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시집 '구관조 씻기기' 시 모음
(서글픈 백자의 눈부심, 박상수 평론가의 평 中)


이 책은 새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새를 다뤄야 하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비현실적으로 쾌청한 창밖의 풍경에서 뻗어
나온 빛이 삽화로 들어간 문조 한 쌍을 비춘다
도서관은 너무 조용해서 책장을 넘기는 것마저
실례가 되는 것 같다
나는 어린 새처럼 책을 다룬다
"새는 냄새가 거의 나지 않습니다. 새는 스스로 목욕하므로 일부러 씻길 필요가 없습니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읽었다 새를
키우지도 않는 내가 이 책을 집어 든 것은
어째서였을까
"그러나 물이 사방으로 튄다면, 랩이나 비닐 같은 것으로 새장을 감싸 주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긴 복도를 벗어나 거리가 젖은 것을 보았다
황인찬, 구관조 씻기기

조명도 없고, 울림도 없는
방이었다
이곳에 단 하나의 백자가 있다는 것을
비로소 나는 알았다
그것은 하얗고,
그것은 둥글다
빛나는 것처럼
아니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있었다
나는 단 하나의 질문을 쥐고
서 있었다
백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많은 여름이 지나갔는데
나는 그것들에 대고 백자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여전했다
황인찬, 단 하나의 백자가 있는 방 中

낮은 곳에 임하시는 소리가 있어
계속
눈앞에서 타오르는 푸른 나무만 바라보았다
끌어내리듯 부르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마음이 어려서 신을 믿지 못했다
황인찬, 낮은 목소리 中

어떤 파에는 어떤 파꽃이 매달리게 되어 있다
어떤 순간에나 시각이 변경되고 있다
저 영화는 절정이 언제였는지 알 수 없이 끝나 버린다
그런 익숙함과 무관하게
찌개가 혼자서 넘쳐흐르고 있다
불이 혼자서 꺼지고 있다
나는 너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지나친다
황인찬, 발화 中

맞은편에 있는 사람은 웃지 않았다 이걸 먹으라고,
죽지 않는 과일을 내미는 손이 있었다
백의의 남자 간호사가 문밖에서 시간이 다 되었음을 알리는 것을 보았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고 그가 물었는데,
죽은 것이 입에 가득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황인찬, 번식 中

아카시아 가득한 저녁의 교정에서 너는 물었지 대체 이게 무슨 냄새냐고
그건 네 무덤 냄새다 누군가 말하자 모두가 웃었고 나는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어
다른 애들을 따라 웃으며 냄새가 뭐지? 무덤 냄새란 대체 어떤 냄새일까? 생각을 해 봐도 알 수가 없었고
흰 꽃잎은 조명을 받아 어지러웠지 어두움과 어지러움 속에서 우리는 계속 웃었어
황인찬, 유독 中

체리를 씹자 과육이 쏟아져 나온다 먹어 본 적 있는 맛이다 이걸 빛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그건 먹어 본 적 없는 맛이다
나는 벚나무 아래에서 체리 씨를 뱉는다 죽은 애들을 생각하며 뱉는다
동양의 벚나무 서양의 벚나무는 종이 다르다 벚나무에서 열리는 것은 체리라고 부른다 벚나무는 다 붉다 벚나무는 다 죽은 애들이다
나는 벚나무 아래에서 체리 씨를 뱉는다 벚나무 밑에는 시체가 묻혀 있고 그래서 더욱 붉고 그것은 전해지는 이야기로
체리를 씹자 흰 빛이 들썩거린다 체리 씨를 뱉으면 죽은 애들이 거기 있다
황인찬, X 中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황인찬, 무화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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