구의 손을 잡기 위해서는
내 손이 빈 손이어야 한다
내 손에 다른 무엇이 가득 들어 있는 한
남의 손을 잡을 수는 없다
소유의 손은 반드시 상처를 입으나
텅 빈 손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다
그동안 내가 빈 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얼마만큼 잡았는지
참으로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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