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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9년 전 (2016/10/13) 게시물이에요

가장 위대한 이탈리아 영화 이탈리아 여행〉 | 인스티즈


내가 처음 스콜세지 같은 작가를 '영화'로 발견하고 빠졌을때, 난 영화를 무척이나 위대한 것으로 치켜세웠지만, 그 동시에 나도 모르는 사이 매우 단순한 것이라 생각한듯 싶다. 지금은 정반대의 의견이다. 물론 영화가 참으로 매혹적인 것이며 변호할 만한 독자성을 지닌 매체라는 믿음은 여전하다. 허나 영화는 위대한 것이 아니며, 단순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영화사에서 가장 중요한 감독들은 영화를 위대하다 믿지 않았으며, 자신을 예술가로 칭송하지도 않았다. 그 중 한 명인 로베르토 로셀리니는 심지어 나이들어 영화를 저주하다 시피 했고,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에 대한 믿음을 연이은 작업으로 굳혔다. 이런 영화에 대한 불신 혹은 근심은 저절로 어떤 거리를 두게 한다. 그리고 이런 거리가 있어야 영화를 더 잘 '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가장 위대한 이탈리아 영화 이탈리아 여행〉 | 인스티즈

로베르토 로셀리니

로베르토 로셀리니는 참 독특한 감독이다. 네오리얼리즘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그는 50년대 잉그리드 버그만과 세기의 스캔들의 중심이 되었고, 본인을 유명하게 만든 미학을 버렸다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현대 영화의 시작을 알린 그녀와의 영화들은 당시 《카이에 뒤 시네마 Cahiers du Cinéma》의 필진 만이 치켜세울 뿐이었다. 특히나 그 가운데 이탈리아 여행 Viaggio in Italia〉는 요즘에야 각종 베스트 목록에 오르고 나름 인정받는 고전으로 통하는 듯 하지만, 재밌는건 아직도 이 영화를 치켜세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간극이 크다는 점이다. 조금 다른 예를 들어보자. 시민 케인 Citizen Kane〉은 명목상이라도 거의 모든 사람이 딥 포커스를 언급하며 걸작이라 외치고, 네 멋대로 해라 À bout de souffle〉는 점프컷과 현장 촬영을 말하며 현대 영화의 출발이라 칭한다. 다른 기준들에 의해 모던 시네마의 시작으로 불리는 이 두 작품에 비해 로셀리니의 그것은 현저히 언급이 적다. 그러나 이탈리아 여행〉은 분명히 현대 영화의 원형을 알린 작품으로서 보는 순간 고다르를 비롯한 누벨바그 뿐만 아니라 안토니오니, 키아로스타미, 외스타슈 등이 모두 보이는 걸작이다.

사실 로셀리니의 가장 '유명한' 영화는 아마도 무방비 도시 Roma città aperta〉일 것이며, 로셀리니를 규정짓는 키워드는 '네오리얼리즘'이라 봐도 무방하다. 무방비 도시〉가 아니키 보보 Aniki Bóbó〉와 같은 작품이 먼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네오리얼리즘의 시작의 상징과도 같이 자리잡았던 데는 이를 둘러싼 여러 일화와 에피소드가 있다. 무방비 도시〉를 둘러싼 일종의 신비를 말하기 전, 네오리얼리즘을 둘러싼 오해를 먼저 언급해야겠다 (물론 여기서 네오리얼리즘에 대한 오해와 로셀리니의 네오리얼리즘의 오해엔 간극이 있다). 네오리얼리즘은 그동안 지나치게 단순화/신화화 되어왔다. 그 신화를 거칠게 정의하면 독재 정권을 상대로 한 영화적 운동으로서, 권력에 대항하고 즉흥적인 촬영과 비전문 배우들로 만들어낸 현실의 재현이라 할 수 있겠는데, 시간이 지나며 밝혀졌지만 세계 2차 대전 이후 이탈리아 영화는 당시 정권이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과 배우과 뚜렷한 각본의 체계가 자리잡은 다수의 영화에서 그 허상이 드러났다. 이런 탈신화는 다른 '네오리얼리즘'의 영화보다도 특히나 무방비 도시〉가 겪은 과정이다. 이 영화는 사실 많은 비평가들이 지적했듯이 클리셰 같은 요소들로 이뤄진 영화로서 네오리얼리즘의 일반적인 특징에 배반되는 작품이다. 다중적인 시각을 제시하기 보다 뚜렷한 서사의 멜로드라마로 작용하고 있고, 필름 릴과 촬영의 '즉흥성'에 대한 각종 에피소드가 거짓으로 밝혀짐은 사람들로 하여금 '네오리얼리즘'의 체계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우린 이제 거리를 둔 입장에서 무방비 도시〉를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그럼 이쯤에서 로셀리니 본인의 입장을 고려해보자. 사실 그는 한번도 다른 이들이 주장한 협소한 개념의 네오리얼리즘을 시도하지 않았다. 그를 네오리얼리즘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네오리얼리즘은 본래 세계에 대한 전망(perspective)을 제공하는 도덕적 입장이었다 (moral position). 후에는 미학적 입장이 되었지만, 애초에 그것은 도덕적인 것이었다.'[1] 이것은 세계 앞에 위치한 인간 사이의 관계, 조금 더 범주를 좁히면 유럽 문명의 쇠락 앞에 놓인 인간의 위치를 보는 것이다. 그가 버그만과 찍은 영화들로 성취한 '모던함'에서도 이것은 변하지 않았으며 그는 도덕적 입장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생각했던 것이고, 이런 '네오리얼리즘'에 대한 오해가 유로파 51 Europa '51〉, 스트롬볼리 Stromboli〉, 그리고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 것이다. 로셀리니에게 이는 '도덕적 입장'으로서의 영화이자 세계를 보는 견자의 태도를 드러내는 영화인 반면 다른 사람들에겐 '사회적 운동'처럼 받아들여진 탓이다. 그는 네오리얼리즘을 버리거나 포기한 것이 아니라, 완성시킨 것이다.

가장 위대한 이탈리아 영화 이탈리아 여행〉 | 인스티즈

이탈리아 여행〉

로셀리니의 '모던 영화'는 결국 들뢰즈가 말했다시피 '행위의 영화에서 견자의 영화'로 옮겨간 것이자 '운동-이미지'에서 '시간-이미지'로 건너간 것이다.[2] 그말인즉슨 이미지를 바라보는 사건의 운동에 있어 그 작용과 반작용의 범주를 벗어나는 영화의 출현이다. 문명을 눈 앞에 둔 견자는 사로잡힌다. 로셀리니의 영화에서 버그만은 항상 이탈리아 밖에서 온 외부인이다. 그는 과거의 유산인 이탈리아의 문명 혹은 이탈리아의 풍경의 우연적인 에너지에 사로잡힌 외부인의 시선을 드러냄으로서 거대한 사유를 제시한다. 이런 보는 행위는 영화를 본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은유로 읽을 수도 있다.[3] 로셀리니가 영화를 믿지 않기 때문에 위대한 영화를 만든다는 모순 같은 명제는 여기서부터 시작해 그의 후기작에서 그 힘을 발휘한다. 그에게 인간이 이미지에 사로잡히는 것은, 풍경에 매혹되는 것은 세계와의 적극적인 대면의 불가능을 인정함과도 같은 것이다. 이런 인정은 그로 하여금 사람의 내면의 투영이 가능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모더니즘을 두고 내면의 리얼리즘이라 칭하는 것은 지극히 맞는 말이다.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새로운' 리얼리즘 (Neo-realism)이라 할 수 있겠다.

이탈리아 여행〉은 조이스 부부가 돌아가신 삼촌의 소유 저택을 팔기 위해 이탈리아로 간 여행의 이야기다. 이때 이 부부가 이탈리아로 가는 여행의 일차원적 이유는 삼촌 '호머'의 죽음이다. 호머 Homer의 죽음은 결국 『오딧세이』의 죽음이다. 다시 말하면 오딧세이가 불가능한 시대에서 오딧세이를 경유하려는 것이다. 오딧세이의 죽음이 남긴 유산인 전후 문명에 대한 근심을 담은 이 영화의 정신적 여정은, 타지의 경험 속 유혹 끝에 돌아온 율리시스처럼 '기적적인 재결합'을 이후는 조이스 부부의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다. 그렇게 무척이나 단순해보이는 멜로드라마적 원형을 띤 이 작품에서 이 둘은 사이의 관계가 끊어지고 있음을 느끼고 실제로 물리적-정신적 별거를 겪는데 (남편이 잠시 떠남과 함께 후반부에 이혼을 선언하는 부부의 결별이다) 그 과정에 문명에 대한 근심이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이탈리아에서의 공간적인 여행은 내면으로의 여행인 동시에 문명을 바라보는 견자의 여행으로서, 궁극적으로 시간의 여행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외부인인 잉그리드 버그만은 영화 속에서 거리의 '현재'와 유적지의 '과거'를 오가는 시간 여행을 하는데, 특히 후자의 풍경에 사로잡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남편은 이런 매혹을 겪지 못한다. 과거의 연인이라는 연결고리가 있는 부인와 달리 남편은 의식하는 매개가 없기 때문에 손을 잡은 채로 죽은 남녀의 유적을 볼 때도 부인만이 감정의 고조를 느낀다. 이런 매혹에 대해 로셀리니는 모순적인 성취를 해낸다 느낄 때가 있는데, 이것은 앞서 말한 영화의 '위대함'에 대한 부정과 일맥상통한다. 이런 풍경에 대한 사로잡힘, 죽음의 이미지에 대한 매혹을 찍을 수 있는 건 그가 이런 이미지들에 현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장 위대한 이탈리아 영화 이탈리아 여행〉 | 인스티즈

이렇게 이탈리아 여행〉은 인물에 의해 발견되는 '세계'를 통해 인물을 바라보는 영화다. 로셀리니는 이를 영화의 첫 장면에서 쇼트의 배치를 통해 보여준다. 이 영화의 첫 쇼트 두 개는 모두 움직이는 자동차 안에서 바라본 이탈리아의 풍경이다. 이 두 쇼트를 거쳐서야 우린 두 인물의 (조이스 부부) 쇼트와 만난다. 이런 여행의 속성은 두 부부의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새로운 리얼리즘을 발견하고자 하는 로셀리니 본인의 여행이기도 하다. 그의 여러 영화들이 그렇듯이 여기서도 다큐멘터리적 요소들이 많은데, 이것은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은 그것의 속성으로서 이해하면 안된다. 되려 사람의 육체와 속한 공간의 우연적인 만남을 통해 리얼리티의 윤곽을 드러내는 바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만남의 인물을 보자. 주인공 조이스 부부는 부르주아이며, 그들이 방문한 '이곳'에 대해 경계적이고 열등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음은 네번째 쇼트에서 드러난다. 거친 운전을 보고 '여기 사람들 운전하는 것 좀 봐'라고 말하는 알렉스를 보라. 이런 타자의 시선은 잊혀진 과거의 장소와 맞닿이며 변화를 겪는다. 나폴리라는 공간에서 그들은 기존의 리듬에 방해를 겪는 것이다. 지나가는 소 떼나 행진 때문에 그들이 차를 멈추어야 하는 상황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제 캐서린의 여정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녀가 다양한 관광지를 방문하는 이유는 과거에 연인이었던 찰스 르윈턴이 쓴 시의 영감의 근원을 보고 싶어서였다. 그녀의 첫 방문 전 남편에게 르윈턴의 시를 읊는다.

Temple of the spirit / No longer bodies / but pure ascetic images

영혼의 신전 / 이제 육체는 없고 / 순수한 금욕적 이미지만이

위 시에서 드러나는 전이는 캐서린이 거치는 방문지의 순서에서, 그녀의 변화에서 드러난다. 그녀가 겪는 여정은 저 시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그녀의 가장 첫 방문은 나폴리 박물관이다. 이 장면에 담긴 조각상들은 정지(fix)된 피사체들인데, 카메라의 패닝과 트래킹은 마치 이들이 여전히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 쇼트들은 캐서린의 시점 쇼트라 보긴 힘들다. 허나 기존의 기호가 파괴된 이 영화에서 시점 쇼트가 아닐지언정 이 쇼트의 연속이 그녀의 '시선'을 느끼게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녀의 눈엔 움직일 수 없는 이것들이 어느 순간 만이라도 움직일 것만 같이 보인다. 이런 쇼트들에서 우린 기존 문법에 해당하지 않고, 관습적인 대사와 묘사 없이도 인간의 내면의 가장 미묘한 숨결을 담아내는 로셀리니의 진가를 맛볼 수 있다. 우리가 그녀의 시선을 빌려 보고 느낀 것처럼 이 박물관에서 본 이미지들은 금욕적(ascetic)이지 않았으며, 그녀는 박물관의 조각상들이 '금욕적인 형상이지 않다'는 남편의 말에 동의한다.

가장 위대한 이탈리아 영화 이탈리아 여행〉 | 인스티즈

두번째 방문에서는 조금씩 변화가 예고된다. 이 방문이 흥미로운 것이 첫 방문 이후로 남편과 육체적으로 별거하게 되었다는 것과 (그는 그녀와 다투고 카프리로 떠난다) 그녀가 자동차로 이동할 때 밖을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장례식 행렬로 인해 차를 멈춘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장면은 앞과 다르게 보고 있는 이미지와 그녀의 반응의 (거의) 완전히 분리되지 않았다. 이런 분리의 정도는 방문을 거듭하면서 감소한다. 여기서 반복하며 제시되는 공간 속 메아리는 마치 흔적으로 남은 과거가 현재에 속한 캐서린을 동요시키는 것처럼 느껴진다. 특히나 로셀리니는 사랑을 확인하고 싶냐는 가이드의 질문에 캐서린이 머리 속으로 르윈턴의 시를 읊음을 내레이션으로 밝히고, 미묘하게 변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여줌으로서 관광지와 그녀의 관계가 변하고 있음를 드러낸다.

다음날 그녀는 화산 지대로 향한다. 앞 두번에서 보이다시피 그녀가 목적지로 가는 '도중' 보는 이미지들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번에 그녀가 보는 것은 거리의 연인들과 유모차를 끄는 여인들의 모습이다. 여기서부터 풍경, 이미지에 대한 매혹은 점점 고조되어가며 그녀는 실제로 화산구에 연기를 불어넣음으로서 세계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그녀는 유적지와 '닿음'으로서 앞에서 좁혀져온 그녀의 시선과 이미지의 거리는 거의 없어진다 (첫 두 방문에서 미묘하게 나마 쇼트와 역쇼트로 분리된 이미지와 그녀의 시선이 가지는 존재는 이 장면에서 단순한 패닝으로만 제시되어 각각의 '닿음'을 한 쇼트에 담았다).

이번에 캐서린은 나탈리의 부탁으로 나폴리 교회를 함께 찾아간다. 가는 도중 그녀가 창문 밖으로 보는 이미지는 임산부들과 어린 아이들의 그것이다. 이들은 아마도 '생'의 감각을 깨우는 가장 극적인 이미지들이 아닐까. 이를 거쳐 그녀가 도착한 교회엔 억울히 죽은 사람들, 가족들의 '재'가 남아있다. 이런 죽음과 삶의 공존을 지탱하는 현지인들의 믿음과 의식은 그녀의 내면을 사로잡는다. 이런 의식은 마치 이곳에 묻힌 유골에게 두번째 방문의 메아리처럼 숨결과 소리를 부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캐서린은 전후 죽음의 유령과 맞닿인다 (그리고 그녀의 남편 또한 조금 뒤 매춘부의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을 들음으로서 그녀처럼 이런 유령과 지나치지만 맞닿지는 못한다. 캐서린과 달리 그에게 이 만남은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나탈리는 캐서린에게 예전에 죽은 가족의 기억을 추모하기 위해 이곳에 온다고 밝힌다.

가장 위대한 이탈리아 영화 이탈리아 여행〉 | 인스티즈

이제 마지막 방문이자 가장 즉각적인 방문이며 유일한 동반의 방문이다. 서로가 불가해한 존재라 여기듯이 부부가 이혼을 결심한 직후, 그 사실을 모르는 토니는 부부에게 폼페이의 유적 발굴 현장 방문을 부탁한다. 이런 즉각성은 캐서린, 알렉스와 함께 폼페이의 남녀를 '목격'하는 순간 관객 또한 사로잡는다. 르윈턴의 시가 말한 육체에서 금욕적 이미지로의 전이를 모두 내포한 형상을 목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각상의 '육체'를 지닌 '화산'의 재로서 죽은자의 형상으로 보여지는 '금욕적 이미지'인 셈이다. 죽음의 순간에 함께한 남녀의 이미지는 영원히 남고 발굴의 과정으로 그 이미지는 '육체'를 얻게 된다. 이런 육체의 형상과 죽음의 기묘한 동거를 본 캐서린은 크게 동요한다. 견자의 시선과 이미지의 거리가 없어질 때, 견자인 캐서린은 '재'로 남은 문명의 잔상에서 진정한 죽음을 목격하는 것이다.

함께 '목격'한 부부는 앞으로 거칠 이혼의 절차를 논하며 폼페이를 떠나려 자동차로 움직인다. 차 안에서 차가운 알렉스와 서운해하는 캐서린의 말다툼 도중 그들은 앞에 벌어지는 거대한 종교 의식 행렬을 보고 몰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움직일 수 없어 차에서 내린다. 이때 갑자기 '기적!'이라 외치는 사람들 무리에 휩쓸려 멀어지는 캐서린은 알렉스를 향해 그의 이름을 외치고 알렉스 또한 그녀를 애타게 잡으려 한다. 이때 둘은 다시 서로를 가까스로 잡고 기적적인 화해에 이르러 포옹을 한다. 여기서 포옹을 한 그들의 모습은 크레인 쇼트로 등장한다. 로셀리니의 영화엔 크레인 쇼트가 잘 등장하지 않으므로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 할 순간이다. 에릭 로메르는 이 영화를 두고 세 캐릭터가 등장하는 영화라 했다. 캐서린, 알렉스, 그리고 신이 등장하는 영화라 주장했는데, 그가 이 쇼트들 두고 한 말은 아니지만 난 그의 말을 여기에 연결시키고 싶다. 크레인 쇼트의 시선은 마치 신의 시선같이 느껴진다. 신의 눈 아래에 폼페이의 형상처럼 재결합한 캐서린과 알렉스는 불멸의 이미지로 이탈리아에 남게 된다.

이렇게 로셀리니는 느슨한 서사 속 장소와 사람의 만남의 에피소드들이 속의 은밀한 시선을 오가는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여기선 지나온 시간의 암시가 장소의 흔적으로 나타나며, '현재' 인물의 눈을 통해 이를 바라보는 과정에서 기존의 기호들은 무너진다. 문명이 죽은 후, 세상과 화해하지 못한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의문에 로셀리니는 자신만의 기적으로 답한다. 그가 여기서 달성한 내면의 리얼리즘이야 말로 진정한 기적이 아닐까.

[1], [3] 유운성·홍성남, 『로베르토 로셀리니』

[2] 질 들뢰즈,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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