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전설적인 국민가수 사카모토 큐
그는 60년대부터 70년대 80년 대까지 30여 년간 일본의 국민가수였다.
특히 그의 많은 히트곡들 중 '위를 보고 걷자'는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얼마나 인기가 많았냐면 3주 연속 빌보드 차트 1위라는 기염을 토하였는데
이는 동양인 최초의 빌보드 차트 1위였다.
사카모토 큐는 그 후에도 여러 장의 앨범을 히트시키며 일본의 전설적인 가수가 되었고
영화배우 mc 연기자 등 다방면의 활동으로 일본인들의 큰 사랑과 인기를 받았다.
그런 사카모토 큐에게는 한가지 특이한 버릇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비행기를 탈 때는 무조건 일본항공이 아닌 전일본공수의 비행기를 탄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과거 일본항공의 사고들 때문이었는데.
과거 일본항공은 예전 대한항공만큼이나 사고가 잦았다.
그래서 그는 항상 프로덕션과 가족들에게 전일본공수의 비행기 표만을 구해달라고 하였다.
그런 그가 딱 한 번 전일본공수의 표를 구하지 못하여 일본항공을 탄 적이 있었는데
그날은 바로 1985년 8월 12일이었다.
그날 사카모토 큐는 오사카에 있는 지인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위해 도쿄에서 비행기에 탑승한다.
마침 그땐 일본의 추석인 오봉이어서 사카모토 큐는 한사코 전일본공수의 표를 원했지만
전일본공수의 표는 다 매진이 되어 어쩔 수 없이 프로덕션은 일본항공의 표를 구매해주었다.
사카모토 큐는 아침 일찍 공항으로가 전일본공수로 표를 바꾸려 했지만
오봉 때문에 남는 표가 도저히 없어
어쩔 수 없이 도쿄발 오사카행 일본항공 123편에 탑승한다.
그리고 그가 비행기에 오른지 55분 뒤 일본항공 123편은
군마현 능선에 추락한다.
(사고 당일 이륙 직전의 123편의 모습)
이 사고가 바로 단일 항공기 최악의 참사인 일본항공 123편 추락사고이다.
이 사고는 탑승자 524명 중 520명이 사망하고
단 4명만이 생존한 일본항공 최악의 참사였다.
그렇다면 이 비행기에 탑승했던 사카모토 큐는 어떻게 되었을까
같은 시간, 같은 노선에 ANA 항공편도 있어서 가족들과 소속사는
JAL의 사고 소식에 처음엔 안도하고 있었지만
나중에 발표된 승객 명단에 사카모토의 본명인 오시마 히사시와 매니저인 고미야 카츠히로가 있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
안타깝게도 사카모토 큐의 시신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탔고
남은 치아와 결혼식을 올린 신사에서 받은 펜던트만으로 겨우 신원을 확인한다.
평생을 일본항공을 기피하던 사카모토 큐는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으로 탄 일본항공이 추락하여 비극적으로 삶의 끝을 맞이한다.
이 사고로 열도는 충격에 빠졌으며
지금까지도 일본 국민들은 사카모토 큐를 비롯한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