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역배우 자매 자살사건…”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기사입력/수정 : 2017-03-24 05:49 오후

언니가 여러 명의 남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자살했습니다.
동생은 일주일도 되지 않아 그 뒤를 따라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2달 뒤 아버지가 뇌출혈로 세상을 등졌습니다.
홀로 남은 어머니는 언니를 자살로 이끈 가해자들을 상대로 싸웠습니다. 그러나 민사소송에서도 패하고 말았습니다.
가해자들은 여전히 “우리는 떳떳하다”며 결백을 주장합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JTBC ‘탐사코드J-어느자매의 자살’ 편입니다.

어머니 김미옥(가명) 씨는 큰딸에 대해 “굉장히 똑똑했다. 1등을 놓치지 않는 아이였다”고 기억합니다.



둘째 딸은 그런 언니를 굉장히 잘 따랐습니다. 유명 가수들의 백댄서로 일하고 있었죠.

이 가정에 비극이 닥친 시점은 지난 2004년 7월입니다.
당시 동생은 방학을 맞은 언니에게 방송국 보조 출연 아르바이트를 추천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너무 무더워 동생은 집으로 돌아갔고, 언니만 남아 일을 했습니다.
3개월 간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단역배우로 활동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큰딸이 이상해졌습니다.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였고, 심지어 가족에게 욕설을 하고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큰딸은 정신병원에서 충격적 고백을 합니다.
반장 및 남자들 10여 명에게 돌아가면서 성폭행을 당했다고 털어놨습니다.

이에 어머니는 고소를 진행했는데요.
큰딸은 사건을 굉장히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변호사마저 놀랐을 정도였죠.

다음은 큰딸과 어머니의 기록입니다.
2004년 8월 10일 새벽4시.
당시 보조반장 A씨가 큰딸을 비디오방으로 데려가 강제 성폭행을 했습니다.

이 사건으로 쇼크를 받은 상태에서, 큰 딸은 4명에게 돌아가며 추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합니다.
관계된 남자들만 모두 10명이 넘는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회사에 항의했으나, 오히려 협박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사건 해결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 피의자들이 하나같이 큰딸과 합의 하에 성관계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최초 수사를 담당했던 수사관은 피의자들의 공모를 의심했습니다.

큰딸이 변호사에게 제출한 기록에 따르면,
큰딸은 8-11월까지 A씨, B씨, C씨, D씨 등 4명의 반장에게 18차례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10월부터는 B, C, D와 번갈아가면서 관계를 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당시 큰딸의 정신분열은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녀는 갈수록 증세가 악화됐고 병원에 결국 입원해야 했습니다.


나중에는 경찰 진술도 바뀌었습니다.
처음엔 당했다고 하다가, 나중엔 사귄 것이라며 혼란스러워했습니다.
특히 첫번째로 지목된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하자 큰딸의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습니다.

결국 이 가정은 1년 반만에 고소를 취하하게 됩니다.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또 피의자의 협박 때문이라고 토로했습니다.

당시 어머니도 피의자에게 폭행 당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역시 무혐의로 종결지어졌습니다.

마지막까지 사건을 수사했던 수사관은 인터뷰를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2년 뒤인 2009년 8월 28일 오후 18시.
그녀는 건물 18층에서 투신하고 말았습니다.
철저히 ’18’에 맞춰 계획한 자살이었습니다.




그녀가 남긴 유서는 누군가를 향한 증오로 가득했습니다.

그로부터 1주일도 지나지 않은 9월 3일. 동생도 자살을 선택하고 말았습니다.

동생의 메모도 충격적입니다.
설상가상 아빠가 2달 뒤 뇌출혈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큰딸의 정신이 이상해진 이후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건강이 악화됐다고 합니다.
엄마는 자살위험군으로 분류돼 집중 관리를 받게 됐습니다.






전문의는 최초 가해자 A씨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봤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반장들은 정말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한 걸까요?
본인들의 입장은 어떨까요.
제작진은 A, B, C, D 등 반장들에게 연락을 시도했습니다.


큰딸이 “나를 감금한 사람”이라고 지목한 B감독.
그는 여전히 방송국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C씨는 모녀를 꽃뱀이라 주장했습니다.


D반장은 서로 좋아했던 사이라 말했습니다.
덧붙여, D반장은 반장들끼리 서로 큰딸의 이야기를 했다는 걸 털어놨습니다.

최초 가해자 A씨는 인터뷰를 거부합니다.

제작진이 직접 찾아가자, 자기는 떳떳하다며 오히려 화를 냈습니다.
엄마는 이후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요.
이 역시 2015년 9월 1일 패소하고 말았습니다.
소송 제기 기간(소멸시효)이 지났다는 이유였습니다.

세 사람이 원통하게 세상을 떠났고,
남은 사람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http://www.dispatch.co.kr/702685
위의 JTBC 방송은 2012년 9월 23일 방영된 내용입니다.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04년, 자매와 아버지가 사망한 것은 2009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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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에 올라온 관련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6&aid=0000085543
잘 살아보려고 했다. 병원 가는 횟수도 줄었다.
“세 모녀가 요리학원 다니면서 자격증도 땄어요.
유미는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딴다고 학원도 다니고. 점점 나아졌어요.“
장씨는 유미씨의 정신이 돌아왔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계속 아팠으면 억울하고 분한 것도 몰랐을테다.
자매가 세상과 등진 뒤 장씨는 정신을 놓고 지냈다. 유미씨가 다니던 병원을 이제는 장씨가 다닌다.
“따라가려고 했어요. 그래도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어떻게든 정신을 차려서 뭔가 해야겠더라고.”
이후 어머니인 장씨가 12명을 상대로 민사소송 제기
▶ 가해자들의 혐의가 입증되지 않아서가 아닌, 공소시효 만료로 법원은 가해자 12명의 손을 들어줌
형사는 당사자가 취하, 민사는 공소시효 때문에 어머니가 할 수 있었던건 1인 시위 뿐이었다고 함
▶ “강간하고 살인한 자들이 아직도 반성하지 않는데 내 두 딸의 영혼이 하늘을 맴돌고 있다”는
내용의 1인 시위를 하다가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됨. (피켓에는 남성 12명의 실명이 쓰여져 있었는데
이중 6명이 명예훼손으로 장씨를 검찰에 고소)
2017년 2월 9일 명예 훼손에 대해서 무죄 판결을 받음
다음은 판사가 부언 말미에 쓴 내용
“법원은 공권력의 한 수임자로서 피고인과 두 딸이 겪어야 했던 길고도 모진 고통에 대해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사과와 간곡한 위로의 뜻을 전한다. 부디 이 판결이 참척(자녀를 먼저 보낸 고통)의 아픔 속에 살아가는 피고인의 여생에 잠시나마 위안이 되고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버린 두 자매의 안식에 작으나마 도움이 되길 기원한다.”
“우리 유미가 떨어져죽은 빌딩, 거기 가는 날이 내가 죽는 날이에요.
그래도 내가 살아있으니 이런 판결도 받아보는 날이 오네요.
우리 애를 처음 강간했던 이아무개는 딸을 낳았다는데…무슨 수를 써서라도 재수사를 받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요?”
사건이 일어난 지 13년이 지났고 자매의 죽음은 더 이상 언론의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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