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11월 11일은 동학농민군이 4일간의 치열한 격전끝에 우금치에서 관군-일본 연합군에 패배한 날입니다.
동학농민군의 2차 봉기 : 일본군이 경복궁을 강제 점령하고 내정간섭을 강화하자
이에 분개해 전봉준의 남접과 손병희의 북접이 연합.

반봉건-반외세의 의지로 일본군과 싸운 동학농민군.

하지만 일본군의 미제 개틀링 기관총때문에 동학농민군은 조일연합군의 상대가 되질 못함...
이때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은 농민이 죽게 되는데 무려 2만여명이 일본군에 의해 학살당하게 되죠..

<농민군을 처형할때 사용됐던 작두>
이후로 관군과 일본군의 잔인한 보복이 이어졌는데 이때 학살당한 사람들이 대략 3~50만, 한일병합때까지
100여만명이 죽어갔음. 구한말 조선인구가 약 2천만이었음 감안할때 엄청난 숫자가 아닐수 없음.

우금치 전투가 있었던 능선. 현재 부여-공주간 도로

<낡고, 찾는이도 없는 우금치고개 정상 외진 곳에 서있는 농민혁명기념탑>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기 이전에 우금치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이 일본에게 맞서 싸우다가
패배하고 많은 농민군이 죽어간날임을 기억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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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엄마 나 스무살때 죽었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