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나, 그냥 나 내려줘. 이러다 누나 죽으면 안 되잖아."
11일 오후 7시 20분경 오물이 둥둥 떠다니는 얼음장 같은 물속에서 남동생 허건 군(9)이 누나 허민 양(11)에게 이렇게 말했다.
민이는 건이가 물에 잠기지 않게 까치발을 한 채 20분째 업고 있었다.
수심은 130cm. 키 153cm인 누나는 목까지만 물이 차올랐지만 140cm인 동생은 업히지 않으면 숨을 쉴 수 없었다.
누나는 7m 위의 허공을 향해 "살려주세요"라고 고함을 쳤다. 하지만 아무 대답이 없었다.
누나는 등에 업힌 동생에게 "어른들이 구해줄 거야"라며 안심시켰지만 추위와 공포에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동생과 함께 아래로 추락할 때 어깨와 허벅지를 심하게 부딪쳐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등에 업혀 있는 동생이 흘러내릴까 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남매는 근처 공부방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1m 높이의 울타리가 있었지만 작은 구멍 아래로 들어갔다. 건이는 아이들이 떠나자마자 그 위로 올라가 똑같이 뛰었다. 민이는 1, 2분쯤 이 광경을 지켜보다 "집에 가자"며 동생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 순간 철판이 구부러지면서 건이가 아래로 떨어졌고 손을 잡고 있던 민이까지 빨려 들어갔다.
비가 많이 오면 이곳에 물을 가뒀다가 그친 뒤 물을 퍼낸다.
최근 날이 가물어 이날은 다행히 수심이 1.3m밖에 되지 않았다.
물이 차 있을 때 빠지면 성인도 익사 위험이 높아 주변에 울타리가 쳐져 있지만
동네 아이들은 이 울타리를 넘어가 철판 위에서 자주 뛰어놀았다는 게 주민들의 전언이다.
부상의 통증과 동생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정신이 혼미해지던 민이를 깨운 건 예닐곱 개의 손전등 불빛이었다.
민이의 목소리를 들은 중학생이 인근 공부방 교사에게 알려 주민들이 구조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이들은 "정신 차리고 있어라. 소방관이 오고 있으니 걱정 마"라며 용기를 북돋웠다.
남매가 구출된 건 추락한 지 50분 만이었다. 민이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입술은 파랬다.
건이는 이마에서 피가 났다.
민이는 "떨어진 뒤 동생이 허우적거려 얼른 업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며
"학교 갈 때도 동생을 항상 데리고 다니는데 많이 다치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