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군대 생활상(2)
난중일기 속 일상
조선시대 군대의 모습과 생활상은 어땠을까 영조(1724~1776)때 지리학자인 정상기(1678~1752)가 펴낸 [농포문답]을 보면 전쟁터로 나가기 전 준비해야 할 물품 등 당시 군인 휴대품과 관련한 흥미로운 기록들이 눈에 뛴다
개가죽
우선 행군하다 장맛비를 만났을 때 대처방안으로 ‘ 개가죽’이 등장한다 사나흘 정도의 비는 유지(기름먹인 종이)군막을 치도록 했는데, 바닥에 판자를 댄 다음 큰 가죽요를 펴면 습기를 막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특히 각자 개가죽을 준비해 여름에는 습기를, 겨울에는 추위를 막도록 한 점이 눈길을 끈다
임진왜란 때는 서피(담비털)로 귀마개를 했다는 기록도 있다
비변사의 공문에 의하여 원수가 쥐 가죽으로 만든 남바위(귀마개)를 좌도에 열다섯 개, 우도에 열 개, 경상도에 열 개, 충청도에 다섯 개로 나누어 보냈다(난중일기 1594년 10월 12일자)
당시 병영에 월동장구로 귀마개가 있었는데, 그것을 서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 담비털 귀마개는 흔치 않은 귀중품이어서 장교들만 썼던 모양이다
전투화
행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전투화다 [농포문답]은 계절별 신발 제작 방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추운 겨울에는 익힌 쇠가죽으로 긴 버선 모양의 신을 만들고, 속 바닥에 풀을 많이 깔아 신도록 했다 그러면 발이 따뜻하고 바닥이 딱딱하지 않아 쉽게 해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습한 여름, 신발의 높이는 복사뼈에 ‘ 겨우 ’ 닿도록 하라는 세심한 당부도 잊지 않는다
전투식량
적군 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군량과 반찬을 대기 어려우니 ‘무씨’를 많이 챙기라고 주문한다 한 곳에 오래 머무를 때 무를 심어 줄기와 잎을 뜯어먹으라는 것이다 행여 버려도 그리 아깝지 않고, 환군하다 뜯어먹을 수도 있다고 했다 소금과 간장을 챙겨가는 방법도 있다 맑은 장에 담갔다가 볕에 말리기를 수십 차례 반복한 무명베를 식사할 때 물에 풀어 우려 마시도록 한 것이다 또 거위 알 만하게 뭉쳐 만든 소금을 불에 태워 단단하게 만든 뒤 두세 개씩 휴대하도록 하면 급할 때 유용하다고 했다
식수 확보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먹을 것이 없어도 2~3일은 견딜 수 있고 말 또한 죽지 않지만, 물이 없으면 하루도 지탱하기 어렵고 결국 인마가 죽게 된다는 것이다 진영을 설치하거나 성을 지킬 때는 물맥을 잘 아는 사람을 구해 여러 차례 시험하고 성과가 있으면 뽑아써야 한다고 권유한다
조선후기 병사들이 전투식량이 실제로 재연된 적이 있었다 지난 2007년 전북 고창에서 열린 모양성제 행사에서 김수완 전 국방부전통의장대장(현 예문관 본부장)이 정조 대에 발간된 병서[병학지남연의] 기록을 토대로 재연한 것이었다 김수완 전 의장대장은 “ 군자에 군사들이 사용하는 식량, 신발, 갑옷, 병기, 말의 재갈 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마른 식량이니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먹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해야 하고, 만약 이를 휴대하지 않았을 때에는 무기를 잃은 죄와 똑같이 다스려야 한다는 기록이 있다” 고 했다
재연된 전투식량은 크게 4가지였다 수소문 끝에 당시 직접 조리를 한 고창 주민 백옥성(74.여)씨에게 완성된 음식의 종류와 제작 방법을 들어봤다 밀가루 국수는 밀가루를 소주에 담갔다가 건져 말리기를 여러 번 반복한 뒤 말린 밀가루를 다시 물에 타 반죽을 한 다음 면을 뽑았다고 한다
백씨는 “ 소주는 알코올 성분인데, 아마도 국수가 쉬지 않도록 하려던 것 같다”고 했다 주먹밥은 식초를 탄 물로 밥을 지었다 식초를 쓰면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는다 백씨는 “ 소금으로 간을 했고, 오래 두고 먹기 위해 식초를 방부제로 쓰지 않았겠느냐 ”고 했다 밀가루 떡도 전투식량으로 쓰였다
그러나 이 같은 기록이 실제 적용되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정혜은 박사는 “ 조선 후기, 그 중에서도 정묘 병자호란 전후 시기 조선과 청나라 군대의 무기와 병선 운용, 군복, 전투식량 등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으며[농포문담]은 그나마 조선후기 군대의 모습과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보기 드문 자료” 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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