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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그때엔 흙에서 흙냄새 나겠지
가야지 어서 가야지
나의 누추함이
그대의 누추함이 도기 전에
담벼락 아래 까맣게 영그는 분꽃씨앗
떨어져 구르기 전에
꽃받침이 시들기 전에
무엇을 더 보탤 것도 없이
어두워져가는 그림자 끌고
어디 흙속에나 숨어야지
참 길게 울었던 매미처럼
둥치 아래 허물 벗어두고
빈 마음으로 가야지
그때엔 흙에서 흙냄새 나겠지
나두 다시 예뻐지겠지
몇겁의 세월이 흘러
그대 지나갈 과수원길에
털복숭아 한 개
그대 내 솜털에 눈부셔하겠지
손등이 자꾸만 따갑고 가려워져서
나를 그대는 알아보겠지

고규태, 소중한 사람들끼리
정녕 그럴 수만 있다면
아주 가까이 모여 살면 좋겠네
밤중이거나 신새벽이거나
문득 불처럼 보고 싶을 때
호명도 없이 들이닥쳐도 괜찮을
담 하나 사이 골목 하나 차이
꼭 그쯤의 거리에서 우리가
그리움의 어깨를 맞대일 수 있다면
겨울, 눈이 많이 내린 어느 휴일의 아침
조금 먼저 일어난 사람이
환희의 목청으로 늦잠을 깨워
눈발 위에 나란히 첫발자국을 새기고
얼굴마다엔 눈꽃 같은 웃음
오롯이 머금을 수 있다면
하여, 미움은 남의 것이 되고
사랑은 우리의 일이 될 수 있다면

유안진, 자화상
한 오십 년 살고 보니
나는 나는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라
눈과 서리가 비와 이슬이 강물과 바닷물이
뉘가 아닌 바로 나였음을 알아라
수리부엉이 우는 이 겨울도 한 밤중
뒷뜰 언발을 말달리는 눈바람에
마음 헹구는 바람의 연인
가슴 속 용광로에 불 지피는 황홀한 거짓말을
오오 비쳐볼 뿐 대책없는 불쌍한 희망을
내 몫으로 오늘 몫으로 사랑하여 흐르는 일
삭아질수록 새우젓갈 만나듯이
때얼룩에 쩔을수록 인생다워지듯이
산다는 것도 사랑한다는 것도
때묻히고 더럽혀지며
진실보다 허상에 더 감동하며
정직보다 죄업에 더 집착하며
어디론가 쉬지 않고 흘러가는 것이다
나란히 누웠어도 서로 다른 꿈을 꾸며
끊임없이 떠나고 떠도는 것이다
멀리 멀리 떠나갈수록
가슴이 그득히 채워지는 것이다
갈데까지 갔다가는 돌아오는 것이다
하늘과 땅만이 살 곳은 아니다
허공이 오히려 살 만한 곳이며
떠돌고 흐르는 것이 오히려 사랑하는 것이다
돌아보지 않으리
문득 돌아보니
나는 나는 흐르는 구름의 딸이요
떠도는 바람의 연인이라

정유찬, 가난한 자들의 겨울
서러운 사람들
파편 같은 슬픔의 조각을
어두운 하늘에 빛나게 걸어놓고
겨울의 새벽을 딛고 거리로 나선다
외로움, 지난 외로움
슬픔을 넘어선 슬픔
무감각한 고독이여
모두 떠나라
시린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눈보라가 아리도록 얼굴을 때려도
치욕스런 현실을 지나고
수치스런 기억을 건너리라
세상이 버려도
하늘은 버리지 않으리니
추운 자에게 더 추운 겨울이여
어서, 어서 가라!
가지 말라 해도 갈
가난한 자들의 겨울이나
손끝이 얼고 온몸이 떨리는 추위를
참고 넘겨야 하리라
가난한 구석을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 우리
춥고 허탈한 날들을 위해
훈훈한 마음 나누며 살자
봄이 곧 올지니

정현자, 세월아
세월아 천천히 가자
누가 쫓기나 하는가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는가
숨쉬고 일하고 잠시 멈추어보니
세월아 너무 빨리 가고 있구나
청춘 때 일손 바빠 허리 펼날 없을 때는
세월은 그렇게 더디 가더니만
지천명이 되고 보니
바삐도 가는구나
잡고 싶다 잡아 본 들
그냥 서지도 않고
불러도 달려만 가네
세월아 천천히
옆도 뒤고 우리 같이 보고
나랑 손잡고 가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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