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마초 불법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일제강점기 처음으로 조선마약취체령을 통해 대마초를 불법으로 분류했고 광복후 군정법령에 따라 규제되었으나 수 많은 용도로 유통되었던 삼베의 채취가 자유로웠던 당시 대마를 거래하거나 흡연했다고 처벌받는 이는 없었다. 이후 마약류로 분류 되었다가 다시 습관성의약품으로 제정되었다가를 반복 한 뒤 최규하 정권 시절 대마관리법이 만들어지고 이후 마약법, 향정신성의약품 관리법과 통폐합되어 쭉 마약으로 분류되어 중국과 함께 대마초에 관해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규제를 가하는 국가로 이어지고 있다.

사실 73년 이전에는 대마초가 '마약'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었는데, 박정희 정권 당시 미국의 압박으로 강력한 처벌을 가하기 시작했다. 닉슨대통령이 '공산주의자들이 피우는 담배'로 생각해 자신의 권력유지에 위협이 된다고 결론내리고 전 세계 대마초를 관리하고 규제하려는 욕심이 한국에게 까지 넘어온 것. 새마을운동을 벌이던 박정희 정권은 대마초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장발 단속까지 하며 히피즘의 확산을 막았고 미국의 반 대마 정책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 이전까진 서울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대마초가 단속이 시작되고 나서 사라졌으며 대마초 흡연으로 수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구속되었고 대마초 흡연은 최대 사형까지 가능했다.
-박정희의 아들이 대마초를 피워 감방생활을 한건 비이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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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초 불법화의 뒷배경에는 복합적인 정치 그리고 경제적인 이유가 숨어있다.1937년 미국에서 마리화나 세금법이 제정되고 대마초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시작됐을 때 앞장섰던 사람은 연방마약관리국의 국장 '헨리 안스링거'인데, 헨리 안스링거는 멜론은행의 은행장이며 앤드류 멜론과 사돈 사이고 멜론은행의 가장 큰 고객은 화학회사
듀폰이었다.


화학섬유를 개발해 재미를 보려던 듀폰에게 최대의 적은 대마였고 대마는 일반인이 별 기술없이 재배와 대량생산이 가능한 유일한 천연섬유였기 때문에 나일론과 레이온의 시장 진입을 막는 큰 걸림돌이었다. 이에 듀폰은 자신의 인맥을 총 동원하여 마리화나의 불법화에 공 들였다. 여기에 신문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까지 개입하며 목재 펄프 사업에 뛰어들었던 허스트는 대마 펄프의 공격적인 시장 확장을 경계했다. 현재 대마초 합법화가 활발히 진행중인 미국의 경우 허스트를 거짓말쟁이 사기꾼으로 보는 이유는 간단한데, 허스트가 개시했던 대마초의 위험성을 알리는 신문광고가 " 대마초가 멕시코 불법 이민 노동자들이 당신의 아내를 겁탈하게 만든다", "유색인종이나 찾는 저급한 마약" 등등 유언비어나 다름없는 문구로 시민들을 선동했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헨리 안스링거와 허스트의 사업은 성공했고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다.

-후에 허스트의 집에서 대마초 재배가 발각된건 비이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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