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철, 이유 없는 가슴앓이
만남을 인연이라 여기고 살아왔듯
이별 또한 인연이라 자위하며
입술을 깨물었습니다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것처럼
아프지만 아프지 않은 것처럼
떠나 보냈습니다
그 후로 비가 내릴 때면
내 몸 한구석 어딘가는 아파왔습니다
헤어짐이 사랑의 끝은 아니였습니다
그렇게 그대 떠나감은
나에게 힘겨움이였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알아버렸습니다
나를 진정으로 힘들게 하는 것의 실체는
그대 떠나감이 아니라
그대 떠남에도 버리지 못하는
남은 내 그리움이었다는 것을

이경옥,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길을 떠나 한참을 걷다가
뒤돌아 보면
생각이 나듯이
돌아 갈 곳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래 언덕에 놀던 아이가
산 그늘이 짙어져
엄마품이 그리워 지듯이
몽당연필 볼펜깍지에 끼워
고사리손에 붙들려
누래진 공책위에 산수공부하며
꼬장해 진 얼굴엔
흐르는 땀방울도 모른 채
구슬치기 고무줄 놀이 하던 동무들이
그 곳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토닥토닥
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잠 못 들더라도 좋았던 집에
타닥타닥
장잣불 타는 소리가
추이를 몰아 내던 곳이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황토벽에 발라진 신문지의
잉크냄새가 진하게 배어 나던
구들장 아랫목이 그리워
논둑길 걸을 때면
저만치
밥 짓는 연기가 피어 나던곳이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마다 걸어가는
생의 행로가 있어
각자 정해진 길을 따라
바삐 가다
길이 아닌 곳이 보이면
모퉁이를 돌아
비켜가야 할 길이 있다
흐르는 구름은
어느 길로 흐르는지 볼 수 없지만
인생의 흐름이야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면
돌부리도 비켜서 갈 수 있지 않으랴
때론 가서는 안 되는 길에 얽매여서
방황의 눈길이 어수선한 길에 깔리어
어지러운 길목에 잠시 머리 숙이고
애증의 기묘한 모습을 본다
구름도 우리도 흘러가며
혼자 우는 이들의 계절도
저만치 지나가는데

정기모, 유월의 안부
소리 내어 울지 못하던 울음이
네 앞에서 툭 터지면 어쩌나
바람만 가득 삼키는 이 밤
아릿아릿 몸살기 푸르게 돋아나고
어디선가 돌아와
살같에 머무는 너의 향기를 베고 누워
오월이 다 저물도록
소리 내어 부르질 못했다
그리움 가득한 가슴으로
까실한 자작나무 등줄기 어루만지던
지난 꿈길이 더욱 환하여
서럽게 깨어나던
오월의 밤은 더 깊어지는데
너는 여전히 부재중이고
나는 하얗게 떨어지는 꽃잎이 된다
서로 깊게 호명하고 싶은 계절
그윽한 눈길에 넌 또 다시
꽃인 듯 피었다 진다
그 먼 새벽바람만 끌어안고

이응윤, 내가 무어 길래
내가 무어 길래
내게 눈물을 멈출 수 없어
부족한 사람
너를 안을 수 없는
작은 장벽하나 넘을 수 없는
못난 남자를
너의 아픔을
거둘 수 없는 무력함
진종일 자판기 커피 들며
눈물만 고이는 날
창밖에 회색풍경이
내 가슴을 울컥 울린다
내가 대신할 수 없는
너의 아픔의 날까지
너만큼 나의 아픔으로 안아 줄게
결코, 몸과 맘만은 숙이지 말며
한 날들을 헤쳐 봐요
그래도 내가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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