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유가족인터뷰] 가족들 이야기 - 건우 어머니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file3/2018/04/26/c/0/e/c0e2ccd2ac1ff0e30ad85d660cb0a18f.jpg)
![[세월호유가족인터뷰] 가족들 이야기 - 건우 어머니 | 인스티즈](http://file3.instiz.net/data/file3/2018/04/26/e/3/3/e33287680b0973eeda18f11eb3c1f462.jpg)
건우 어머니는 10여년 전부터 공황장애를 겪고 있어 집 밖으로 나오기 힘들다. 특히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증세가 심해진다.
그런 건우 어머니를 8월 6일 광화문광장에서 만났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세월호특별법 문제 해결에 대한 단초라도 얻기 위해 용기를 내 나선 걸음이었다.
두려움과 불안증세가 몰려올 때면 차창 밖 구름 하나하나에 건우 얼굴을 떠올렸다. “내 아들, 엄마 갈 수 있게 힘 줘.” 생전 처음 만난 어머니는, 옆에서 함께 울던 나에게 핸드폰 속 건우 사진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풀어냈다. 아들 이야기를 하는 사이 어머니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그렇게 밝다가 한없이 어두워졌다가를 끝없이 반복했다.
여기에 적는 것은 이 끝을 알 수 없는 이야기의 아주 작은 일부다. 활자로 기록하는 게 불가능한 이 이야기를 적어보고자 애쓰는 것은, 어머니와 함께 건우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우리 모두가 함께 기억하기 위해서.
어머니 인터뷰 曰
172번째인가 174번째인가 건우가 나왔어요.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이것도 기억이 없네요. 24일에 나와서 확인은 25일에 했어요. 우리 아들이 나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날 밤 11시가 넘어서 나왔거든요. 애가 나왔다는데 보철을 했다는 거예요. 키랑 몸무게는 건우와 거의 같은데 건우는 보철을 안 했거든요.
그래서 아빠랑 저랑 ‘아닌가보다’ 그러면서 내내 앉아 있다가 새벽 3시 넘어서 겨우 한두 시간 잤어요. 그날 시간도 늦고 정보도 틀려서 확인을 안 했지, 만일 그때 확인했다면 저는 못 잤을 거예요. 그랬으면 다음날도 버틸 수 없었을 거고… 아들이 저를 생각해서 제가 짧게나마 잘 수 있도록 보살핀 것 같아요.
건우 나올 때 입은 옷 말고 다른 물건은 못 찾았어요. 핸드폰도 못 찾아서 동영상도 없었어요. 사람들은 동영상 찾아서 보는데 저는 무섭더라고요. 우리 아들이 무서워하는 모습을 볼까봐 더 무서웠어요. 건우가 겁이 많았거든요. 무서운 영화보고 오면 집에서 화장실도 못 갔어요.
한번은 뉴스에서 영상이 나오는데 건우가 있더라고요. 그때 심하게 울었더니 아빠는 보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다른 엄마들은 찾아서라도 보는데 나는 안 보려고만 하니까, 이건 아닌 것 같아서 인터넷을 뒤져서 찾아봤어요.
마지막 동영상에서 구명조끼 입는 장면이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우리 아들이 무서워 떨고 있을 줄만 알았는데 친구들에게 구명조끼를 챙겨주고 있어요. 하나 날라다주고 손 털고, 또 하나 날라다주고 손 털고, 앞에 있는 여학생이 구명조끼가 작아서 안 맞으니까 다른 것 가져다 비닐 뜯어서 주고. 또 배가 기울어 떨어지려는 아이가 있었는데 건우가 그 친구를 끌어올리려고 끙끙거리는 소리를 내요. 그걸 보니까 우리 아들이 이렇게 하고 있었구나, 친구들 도와주고 있었구나, 우리 아들 잘했구나...
딸(건우 누나)한테 4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이름이 라익이에요. 딸이랑 건우랑 나이 차이가 많이 나요. 건우가 라익이라면 사족을 못썼어요. 라익이 온다고 하면 열 일 제치고 아이랑 놀아주고…
이젠 건우 친구들이 삼촌노릇 한다고 라익이한테 장난감도 사다주고 그래요. 건우가 라익이 예뻐한 걸 아니까…
얼마 전 라익이 데리고 밖에 갔다가 건우 친구를 만났어요. 그 아이도 건우가 라익이 예뻐한 걸 아니까, 처음 보는 라익이를 안아주더라고요. 라익이는 교복 입은 모습이 비슷하니까 삼촌인줄 알고 낼름 안기더니 좀 이상했던지 찬찬히 보고는 제 품으로 왔어요.
그걸 보면서 아직은 라익이가 삼촌을 기억하는구나 싶어서 안도하기도 했는데, 곧 잊을 것 같아요. 요즘은 “라익아 삼촌 어딨지?”라고 하면 라익이가 손으로 허공을 가리켜요. “없어”라고도 하고요. 그게 너무 슬퍼요.
주변에서 이사 간다는 소리를 들으면 저는 어떻게 가지 싶어요. 어떻게 가지, 아이와의 시간을 보낸 곳을 두고. 어떤 분들은 그게 힘들어 떠나신다고 하는데 저는 우리 건우 생각하는 게 좋아요. 건우 이야기를 안 하면 건우가 없는 것 같아서 싫어요. 우리는 그냥 자연스럽게 건우 이야기를 많이 해요. 우리 가족인데 건우… 그래서 계속 이야기해요.
저는 앞으로도 오래 살려고요. 오래오래 살아서 우리 아들 기억해줘야지요. 시간이 지나면 우리 아들 잊는 사람도 많아질 텐데 나는 오래 버텨야죠.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또 살기 싫고 죽고 싶고 그래요. 너무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화를 가라앉힐 수도 없어요. 이게 반복 돼요.
‘이 xx 같은 세상. 빨리 네게 가고 싶은데 그래도 5개월이나 살았어. 많이 살았어. 엄마… 그렇지?’ 욕했다, 화를 다스렸다, 오래 살겠다 다짐했다가 다시 빨리 아들에게 가고 싶다가… 이게 일상이 됐어요.
건우 가고 제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니까 어느 날 건우 아빠가 “나 안 만났으면 건우가 안 태어났을 텐데,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면 나 안 만나고 건우도 안 낳아서 안 힘들 수 있을텐데” 그래요.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나는 또 이 고통을 당한다고 해도 건우를 만나고 싶어. 다시 택한대도 나는 건우엄마를 택할 거야.”
그 17년 동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다시 또 기회가 생기면 건우를 또 만나 그 시간을 다시 하고 싶다고.
내 인생에서 건우와 보낸 17년은 너무도 행복했던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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