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이야기는 실제의 역사에 약간의 대사를 붙인 것이며
길공구님의 강주호족이야기에 기본적인 바탕을 두고 있고
길공님의 글은 노년의 소격달이 낙향하고 쓴 진주 소씨의 족보 "동근보"에 적힌
소격달 자신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그리고 이 글은 2부로 나눠서 다른곳에 연재했던 글인데 이 글이 1부격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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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890년 11월 진성여왕 4년
신라는 망조가 들어갔고
각지에서는 초적이 일어나 민심은 더욱 혼란해졌는데
신라의 강주도독 소송(蘇淞)은 강주 일대의 호족들을 소집하여
초적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소송은 소은의 둘째아들로
소은은 헌강왕대에 당나라에 국비장학생으로 파견된
신라의 엘리트 8인중 한명이었고
또한 소송은 소알천의 10대손이기도 했으며
소송 본인 역시 18세에 국선을 지낸 뛰어난 화랑중 하나였다

드라마 선덕여왕에 나온 알천랑이 바로 "소알천"이다
소집령에 따라 강주(현재의 경남 진주)로 인근 호족들이 군대를 인솔하여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는데
그중에는 천주(의령)호족 왕봉규(王逢規) 역시 있었다
그깟 초적 진압하는데 왜 이리 모두를 불러모으는거지?
신국의 위엄을 백성들에게 보여 초적이 되는걸 애초에 막으려는게 아니겠나?
출정을 기다리며 강주도독부를 서성이던 왕봉규는 한 여인과 마주치게 되고
그리고 그 여인에게 한눈에 반하게 되는데..
왕봉규 : 이보게 윤웅(閏雄)! 저 여인이 누구인지 자네 혹시 아는가?
차윤웅 : 그 재수없는 강주도독의 부인이군.
아버지가 시중(侍中)을 지낸 김윤한(金允漢)이라던가? 나름 왕족이라더군.
왕봉규 : 자네 그 강주도독을 정말 싫어하는구만
차윤웅 : 강주는 원래 내 영지라고! 그런데 새파랗게 젊은 그놈이 와서 이래라 저래라
이러다 밑에 것들 마저 날 무시하게될지도 모르겠네
왕봉규는 처소에 돌아와 밤새 낮에 본 그녀만을 생각했다
왕봉규 : 그녀를 내것으로 만들수만 있다면...
밤새 고민하던 왕봉규는 차윤웅을 불렀다..
왕봉규 : 자네...새로온 강주 도독이 정말 싫다고 했지?
내가 자네를 그 자 대신 강주 도독으로 만들어 줌세...
차윤웅 : 그게 무슨 말인가? 어떻게?
왕봉규 : 초적을 토벌하러 가는 길에 기습을 받는거지
그리고 재수 없게도 그 자는 주인없는 화살에 맞아 죽는거야...
차윤웅 : 그게 가능하겠나?
왕봉규 : 자네가 이 지역 지리를 잘아니 자네가 판을 만들면
내가 그자를 죽이도록 하지.
그리고 조정에 품의해 자네를 강주도독으로 추천하겠네
차윤웅 : 그러면 자네는 얻는게 뭔가?
왕봉규 : 그 자의 아내를 가지고 싶네...그것 뿐이야..

그리고 출정의 날은 돌아왔다
차윤웅과 왕봉규는 계획대로 잘못된 길로 소송을 안내했고
초적을 가장한 차윤웅의 사병들이 기습을 가해왔으며
소송은 그 와중에 왕봉규의 배신으로 어이없이 죽게 된다.
소송의 나이 향년 32세였다.
그리고 강주성에 돌아온 차윤웅과 왕봉규는 소송의 처인 정효부인 김씨를 찾아갔고
차윤웅 : 부인! 당신의 남편이 죽었소...
김씨 : 어찌.....
차윤웅 : 우리 손에 죽었지! 자 선택하시오! 그대도 죽을 것인지?
아니면 여기 왕봉규 공의 처가 될 것인지!
왕봉규 : 생각할 시간을 드리겠소...하지만 강주에서 벗어날 생각은 마시오..
당신을 놔주면 우리가 한 짓이 드러나게 되니
그럴수는 없다는걸 알고계시오.
김씨는 고민했다
그리도 사랑했던 자신의 남편 소송....
그냥 자결해서 이런 치욕에서 벗어나 그의 곁을 따르고 싶었지만..
그럴수 없었다
지금 김씨의 배에는 소송이 남긴 혈육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고민 끝에 김씨는 입을 열었다
김씨 : 공들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대신 내 부탁 하나를 꼭 들어줘야만 따르겠습니다.
왕봉규 :그게 뭐요?
김씨 : 지금 제 뱃속에는 소송공의 아이가 있습니다..
이 아이를 해치지 말고 돌봐주세요..
아버지에 대한 비밀은 지키겠습니다..
왕봉규 : 그게 뭣이라고! 걱정마시오 그대가 내 처가 되면
그대 뱃속의 아이도 이제 내 자식이오!
내 자식처럼 남 부끄럽지 않게 키우겠소!
그렇게 왕봉규는 자신의 바램대로 정효부인 김씨를 차지하게 되었다.
약속대로 왕봉규는 조정에 소송이 초적토벌중 전사했다고 보고하면서
신임 강주도독으로 차윤웅을 추천했고
그리하여 차윤웅 역시 소송의 강주도독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통일신라시대 귀족여성복식
하지만 그들의 생각만큼 김씨는 그리 녹록한 여인이 아니었다
지금은 아이가 인질이라 굴복하고 있었지만
한시도 남편 소송을 잊지 않고 복수의 그날을 꿈꾸고 있으니..
그리고 5개월 후인 891년 4월
김씨는 아이를 낳았고
왕봉규는 크게 기뻐하며 이름을 격달(格達)로 지었다.
왕격달
바로 이 글의 주인공의 이름이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914년
왕격달은 23세가 되었다
왕격달은 이 시기 신라 조정으로 부터 화랑의 칭호를 받았고
왕격달이 화랑이 되자 왕봉규는 크게 기뻐하며 유달(有達)이라는 자(字)를 지어 주었다
왕봉규 : 너도 이제 화랑이다, 화랑에 어울리는 큰 인물이 되도록 하여라
왕격달 : 네. 아버님
왕봉규는 그런 격달을 뿌듯하게 바라보았다

전성기만은 못하지만 화랑은 이 시기에도 여전히 신라 엘리트의 요람이었다
국선이었던 소송과 미녀로 이름난 정효부인의 피를 이어받아서 그럴까?
격달은 크면 클수록 늠름하고 멋있어졌고
왕봉규는 격달을 친자식 이상으로 많이 아꼈다
그래서 모두가 왕봉규의 후계자는 왕격달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기록상 왕봉규에게 다른 자식이 있었다는 글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를 만들지 못하는 몸이었는지 단지 기록에 남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2년 이 더 흘러 916년
왕봉규는 점점 성장하는 후백제를 견제해야할 필요성을 느꼇고
25세가 된 아들 격달을 불렀다
왕봉규 : 너도 이제 어른이니 성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왕격달 : 네? 아버님 진심이시옵니까?
왕봉규 : 그렇다. 후백제가 나날이 강성해지는게 심상치 않다
너가 직접 강주 서부로 가서 지형을 살펴보고 강주를 지킬 요충지를 찾아라
그러면 그곳에 너를 위한 성을 지어주마
왕격달 : 아버님 감사합니다!!
강주 서부로 간 왕격달은 지형을 살펴보러 다닌끝에
현재의 경남 하동군 악양(岳陽)에
수백년전 지어져 지금은 폐허(廢城)가 된 옜성터가 요충지임을 알아보고
아버지 왕봉규에게 연락했다
왕봉규는 형식상 강주도독인 차윤웅에게 성신축계획을 보고하고
격달을 축성책임자로 해달라고 요청했고
축성책임자로 임명된 소격달은 축성을 시작했다
이 시기 인근 경남 합천의 대야성에서는 신라를 멸하려는 후백제군과
신라의 최후보루인 대야성을 지키려는 신라군의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고
이에 자극 받은 소격달은 공사를 서둘러
그해 성 축성을 완료하게 된다

현재 남아있는 증산산성(현재의 고소산성)의 위성사진
그리고 성의 이름을 증산산성(增山山城)이라 이름지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왕봉규는 크게 기뻐하며
신라조정에 자신의 아들 왕격달을 하동태수로 봉해줄 것을 요청하여 품의를 받아
왕격달은 증산산성의 성주이자 하동태수로 봉해지게 된다.
격달이 왕봉규의 손아귀를 벗어나는 것을 본 정효부인 김씨는
이제 격달에게 진실을 알려줄 때가 되었음을 깨닳았다..
김씨 : 이제 왕봉규 그놈의 곁에서 벗어났으니 더 이상 그 아인 인질이 아니야..
이젠 그 아이도 진실을 알아야만 해..
증산산성으로 격달을 찾아간 김씨는 격달에게 둘이서만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고
조용한 곳을 찾아 인근의 한산사 쪽으로 간 둘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김씨 : 넌 왕봉규가 너의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란다,...
왕격달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
김씨 : 믿을수 없겠지만..너의 아버지는 국선이자 전 강주도독 소송공이시다.....
그리고 김씨는 조곤조곤 격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자신을 차지하려는 왕봉규의 음모..
남편 소송이 왕봉규와 차윤웅에게 당한 억울한 죽음.
그리고 격달만을 바라보며 치욕의 세월을 버텨왔다는 것도
격달은 도저히 믿을수 없다는 반응이었는데
김씨는 거기에 더해 복수를 주문했다.
김씨 : 너도 화랑이니 맹세의 무거움은 알 것이고
부모의 원수와는 한 하늘아래 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것이다
부디 맹세해다오 너희 아버지와 나의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격달은 머뭇거렸다..
당연히 20년 넘게 아버지로 믿었던 이가 실은 부모의 원수라니!!
누구라도 당황할만한 상황이었을 테니까 말일테니까.
김씨 : 어서 말해라! 아버지와 어머니의 원수를 갚겠다고!!
왕격달 : 아...알겠습니다..어머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김씨는 단도를 꺼내어 자신의 가슴을 찔렀다..

증산(고소)산성 아래 한산사 인근에는 사진과 같은 붉은 무늬의 대나무가 자라는데
이를 소상반죽 이라 부르며 정효부인 김씨의 피가 튀어 이렇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왕격달 : 어머님!!!
놀라 달려간 격달에게 김씨는 죽어가며 말했다
김씨 : 진작에 스스로 목숨을 끊어 너희 아버지를 따라가고 싶었는데...
어린 너때문에 못가다가 이제사 가게 되었구나..
이 어미의 말이 의심되거든 강주 외곽에 사는 송로부인 최씨를 찾아가거라
그분이 너의 할머님이시다...
너희 아버지 이야기를 하면 아실게야...
그리고 반드시 우리의 원수를 갚아다오...
그리고 김씨의 숨은 끊어졌다.
서기 916년 9월
왕격달의 나이 25세때의 일이었다.

대략 이 시기인 918년 태봉에서는 왕건의 쿠데타로 궁예가 죽고 고려가 건국되었다.
왕격달은 어머니가 알려준 진실과 어머니의 죽음에 충격을 받았고
사실인지 재차 확인하려 했다.
어머니의 말대로 송로부인 최씨를 찾아가보기로 마음 먹은 것이었다
일단 어머님의 시신을 현재의 진양군 문산면 소문리 욱숙곡에 장사를 지냈다
(아마도 왕봉규에게는 급사했다던지 그렇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장례가 끝나자 송로부인을 찾아갔다
그때 송로부인 최씨가 있던 강주 선학산 아래의 소씨 종가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소씨 가문에는 한 전설이 내려져 오고 있었는데
소씨 종가의 구시목(九枾木)에 큰 감이 열리면 가문에서 장군이 나온다는 전설이었다
그런데 이때 구시목에서 수백년만에 가장 큰 감이 열린 것이었다.
송로부인 : 아들은 죽어 대가 끊겼고
며느리도 왕봉규와 재혼했다 들었는데 대체 나에게 자손이 어디있다고
구시목은 이리도 내 마음을 희롱하는 걸까..
그런데 그때 왕격달이 송로부인을 찾아온 것이었다.
왕격달 : 저 여기가 송로부인께서 계시는 곳인가요?
송로부인 : 제가 송로부인입니다만 누구신지?
왕격달 : 혹시 소송공을 아시나요?
송로부인 : 26년전 강주에서 죽었답니다.
그런데 누구시길래 우리 아들을 찾으시는지?
어머니의 이야기가 모두 진실로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송로부인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소송의 자식이 맞음을 알게 되었고
왕격달은 슬픔과 분노에 빠졌다..
왕격달 : 아..지금까지 부모님의 원수를 부모처럼 모셔왔으니..
이런 불효를 어찌 한단 말인가..
이제 나는 왕씨성을 버리겠다! 나는 왕격달이 아니라 소격달이다!
생각지도 못한 아들의 혈육을 만난 송로부인과
부모의 원수를 알게된 격달은 함께 눈물을 흘렸고
송로부인은 소송의 원수를 갚으려는 격달을 위해
격달의 고모부인 최유문(崔有文)을 소개시켜 주었다

이 시기 경남지방 호족들의 세력도
이후로도 소격달은 겉으로는 왕격달의 이름을 쓰면서 예전처럼 왕봉규를 아버지로 모시며
아무렇지 않은듯 행동하며 의심을 피했다.
소격달 : 왕봉규를 단순히 죽이려면 어머님이 예전에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죽이지 않고 나에게 복수를 부탁한 것은 단순히 죽이는게 아닌
가진 모든 것을 부숴버리고 파멸시키라는 뜻일터...
하지만 아직 왕봉규와 차윤웅의 세력은 막강했고
소격달의 세력은 아직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격달은 인근의 군소호족이자 고모부인 최유문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것은 최유문에게 왕봉규와 차윤웅에게 불만을 품고 있거나
소송 생전에 도움을 받았던 군소호족들을 섭외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최유문은 격달의 주문대로 비밀리에 하동과 강주의 군소호족들인
원서(元瑞), 이중인(李重仁), 안유생(安有生), 박옥헌(朴玉憲), 김수봉(金秀峰)등을 섭외해 끌어들였다.
그렇게 조금씩 세력을 넓히면서 격달은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회가 찾아온 것은
서기 919년
소격달이 28세가 되던 해였다.
3년간에 걸쳐 소격달은 비밀리에 왕봉규와 차윤웅에 불만을 가진 인근 호족들을 회유해 왔다
원서(元瑞), 이중인(李重仁), 안유생(安有生), 박옥헌(朴玉憲), 김수봉(金秀峰)등의 군소 호족뿐아니라
남해태수 손평조(孫平朝), 고성태수 박명훤(朴命萱), 거제태수 낙창(洛昌), 함안태수 윤선(胤宣),
천령태수 배한내(裵韓乃) 같은 꽤 큰 세력의 호족들도 있었다
물론 이들은 거의 다 동상이몽을 꿈꾸고 있었는데
가장 강하다고 이런 저런 횡포를 부리는 그들의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던가
이렇게 기회가 날때 지금껏 경남일대의 맹주노릇을 하던 두 세력을 눌러버리고
자신이 그 자리로 올라가고 싶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어쨋거나 919년 겨울 반 왕봉규,차윤웅 연합호족세력은
왕봉규,차윤웅 연합을 무너뜨리기 위해 일거에 일어나 봉기한다.
소위 반 왕봉규,차윤웅 포위망을 만들어 낸 것이었다
소격달 : 이제 이 성(증산산성)의 이름은 우리 할머니와 아버님을 기리는 의미로
고소(姑蘇)산성이라 다시 이름짓겠노라!!
그리고 떨쳐 일어나 부모님의 원수를 갚겠노라!

인근 호족 모두가 반 왕봉규, 차윤웅의 기치하에 일어났다는 소식에
왕봉규와 차윤웅은 크게 당황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왕봉규의 아들 소격달이 있다는데 더 충격을 받았다
차윤웅 : 소식 들었는가? 인근 호족들이 모두 반기를 들었다고 하네..
왕봉규 : 우리 아들은 지금 뭘하고 있다던가!!
차윤웅 : 자네 아들이 주도한거라고 하더군! 이게 어찌된건가!!
왕봉규 : 뭐?? 그럴리가...
차윤웅 : 일단 뭔가 수를 써야하지 않겠나?
아무리 우리라도 모든 호족을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네!
왕봉규 : 늑대를 피하려면 호랑이 뒤에 숨으면 되는 법이지..
고려로 사신을 보내게... 귀부하겠다고 말이야
차윤웅 : 하필 왜 고려인가? 백제는?
왕봉규 : 아직 고려는 건국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우리가 귀부한다 하면 후하게 대접받을테고
고려는 신라와 우호적이니 우린 가만 있기만 해도 되네
하지만 백제에 붙으면 우리와 가까운 신라와의 전쟁에나 동원될테고
그러다보면 우리의 세력도 소모될 수 밖에 없지..
차윤웅 : 알겟네! 당장 내 아들놈을 고려로 보내도록 하겠네
내 아들정도라면 고려측에서도 신뢰하겠지!
이렇게 왕봉규와 차윤웅이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것은
고려로의 귀부였다.
고려사 세가 태조 3년 경진년(920년) 봄 정월(1월)
강주(康州)의 장군(將軍) 윤웅(閏雄)이 그 아들 일강(一康)을 보내어 볼모로 삼게 하니,
일강에게 아찬(阿飡)을 임명하고 경(卿) 행훈(行訓)의 누이동생을 아내로 삼게 하였으며
낭중 춘양(春讓)을 보내어 강주(康州 경남 진주(晉州))를 위유(慰諭)하였다.
이렇게 반왕,차 연합군이 뭘 해보기도 전에
왕봉규와 차윤웅은 재빨리 고려와 손을 잡고 고려의 관리를 초청했고
호족연합군이 이 둘을 공격한다는건 고려에 대한 적대행위를 의미하니
호족 연합군은 닭쫓던 개 지붕쳐다보는 꼴이 되어 버렸다.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등에 업고 거들먹 거리다(狐假虎威)
말이 포위망이지 유명무실해졌고
그저 대략 1년간 느슨한 유대만을 하다가 유야무야 되어버리게 된다.
그리고 왕봉규는 고려세력을 등에 업고
반기를 들었던 호족들을 하나하나 제압하며
다시금 강주지방의 패권을 확인해 나가고 있었으나
소격달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원수를 갚을 다음 기회가 찾아온 것은 6년이나 지나
소격달이 34세가 된 925년의 일이었다.
서기 925년
왕봉규는 천주절도사(泉州節度使)를 자칭하며
후당에 독자적으로 사신을 보낼 정도로 세력이 절정에 달했으며
반 왕, 차 포위망을 구성했던 태수들은 그저 숨죽인체 엎드려 눈치를 보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뜻밖의 반전이 나타났다
바로 천하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925년 봄
견훤과 왕건은 점점 대립하였고
결국 조물성에서 견훤과 왕건이 직접 이끄는 후백제군과 고려군이 충돌한다.
조물성은 현재의 경북 문경, 예천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였는데
925년에 벌어진 2차 조물성 전투에서 고려군은 패전의 위기에 몰렸다가
정서대장군 유금필이 이끄는 군대가 구원군로 도착하면서 겨우 위기를 넘기게 된다

견훤
말단 군인으로 시작하여 국가를 건국하기까지한 후삼국의 근성남
왕건과의 직접 맞대결이었던 2차 조물성전투, 공산 동수전투에서
왕건을 압도하는 군신(軍神)의 모습을 보였고
특히 왕건은 공산전투에서 심복인 8장군을 모두 잃는 참패를 당하고
백성으로 변장한체 굶주림에 시달리며 산을 타고 도망치는 굴욕을 당해야했다.
비록 조물성을 함락하는데는 실패했으나
고려군을 격파하며 기세를 올린 후백제군은 그대로 남하히여
고려에 귀부했던 강주지역(서부 경남)을 공략하기 시작한다.
이때 고려군은 패전을 수습하느라 강주를 구원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었다
견훤이 직접 이끄는 1만 5천의 후백제군은 순식간에 강주 북부 20개성을 함락시키며 기세를 올렸고.
그리고 다음 목표는 경남 거창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창태수 한기열(韓基烈)과 천령(함양)태수 배한내는 왕봉규에게 구원을 청한다.
배한내는 반 왕,차 포위망에 참여했었던 전과가 있었으나..
위급하니 왕봉규와 차윤웅에게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차윤웅 : 거창과 천령에서 구원요청이 들어왔군
배한내 그 놈은 얼마전만 해도 우리에게 까불더니 이제와서 꼴 좋구만
이걸 도와줘야하나?
왕봉규 : 도와줘야지. 설령 백제에 고개를 숙이게 되더라도 이런식으로는 안되네
우리 힘을 보여서 대등한 관계로 가야해
게다가 천령과 거창이 뚫리면 다음은 우리차례가 아닌가
입술이 없으면 이빨이 시리기 마련이야
그리고 배한내 그놈에게도 은혜를 입혀놓는 것도 좋겟지
차윤웅 : 그럼 거창에서 백제놈들을 막도록 하지
그곳이 방어하기엔 성도 튼튼하고 지형이 아주 좋다네
왕봉규 : 그러도록 하지
왕봉규, 차윤웅, 배한내의 병력으로 이루어진 연합군은 그리하여 거창성으로 향했고
거창성에서 후백제군과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소식은 소격달의 귀에도 들어갔고...
소격달 :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가 아닌가?
차윤웅과 왕봉규이 백제에게 공격받고 있고
고려는 강주를 돌아볼 정신이 없으니
원수를 갚을 절호의 기회로다!
최유문 : 하지만 백제에 붙을수는 없네
백제왕은 왕권을 강화하고 있다하니
백제에 붙었다가는 우리의 세력을 그대로 백제에 빼앗기는 수가 있어
소격달 : 알고 있습니다 고모부
저는 백제와 왕봉규가 싸우느라 정신없을때 둘 모두의 옆구리를 찌를 것입니다.
어서 반왕봉규 포위망에 참여했던 호족들에게 연락을 보내십시요!
왕봉규와 차윤웅을 처단할 절호의 기회라고!

노란색 : 후백제군의 진격로
파란색 : 왕봉규, 차윤웅, 배한내, 한기열 호족연합군
붉은색, 핑크색 : 소격달, 손평조, 박명훤, 윤선, 낙창 그외 군소호족 연합군
같은 시간 거창성에서 왕, 차 연합군과 후백제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때
반왕,차 연합호족군 역시 거창성으로 진군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군 1만 5천 과 왕봉규,차윤웅 연합군 7천
그리고 소격달의 반 왕,차 연합호족군 5천이 거창에서 삼자대면 하게 된 것이었다
서기 925년 10월
견훤이 이끄는 후백제군은 조물성 전투에서 고려군을 격파한뒤 남하하여
고려에 귀부했던 강주(서부 경남)지역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강주 북부 20여개 성을 함락시키는등 기세를 올리던 후백제군 1만 5천 에 맞서
강주도독 차윤웅, 천주태수 왕봉규, 거창태수 한기열, 천령태수 배한내의 연합군 7천이 거창에서 막아섰고
그리고 그들 둘 모두를 목표로 삼은 소격달이 이끄는
반 왕봉규, 차윤웅 호족연합군 5천 역시 거창으로 향한다
소격달과 호족연합군이 거창 근처에 도달했을 무렵
차윤웅와 왕봉규 연합군은 서전에서 후백제군에게 패하고
거창성으로 후퇴해 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후백제의 군신(軍神) 견훤
역사상으로도 고려의 정서대장군 유금필(인간병기)을 제외한
그 누구라도 감히 대적하기 힘겨워하던 인물로
그 앞을 막기엔 몇몇 호족들의 연합군으로는 역부족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소격달군의 진격 소식은 견훤의 귀에도 들어갔다.
강주호족들의 구원군 5천이 거창으로 진격해오고 있습니다
견훤 : 그래? 그럼 즉시 후퇴한다.
싸워 보지도 않고 말입니까?
견훤 : 우리 병사들은 조물성부터 거창까지 계속 싸우며와서 피곤하니
굳이 앞 뒤로 적을 맞는 힘든 싸움을 할 필요는 없다
어차피 나의 의도는 고려에 붙은 것에 대한 응징이고
고려가 자신들을 도와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았을테니
앞으로 고려와 백제 둘중 누가 더 강한지 판단하고 행동하겠지
소격달과 호족연합군이 거창성을 구원하기 위해 오는 구원군이라 생각한 후백제군은
소격달군이 거창에 도달 하기도 전에 빠른 속도로 후퇴해 버렸다.
그리고 이 소식은 소격달에게도 알려졌다
소격달로서는 백제와 왕, 차 연합군이 더 싸워서 전력을 소모했어야 하는데
백제가 생각보다 일찍 후퇴해서 왕, 차 둘의 세력이 생각만큼 소모되지 않은게 아쉬웠지만
대신 백제군이 후퇴하는걸 본 군사들이
소격달군을 보고 백제가 후퇴했다고 생각해서 사기가 크게 올랐다
그걸 본 소격달은 그 기세를 타고 거창성을 공격하기로 마음 먹었다.
소격달 : 거창성의 적들은 백제와의 싸움으로 지쳤으니 승기는 우리에게 있다!
거창성의 왕봉규와 차윤웅은 기가 찼다
백제군이 물러나자 마자 소격달과 호족연합군이 바로 이어서 거창성을 포위했기 때문이었다
차윤웅 : 격달이 저놈...이걸 어떻하지?
왕봉규 : 그냥 버티면 되네..거창태수 한기열이 우리편이니 보급걱정이 없겠다
거창성도 튼튼하니 뭐가 걱정인가
게다가 저들은 원하는 바가 다 다른 이들이 모인 군대다 보니
버티다 보면 분열하게 될걸세 그때 들이치면 된다네..
거창성을 포위한 소격달과 연합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왕봉규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왕봉규 : 내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날 증오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내가 가장 아꼇던 자식은 날 이토록 죽이고 싶어하니
아..기구하도다 나의 인생이여...

현재의 거창
이때 성벽위에서 소격달군을 바라보던 또 한명의 남자가 있었다.
그는 바로 거창태수 한기열
그는 소격달과 왕봉규 사이의 일을 상세히 알고 있는 사람중 하나였고
내심 소격달을 동정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누군가 소격달을 찾아왔다
한기열 : 안녕하시오 소장군. 전 거창태수 한기열이라 합니다.
소격달 : 어찌 당신이 여기에?? 무슨 연유로 절 찾아 오셧소?
한기열 : 전 소송공을 잘 아는 사이입니다. 그리고 장군과 왕봉규 사이의 일도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의를 위해 장군을 도우려는 것입니다.
내가 성으로 돌아가고 얼마후에 성문을 열테니 들어와
차윤웅과 왕봉규를 잡아 원수를 갚도록 하십시오
소격달 : 그럼 태수께서는 원하는게 무었입니까?
한기열 : 음...그건 거사가 성공한 후에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한기열이 돌아간 얼마후 진짜 거창성의 성문이 열렸고
소격달과 연합군은 성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차윤웅과 왕봉규는 자다가 갑작스런 소격달군의 성내 진입 소식에 허겁지겁 일어났다
왕봉규 : 이게 어찌된 일인가!!
한기열이 배반했다 하옵니다!
왕봉규 : 차윤웅은 뭘하는가!
지금 적이 차장군의 진영으로 쳐들어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차장군이 포박되는 것을 누가 보았다 했습니다
왕봉규 : 어서 병사들에게 탈출준비를 하라 일러라!
성에서 탈출하는 즉시 강주도독부로 간다!
얼마 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차윤웅의 군대는 궤멸되었고 전투는 끝났다
왕봉규는 부하들을 수습해서 재빨리 탈출했지만...
그리고 차윤웅은 소격달 앞에 끌려오게 되는데
차윤웅 : 조카님 살려주시게....
소격달 : 내 아버님은 소송공이시거늘 어찌 내가 너의 조카란 말이냐?
넌 나의 아버님의 지위를 탐내어 아버님을 죽였으니
오늘 내가 너를 죽여 아버님의 원수를 갚겠다!
차윤웅 : 아니 다 왕봉규 그자가 시켰다네..
난 정말 그러려고 한게 아니었네...
소격달 : 어서 이놈을 베어라!
이 놈의 머리를 부모님의 영전에 바쳐 부모님의 영혼을 위로하겠노라!
차윤웅은 그렇게 참수되었고
소격달은 그렇게 절반의 복수를 달성하게 되었죠
그리고 사태가 진정되자 한기열이 격달을 찾아왔습니다
한기열 : 전에 내가 원하는게 뭐냐고 물었지? 그 답을 해주러 왔네
소격달 : 네 어르신, 어르신 덕에 제가 원수를 갚을수 있었으니 정말 은혜가 큽니다.
뭐든지 말씀 하십쇼. 할 수 있는 거라면 하겠습니다.
한기열 : 그런데 자네는 왜 아직 혼인을 안했나?
소격달 : 부모님의 원수를 갚느라 정신이 좀 없다보니 혼기를 놓쳤습니다.
한기열 : 내가 원하는건 자네를 사위로 맞는거네
내게 혼기가 찬 딸이 있는데 자네가 맡아주겠나?
소격달 : 그 아름답기로 유명한 낭자 말씀입니까?
저로서는 영광일 뿐입니다.
미녀로 유명하던 한기열의 딸과 소격달은 그렇게 혼인하게 된다
그녀가 바로 화영부인(和英夫人) 한씨 였고
소격달의 나이 34세 때의 일이었다.
그 시간
거창성에서 도망친 왕봉규와 그 수하들은 강주성을 접수하고 있었다.
왕봉규 : 너희의 주군인 차윤웅은 소격달과 호족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너희 주군을 죽인 자들을 믿겠느냐? 아니면 너희의 오랜 동맹인 나를 믿겠느냐?
저들이 강주로 쳐들어오면 너희 역시 위태로우니
이제 내가 강주성을 거두어 너희를 보호해주겠다!
그렇게 강주를 왕봉규가 접수하면서
비록 차윤웅은 죽었으나 그 세력은 고스란히 왕봉규에게 넘어가
왕봉규의 세력은 더 강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해인 서기 926년
소격달에게는 위기가 닥쳐오게 된다.

오대십국시대 사타족 족장인 이존욱이 세운 후당의 리즈시절...
왕봉규와 신라 , 후백제, 고려 모두가 사신을 파견해 외교전을 벌이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안가 폭망해버린 단명왕조...안습...
서기 925년 10월
차윤웅은 죽었고
차윤웅을 처단함으로서 소정의 목적을 이뤘다고 판단한 호족 연합군은 해산하게 된다
한기열 : 여러분! 여기 소격달 공을 이 자리에서 강주도독으로 옹립하는게 어떻겠소?
호족들 : 왜 그래야 하지?
우리의 대의는 왕봉규와 차윤웅의 독선과 횡포를 막는거였소
하지만 소격달공의 복수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란 말이오
그러니 우리가 소격달공을 옹립할 이유도 없거니와
그가 제2의 차윤웅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소?
세력을 키운 왕봉규에 비해 소격달의 세력은 여전히 하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음해인 926년 1월
왕봉규의 세력은 다시 회복되었고
왕봉규는 임시 강주도독이라는 뜻의 권지강주사((權知康州事)를 자칭하며
후당에 사신을 보내어 회화대장군(懷化大將軍)으로 임명 받는다.
또한 고려가 강주를 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실감하고
후백제와 교섭해 후백제의 세력을 등에 업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호족들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후백제군의 강함을 직접 본데다
어쨋거나 고려가 인정한 강주도독인 차윤웅을 본인들이 죽인 이상
어쩔수 없이 백제측에 붙는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하나 둘 왕봉규에게 무릎을 꿇었고
926년 1월이 되자 도리어 반 소격달 포위망이 구성된다
하지만 소격달의 입장에서 후백제의 위세를 등에 업고 있다해도
불구대천의 원수인 왕봉규에게 무릎을 꿇는다는건 꿈도 꿀 수 없었다

반 소격달 포위망(926년~927년)
붉은색, 소격달을 지지하는 호족
노란색, 왕봉규를 지지하는 호족
하늘색 , 후백제 세력
결국 소격달은 왕봉규의 세력에 완전히 포위당하게 된다
장인인 거창태수 한기열이 유일하게 자신을 편들고 있었으나
포위망 밖에 있다보니 큰 도움은 못되는 입장이었다.
여기서 유일하게 소격달이 내밀만한 카드는 단 한장
고려와의 연대 뿐이었다
소격달은 고모부 최유문과 상의 끝에
고소산성과 하동의 병사 1천명과 함께
고려에 귀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왕건은 완전히 상실했다고 생각했던 강주에
아직 친고려 세력이 있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하며
소격달을 장군에 임명했다.
하지만 이 시기 고려는 후백제의 대규모 칭공을 받고 있던 시기였고
전황도 좋지 않아서 강주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결국 소격달은 1년간을 고소산성에 고립된체 홀로 버텨야만 했다.
하지만 이 시기 아주 이상한 사실도 알 수 있다..
손평조 : 어찌하여 격달의 목을 치지 않으십니까?
왕봉규 : 어찌되었건 그 아인 27년을 키운 내 아이요..
부모 된 몸으로 어찌 자기 자식을 죽일수 있겠소?
손평조 : 격달은 왕봉규공을 아버지로 생각치 않습니다.
어찌 그리 무르십니까?
왕봉규 : 어차피 그 아인 고립되어 아무 힘도 없소
굳이 목숨을 거둘 이유도 없소..
손평조 : 공의 그 우유부단함이 언젠가 큰 화를 부를 것입니다.

경남 하동군 고소산성터
이렇게 왕봉규는 소격달을 고소산성으로 몰아넣었을 뿐
명줄을 끊기위한 더 이상의 공격은 가하지 않았다.
왜 그럴까?
솔직히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추측한다면 왕봉규는 아직 격달을 자신의 자식이라 생각했던게 아닐까?
언젠가는 키워준 아버지인 자신의 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 하나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기 소격달은 참으로 암울했으나
단 하나 기쁨이라면 화영부인 한씨와의 사이에서
아들 소진흠(蘇振欽)을 낳은 것이었다
그리고 먼 훗날 소진흠의 증손녀
즉 소격달의 고손녀는 1036년 현종에게 시집가 "회순황후"가 된다
그렇게 암울했던 926년이 지나고 927년이 밝아왔다
서기 927년 1월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방어만 하던 고려가 대반격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역사, 그리고 소격달의 운명은 다시 한번 움직이기 시작했다.

927년 고려군의 공격방향
927년 1월
고려는 대반격에 나섰다.
1월에 노고산성,황장성,용주성을 점령했고
4월에는 경북 문경 인근의 근품성을 함락시키는데 성공했으며
또한 현재의 충청도인 웅주를 침공하여 후백제군을 몰아붙이고 있었죠
고려가 공세를 시작하고 후백제군이 밀리고 있다는 소식에
소격달은 급히 고려측에 사신을 보내 구원요청을 했다.

대략적인 당시 고려군의 작전 계획
왕건은 이에 화답하여
근품성을 함락시킨 고려군 5천을 남하시키고
동시에 나주에서 수군 3천을 강주로 보내 상륙작전을 펼쳤다
물론 이는 단지 소격달을 돕기위한 것 뿐만 아니라
경남의 교통의 요지인 대야성 함락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었다
고려사절요 927년 4월
여름 4월에 해군장군(海軍將軍) 영창(英昌)ㆍ능식(能式) 등을 보내어 수군을 거느리고 가서
강주(康州) 하돌산(下突山) 등 네 고을을 공격하게 하였다.
고려수군이 처음 맞이한 상대는 남해태수 손평조 였다.
남해에 상륙하는 고려군 3천에 맞서 싸웠으나 역부족이었고
결국 남해태수 손평조는 자신의 거성인 이산성이 함락되면서 멸망하게 된다.

경남 남해의 대국산성
그리고 남해를 거쳐 하동으로 이동해 소격달군과 합류한 영창과 능식은
곧이어 왕봉규가 있는 강주공격을 준비하였다
손평조가 멸망했다는 소식과 고려군의 강함이 알려지자
호족들은 재빨리 중립을 선언하고 발을 빼버리고
왕봉규는 결국 고려군 3천과 소격달군 1천의 공격을 받게되었는데
사실 왕봉규가 가진 군대도 4천 가량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경북에서 고려군 5천이 더 내려온다는 소식과
고려의 계속되는 승전보에 그나마 남아있던 구원에의 희망도 사라져 버리고
병사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저 벼렸다
다른 호족들도 말만 중립이지
두들겨 팰때 도망못가게 하려고 빙 둘러싸고 있는 것 같은 형국을 만들어서
후백제로 탈출하기도 어려웠다.

고려수군의 공격루트
왕봉규는 이 소식에 목을 어루만지며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왕봉규 : 격달이가 곧 이 목의 주인이 되겠구나...
927년 4월
결국 강주성은 함락되고 왕봉규는 포박되어 소격달 앞에 끌려오는 신세가 된다
소격달은 자리에서 내려와 왕봉규에게 절을 한 후 그에게 침을 뱉었다
소격달 : 오늘에야 아버님과 어머님의 원수를 갚게 되는구나
왕봉규는 포박된체 고개를 숙이고 아무말도 없었다.
소격달 : 죽기전에 뭐라 할말이라도 있소이까?
왕봉규 : 너가 정녕 내 아들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리고 왕봉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된다
친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능욕한 원수
한편으로는 27년간 친아버지처럼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
그런 왕봉규를 죽인 소격달의 마음은 어땟을까?
웃었을까? 아니면 울었을까?
나로서는 그 마음을 알 수 없다
그리고 소격달과 그의 군대는 고려군과 합류하여 대야성 공격에 합류하는데
소격달의 장인 거창태수 한기열 역시 1천의 군사를 이끌고와 격달을 도왔다
3개월 후인 927년 7월
1만 5천의 고려군은 대야성을 함락시키는데 성공했다
이로서 서부 경남 전체를 고려가 석권하게 되었고
소격달은 강주 일대의 새로운 맹주로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소격달은 강주를 떠날 뜻을 내비치며
고모부 최유문을 신임 강주도독으로 추천했고
강주와 대야성 함락소식을 들은 왕건은 기뻐하며 그대로 따랐다.
왜그랬을까?
강주가 계속 지원을 받으려면 인질이 필요해서?
아니면 친부모와 양아버지가 모두 죽은 강주에 있기 괴로워서?

복수를 완성하고 난 소격달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던게 아닐까?
아마 12년에 걸쳐 원수를 갚고 나니 허무하지 않았을까?
25살 이후로 복수에만 메달려 있었으니
그 복수가 완성되었을때 커다란 허무감을 느꼇을 지도 모른다
어째거나 그렇게 소격달은 강주를 떠나 고려로 가서 고려의 장군이 되었고
그리고 후삼국 통일전쟁에 손을 보태게 된다
이 이후의 이야기?
이 이후의 이야기는 별개의 이야기로 다시 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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