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그만 만나자."

무려 22년을 빠짐 없이 한자리에 모였던 어떤 이들의 모임
우리 모두가 알지 못했던 사이 허무하게 끝나 버린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될 그들의 이야기

당신은 그들을 알고 있는가


저는 일본군입니다

아니 일본군이었습니다

1945년 8월 1일
스무살에 일본군으로 강제 징병되어 끌려간 전쟁터

조선인이었던 저와 친구들은
일본의 전쟁을 치르러 만주, 사할린 등
머나먼 곳으로 끌려갔습니다

저는 그렇게 그곳에서 죽어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 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운이 좋았던 걸까요?
제가 입대한 지 2주 후 광복이 찾아왔습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서 집에 갈 수 있다니
기뻤죠

저를 포함한 1만여 명의 징병 조선인들이
집으로 보내주겠다는 소련의 말에
설레는 마음으로 열차에 올랐습니다

일본인 출신 일본군 63만 명과 저희들을 태운 열차는
그렇게 출발했고

열차가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저희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열차에서 내렸을 때 느껴졌던 차디 찼던 바람


그곳은 시베리아 포로 수용소
고향으로 보내준다는 말은 거짓이었던 거죠
저희는 그렇게 '일본군'으로 수용소에 수감됐습니다

영하 60도의 추위
하루 한 끼

살인적인 강제 노역
첫 겨울이 지나고 수만 명이 죽었습니다

이대론 여기서 모두 죽을지도 모를 상황
그래서 우리는 잘 그리지도 못하는 태극기를 그려
막사에 걸어 놨죠

우리가 '조선인'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하지만 의미 없는 짓이었죠
수용소에서 우린 그저 일본군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 2년, 3년이 지나고서야 풀려났습니다
하지만 이미 8000여 명의 동포들이
차가운 얼음 속에 묻혀 버린 뒤였습니다

기적적으로 살아서 돌아온 조국
그토록 바라던 조국
미치도록 돌아오고 싶었던 조국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저희를 바라보는 조국의 시선은


소련에서 왔단 이유만으로
저희는 감시, 연행, 고문을 당해야만 했죠
저희가 꿈꿔 왔던 조국은 더 이상 없었던 겁니다


1990년 한국이 소련과 수교를 맺었습니다
저희는 저희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릴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모였습니다
몇 남지 않은 생존자들이 45년 만에 모여 만든 모임
'삭풍회'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일본군에 강제 징병돼 시베리아에 억류됐던
조선인에 대한 사과와 보상'을 바라며 일본에 제기한 재판
어떻게 되었을까요?
"1965년 한일 청구 협정으로 이미 모든 보상은 이루어졌다" >
-2006년 동경 지방 법원 판결
2009년 동경 고등 법원 항소 기각
2011년 일본 최고 법원 상고 기각

일본은 저희들의 요구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진짜 슬프게 만들었던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조국과 국민들의 무관심
두 번이나 한국 정부의 도움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습니다

나라도 국민도
아무도 우리를 기억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우리는 늙고, 노쇠해

모두의 무관심에 지칠 대로 지친 우리
2012년을 끝으로 그만 만나자며 헤어졌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허무하게 끝나버린 기억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죠

이제 생존자는 8명 (2015)
우리가 있었다는 것을 당신만큼은 기억해 줄 수 있나요
저희에겐 기억될 권리란 없는 걸까요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 추모식에 참석한 생존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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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녀랑 사귀는중인데 자존감이 정말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