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올해 43세, 14살 12살 아들 딸 키우고 있고 현재 캐나다 거주중입니다
진짜 속상하고 화가 가라앉질 않는데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 조언을 구합니다. 제가 정말 손톱만큼도 양심이란게 없는 여자인지... 많은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고 제 생각이 다르다면 억울해도 참아보겠습니다.
저는 캐나다 이민온지 3년째입니다.
남편과 저는 캐나다에서 외노자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어요. 남편은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캐나다에 처음
도착하자마자 상당히 큰 건축회사에 입사해서 죽어라 노가다 중입니다. 나무 나르기, 물건 옮기기등 밑바닥 막노동부터 시작했어요, 한국에서 안해본 일 하느라 몸도 망가지고 손이 성한곳이 없어 너무 안쓰러워요. 그래도 남편이 그 회사에 들어간 덕에 영주권도 받았구요. 지금은 3~5만불 내외 작은 레노베이션은 직접 팀 꾸려서 하는 정도 되었습니다.
저희는 처음 애들 유학으로 학생비자 받고 저희는 동반 비자 받아 입국했구요. 캐나다 들어와서 워크퍼밋 받고 회사에서 다행히 영주권 스폰해주셔서 이민 정착에 성공한 케이스입니다.
저는 파트타임으로 오전8시30분~2시 30분까지 브런치카페에서 일하고 아이들 학교에서 돌아오면 잠깐 같이 있다가 오후 6시~9시까지 스시레스토랑 주방에서 시간당 12불씩 받고 쿡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일하는 곳이 집에서 도보로 5분정도 걸리는곳이라 저녁 시간에 애들만 두고 와도 많이 불안하진 않네요. 애들도 가끔 저녁 먹으러 가게에 오기도 하구요. 이제 제법 집안일도 돕고. 스스로 할일은 알아서 합니다.
저희 부부는 한국에서 대기업 사내커플이었습니다. 둘 다 서울 중상위권 대학, 대학원 나와 대기업에 취직해 저는 10년 이상 근무했었고, 남편은 17년 연봉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어요.
양쪽 부모님 도움 전혀 없이 결혼했고, 남편은 결혼전에
시댁식구들 도와주느라 모아 둔 돈 1000만원도 없이 회사에서 임직원 전세 대출 3천만원, 거래은행에서 4천 대출해 6천 8백짜리 전세로 시작했구요. 저는 혼수 및 예단값으로 5천정도 가져왔습니다. 결혼 후 둘이 맞벌이하고 연초에 ps 나온걸 합치니 1년만에 현금 1억 모았더라구요. 다시 대출 받아 24평 아파트 구매하고, 4년 후 또 38평으로 갈아타며 집을 늘렸네요. 융자 받아 집 사고 융자 갚고 다시 융자 받아 갚고... 사실은 남편이 연봉이 많은걸 알고 시댁 식구들이 맨날 죽는 소리하며 손 벌려서 일부러 빚내서 집사고 여유돈 없이 빚 갚아가는데 주력했던것도 있어요.
저희가 나름 한국내에서 입지가 탄탄했음에도 이민에 목을 메었던 이유가 그 당시에서 백만개가 넘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크게 세가지에요.
1. 직장내 갈등
2. 시댁과의 갈등
3. 아이들 교육환경
1. 직장
직장에서의 갈등은 말해 뭐합니까? 전 직장 생활10년동안 단 하루도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었어요. 큰일은 관심없고 해도그만 안해도 그만인 사소한 일에 테클걸고, 말도 안되는 트집잡고 오늘의 아군이 내일의 적이 되는 일들을 수차례 겪으면서 나처럼 쉽게 상처받고 멘탈이 약한 사람은 견디기 힘든곳이라는것을 뼈저리게 새기며 하루하루 약먹어 가며 버텼네요. 어디하나 모자라지도 않는데 열등감은 폭발하고, 자존감 바닥치고 우울증 걸려 죽을것 같은데 나 빼고 다 잘난듯 행복한듯 회사 즐겁게 다니는것 같더라구요. 저는 26층, 남편은 4층에 근무했는데 얼굴 볼일도 점심 같이 먹은 적도 몇번 안되요... 점심 시간까지 일의 연장이라... 매일매일 다른 사람들과 점심 약속을 잡아야하는 이상한 시스템도 저를 무척 괴롭히더라구요
2. 시댁...
거지근성 아주버님 내외와 시누들도 문제지만 제일 큰 문제는 시어머니..... 시어머니는 전생에 아버님 종이었던것 같아요. 시댁 이야기는 날을 새도 모자르지만 정말 충격적이고 잊혀지지 않는 에피소드 하나만 적어볼게요.
결혼 후 두어달쯤 지났을때 시댁에서 매운탕을 끓여 밥 먹을 때였어요.
그 전에도 종종 밥 먹을 때보면 어머니는 본인 밥을 따로 푸지 않아요. 제가 어머님 밥을 퍼놓아도. 손도 안대고 다시 밥솥에 부어버리세요. 그리고 아버님 남긴 밥에 남은 국을 말아 드시더라구요. 아버님 식사 중에는 옆에서 시중들고 계세요. 국 식으면 다시 데펴서 가져오고 생선살 발라주고... 아버님 식사 다 하시면 남은 밥(매운탕 먹을 때 밥 상태 아시죠? 뻘건 국물에 거무튀투한 생선 분비물같은거 다 묻어있는... 보기만 해도 비린내 나고 더러운) 에 남은 매운탕 찌꺼기 (생선살은 절대 안먹고 눈알 부위, 지느러미, 뼈다귀, 생선살 찌끄레기)만 쪽쪽 빨아서 드시더라구요. 어머님 식사할때 옆에서 보는것만으로도
속이 안좋아요. 그리고는 착한 아내, 희생하는 어머니 코스프레하세요. 나의 희생으로 애들 이만큼 잘 키우고 아버님 아픈데 없이 잘 산다고 본인 입으로 "다 내가 희생하고 참고 살아서 그렇다. 여자는 본래 태생이 이렇다" 이런 뉘앙스로 말하세요. 식구들 다 같이 밥 먹는데 어머님이 안드시니 저도 눈치가 보여 못먹고 있다가 어머님 식사 시작하시길래 저도 제밥 반공기 퍼와서 먹기 시작했어요. 두 숟갈쯤 먹었나? 갑자기 어머님이 본인이 드시던 아버님이 남긴 밥을 숟가락으로 두동강 내더니 한 숟갈 떠서 제 밥위에 떡 올려놓더라구요. 순간 저 오바이트 쏠리는거 간신히 참고 최대한 티 안나게 밥 안먹고 반찬만 몇번 집어 먹은 후 설거지 한다고 부엌으로 도망쳐 나왔습니다. 설거지 하면서 보니 제가 남긴 밥도 어머니가 국 말아 드시더라구요ㅠㅠ. 너무 충격이었는지 설거지 하면서도 계속 그 밥이 떠올라 토나오려는거 정말 힘들게 참았습니다. 그런데 어머님이 눈치를 채셨는지 훈계를 시작하시더라구요. 아버지 밥이 더럽냐고... 여자로 태어났으니 너도 니 남편한테 그렇게 하고 살으라고.. 그래야 자식들 성공하고 복 받는다며.. 중간중간 눈물까지 흘리며 며느리의 희생, 아내의 희생을 강요하셨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시댁에서 식사하는게 트라우마가 되었네요. 아예 밥을 안먹었어요. 주전부리로만 끼니를 떼웠네요. 며칠 후 형님(손윗동서)과 통화했는데 형님도 식사 같이 안한대요. 그동안 서러웠는지 저랑 통화 하다 대성통곡 하시더라구요. 저도 갑자기 복받쳐 같이 울고... 결혼 두달만에 제가 겪은 일이에요. 그 이후로 시어머님의 말 같지도 않은... 대꾸할 가치도 없는 도리 요구는 계속 되었고... 제가 캐나다로 이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3. 아이들 교육환경
저희 아이들은 좀 내성적이고 순한데... 한편으론 말도 똑부러지게 못하고 친구들에게 많이 치이는 편이에요. 그래도 예의 바르고 착해서 선생님도 칭찬 많이 해주시구요. 친구들 엄마들도 많이 예뻐해줬어요. 1학년 처음 입학했을때는 제가 직장맘이다보니 엄마가 뒷받침을 못해줘서 아이가 왕따를 당했던적도 있었어요. 학기초 아이들 끝나는 시간에 데리러가는 전업 엄마들은 매일 마주치고 아이들 학교 생활 공유하면서 서로 금세 친해졌던것 같아요. 한반에 여자애가 9명인데 2명만 직장맘이었어요. 2명 빼고 7명이서 어디든 같이 가고 밤 늦게까지 한 집에 모여 놀고, 학원도 같이 가고 체험관이나 놀이공원에도 7명이서만 연락해서 같이 다니더라구요ㅠㅠ. 그 시간에 나는 돈을 버니 이정도는 감수해야되나 싶다가도 상처받을 우리 딸한테 너무 미안하고 같은 반 엄마들에게도 서운하고 그렇더라구요. 토요일날 일부러 친구들 초대해서 밥 먹이고 놀게 해주고 내돈들여 방방이도 데려가고 했는데도 그때뿐... 평일에는 제가 아이 라이드를 못해주니 상황이 좋아지지 않았어요. 또 한번은 학교에서 부모님 초대해서 참관 수업같은걸 하는데 방과후 연습이 필요한 공연은 그 7명만 하더라구요. 연극이랑 댄스... 저희 딸은 전체 합창, 전체 악기 합주만 참여ㅠㅠ. 그날 월차내고 학교 갔는데 엄마땜에 딸이 기죽어 있는것 같아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았습니다. 그런일들이 학년이 바뀌어도 계속되고 아이들은 점점 더 외로워하고... 제가 직장을 관두게 된 결정적이 요인이 되었어요.
직장 관둬야 될것 같은 시점에 회사에서 자진 명예퇴직을 하는 사람은 거의 2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을 위로금으로 지급하겠다는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남편한테 이참에 난 명예 퇴직하겠다. 좋은 기회인것 같다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남편이 흔쾌히 그러라고... 이참에 자기도 그만두고 싶다고 17년 회사생활 너무 지치고 힘들다며 ... 죽지못해 사는것 같다며 그동안 말 못했던 어려움을 토로하더라구요ㅠㅠ. 애들 한참 크는 나이에 둘 다 퇴사를 하면 어쩌나 당황스러웠지만 남편이 오히려 저보다 더 절박하고 간절했던것 같아서 부부 동반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남편은 퇴사 후 한국을 떠나고 싶어했고 여러모로 아이들과 우리 가족 스트레스 덜받고 살기에 캐나다가 적격이라는 판단하에 아이들 유학 비자만 받아 온가족이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캐나다에서의 3년... 영주권도 없었고 우린 특별한 기술을 가진게 없어 맨몸으로 하나하나 부딪치며 해결해 나갔고. 2년 8개월만에 영주권 손에 쥐었네요. 몸은 힘들었지만 맘은 너무나도 편했고, 아이들도 공부 압박이 없어서 그런지 말도 많아지고 항상 웃고 있네요.
저희가 캐나다행을 결정하고 시댁에 말씀드렸더니 시부모님, 시누, 형님 모두 반대 엄청 하셨어요. 아버님은 내가 죽어야 니들이 고집을 꺾을거냐고... 집안이 갈기갈기
찢어지는거라며.... 형님도 시댁이 싫어서 이민가는거냐고 나혼자 어떻게 감당하냐며 제일 심하게 반대하고 난리가 났었어요....
그럼에도 남편이 너무 완강해서 시댁에서도 더 이상은 막지 못하고 왔는데 형님이 아직도 삐져있는것 같아요. 저에게 배신했다고도 했구요. 3년동안 카톡으로 한마디도 안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제 형님한테 카톡이 왔네요.
조카가 결혼한다고... 그래서 넘 축하한다. 언제인가요? 우리도 3년째니까 한국에 너무 가고 싶다. 조카 결혼식에 맞춰 들어가겠다고 했죠. 그랬더니 올 필요 없대요. 자긴 아직 용서가 안된다며 결혼식에 우리 가족 보고 싶지 않다고 하네요. 상상도 못했던 대답이라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고 카톡도 제대로 써지질 않더라요... 그러면서 온가족이 한국에 한번 왔다가는데 드는 비용이 천만원이라며?? 그 돈 축의금으로 내... 그러는 거에요. 너무 놀라서 무슨 말씀이냐고 되물었더니 작년에 동서가 그랬자나. 온가족이 한번 한국 왔다가는데 천만원이라며 머하러 그 돈들여 한국에 왔다갈라고 해? 애들 고생스럽게....
제가 작년에 시댁 단톡방에 아주버님이 명절에 한번 들어오라고 하셔서.... 그 당시에는 저희가 영주권 진행 중이었고 워크퍼밋으로 일하고 있는데 장시간 시간을 낼 수도 없었고, 영주권 진행중에 한국에 나갔다오면 공항에서 못들어오게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명절 성수기에는 비행기값도 만만치않아 4가족 한국 왕복하는데 천만원정도 예상되었구요. 여러가지 이유로 그때는 한국에 갈 수 없다고 말씀 드렸구요. 대신 명절, 부모님 생신엔 넉넉하게 송금해드렸습니다.
작년에 카톡으로 했던말을 그것도 앞 뒤 설명 다 빼고 천만원만 생각나는지.....퇴직금도 엄청 받았을텐데... 그돈 다 가지고 캐나다로 튀었으면 그 정도 축의금은 내야지. 양심을 밥 말아먹었냐고 하길래 지금까지 대답을 안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제가 정말 양심도 없는 인간입니까? 우리 부부 퇴직금을 왜
들먹이나요? 남편은 좋은데 정말 시댁때문에 눈물 나네요. 제가 상식에 어긋난 행동을 하고 있는건가요? 진짜 궁금해서 그래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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