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관속에 눈을 감은 채 누워있는 아들은 80년전 이 아이가 태어났을 때처럼 머리털이 하나도 없이 민둥민둥했다.
그렇지 돌아가신 아버지도 대머리였지, 그리고 할아버지도 대머리셨어.
두 분 다 환갑이 넘으면서 부터 머리가 빠지셨어. 그래.
나 혼자 중얼중얼 되뇌었다.
점쟁이의 예언처럼 난 아무리 해도 죽지 않았다.
목을 매어도 손목을 그어도 고층건물에서 뛰어 내려도 목숨은 질기게도 붙어있었다.
초등학교 때 과학실험실에서 보았던 플라나리아 처럼 내 몸뚱아리, 내 몸의 세포는 다시 재생이 되었다. 주기적으로.
이유는 알 수 없다.
여러 대학을 전전하며 취미처럼 학위를 수집했다.
생물학, 화학, 생명공학등등 하지만 내가 죽지않는 이유는 모른다.
아내가 죽었을 때가 기억이 난다.
아들의 죽음을 마주하니 이제껏 같이 살아왔던 사람들의 죽음들이 기억난다.
무엇보다 아내의 죽음.
병원 침대에 누워있던 아내는 침대 시트처럼 창백했다.
하얗게 샌 백발에 흐릇한 눈동자로 날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아내를 마지막으로 안았다.
수많은 약품 냄새 속에서 오랫만에 아내의 몸냄새를 맡았다.
눈물이 흘러 그녀의 메마른 볼위로 떨어졌다.
병원 의사들앞에선 아들행세를 했다.
아무도 내가 아내와 동갑이라는 것을 믿지 않을테니.
낳지도 않은 자식을 출생신고 하고 학교는 홈스쿨링을 하는 것으로 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은행계좌도 만들어 금융기록을 남기고 대학에도 갔다.
서른아홉의 만학도 행세를 했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난 있지도 않은 자식의 신분으로 바꾸었다.
그렇게 몇 번 하다보니 팔구십년이 지났다.
처음에는 부정,그 다음에는 두려움, 그 다음에는 무기력함이 밀려왔다.
너무 오랫동안 살아 온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보다 먼저 죽어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었다.
하지만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그 고통에도 적응을 하고
더 시간이 흐르고 언제부턴가 이젠 고통도 고통스럽지 않게 되었다.
사실 장례식에 다녀 오면서 내가 가장 공포스러웠던 것은 아들이 이름이 희미해서 기억이 잘 안났다는 점이다.
젊은 시절의 사랑도, 정열도 이세상 어떠한 새로운 지식에도 흥미를 잃었다.
심장은 더이상 뛰지 않고 열정이란 이미 빛을 바랬다.
너무 오랫동안 살아온 나에게,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경험한 나는
이제 사랑도,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매일 시들어 간다.
나는 서른 아홉이다. 구십년 째.
|작성자 사마중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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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스텝인데 난 내 자식 절대 아역 안 시킬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