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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살인사건-논현동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 정상진의 충격적 전말

얼마 전에도 고시원에서 흉기로 인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2008년에는 그에 비할 바도 아닌 끔찍한 논현동 고시원 사인사건이 있었다.
한 고시원에서 화재를 일으킨 뒤 뛰쳐나오는 사람들을
칼부림으로 살인한 무서운 살인마였다.

살인마의 이름은 정상진
2008년 10월 20일 한 고시원에서 2003년부터 거주해오던 정상진은
고의로 화재를 일으킨 뒤 불을 피해 빠져나오던 고시원생들을
칼을 들고 복도에서 맞이했다

그때부터 뛰쳐나오던 사람들에게 무차별 칼부림
무려 6명이 사망했고 4명이 7명이 다쳤다.

정상진은 사형을 받았지만
피해자들은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병원비 부담에 시달렸다.
생계걱정하며 고시원에 살던 사람들이 묻지마 살인사건으로 당한 것도 억울한데
보상받을 길도 막막한 형편이다.

역대 살인사건-논현동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 정상진의 충격적 전말|작성자 사랑을 먹고사는 사람
프라임경제 이수영 기자입니다 | 프라임경제 이수영
[단독] ‘고시원 살인마’ 정상진 옥중 인터뷰
“기다렸던 경찰들이 들이닥친 순간···평화가 찾아왔다”
- 22살 여대생 등 6명 목숨 앗아간 ‘희대의 살인범’
- 기자와 접견하는 내내 단 한번도 시선 피하지 않아
- “빨리 형량 확정되기만 바란다···항소도 포기할 것“
“처음부터 경찰에 자수할 생각이었습니다. ‘일’을 끝낸 뒤 빨리 날 붙잡으러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죠. 그뿐입니다.”
지난해 10월 20일 서울 논현동 D고시원에 불을 지른 뒤 연기를 피해 도망치는 사람들을 끔찍하게 도륙한 ‘고시원 살인마’ 정상진(31). 기자는 ‘28**’이라는 수감번호가 새겨진 옥색 수의 차림으로 접견실에 들어선 정씨를 만난 순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의 첫인상은 6명의 생명을 참혹하게 빼앗은 살인마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유순했다. 가볍게 목 인사를 하며 교도관 곁에 앉은 정씨는 인터뷰 내내 차분하고 조리 있는 말투로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2008년 최악의 살인극이 벌어진 지 3개월. 베일 속에 감춰졌던 살인마와의 단독 인터뷰를 <일요서울>이 최초 공개한다.

한파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4일, 서울 구치소 접견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가족과 지인을 면회하려는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정씨와 만나기로 한 시간은 오전 10시 10분. 구치소 일반접견 원칙에 따라 인터뷰 시간은 단 10분간만 허용됐다.
약속된 7번 접견실로 들어서자 투명한 플라스틱 벽으로 가로 막힌 3평 남짓한 방에 교도관이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잠시 뒤 플라스틱 벽 너머의 문이 열리며 옥색 수의 차림의 30대 남자가 들어섰다.
깔끔하게 빗어 넘긴 머리·단정한 수의
앞머리가 조금 벗겨진 그는 1978년생이라는 프로필 보다 다소 노숙해 보였다. 경찰 조사 당시 두꺼운 마스크와 모자로 감춰졌던 탓에 정씨의 맨 얼굴을 본 취재진은 기자가 유일한 셈이다.
기자가 “유족들을 대신해 찾아왔으니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운을 떼자 정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취재에 협조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6명의 무고한 생명을 도살한 ‘고시원 살인마’와의 인터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살인범이라고 무조건 독방에 가두지는 않더군요. 다른 재소자들과 함께 단체실에 머물고 있습니다.”건강해 보인다는 물음에 정씨는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지난 11월 말 국립법무병원에서 정신감정을 마친 뒤 구치소에 머문 지 2개월 여. 그는 동료 재소자들과 무리 없이 생활하고 있는 듯 했다.
국선 변호인으로 선임된 이 모 변호사 외에 그를 찾아오는 손님은 전혀 없다. 그러나 정씨는 자신이 사회에서 머문 마지막 보금자리였던 고시원 쪽방에서 보다 사람의 온기에 좀 더 익숙해진 듯 했다.
지난 가을 대한민국을 충격과 공포에 빠트린 정씨에게 있어 유일하게 남은 것은 ‘후회’뿐이다.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번째 공판에서 정씨는 “후회하고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그는 ‘후회’라는 단어를 여러 번 사용했다.
“세상 사람들 손가락질 받아도 싸”
“얼마 전 처음 법정에 섰을 때 판사가 심경을 묻더군요. 많이 후회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앞으로도 재판이 여러 번 열릴 거라던데 그때마다 같은 얘기를 되풀이해야겠죠. 내가 저지른 짓에 대해서 후회스러울 따름입니다.”
그는 유가족과 희생자들을 향한 사과의 말은 오히려 아껴두는 듯 했다. 정씨의 손에 희생된 사람들은 그와 일면식조차 없었던 ‘제3자’들 뿐이었다. 유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죄송하다’는 짤막한 한마디가 돌아왔다.
“죄송하죠. 나 때문에 고통 받았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습니다.”
살인자의 입에 담긴 ‘죄송하다’는 말은 얼마만큼의 무게를 지니고 있을까. 사건이 벌어진 뒤 누리꾼들은 경찰에 정씨의 얼굴 공개를 요구하며 엄청난 비난 공세를 퍼부었다. 정씨는 자신이 던지는 사과의 말조차 혐오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사람들이 욕을 퍼붓고 손가락질을 해도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지은 죄를 다 인정하고 있거든요. 손가락질 받아도 싸죠. 쏟아지는 비난도 내 몫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덤덤한 반응이었다. 그렇다면 죽음의 공포와 살육의 쾌감이 공존하던 고시원에서 경찰에 의해 끌려 나오던 순간 정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무생각도요. 아무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경찰에 자수하려고 마음먹고 있었어요. 경찰이 조금이라도 빨리 출동해서 날 찾길 기다렸죠.”
현장에서 출동한 경찰에 순순히 항복했던 정씨는 삶에 대한 마지막 욕심마저 놓아버린 듯 했다. 그렇게 기다렸던 경찰이 자신을 붙잡는 순간 ‘평화가 찾아왔다’고 털어놓은 정씨. 물 흐르듯 말을 잇는 그의 표정은 기본적인 ‘희로애락’을 전혀 담고 있지 않았다.
눈물과 분노, 슬픔과 기막힘으로 얼룩져 기자의 손을 쥐던 유가족들과 부상자들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같았다. 정씨의 덤덤한 고백은 계속 이어졌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을 저질렀냐고 많은 사람들이 물었죠. 세상을 너무 비관적으로 바라봤던 게 잘못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런 끔찍한 짓은 저지르지 않았을 텐데요. 하지만 그 당시엔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전혀 못 느꼈습니다. 이렇게 구치소에 들어와 보니 이제야 모든 게 엉망이 됐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고시원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피해자의 피가 흥건한 전화기)
22살 여대생 이야기 꺼내자 고개 숙여
범죄 심리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씨의 범행 방식은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독특했다. 생존자를 통해 전해진(본지 758호 보도) 당시 상황은 한편의 잔혹 영화를 연상케 할 만큼 드라마틱했다.
밀폐된 고시원 방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는 사람들을 회칼로 난도질한 정씨는 2004년부터 틈틈이 범행을 계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도 이 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오히려 ‘다른 신문에 많이 실렸을 텐데 못 봤느냐’며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정씨는 “다만 범행을 결심하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렸을 뿐”이라고 말했다. 적어도 2008년 10월 20일 이전까지는 정씨에게 ‘마지막 이성’이 남아있었다는 얘기다.
“솔직히 범행을 저질러야겠다고 생각한 건 상당히 오래전이죠. 다른 기사에도 실렸을 텐데 못 보셨습니까? 범행을 저지르기까지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결심이 서지 않아 계속 미뤘을 뿐입니다. 범행 동기는 검찰에서 말한 그대로입니다. 향군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걸 피하려고 일을 저질렀습니다.”
수사관들에 따르면 살인범의 눈빛엔 일종의 ‘살기’가 풍긴다. 기자와 마주앉은 정씨는 인터뷰 내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수사관들이 말하던 ‘살기’와 비슷한 선뜩한 기분을 기자 역시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단 한순간, 정씨가 기자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인 순간이 있었다. 정씨의 손에 비참한 죽음을 맞은 6명의 희생자 가운데 가장 어렸던 고(故)서진(21·여)씨를 언급했을 때였다.
정씨는 자신이 난도질한 희생자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자가 ‘스물 한 살짜리 어린 여학생이 당신 손에 죽었다’고 말하자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정씨는 잠시 동안 입을 다문 채 기자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의 소중한 딸이었을 고인의 생명을 거둔 살인자 정씨. 그의 부모는 아들의 파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정씨의 따르면 그의 가족이 선택한 것은 무관심, 그리고 절연이었다.
“부모님께는 그저 죄송하죠. 당신 아들이 이 지경이 됐다고 하시면 아마 쓰러지실 겁니다. 내가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는 걸 어머니는 모르세요. 바로 위 누나만 사실을 알고 있죠. 다른 가족들과는 완전히 등을 돌린 상태입니다. 그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내가 저지른 짓을 알고 있는지 조차 잘 모르겠습니다.”
“경찰 기다리던 그때처럼···판결 기다린다”
정씨는 현재 구치소 안에서 종교 활동에 심취해 있다. 전도사, 집사로 활동하고 있는 교도관들로부터 성경 공부를 시작한 정씨. 그는 “방안에서도 매일 성경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이미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되돌릴 순 없잖아요.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을 생각입니다. 만약 사형을 언도받는다 해도 항소 따위는 하지 않을 겁니다. 젊은 나이에 내 인생이 이렇게 꼬여버렸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죠.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법원 판결에 내 목숨을 맡기는 일 뿐입니다.”
<이수영 기자> severo@dailysun.co.kr
인터뷰도 했네요 귀찮은 눈치.....
논현동 고시원에 불을 지르고 6명을 살해한 정상진(30·구속)씨는 '고시원 입주자를 살해하고 인질극을 벌이다 경찰에 의해 죽음에 이르겠다'고 마음 먹은 뒤 2004년 초부터 약 4년 동안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해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 조희진)는 11일 정씨를 살인과 현주건조물 방화치사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 10월20일 오전 8시께 강남구 논현동 D고시원 3층에 불을 지른 뒤 연기와 유독가스를 피하려 복도로 뛰어나오는 투숙객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러 6명을 살해하고 7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평소 D고시원 투숙객 및 관계자들과 마찰이 잦았던 정씨는 사건 발생 4년 전인 2004년 2월 살해와 인질극 등 범행 계획을 세우고 이후 수차례에 걸쳐 재래시장과 총포사 등을 돌며 사시미칼과 가스분사기를 비롯한 범행 도구를 사 모았다.
이같은 도구를 고시원 자신의 방에 보관하며 범행 시점 등을 궁리하던 정씨는 숙박료를 체납한 상황에서 사건 당일 오전 향토예비군설치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에 출석해야 했다.
정씨는 이 상황에서 자신이 조사를 받으러 나간 뒤 구금되면 그 사이 고시원 주인이 자신의 짐을 빼기 위해 방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했고 이 경우 범행 도구가 발각될 수 있다고 생각한 끝에 조사 예정일 아침에 범행을 실행키로 마음먹었다.
검찰은 정씨가 유년 시절부터 가족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으로 성장했으며 이같은 배경을 비관, 중학생이 된 이후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한편 정씨는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 강남경찰서의 의뢰에 따라 10월 말부터 약 한달 동안 국립법무병원에서 정신 감정을 받았다.
이후 병원 측은 "범행의 내용과 특성을 알고 의도적으로 범행했으며, 오랫동안 계획했다는 점에 비춰 사물변별능력이나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상태에서 범행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감정 종합 소견을 밝혔다.
김효진 기자 hjn252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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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부터 준비;
재판에서 후회한다고 했다던데 4년씩이나 준비한 무슨 후회-_-
감형 받으려고 쑈한거겠죠.
이 시키 2009년 5월 12일 교도소에서 죽었답니다.
이러니까 사형제도 부활시키라고 맨날 그러죠..... 세금으로 멕이는 밥그릇 갯수 줄어서 좋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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