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1년 2월 16일 조선왕조실록 (계미 2번째기사)이다. 여기서 사간원이 왕에게 한 남자의 체차를 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 현감으로서 아직 군수에 부임하지도 않았는데 어찌 이번에는 좌수사라는 말입니까 관작의 남용이 이보다 더 심할 수 없습니다. 부디 체차시키소서 !! "
그러자 인사권자인 국왕은 이런 말을 남긴다
"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좌수사직을) 감당할 터이니 관작의 고하를 따질 필요가 없다. 다시 논하여 그 사람의 마음을 동요시키지 말라 !! "
이런 기록은 이 시기 조선왕조실록에 두 번이나 등장한다.
신하들이 전례가 없다고 말하며 인사를 반대하고
국왕은 그의 마음을 동요시키지 말라면서까지 인사를 강행하는 이 사건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1586년 (이순신 41세) 사복시 주부
1589년 (이순신 44세) 전라도감사 이광의 군관 -> 정읍현감
1590년 (이순신 45세) 종3품의 직책 주려 했다가 지나치게 진급이 빠르다는 이유로 논핵되어 개정됨
1591년 (이순신 46세) 정3품 당상인 절충장군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발탁하려 하니 또 .. 이번에는 국왕이 지지 않고 다 뺀찌놓고 밀어붙임
[선조 왈 : 이경록(이순신과 같이 당시 파격승진 대상자중 한 명)의 발탁은 천천히
생각하여 다시 결정하겠다 하지만 이순신의 수사 발탁은 개정 할 수 없다. 다시 논하여 그 사람의 마음을 동요시키지 말라]
1592년 : (이순신 47세) 임진왜란 발발..
한반도 역사 통틀어서 최고의 인사 단행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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