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우(項羽)
중국역사상에서도 짝을 찾을 수 없는 최고의 무용을 자랑하며 '역발산기개세', '서초패왕' 등의 별칭으로 불리는 항우는 많은 중국 사학자들에게 "과연 영웅이라 불릴 수 있겠느냐?"는 참혹한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그 이유 중의 하나로 대규모 학살을 수차례 자행하였다는 점이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들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찾아본 항우의 학살기록입니다.
-양성주민 생매장-
"항우라는 위인은 날래고 용감하며, 간교하고 남을 잘 해칩니다. 항우가 옛날 양성(襄城)을 공격할 때, 성이 떨어지자 그곳의 성민들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습니다. 그가 지나간 곳에는 풀뿌리 하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무참히 살육을 행했습니다."
: '고조본기'에서

항우본기로도 위의 일을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
+항우본기)
항량은 즉시 본대를 이끌고 설(薛)로 들어간 다음 패전 책임을 물어 주계석을 죽였다. 항량이 그 전에 항우(項羽)를 시켜 별동대를 이끌고 가서 양성(襄城)을 공격하게 했으나, 진나라 병사들이 굳게 지켜 쉽게 함락시킬 수 없었다. 이윽고 양성이 함락되자 항우는 성안 사람들을 모두 구덩이를 파고 묻어 죽였다.
-신안 대학살-
이윽고 진군의 행렬이 신안(新安)에 이르렀다. 당시 제후군의 군리와 사졸들은 모두 옛날 요역에 징발되어 여산릉(驪山陵) 공사에 동원되었거나, 하투(河套) 지방에 머물며 변경지역의 수비병이 되었거나, 아니면 서북쪽의 장성(長城) 축조 공사에 동원되어 관중지방에 살면서 진나라 관리로부터 인간이하의 대접을 경험했던 사람들이었다. 이윽고 진나라 군사들이 제후군에게 항복하자, 제후군의 군리와 사졸들은 그들을 마치 포로나 노예처럼 대하며 모욕을 가했다. 진나라 군사들이 모여서 웅성거리며 말했다.
"장한 장군 등이 우리를 속여서 제후군에게 항복을 했다. 오늘 우리가 진군을 파하고 관중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제후들은 우리들을 그들의 노예로 삼아 동쪽으로 데려갈 것이다. 그리되면 우리들의 부모처자는 진나라로부터 모두 죽임을 당하고 말 것이다."
제후군의 장수들이 그 소리를 몰래 듣고 항우에게 고했다. 항우가 즉시 경포와 포장군을 불러 의논한 다음 말했다.
"여전히 수가 많은 진나라 항졸들이 아직도 마음속으로 우리들에게 복종하지 않고 있다. 관중에 들어가서 그들이 우리들의 명을 듣지 않는다면 일이 매우 위험하게 될 것이다. 차라리 여기서 그들을 습격하여 모조리 죽이고 장한, 장사(長史) 사마흔, 도위(都尉) 동예(董翳) 등 세 사람만을 데리고 진나라에 들어가야 되겠다."

▲새벽녘에 진군을 습격하는 초군
그래서 초군은 야밤에 진나라 항졸들을 기습하여 20여 만에 달하는 사람들을 신안성(新安城) 남쪽에 구덩이를 파고 묻어 죽였다.

나는 40만인데 뭐...
-자영살해, 함양방화와 주민학살-

▲불타는 함양궁
며칠 후에 항우는 군사를 이끌고 서진하여 함양으로 들어가 성중의 백성들을 모두 도륙하고, 항복한 진왕 자영(子嬰)을 죽였다. 이어서 진나라의 궁궐에 불을 질렀다. 궁궐을 태우는 불길은 3개월이 지나도록 꺼지지 않았다. 이윽고 항우는 진나라의 보물과 부녀자들을 취하여 동쪽으로 물러갔다.
-제나라 학살-
한(漢) 2년(B.C 205년) 겨울, 항왕이 거느린 초군이 성양(城陽)에 이르자, 제왕 전영 역시 제군을 이끌고 나와 초군과 조우했다. 양군이 회전에 들어갔으나 싸움에서 패한 전영은 평원(平原)으로 달아났다. 평원의 백성들이 전영을 죽였다.

항우는 계속 북진하여 제나라의 성곽과 가옥을 불살라 버리고, 자기에게 항복한 전영의 군사들을 모두 구덩이에 산채로 파묻어 죽인 다음 노약자나 부녀자들은 밧줄에 묶어 포로로 삼았다. 항우가 계속 북진하여 북해에 이르는 동안 도중의 많은 고을의 백성들을 몰살시켰다. 이에 초군의 만행에 분개한 제나라 사람들이 서로 모여들어 반기를 들었다. 이때 전영의 동생 전횡(田橫)이 제나라의 도망병 수만 명을 수습하여 성양에서 몸을 일으켰다. 항왕이 제 땅에 남아 성양을 여러 차례 공격했으나 결코 함락시킬 수 없었다.
-외항 학살 미수-

항우는 즉시 동쪽으로 나아가 진류(陳留)와 외황(外黃)을 공격했다. 그러나 외항은 쉽게 함락되지 않다가 며칠이 지나서야 항복했다. 항왕이 노하여 외항의 15세 이상 되는 성인 남자 모두를 성의 동쪽 끝으로 끌고 가서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라고 명했다.
당시 외황(外黃) 현령(縣令)의 문객들 중에 13살 난 아들을 둔 사람이 있었다. 그 아이가 항우를 찾아가 말했다.
"강포(强暴)한 팽월이 범하려고 해서 외황의 백성들이 두려움에 떨다가 짐짓 항복한 척 하고 대왕이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왕이 오시더니 외항의 백성들을 모두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려고 하십니다. 어찌 백성들이 대왕께 몸을 의탁하려고 하겠습니까? 이곳 외황 동쪽 양나라 땅의 10여 개 성은 모두 두려워하여 필사적으로 항거하며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항우 앞에서 안떨리나? 아이 깡다구 클라스 ㄷㄷㄷㄷㄷ...
항왕이 그 아이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외황의 백성들을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려는 생각을 거두고 용서했다. 이윽고 항우의 군대가 동쪽으로 진격하자 외항과 수양(睢陽)에 이르기까지 그 소문을 들은 양나라의 성들은 모두 다투어 항복해 왔다.
▶▶과거, 제나라에서 그렇게 쳐죽이고 가는 곳마다 불태워 버릴 땐 결코 굴복하지 않던 사람들이, 유화책을 조금 쓰니까 항복을 하기 시작합니다. 13살 아이도 알만한 이치를 항우는 왜 몰랐을까요?....
이외에도 사람을 태워 죽이거나 삶아 죽였다는 내용이 적잖게 나옵니다. 이토록 잔혹한 항우에게 민심이 등을 돌린 건 당연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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