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군대 생활상(1)
난중일기 속 일상
전쟁이라고 하면 흔히들 군인들의 전투나 그 전투로 인한 피해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전쟁을 다룬 대개의 기록물이 전투와 피해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역시 마찬 가지이다 조선의 기록이나 일본의 기록들이 대부분 여기서 벗어나지 않는다 임진왜란만 놓고 생각해보면, 7년이나 계속된 전쟁 내내 전투만 벌이지는 않았다 또 전쟁 내내 방화와 약탈을 일삼지도 않았다 군인들도 먹어야 하고, 쉬기도 해야 한다 전쟁 중에도 전투 관련 이외의 일상이 있다는 애기다
옛날 군인들은 무엇을 하면서 놀았을까?
임진왜란 당시 장수들은 바둑과 장기를 즐겼다 이순신도 동료 장수들과 하루는 바둑을 두고, 하루는 장기를 두고 하는 식이었다 또 직함을 놓고 벌이는 일종의 벼슬 따먹기 놀이도 있었다
훈련 겸 운동으로, 활쏘기는 거의 매일같이 있었다 가끔씩 장졸들이 다 같이 모여 씨름도 했다 1596년 4월 23일자와 5월 5일자를 보자
늦게 군사들 중에서 힘센 사람에게 씨름을 시켰더니, 성복이란 자가 가장 뛰어나므로 상으로 쌀 한 말을 주었다
경상 수사는 술잔 돌리기가 한창일 때쯤 씨름을 시켰는데, 낙안 군수 임계형이 1등 이었다 밤이 깊도록 이들을 즐겁게 뛰놀게 한 것은 즐겁게만 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오랫동안 고생하는 장병들에게 노고를 풀어 주고자 한 계획이었다
장병들 사이에 씨름이 일반적이었다는 애기다 씨름판을 벌이면, 꼭 등수를 매겨 그에 맞는 상도 줬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장병들은 한바탕 씨름을 하면서 전장에서의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는 기회도 가졌다
이순신은 또 목욕도 자주했다고 적었다 어느 시기엔 거의 매일같이 목욕을 할 때도 있는데, 아침저녁으로 할 때도 있다 진중에 목욕탕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던 것 같다 물이 너무 뜨거워 오래 있지 못하고 도로 나왔다고 하기도 하고, 따뜻한 물에 목욕하고 잤다고 쓰기도 했다
장병들의 생일도 챙겼다
오늘이 권언경 영공의 생일이라고 해서, 국수를 만들어 먹고 술도 몹시 취했다 거문고 소리도 듣고 피리도 불다가 저물어서야 헤어졌다
생일음식만 먹는 것을 넘어, 술판도 벌이고 거문고나 피리와 같은 악기도 연주하면서 흥겹게 놀았다는 애기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전쟁터에서의 생일잔치 모습은 아니다 달빛이 밝은 보름날 같은 경우엔 장병들이 밤을 세워 놀기도 했다 1596년 2월 15일 치를 보면, “ 이날 밤 달빛은 대낮과 같고 물빛은 비단결 같아서 자려해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아랫사람들은 밤새도록 술에 취하며 노래했다” 고 돼 있다
옛날 군인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16세기, 조선의 군인들은 무엇을 먹었을까 이런 엉뚱한 질문에 답을 해주는 기록이 있으니, 바로 [난중일기]이다 난중일기는 전투과정과 그 준비태세는 물론이고 전쟁터에서의 일상을 낱낱이 보여준다
주류
난중일기는 술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술 애기가 자주 나온다 그만큼 술은 일상적인 음료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문을 적어 탐후선에 보냈다 해가 저물어 우수사의 배에 가서 내가 머문 곳으로 오기를 청하여 방답 첨사와 함께 술을 마시고 헤어졌다(1593년9월10일)
정 수사가 술을 마련해 가지고 와서 만났다(1593년 9월11일)
식후에 소비포 권관, 유충신, 김만호 등을 불러 술을 접대했다(1593년9월12일)
이순신은 동료 장수들과 사흘 내내 술을 마신 것이다 이런 일은 비일비재해 사건 축에도 못 낀다 1596년 3월에는 29일 중 무려 15일 분이 술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침에 마셨는데, 저녁에 또 마시고, 그래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앞으로 고꾸라지기도 했다 어떤 이는 취하여 쓰러져 돌아가지 못할 정도로 마셨다 작별의 술자리도 잦다 이렇게 마시니 술병이 날 수밖에 없고, 그 때문에 일을 못할 때도 있었다 전날 저녁에 작별 술잔을 나누어 대청에서 그대로 잤는데, 다음날 아침에 또 다시 작별의 술잔을 들기도 했다
비가 계속 내림, 아침에 다시 좌수사를 청했더니 와서 작별의 술잔을 나누며 전송했다 온 종일 크게 취하여 나가지 못했다 수시로 땀이 흘렀다(1596년 3월10일)
이때가 이순신 장군이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아닌가 싶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만 술을 자주 마셨던 것은 아닌 듯하다 일반 병사들이나 하인들까지도 무척이나 술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1594년 1월 25일자에는‘...저녁에 종 허신이 술병을 훔치다가 붙잡혔기에 곤장을 쳤다’고 썼다 또 1594년 4월 3일에는 ‘ 삼도의 군사들에게 술 1천 80동이를 먹였다 우수사와 충청 수사도 같이 앉아 군사들에게 먹였다 날이 저물어서야 숙소를 내려왔다’고 돼 있다 하루 종일 병사들과 술을 마셨다는 애기다
이순신은 술을 마시고 크게 실수하는 스타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원균은 술을 마시면 목소리가 커지고, 아무 이야기나 막 하고, 휘하 장병들을 함부로 대했던 것으로 그려진다
임진왜란 당시 마셨던 술도 다양한 종류였다 술쌀이 따로 있었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로, 지금과 같이 쌀로 술을 빚어 마셨던 것이다 또한 가을에 내리는 이슬을 받아 술인 ‘ 약술’을 고성 현령으로부터 받았다는 기록도 보인다 약술은 아주 특별한 술이었던 모양이다 과하주라는 것도 있는데, 찹쌀과 누룩으로 담근다 약주에 소주를 섞어 빚으며, 여름을 지나도 술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이름도 과하주라는 것이다
그 외에 [난중일기]에 등장하는 먹을거리를 육해공으로 구분해 뽑아왔다
육류
쇠고기, 송아지고기, 개고기, 노루고기, 사슴, 녹각, 돼지고기, 우족, 표범 등의 짐승 고기가 있다 지원받은 군량 중에 제주도 소 5마리가 있었는데, 이를 잡아 장병들에게 먹였다는 기록도 있다 군량을 소나 돼지처럼 살아 있는 동물을 지원받아 충당했다는 것이다 제주도에서까지 군량을 지원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표범이 눈에 띈다 1596년 7월 25일에 보면, “ 아침의 일은 사냥하고 그 수를 세는 것이었는데 녹각 열 개는 창고에 넣고 표범 가죽과 화문석은 통신사에게 보냈다” 이 전날의 일기에는 통신사가 표범 가죽을 요청한 것으로 돼 있고, 특별히 사람을 본영으로 보내 표범 가죽을 가져오게 했다 표범을 사냥해 그 가죽은 따로 관리했다는 애기다
곡류와 과채류
떡, 국수, 약식, 칡, 팥죽, 곶감, 쑥떡, 상화떡, 참기름, 꿀, 무, 연포, 수박, 사철 쑥, 홍시 감, 중배끼, 동아전과, 귤 등을 들 수 있다 당시 군영에서는 무가 무척이나 중요한 먹을거리였다 이순신도 무를 아주 특별히 관리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인들로부터 무밭의 일을 따로 보고 받았으며, 무밭을 갈고 무를 심는 일을 감독할 사람도 따로 정할 정도였다
어류와 해조류
미역, 살아 있는 전복, 대구, 청어, 숭어, 조기, 고래, 와가채, 밴댕이 젓갈, 어란 등이 나온다 여기 나오는 물고기들은 식량 대용으로 쓰이기도 했다 1596년 일기 말미엔 ‘ 물고기를 잡아서 군량을 계속 댄다’는 대목도 잇다 실제로 이순신은 ‘ 청어잡이 배’ 도 따로 운용했다
조류
이상하게도 날짐승 중에는 꿩밖에 보이지 않는다 꿩 사냥 기록은 단 한번 나오는데, 1594년 2월 8일이다 “ 변존서가 당포에 가서 꿩 일곱 마리를 사냥에 왔다” 활로 사냥했는지, 조총으로 잡았는지는 밝히지 않아 아쉽다 이처럼 다양한 먹을거리를 장만하기 위해 이순신 휘하 장병들은 가끔 사냥도 나갔으며,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기도 했다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하기 5일 전과 이틀 전의 일기에 돼지나 군량과 같을 먹을 것이 등장하는데, 눈물이 필 돌 정도로 그 상황이 쓰리다 먼저, 1598년 11월 14일자다
술시에 왜장이 작은 배를 타고 도독부로 들어와서 돼지 두 마리와 술 두통을 도독에게 바쳤다고 한다
일본군이 명군과 강화하자고 도독 유정과 내통하면서 돼지와 술을 보냈다는 애기인데, 그 돼지는 분명 우리 백성들에게서 빼앗았을 것이 아닌가 이를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던 이순신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도망치는 일본군을 추격하던 중 왜군의 조총에 맞아 숨을 거두기 딱 5일 전이다 마지막 일기인 1598년 11월 17일자다 모두 옮긴다
어제 복병장 발포 만호 소계남과 당진포 만호 조효열 등이 왜의 중간 배 한척이 군량을 가득 싣고 남해에서 바다를 건너는 것을 한산도 앞바다까지 추격하였다 왜적은 한산도 기슭을 타고 육지로 올라가 달아났고, 포획한 왜선과 군량은 명나라 군사에게 빼앗기고 빈손으로 와서 보고했다
난중일기는 여기서 끝이다 노량해전 이틀 전이다 우리 백성들에게서 수탈해 마련했을 군량을 가득 싣고 도망치는 적선을 추격해 빼앗은 그 군량을 명나라 군사들에게 도로 빼앗겨야 하는 현실 이 상황에서 이순신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이 적을 없앨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이순신의 이 다짐은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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