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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유승민
(...중략)
20년 이상 승민 형을 겪으면서 그의 성정을 한마디로 하자면 “거친 따뜻함”이다. 솔직히 승민 형과 내 성품은 다르다. 종교도 다르다. 이념적 성향이나 경제 혹은 경제학에 대한 철학에도 차이가 있다. 그는 나보다 훨씬 집요하고 정확하고 저돌적이다. 글과 몸짓에 그것이 묻어난다. 행동도 엄청 빠르다. 사석에서는 나는 도저히 입에 담지 못할 거친 말도 한다. 일에 있어서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다. 실수를 했다간 그의 ‘거친 언어’가 쏟아진다. 좀 부드럽게 지적해 줘도 되겠구만. 형은 칼 같이 지적한다. 언제든지 눈물 흘릴 준비가 되어 있는 나와 달리 눈물도 별로 없어 보인다. ‘유승민은 까칠하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다.
그러나 그는 따뜻한 사람이다. 21년 전 나는 KDI의 막내 신입이었다. 선배 팰로우들의 활약에 주눅 들어 마치 드라마 ‘프로듀사’의 백승찬 마냥 혹시 실수라도 할까봐 매사 긴장의 연속이었다. 꿈꾸던 직장에 들어왔지만 거대 조직에 홀로 버려진 듯한 외로움을 느꼈다. 직장생활 한 지 3주 쯤 되었을까, 점심식사를 한 시간 정도 앞두고 전화가 울렸다. 신입 인사 때 얼굴 한 번 본 것 외에 마주친 적 없던, 당시 재벌이슈 등으로 KDI 내에서 가장 바쁘고 잘 나간다던 유승민 선배였다.
“약속 없으면 밥 같이 먹자.” 자기 차에 태워 데리고 나갔다. 어디 근처 식당에 가나 했더니 계속 차를 몰아 광화문 쪽으로 갔다. 한 식당에 자리를 잡으니 승민 형의 동창인 듯한 분이 왔다. “우리 직장에 새로 온 친구인데, 환경 분야라고 하니 앞으로 도움 주고 교류도 하면 좋겠다.” 알고 보니 외교부에 근무하면서 당시 막 시작된 환경외교를 담당하는 분이었다. 돌아오면서 KDI에 잘 적응하는 법에 대해 자기 경험을 곁들여 소상히 얘기해 주었다. 긴장한 내 모습을 보고 무심한 듯 툭툭 농담도 던져 주었다. 신입시절을 겪은 모든 직장인들은 다 알 거다. 그런 선배가 얼마나 고맙고 든든한지.
그 후 나는 대학에 자리 잡았고 승민 형은 정치권으로 들어갔다. 승민 형과의 오랜 인연은 내가 안철수 캠프에 가면서 흔들릴 수도 있었다. 2012년 내가 안철수 후보를 돕겠다고 하자 한 선배가 말했다. “너 그건 승민 형에 대한 배신 아니냐”고. 승민 형은 2007년 한나라당 박근혜 후보 캠프의 핵심이었고, 2012년에도 박근혜 후보를 돕고 있었으니 그와의 인간적인 관계를 생각할 때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승민 형을 찾아가 왜 내가 안 후보를 돕고 싶은지 내 뜻을 전했다. 아무 말 없이 담배만 태우던 형이 말했다. “난 네가 정치판에 깊이 들어오는 것 자체가 싫지만, 정 뜻이 그렇다면 해야겠지? 또는 니 선택을 존중한다.”
2012년 11월 23일 안철수 후보의 전격 사퇴가 발표되었다. 바로 그날 안 후보를 지지하는 지역조직인 충남내일포럼 발족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새마을호 열차 안에 있던 내 핸드폰은 기자들이 찾는 전화로 뜨거웠다. 머리는 복잡하고 가슴은 답답했다. 순간 승민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울 도착이 몇 시냐고 물으면서 할 말이 있으니 도착 즉시 어디로 오라는 것이었다. 밤 11시가 넘어 영등포역에 내렸다. 그렇게 급히 만났거늘 형을 별 말이 없었다. 그저 이런 후유증은 수개월 가니 마음 단단히 먹으라고 했다. 2002년, 2007년 대선 실패를 겪은 형의 눈에 여전히 KDI 신입 같은 내 모습이 어지간히 안쓰러웠나 보다.
헤어지기 직전, 승민 형은 나에게 책 한 권을 소개해 줬다. 조지훈님의 “지조론.” 위로인지 비판인지 모르겠으나 형은 “너는 이런 일에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면서 그 책 한번 읽어 보라고 하였다.
형은 지금까지 힘든 일이 있을 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선배로 내 곁에 있다. 내가 다른 생각을 가졌어도, 다른 캠프를 도왔어도, 승민 형은 그 선택을 존중해 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었다. 형 주변에는 형을 닮아 까칠한 후배들이 많다. 그들이 종종 승민 형의 정치철학과 다른 길을 걷거나 애정 어린 또는 주제넘은 충고를 해도 형은 그들의 논리에 옳은 부분이 있다면 인정해 주었다.
마찬가지로 승민 형 역시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에 거침없이 쓴 소리를 쏟아냈다. 그는 2008년 MB 정부 집권초기 한반도 대운하 찬반 여부를 묻는 기명 설문조사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 옆에 ‘반대’라 표기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었다. 누구 못지않게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반대했던 나였기에 승민 형이 당당히 반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난 실망했을 것이다. 자신에 대한 후배들의 직언을 ‘배신’이 아닌 ‘충언’으로 받아들이듯, 자신의 ‘직언’도 정부 여당에 대한 ‘충언’이기에 당당했으리라.
그 동안 어떤 일이 있었기에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원내대표의 관계가 오늘과 같은 파국을 맞이하게 됐는지 나는 잘 모른다. 가끔 만날 때도 형은 그런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승민 형이 자기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해 타산적이고 전략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부드럽고 세련된 사람이 아닐지는 모르지만 머리 굴리고 이해관계에 빠른 사람은 절대 아니다. 자기 철학이 있고, 무엇이 옳은지 항상 고민하고, 고민의 끝에 어떤 결론에 도달하면 그대로 밀어붙이는 그런 사람이다.
마지막으로 승민 형이 추천한 책, ‘지조론’의 한 구절을 여기에 옮긴다.
(끝)
유승민이 제발 홍준표 이겼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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