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를 빛낸 장군들 이전편
1화 - 지연자,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
2화 - 시라쿠사 정복자, 마르켈루스
3화 -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1편 - 카르타헤나 공성전
일리파 전투와 히스파니아 점령

스키피오의 이동 경로
1. BC 209년, 신 카르타고(Cartago Nova)를 점령
2. BC 208년, 바에쿨라 전투
3. BC 206년, 일리파 전투
4. BC 206년, 가데스(영어명 : 카디즈) 점령. 이베리아 반도가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오게 됨
BC 209년에 신 카르타고를 점령한 스키피오는 재정비 및 휴식을 취하면서 다음 전투를 준비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BC 208년, 바에쿨라에서 하스드루발과 전투를 치루었다. 쉽지 않은 전투였지만 로마군이 승리하였고 하스드루발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피해를 입은 상태에서 하스드루발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형인 한니발에게 합류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다. 이로써 히스파니아 내에 카르타고의 3개 야전군 중 하나가 사라진 셈이 되었다. 히스파니아에서의 정세가 로마군에게 더 유리해진 것이다. 한편 이탈리아에 도착한 하스드루발은 휘하에 3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있었다. 그리고 BC 207년이 되자 메타우루스 전투에서 로마의 두 집정관인 마르쿠스 리비우스 살리나토르와 가이우스 클라우디우스 네로가 이끄는 4만 7천명의 로마군과 전투를 치루었다. 그러나 제2차 포에니 전쟁이 막 발발할 당시와는 달리 지금은 로마군의 훈련 상태도 양호했고 수적으로도 로마군이 훨씬 우세한 상황이었다. 로마군은 카르타고군을 무참히 격파하고 하스드루발의 목을 베어 한니발의 진지에 던져놓았다. 카르타고군은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1만명이 전사하고 1만명이 포로로 잡히는 피해를 입었다. 반면 로마군의 손실은 불과 2천명에 불과했다. 그러는동안 히스파니아에 있는 스키피오도 카르타고군과 여러번의 소규모 전투를 치르며 승리하였으나 아직 하스드루발 기스코의 주력 부대를 전투에 끌어들이지는 못하고 있었다.
BC 206년, 하스드루발 기스코는 마고와 합류하여 총 7만의 보병과 5천명의 기병을 거느리게 되었다. 5천명의 기병대 중 일부는 마시니사 왕자가 이끄는 누미디아 기병이었다. 또한 32마리의 코끼리도 배치했다. 그러나 병력의 대부분은 히스파니아 출신 부족들이었고 카르타고와 그들의 동맹국의 병력은 상대적으로 소수였는데 이들은 훈련이나 숙련도 면에서 미숙했다. 워낙 여러 지역에서 병사를 고용한 탓에 그들을 하나로 융합시키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스키피오의 로마군은 4만 5천명의 보병과 3천명의 기병으로 이루어졌다. 로마군 또한 절반은 로마와 이탈리아 동맹국 출신이었으며 이들은 훈련이 잘된 정예 병력이었으나 나머지 절반은 히스파니아인 출신으로서 스키피오가 신뢰하지 않는 병사들이었다. 로마군 또한 카르타고군 처럼 통일이 잘되있지 않고 부대간의 결집력이 약했다. 이 다양한 구성원들을 어떻게 자신이 통솔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로마군이 임시 주둔지를 짓기 시작하자 마고와 마시니사가 도착한지 얼마안된 로마군을 무너뜨리기 위해 대규모 기병을 이끌고 공격했다. 그러나 신중한 스키피오는 적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주변 언덕에 기병대를 배치시켜놓은 상태였다. 카르타고의 기병들이 돌격해오자 스키피오 또한 기병대를 내보내 맞받아쳤다. 갑작스런 적의 반격에 놀란 카르타고 기병들은 당황했으나 곧 대형을 정비하고 침착하게 적에게 맞섰다. 그러나 로마군의 진영에서 군단병 부대가 몰려오자 결국 물러났다.
그러나 이 교전은 본격적인 전투에 앞서 일어난 사소한 전초전 가운데 하나였다. 작은 교전을 통해 며칠을 소모하다가 하스드루발 기스코는 전 부대에 명령하여 전투 대형을 갖추었다. 카르타고의 진영은 고지대에 있다가 평원의 가장자리로 나왔다. 카르타고 본토 출신의 병사들이 대열의 중앙에 서고 양 측면에는 히스파니아인들을 배치했다. 그리고 보병들의 양 측면에 기병을 배치했으며 기병의 앞에 코끼리를 두었다. 로마군 또한 카르타고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로마 및 이탈리아 보병을 중앙에, 히스파니아 출신 동맹군 병사들을 양옆에 배치하고 보병의 양옆에 기병을 배치하였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몇시간째 계속 대치만 하고 전투를 시작하지 않다가 해가 지기 시작하자 하스드루발 기스코가 먼저 병사들에게 숙영지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것을 본 스키피오 또한 병사들에게 같은 명령을 내렸다.
며칠 동안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었다. 카르타고군이 오후 늦은 시각에 나와 대형을 갖추면 이에 발맞추어 로마 병사들도 똑같이 하였다. 행동을 오후 늦게 시작했다는 것을 보면 당장 전투를 치를 의지가 별로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러한 모습은 이 시대에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흔히 있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누가 우세한 입장을 점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스드루발 기스코가 먼저 나와서 대형을 갖춘다고 카르타고에게 유리한것도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로마군도 불리한 입장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스키피오가 먼저 칼을 뽑았다. 그는 병사들에게 새벽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게 하였다. 그리고 기병대와 경보병대를 보내서 카르타고의 보초병들을 공격하게 했다. 그리고 스키피오는 보병의 대형을 바꾸어 히스파니아인들을 중앙에 로마 및 이탈리아 보병을 히스파니아인들의 양 측면에 배치시켰다. 그리고 이전과는 달리 보병대가 더욱 깊숙이 평원 한가운데까지 진격하였다. 카르타고군도 전초병들이 적에게 공격을 받자 재빨리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하스드루발 기스코는 로마군의 이러한 모습이 떨어진 사기를 끌어올려 심리적으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한 의도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 역시 기선제압을 당하지 않기 위해 병사들을 배치시켰다.
카르타고의 기병과 경보병 부대들이 먼저 로마군에 선제 공격을 가하고 뒤이어 싸움이 벌어졌으나 양측 다 별다른 소득없이 물러섰다. 그리고 카르타고의 본대도 언덕 아래의 평원으로 나와 배치되었다. 양측의 거리는 약 800m에 불과하여 이전보다 훨씬 더 가까워졌다. 이 거리에서 하스드루발 기스코는 로마군의 보병들이 비로소 평상시의 대형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중앙에는 로마와 이탈리아 보병들이 카르타고의 히스파니아인 보병들과 마주하고 있고 양 측면에는 로마군의 히스파니아 보병들이 카르타고 본토 출신의 보병들과 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스드루발 기스코의 입장에서는 로마군이 왜 이러한 대형을 갖추었는지 당장 의도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그렇다고 상대방에 발맞추어 진형을 바꾸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수만명의 병사들이 대열을 변경할 시 큰 혼란이 발생하고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릴것인데 그틈을 타서 이미 준비를 마친 로마군이 들이닥치면 막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로마군이 먼저 진격을 개시했다. 로마군의 우익은 스키피오가 직접 지휘하고 좌익은 루키우스 마르키우스와 마르쿠스 유니우스 실라누스(전직 법무관 직)가 지휘하였다. 중앙에 있는 히스파니아 보병들에게는 천천히 움직이도록 지시하고 좌익과 우익에서는 사전의 계획대로 3열 횡대로 이루어진 중대가 3열 종대로 전환하였고 곧 적을 향해 전진했다. 3열 종대로 전환되자 폭이 좁아져 앞에 있는 장애물을 덜 만나게 되기 때문에 더더욱 질서정연하고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중앙의 히스파니아 보병들이 상대적으로 뒤쳐지는 가운데 양익의 로마 보병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적에게 접근했다.
한편, 로마군 보병들이 적의 보병에게 접근하는 사이에 기병과 경보병들은 카르타고군의 코끼리에 돌을 무더기로 던지자 깜짝 놀란 코끼리들이 혼란에 빠져 뿔뿔이 흩어졌다. 그 중에 몇마리의 코끼리들은 뒤로 후퇴하는 과정에서 엉뚱하게도 카르타고의 병사들을 짓밟는 소동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이어서 양익의 로마와 이탈리아 보병들이 카르타고 양익에 있는 히스파니아 보병들과 부딪혔다. 카르타고측 히스파니아 보병은 어떻게든 버텨보려했으나 역부족이었고 결국 뒤로 밀리다가 완전히 패퇴하였다.
그러나 중앙에서는 별다른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로마측 히스파니아 보병들이 중앙에서 적의 아프리카 본토의 보병대를 묶어두거나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카르타고군 중앙의 보병들은 꼼짝할수가 없었다. 양날개에 들이닥친 로마와 이탈리아 보병을 공격할 경우 로마군 중앙의 히스파니아 보병들이 카르타고의 중앙으로 들이닥칠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결국 카르타고 양측면의 히스파니아인 보병들이 붕괴되어 로마군에게 항복하자 카르타고의 나머지 병사들도 전장에서 도주하였다. 하스드루발 기스코는 붕괴되는 군대를 수습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그나마 남아있는 병사들이라도 모아서 숙영지 근처의 언덕에 진을 치는데까지는 성공했다. 로마군은 흐트러진 대열을 잠시 멈추고 진형을 다시 갖추어 카르타고군이 있는 언덕을 향해 최종 공격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카르타고군의 전력은 이미 크게 약화된 상태였다. 순식간에 카르타고군의 대열은 무너졌고 병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버렸다. 하스드루발 기스코도 소수의 부하와 병사들만을 이끌고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로마군이 이들을 추격하였지만 붙잡지는 못했다. 마고도 발레아레스 제도로 달아났다. 이 전투로 카르타고군은 약 4만 8천명이 죽거나 포로로 잡히거나 혹은 도주를 해버리는 손실을 입었다.

양측의 초기 배치. 빨간색이 로마군, 파란색이 카르타고군. 처음에는 로마군도 중앙에 로마와 이탈리아 보병을 배치하고 양옆에 히스파니아 보병들을 배치했다.

그러나 로마군은 대형을 바꿔 중앙에 히스파니아 보병을 배치하고 양옆에 로마와 이탈리아 보병을 배치하였다. 로마군 중앙의 히스파니아 보병은 카르타고군 중앙(정예병력으로 이루어진)과 전투를 하는 대신, 그들을 견제하고 묶어두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로마군 날개에 실질적인 주력 부대인 로마와 이탈리아 보병들이 카르타고군의 날개를 공격해 몰아냈다. 그러자 카르타고군의 전열은 붕괴되었다.
일리파 전투로서 사실상 히스파니아에서의 카르타고군은 사실상 축출되었다. 이후 몇개월에 걸쳐 카르타고 잔당들을 소탕하고 가데스를 점령함으로써 카르타고의 히스파니아 지배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되었다. 스키피오는 로마로 복귀하여 BC 205년, 집정관 직을 지냈고 BC 202년에는 시칠리아 속주를 발판으로 삼아 카르타고 본토로 직접 쳐들어가 자마 전투를 비롯한 몇개의 전투를 치른 끝에 적의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제2차 포에니 전쟁은 종식되었다. 그리고 스키피오는 아프리카를 정복했다는 의미에서 자신의 이름에 아프리카누스라는 별칭을 붙였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그를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로 부르고 있다.
다음편 :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와 마케도니아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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