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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조회 526 출처
이 글은 9년 전 (2017/1/11) 게시물이에요



언제까지나 당신을 기억할 것 입니다...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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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의대를 많이 가는데 돈 때문이라면 차라리 사업가의 길을
걷는 게 낫습니다”
 

“달콤하고 안락한 길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면 언젠가는
세계기구 총장도 되고 노벨상도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올바른 장소에서 해야 하며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故 이종욱 박사
 

 
 
 

             [故 이 종 욱 (대한민국 1945~2006)의 평가]
 

이종욱 박사는 1983년 WHO 서태평양 지역사무소의 한센병 자문관으로
국제기구 생활을 시작한 이후 20여 년간 스위스 제네바의 WHO 본부에서
활동해온 탓에 국내에는 이름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브룬트란트 노르웨이 수상이 UN 사무총장 자리를 마다하고 선택한 자리가
WHO 5대 사무총장이었다. 그만큼 기구의 중요성과 위상이 높고,
국제기구 서열로도 세 번째인 곳이 WHO인 것이다.
 

전 인류의 건강 증진과 질병 퇴치를 책임진 WHO에 처음으로 한국인이
6대 사무총장이 되었음에도 한국은 조용했고, '아시아의 슈바이처' '백신의 황제'
'Man of Action' 등 이종욱 박사의 뛰어난 업적에 세계가 칭찬을 하고 있는
동안 역시 한국은 무덤덤했다.
 

이종욱 박사가 과로로 쓰러져 서거할 때조차도 전 세계가 애도의 물결로
눈물을 쏟고 있지만 한국은 월드컵의 열풍에 있는 상태였다
‘전 인류의 주치의’이자 ‘성자’와도 같은 이종욱 박사의 삶과 업적은
세인들의 기억 속에서 그렇게 잊혀 갔다.
 
 
 
그는 각국 지도자들로부터 ‘청백리’로 불렸다.
생전 자신 명의의 집이 없어 임대주택에 살며 대기환경 보호를 위해
전기와 가솔린 겸용의 소형 하이브리드카를 몰고 다녔다고 한다.
 
고인은 생전에 돈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었다.
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과 욕심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고 한다.
 
안정된 "의사"라는 직함에 머무르지 않고 오로지 환자들을 위해 투신한
그에 대해 코피 아난 UN 사무 총장은 그가 조류 인플루엔자(AI)에 대한
전 지구적인 싸움에  최전선에 서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23년 동안 WHO 활동을 통해 보여준 고인이 삶은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가난하고 병든 인류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즉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 자체였다.
 

 
언제까지나 당신을 기억할 것 입니다... | 인스티즈

 
 

                        [故 이 종 욱 선생님의 일생 ]
 

평생을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던 그를 사람들은 '아시아의 슈바이처'
라고 불렀으며,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소아마비 발생률을 세계 인구 1만 명당
1명 이하로 낮춘 그를 '백신의 황제'라고도 칭했습니다.
 

<타임>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그를 뽑았고,
WHO 내에서는 '작은 거인' 'a Man of Action'으로 불렸습니다.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의예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와이대학교
보건대학원에서 보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총장은 서울대 의대 재학 시절, 경기 안양시 나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봤고, 이곳에서 가톨릭 신자로 봉사활동차 한국을 찾은
동갑내기 일본인 레이코를 만나 결혼하였다.
 
 

보다 많은 사람을 치유하고 싶었던 그는 WHO 서태평양 지역사무처
한센병 자문관으로 국제기구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서울의대를 졸업한 뒤 곧바로 피지에서 빈민층을 위한
의료구호사업에 매달렸다.
 

1994∼1998년 WHO 본부 백신국장 재직시에는 예방접종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시아 등 빈곤국 어린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WHO회원국들에게
적극적인 지원과 호소로 펀드를 조성했다.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지구상에서 풀리오(소아마비)의 완전 퇴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1998∼2002년 WHO사무총장 특별대표, 결핵국장으로 재직하는 동안에는
북한을 방문해 의료실상을 살피고 인도적 측면에서 북한의 결핵,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 적극 지원했다.
 
서남아시아 쓰나미와 인도, 파키스탄의 지진 등 대규모 재난재해시
이재민 구호에도 적극 나섰으며, 사스를 비롯해 범세계적인 유행과 피해가
예견되는 신종 인플루엔자 등 질병 퇴치를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20여 년간 주요 요직을 거치며 뛰어난 성과를 남긴 그는 2003년 7월,
한국인 최초로 UN 전문기구인 WHO의 6대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2003년 WHO 사무총장에 취임한 이후 3년 동안 긴급한 의료지원을
필요로 하는 60개국 이상을 방문했고, 에이즈를 비롯한 각종 질병의 퇴치기금
마련을 위해 각국 정부 지도자와 기업인, 유명인사들의 관심을 촉구하고
협력을 구하는데 헌신했다.
 
또 조류독감 등 위급한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한 국제적 협력시스템의
구축에 전력하였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초청으로 7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G8(선진7개국+러시아) 정상회담에서 연설할 예정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연례총회 연설을 준비하던 이종욱 박사는
직원들에게 자신의 비전을 이렇게 밝혔다.
 
“세계적인 노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약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병원이 없어서 검사와 진단,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2006년 5월 22일 총회 준비 중 과로로 쓰러져 서거하자
'세상에서 가장 큰 의사'를 잃은 슬픔으로 전 세계에는 애도의 물결이 일었다.
 

   
  언제까지나 당신을 기억할 것 입니다... | 인스티즈
 
 
 


                    [故 이 종 욱 선생님의 말씀 ]
 

화려한 외교관을 상상하지 마라. 그리고 편협한 인종주의와 속 좁은 애국심 같은
것으로는 국제기구에서 견디기 힘들다.
더군다나 열정 없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죄악이다.
 
 

이종욱 박사님은 무조건 있는 사람, 잘사는 국가가 이들 후진국, 못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자선을 베풀고 인적, 물적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것이 불평등을 가장 빨리 해소하는 방법이라고 여겼다. 
 

 

안 된다고 하면 수많은 이유가 있고, 그럴 듯한 핑계가 생기지.
그러나 하려고 하는 사람은 일단 시작해서 밀고 가야 해. 그리고 이 일이 과연
옳은 일이고 인류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가에 대해서만 고민해애 해.
 
 


 

공항 출입국사무소 앞에 줄을 서 있을 때였다.
WHO 사무총장이니 입국철자가 짧은 스위스나 유럽연합 출입국 쪽으로 가도 될
터였다. 하지만 이종욱 박사님은 일부러 "나는 한국인이니 여기서는 외국인
출입국으로 가야 한다."고 하면서 긴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렸다.

“젊은이들이 의대를 많이 가는데 돈 때문이라면 차라리 사업가의 길을
걷는 게 낫습니다”
 

“달콤하고 안락한 길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하고픈 일을 하면 언젠가는
세계기구 총장도 되고 노벨상도 받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올바른 장소에서 해야 하며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故 이종욱 박사
 

 
 
 

             [故 이 종 욱 (대한민국 1945~2006)의 평가]
 

이종욱 박사는 1983년 WHO 서태평양 지역사무소의 한센병 자문관으로
국제기구 생활을 시작한 이후 20여 년간 스위스 제네바의 WHO 본부에서
활동해온 탓에 국내에는 이름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브룬트란트 노르웨이 수상이 UN 사무총장 자리를 마다하고 선택한 자리가
WHO 5대 사무총장이었다. 그만큼 기구의 중요성과 위상이 높고,
국제기구 서열로도 세 번째인 곳이 WHO인 것이다.
 

전 인류의 건강 증진과 질병 퇴치를 책임진 WHO에 처음으로 한국인이
6대 사무총장이 되었음에도 한국은 조용했고, '아시아의 슈바이처' '백신의 황제'
'Man of Action' 등 이종욱 박사의 뛰어난 업적에 세계가 칭찬을 하고 있는
동안 역시 한국은 무덤덤했다.
 

이종욱 박사가 과로로 쓰러져 서거할 때조차도 전 세계가 애도의 물결로
눈물을 쏟고 있지만 한국은 월드컵의 열풍에 있는 상태였다
‘전 인류의 주치의’이자 ‘성자’와도 같은 이종욱 박사의 삶과 업적은
세인들의 기억 속에서 그렇게 잊혀 갔다.
 
 
 
그는 각국 지도자들로부터 ‘청백리’로 불렸다.
생전 자신 명의의 집이 없어 임대주택에 살며 대기환경 보호를 위해
전기와 가솔린 겸용의 소형 하이브리드카를 몰고 다녔다고 한다.
 
고인은 생전에 돈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었다.
하지만 일에 대한 열정과 욕심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고 한다.
 
안정된 "의사"라는 직함에 머무르지 않고 오로지 환자들을 위해 투신한
그에 대해 코피 아난 UN 사무 총장은 그가 조류 인플루엔자(AI)에 대한
전 지구적인 싸움에  최전선에 서 있었다고 회고하였다.
 
23년 동안 WHO 활동을 통해 보여준 고인이 삶은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가난하고 병든 인류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弘益人間) 즉 인류 보편의 가치를
실천하는 것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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