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529
1972년 10월. 박정희 ‘10월 유신’ 선포
<대통령 직선제 폐지, 연임 무제한, 국회의원 1/3 대통령이 임명, 기본권 제한하는 ‘긴급조치’ 가능>
다음해 1973년 10월 2일. 서울대학교 문리대에서 유신 반대 시위 시작,
전국으로 확산. 학생들 두드려맞고 끌려감.

그 서울대의 최종길 교수,
“ 부당한 공권력의 최고 수장인 박정희 대통령에게 총장을 보내
항의하고 사과를 받아야 합니다. ”
이 말이 중앙정보부에 보고됨. 그런데 중앙정보부에 최종길 교수의 동생이 있었음.
동생은 내용을 모른체 상관의 호출을 받음.
“자네 형님에게 뭐 좀 물어볼 게 있는데.”
그 말에 동생은 형님을 중앙정보부로 호출함.
" 형님, 동생 직장 구경도 할 겸 한번 들르시지요”
" 허허, 어, 그래. 동생 직장을 다 구경하는구나. "
그 날 퇴근 무렵 동생은 현관에서 형이 맡겨놓은 주민등록증을 발견함.
그리고 사흘간 그게 그대로 있는 것을 봄.

“오늘 새벽 당신 형이 조사 도중 화장실 창문으로 뛰어내려 자살했어.”
동생은 현장으로 가보고 시신이 없어지고 현장 보존이 안 된 것을 봄.
바로 중앙정보부에게 형의 명예를 지켜달라고 요구함.
간첩누명, 종북몰이 붙이지 말라는 것.
그러자 중앙정보부가 그에게 각서를 요구함. 이렇게 적어라.
“ 조국을 배반한 형이 한없이 원망스럽지만,
그 죄가 신문과 호적에 남지 않게 해주세요. "
동생 최종선은 고민하다 정신병원에 입원함.
그러나 몇 달 뒤 다시 중앙정보부로 돌아옴.
그렇게 간첩의 동생으로 7년을 더 악착같이 일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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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고 최종길 교수 사건의 공소 시효를 며칠 남기고 새로운 사건 자료들이 공개됨.
재수사 들어감. 그러나 증거없음으로 종료됨.
동생이 검사를 찾아가자 검사는 중앙정보부요원인 줄 알고
"그냥 대충 덮는거지요 뭐. 허허." 이 함.
2001년 3월12일
최종길 교수의 동생 최종선은 새로운 증거를 내세우며
형 최종길의 고문치사 의혹을 주장함.
2006년.
법원은 이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함.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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