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가한 낮 시간. 나는 응급실 한복판에서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문득 저 멀리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 들어왔다. 대체로 차분한 옷을 차려입은 중년의 남녀였다.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낮 시간인데다가, 목사로 보이는 남자가 껴 있는 모습이 교회에서 모인 사람들로 보였다. 그들은 다소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웅성거리며 들어왔다. 기도하는 사람, 두 손을 마주 잡고 중얼거리는 사람들이 풍기는 느낌은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예감하게 했다.
나는 한 무리의 사람들과 화면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곧 화면에는 그들이 몰고 온 침통함의 근원이 접수됐다. 2개월밖에 되지 않은 여자아이였다. 멀리서 안내를 받은 그들은 열을 지어 격리된 소아과 진료실로 들어갔다. 저 많은 어른들이 어린 아이 하나를 데리고 오다니. 아이가 열이라도 나는 것일까, 아니면 어디 다치기라도 한 것일까. 이상한 느낌이 들어 나는 화면을 닫고는 곧바로 소아과 진료실로 향했다.
아이를 둘러싼 사람들은 끔찍한 것이라도 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헤치고 아이 앞에 섰다. 그리고 목사인 듯한 사람에게 연유를 물었다.
"아이가 어디가 아파서 왔나요?"
"아이가, 이상해서 왔습니다. 이상합니다, 아이가."
나는 고개를 돌려 일단 아이를 확인했다. 2개월 된 아이는 조그맣고 위태로운 생명이라 말을 못 하는 것은 당연하고, 어떤 식으로든 의사소통이 어렵다. 그래서 의사들은 어린아이의 건강 상태를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많은 지표를 가지고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지표는 아이가 보여주는 전반적인 활달함이다. 건강한 아이는 외부 자극에 반응해 감정을 즉시 표시하든지, 보채고 울며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굶주림이나 기타 요구 사항을 전달하며 보살핌을 요구한다. 그것이 말 못하는 아이의 당연한 생존 본능이고, 그것은 활달함의 정도로 나타난다. 의사는 그를 토대로 아이의 건강 상태를 우선 짐작한다.
하지만 이 아이의 활달함은 평가하기조차 어려웠다. 낯선 병원에 왔음에도 외부 자극 같은 것은 전혀 모르겠다는 듯 그 자리 그대로 침대에 붙어 있었다. 고개를 바로 뉠 힘도 없는지, 아무렇게나 머리를 늘어놓고 있었으며, 눈만 간신히 끔뻑거리고 있었다. 당연히 활달함의 정도는 가장 낮았고, 사지의 긴장도마저 지나치게 떨어져 보통 하늘을 향하거나 끊임없이 움직여야 할 팔다리가 축 늘어져 있었다. 숨은 쉬고 있었지만, 일견 죽은 아이 같았다. 아이의 겉모습만 보았음에도 '이상'하다는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죽음으로 가는 과정의 아이가 여기 누워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보호자를 찾았다.
"엄마가 누굽니까?"
"저... 전데요..."
"아이가 왜 이렇죠? 왜?"
"... 에... 제가, 저는, 저..."
시선을 고정해 아이의 엄마와 눈을 마주하자, 나는 무언가 사정이 크게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젊은 얼굴이었지만 멀쩡한 사람이라고 하기에는 묘한 구석이 있었고, 두 눈의 초점이 맞지 않았다. 머리카락도 아무렇게나 묶여 있었고, 차림새도 남루했다. 전반적인 관리가 전혀 안 되어 보였다. 말하는 어투도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어눌했으며, 정확한 문장을 이어나가기도 어려워 보였다. 경도의 정신지체로 보였다. 자신을 홀로 건사하기도 어려웠을 어머니가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함께 온 이들이 목사라고 부르는 이가 덧붙였다.
"이 엄마가 정신지체가 있는데 아이를 키워요. 그래서 교회에서 이 가정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챙깁니다. 그런데 저번 방문 때 조금 아이가 안 좋아 보였어요.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에 신도들과 같이 방문해보니, 아이가 울지도 않고 축 처진 것이 이상한 느낌이 들어 데리고 왔습니다."
아이가 이 지경까지 되는 일은 문명사회에서는 좀처럼 일어날 수가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것은 학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급한 마음이 들어 더 이상의 부연 설명을 듣지 않고 아이에게 손을 댔다. 이마가 싸늘했다. 머리를 자세히 보자 기묘하게 울퉁불퉁했으며, 한쪽은 아예 움푹 꺼져 있었다. 2개월 된 아이의 두개골은 아직 완전하지 않은데다 아주 얇다. 그런데 아이의 머리에 손을 대고 누르자 얇은 두개골이 젤리처럼 몰캉거리며 출렁거렸다. 참담한 느낌이 들어, 나는 순간 욕설을 뱉을 뻔했다.
곧 마음을 가다듬고 전신의 상태를 체크했다. 아이의 얼굴을 마주하자 너무 이쁘게 생긴 눈매가 내 눈에 들어와 덜컥 겁이 났다. 두 눈을 깜빡이는 순수한 모습이 왠지 모르게 두려웠다. 눈을 피해 얼굴을 보자 인중은 윗입술까지 불규칙하게 터지고 갈라져 있었고, 입안이 말라 탈수가 심해 보였다. 몸통을 검진하자, 아이가 바닥으로 추락했을 때 가장 부러지기 쉬운 쇄골 양쪽이 두 토막이 나 있었고, 온전하다면 눌리지 않아야 할 갈비뼈도 두둑거리는 파열음을 냈다. 아이의 가늘고 짧은 팔다리도 관절이 아닌 곳에서 조금씩 뒤틀려 있었다. 나는 악마의 소행을 느꼈다. 아찔하게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애써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빨리 검사부터 해봅시다."
2.
아이는 급하게 검사실로 향했다. 전신을 촬영하는 처방을 냈지만 실은 간단했다. 이렇게 작은 아이는 어른용으로 규격이 정해진 엑스레이 한 장만으로 전신을 찍을 수 있다. 그러니 아이의 정면과 측면, 두 장의 사진이 곧 화면에 뜰 것이고, 이어서 두부의 CT를 받아볼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조바심이 나서 컴퓨터를 의미 없이 만지작거리며 이미지를 기다렸고, 아이와 함께온 이들은 소아과 진료실 안에 둥그렇게 서서 목사의 지도 아래 합을 맞춰 같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응급실에 특유의 공명을 품은 찬송가 소리가 울려퍼지자, 나는 더욱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마치 불행의 전조 같았다.
엑스레이를 보니 무참히도 정해진 시간에 화면에 나타났다. 예상대로 아이의 짧고 약한 뼈가 여기저기 조각나 있었다. 따로 부위를 칭하기 어려운 전신골절이었다. 또한 예상대로 골절의 시기가 제각기 달라 유합되고 새로 생겨난 자리가 보였다. 전형적으로 보이는 지속적인 학대의 흔적이다. 허나 2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이토록 지속적인 학대를 당했다면, 도대체 그 시작은 언제부터일까. 이 아이의 인생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아이의 박살난 팔다리를 보고 있자니 곧이어 화면은 이제 조그마한 뇌를 촬영한 CT를 확인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떨리는 마음으로 CT 영상을 열었다. 역시 이번에도 아이의 머리는 구형조차 온전히 남아 있지 않았다. 두개골이 잘게 조각난데다 아이의 머리가 크게 기울어져, 무엇인가로 아이의 머리를 구겨버린 것 같았다. 순서대로 눈앞에 들어오는 아이의 대뇌, 뇌실, 뇌간 역시 의학용어로 칭하기 부끄러울 만큼 학대의 흔적이 가득했다. 뇌 안에 출혈이 생기면 그것은 곧 굳는다. 그러면 고체와 비슷한 상태가 되고, 시간이 지나갈수록 점차 액화되어 흡수된다. 일련의 시차를 두고 일어나는 출혈의 과정은 CT사진에서 각기 다른 색깔로 찍힌다. 아이의 뇌에는 오래된 것부터 최근 것까지, 다양한 색깔과 크기로 출혈의 흔적이 구석구석 찍혀 있었다. 나는 아이가 아직 2개월밖에 살지 않았다는 생각이 다시금 떠올랐다. 왜, 누가, 언제부터, 죄가 있다면 태어났다는 사실뿐인 아이를, 이렇게, 비참하게 부수어버렸을까.
나는 고개를 크게 흔들고 신경외과 동료에게 먼저 전화했다.
"어, 응급실에 무슨 일 있어?"
"지금 응급실에 2개월 된 아이가 있어. 방금 CT를 찍었는데, 한 번 봐줄래?"
"응. 마침 컴퓨터 앞에 있어. 잠깐."
잠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마우스 휠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곧 정제되지 않은 동료의 외침이 수화기를 타고 넘어왔다.
"이 . 어떤 가 애 머리를 로 만들어놨어. 끼. 이 새낀 멀쩡히 밥 먹고 숨 쉬고 있을 것 아냐. 이런 씨이 천벌은 안 받나?"
"그래.. 아이 멘탈이 조금 처지고 있어. OP(Operation, 수술)나 EVD(External Ventricular drain, 뇌실 외 배액)가 바로 필요하지 않을까?"
"가만히 있어. 지금 내려가서 볼게.”
신경외과 동료는 곧 응급실에 가운을 휘날리며 내려왔다. 그는 주저 없이 펜라이트를 들어 아이 눈동자를 비추어보고 전반적인 상태를 관찰하더니, 내가 했던 것처럼 머리에 손을 댔다. 곧 그도 끔찍한 기운을 느꼈는지 손을 움찔거렸다. 그리곤 바로 모여든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뇌출혈이 심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아이가 상태가 벌써 안 좋아요. 아이의 뇌출혈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출혈 시기도 섞여 있어서 수술을 하기는 애매합니다. 지금은 뇌압이 올라서 아이 의식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여요. 뇌실에 관을 꼽아서 압력을 줄이고 피를 조금 빼내도록 해야겠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기묘하게도 어떠한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워낙 정신지체로 무슨 감정을 느끼거나 표현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목사로 보이는 사람이 대신 대답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3.
아이는 처치실로 옮겨졌다. 카트에 실려 옮겨지는 아이는 두려움도, 그렇다고 어떤 표정이나 표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지금 숨을 쉬며 살아있는 것조차 버거워, 낯선 환경이나 감정의 표현은 염두에도 두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아이는 장황하게 번쩍이는 기계와 도구들이 둘러싸인 처치실 한복판에 하얀 조명을 받으며 누웠다. 이어 날카로운 시술 도구들이 마구 날라져 왔다. 시술을 위해선 한 사람이 아이의 머리를 꽉 붙든 상태에서 다른 사람이 머리에 구멍을 내고 뇌실로 거치되는 관을 주저 없이 푹 꽂아야 했다. 동료는 아이의 얼마 안 되는 머리를 면도칼로 깔끔하게 밀었다. 성긴 머리털이 처치실 바닥에 흩날렸고, 시퍼런 멍투성이의 민머리가 훤히 드러났다. 나는 다시 욱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제 본격적인 시술로 들어가야 했다. 나는 미동 없는 아이의 머리를 바로잡았고, 동료는 보라색 사인펜을 집었다. 그리곤 뇌실로 향하는 관을 정확히 꽂기 위해 각을 재더니, 머리가죽 위에 직선을 가로 세로로 그었다. 곧 한 점이 머리가죽 위에 찍혔다. 이어 소독된 파란 포를 덮은 다음, 아이의 울퉁불퉁한 민머리에 빨간 소독약을 바르고, 방금 표시한 지점에 두개골용 드릴을 켜서 구멍을 뚫었다. 얇은 두개골은 요란히 진동하는 드릴이 닿자마자 허무하게 뚫렸다.
나는 아이가 혹여 움직일세라 손에 힘을 꽉 주었지만, 아이는 자신의 두개골에 구멍이 뚫리는 와중에도 미동 없이 가만히 있었다. 나는 또 욕설을 뱉을 뻔했다. 얼마나 많은 구타와 이어진 고통이 이 머리에 있었기에 이런 상황에도 아이가 반응하지 못하는 것일까. 자신의 머리를 부수는 것에도 반항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그것은 진짜 죽기 직전의 아이가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아이의 머리가죽을 감싸 쥔 내 두 손이 축축하게 떨려 왔다. 동료는 뾰족한 관을 집어 들어 뇌실 방향을 재고 뇌를 관통해 힘차게 박았다. 뇌압이 꽤 많이 높았는지, 피와 뇌수가 섞인 맑고 붉은 액체가 머리로 연결된 관에서 뿜어져나왔다. 머리 안이 피범벅이었다. 악마다. 이것은 악마가 만든 작품이었다.
아이는 시술이 끝난 다음에도 미동 없이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아이의 머리를 관통하는 관이 꽂혔을 뿐, 아이의 상태는 변한 것이 아직 하나도 없었다. 나는 수액과 다른 처치를 지시하고, 아이의 상태를 묻기 위해 아이 엄마 앞에 섰다.
"아이를 누가 이렇게 만든 거예요? 아이 아빠가 있을 것 아니에요. 그 사람이 이걸 보고만 있었을 리 없겠죠. 혹시 아이 아빠가 이렇게 때렸나요? 말 좀 해보세요."
모여든 사람들은 대답이 없었다. 아이 엄마는 기묘한 어조로 말문을 열었다.
"아빠 있어요. 아빠."
"아빠가 있다고요? 그러면 그 사람이 뭘 했습니까?”
"리모컨, 리모컨으로 머리..."
나는 이제 너무 아찔해서 황당함마저 들었다. TV를 보다가 옆에 있는 갓난아이의 머리를 리모컨으로 칠 수 있는 악마가 있다.
"그러고요. 다른 데는요. 더 있을 거 아닙니까."
"떨어뜨린다. 그리고 발길..."
눈앞에 아지랑이가 보였다. 중년의 여성들은 갑자기 두 손을 모으고 끔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교회 사람들도 짐작만 했지 전혀 모르고 있었던 듯했다. 집단이 숙연해졌고, 두려움으로 진동했다. 더 물어볼 필요도 없었고, 더 듣기도 힘겨웠다. 내가 알 필요가 있는 연유는 이것으로 충분했다.
나는 소아과 치료실에서 나와 경찰에 전화했다. 아동학대를 목격하면 의료인은 무조건 신고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 것이 없어도, 나는 꼭 신고했을 것이다. 도와달라고. 혼자 헤쳐나가고 감당하지 않게, 꼭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는 응급실의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걸었고, 듣던 경찰은 말만으로 조금 놀란 듯했다. 그리고 경찰 두 명이 응급실에 바로 나타나 관계자를 모아 사실을 확인하며 사건을 조사했다. 곧 그들은 이 남편을 지금 호출했고, 현장에서 간단한 사실 확인 후 그를 경찰서로 후송하겠다고 내게 전했다. 그 악마가 이제 나타난다. 여기 내 앞으로 온다.
4.
많은 사람들이 이제 이 사연을 알고 있었으므로, 응급실의 분위기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악마를 경계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마치 그 악마가 금방이라도 나타나 자신을 해하기도 할 것처럼, 사람들은 출입문 앞에 서는 것조차 꺼리고 있었다. 나부터도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아이의 수액을 적당량 맞추고 상태를 관찰하며, 응급실의 다른 환자를 보고 있었다. 순간, 출입문 근처로부터 무엇인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왔다. 한 환자의 진료를 마치고, 나는 그 편을 돌아보았다. 경찰과 이야기하는 모양새가, 분명히 그인 것 같았다. 내 심장은 마구 요동치며 두근거렸다. 하지만 내겐 사건을 정확히 파악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 두려운 마음으로 들고 있던 차트를 내려놓고, 나는 마음을 다잡고 한 걸음씩 내디뎌 그에게로 갔다. 그는 후줄근한 바지와 어울리지 않는 체크 남방을 입고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손이나 행색이 전반적으로 거칠었다. 나는 악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오히려 평범하다고까지 부를 수 있는 얼굴. 모자란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눈빛, 눈빛이 너무나 이상했다. 형용할 수 없는, 푸르기도 하며, 검기도 한 눈동자의 광채가 무엇인가 어긋나고 틀어진 느낌이었다. 그가 어딘가를 쏘아보는 것만으로 맞선 사람에게 섬뜩함을 주었다.
"아이 아빠라고 들었습니다."
"아뇨. 제 아이 아닌데요."
벌써부터 대화는 의도대로 가지 않고 있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방금 여기 응급실에 온 아이 보호자로 연락받고 오신 것 아닌가요?"
"이것 참. 그냥 걘 내 동거녀예요. 결혼한 것도 아니고, 어떤 새끼 앤지도 모르는데 내가 왜 보호잡니 까."
"지금 아동학대가 의심돼서 말씀드리는 겁니다. 보호자건 아니건, 아이를... 그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아동학대는 무슨. 난 결혼도 안 했고, 내 애도 아니니 아동학대도 아니요. 사람 귀찮게 하네."
"아이를 때린 것 맞지 않습니까?"
"난 하여간 아동학대는 안 했다니까. 남 일에 무슨 신경을 쓰는 거야. 이 사람이."
순수한 악, 순수한 악마였다. 나는 대화를 포기했다. 두려워서 더 이상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람을 취조하는 것은 이제 내가 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나는 두 주먹을 잠시 불끈 쥐었지만, 기묘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당장이라도 이 악마를 처단하고 내 손으로 부수어 버리고 싶다, 하지만 아무런 죄책감이 없이 틀어진 이 눈빛에다 내가 어떤 위해를 가할 수 있을까. 한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한 소동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할 일도, 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옆에서 쳐다보고 있던 경찰에게 나는 일을 넘겼다. 결국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만이 내 일이었다.
심호흡을 하고 모니터로 돌아와 아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피검사 수치가 그야말로 엉망이었다. 비단 물리적인 학대에 그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탈수가 엄청나게 심했고, 동반해서 전반적인 피 검사 수치가 참혹할 정도로 비정상적이었다. 생명을 종합적으로, 그리고 다분히 의도적으로 완벽히 짓밟고 망가뜨린 것 같은 인상이었다. 수액과 영양 공급, 골절의 바른 유합, 배액관 유지, 의식 상태 회복의 관찰, 무엇보다도 아이에겐 이 지옥 같은 세상과 떨어져 안온한 보호가 필요했다. 그곳은 피붙이도 없이,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기계만이 번뜩이는 소아 중환자실밖에는 없었다. 내가 아이를 입원하도록 지시하자, 뒤에서 교회 사람들이 아이의 입원 동의서를 쓰느라 분주했다. 그간 악마는 경찰서로 가버렸는지 응급실에서 자취를 감춰 버렸다. 하지만 예의 불길한 느낌은 한동안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고 그 뒤에 남아 있었다.
5.
나는 종일 내 등 뒤에 그림자처럼 악의 형상이 따라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은 전쟁통 같은 응급실의 새벽에도 한동안 계속되어, 내내 으슬거리는 느낌이 들다가, 별안간 소스라치게 놀라 뒤를 돌아보게 했다. 나는 그 대화의 잔상이 가시지 않아, 악몽과도 같은 밤을 보냈다.
불면과 불길한 느낌에 시달려, 소슬한 기분으로 다음 날을 맞이했다. 듀티가 어떻게든 마무리되었고, 나는 머릿속이 꽁꽁 동여매인 느낌으로 목숨이 간들거리는 아이를 보러 소아 중환자실로 향했다. 중환자실은 외부인의 출입을 막기 위해 굳은 문으로 닫혀 있었다.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에도 보호 덧신을 써야 했고, 소독된 덧가운도 새로 입어야 했다. 준비를 마치고 들어가자 고통받는 조그마한 아이들이 침대에서 각자 이런저런 관들과 불행을 몸에 꽂은 채로 누워 있었다. 그중에서 나는 두리번거리며 어제 입원시킨 아이를 찾았다.
응급의학과 의사인 내가 들어오자 그곳의 의료진은 벌써 내가 어떤 아이를 찾는지 파악하고 안내해주었다. 이 좁은 공간에서 벌써 아이에 관한 이야기가 퍼져서, 예쁜 눈을 가진 이 아이는 간호사들의 연민과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곧 아이 앞에 섰다. 아이는 여전한 모습이었지만, 어제보다는 확실히 나아 있었다. 담당 간호사에게 나는 아이의 상태를 물었다.
"아이 의식은 조금 어떤가요."
"뇌압이 떨어지면서 계속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선생님, 아이가, 분유를요..."
"쳐져서 잘 못 먹습니까?"
"아니요. 반대로 너무 잘 먹어요... 아이 엄마가 정상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입원하면서 저희가 막 추궁하며 물어봤어요. 아이에게 지금까지 먹인 것이 뭐냐고. 제가 알아듣기로는, 뭘 먹일지 몰라 베지밀만 사다 먹였다고 하더군요. 2개월간 평생요. 아이용 분유를 지금 처음 먹어봐서 아이가 너무 맛있는 거예요. 주는 대로 다 먹고 있어요."
"..."
"막 태어난 아이가 그것만 먹고 어떻게 견뎠을까요. 이 조그만 몸으로 이렇게 끔찍하게 구타까지 당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아이가 너무 불쌍하고 또 예뻐서, 간호사들이 돌아가면서 한 번씩 안아보고 있어요. 이 아이 결국 아동학대죠? 무슨 짓을 당한 거죠. 이렇게 예쁜 아이에게 어떻게 그럴 수가... 세상이 참 너무해요."
"법이 해결하겠지요. 일단 아이, 아이 잘 봐주세요."
법이라는 말을 뱉고 나도 조금 놀랐다. 그것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곤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법과 사회의 부조리함에도 불구하고 생명은 어떻게든 살아난다. 풀뿌리를 짓밟듯 발굽으로 짓이겨도 질긴 목숨은 결국 다시 싹을 틔운다. 이 어린 생명은 결국 상처가 선연하게 남은 몸으로 간신히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생명의 함은 어디에 있는가. 사랑받을 수 없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일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거기서 내가 법치의 논리를 운운해야 했나. 한 부모는 악마인데다가 실제 부모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고, 다른 한쪽은 자신의 몸을 세상에 맞서 건사하기에도 어렵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태어나지 않았어야 하는 아이인가. 내가 존엄하고 한 생명을 그리 말해도 되는 것인가.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이가 나아지기까지는 험난한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뇌가 심하게 망가져, 어떤 후유증으로 살아남을지 모른다. 그것을 전부 이겨낸다고 해도, 아이는 갈 곳이 없다. 아마 한동안 이 하얀 공간에 갇혀 있어야 할 것이고, 그후로도 이 인생은 어떻게 될지, 막막해 짐작할 수가 없다. 왜 세상은 선한 사람들이 다수이지만, 그 안에서 악함의 결정체 같은 사람들도 존재하는 것일까. 그게 꼭 존재해야만 이 세상이 완전한 것일까. 세상은, 왜, 무엇 때문에... 나는 생각이 나아가다 다시 한번 뒤에서 악마의 형상이 다가오는 듯하여 소스라치게 놀랐다. 짓눌린 마음, 결국 할 수 없는 일, 내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 나는 응급실로 돌아오며, 무기력함에 마음을 짜내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머리가 부서지고 팔다리가 박살나는 듯한 통증이 내게 느껴져 왔다. 그 졸이는 통증에 나는 내 미약한 육신을 내던지며 발걸음을 디뎠다. 걸음 걸음이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이 일에서 나는, 이것 밖에 도리가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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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200만원어치 사온 아내 때문에 화난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