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누군가에게 빛이라기 보단 어둠이고 싶어.
누군가가 나보다 더 빛날 수 있도록,
어둠이란 이름 안에 하나로 포개어질 수 있도록.
어둠과 어둠이 합쳐진다하여 더욱 나쁜 것은 아냐.
<너의 밤이 어두운 것은, 우리 둘이 몰래 만나기 위함>
비 오는 날엔 길 잃은 빗방울들을 자주 마주친다.
그들은 자신이 가는 길을 몰라 여기저기 부딪히며 존재를 알리기에
난 그들을 위하여 창문을 반틈 열어놓는다.
언제든 내가 그들의 도착점이 되어 젖을 수 있게.
<빗 속의 랑데뷰>
향기는 소리없이 날 에워 싸지.
발걸음 찍히는 것조차 들키기 싫은 것처럼,
소리내는 것조차 쑥스러운 것처럼.
연한 햇살에 비치는 투명한 안은 모습도 모른 채,
들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바람이라 속이며 내 곁에 머물지.
<안개 빛 사랑>
나의 시는 널 울리기 위해 태어났다.
<만물을 형용하는 시詩>
"어린"과 "어른"의 경계선.
스물, 그 중간에서 만나.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흐르는 물처럼 슬픈 것이 있을까.
흐르는 물 속에 내 마음 다 실어버리고서
흐르는 물이 너에게로까지 흘러내릴 거라 믿고 싶어.
흐르는 물을 만난다면 나에게 일러 줘.
흐르는 물에 내 맘 녹았나 볼 수 있게.
<그날 밤에 쏟은 나의 감정은 모조리 너에게로 흘렀다>
시를 한 줄 읊을까.베를 짜서 비단옷을 입힐까.이름을 연꽃이라 지을까.안개 낀 초원에서 사랑을 나눌까.허허벌판에 드러누워 은하수를 세어 볼까.스치는 바람을 잡아 내 키로는 닿지 못하는 곳까지 널 끌어다 줄까.
<청혼>
선택에 따른 후회는 어디서든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다고 생각합니다. 불필요한 감정을 낭비하는 것도, 필요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결국엔 후회로 찾아오고, 아쉬움으로 되돌아오는 게 당연하다는 뜻이에요. 거슬리고, 따끔거리는 꼬리표 따위는 일찌감치 잘라내야겠다는 게 요즘 느끼는 생각입니다. 그대들도 다른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한 글로 스스로를 위안할 수 있길 바라고 있어요. 깊어지는 밤, 당신 머리 위에 작은 별 하나 쯤은 나이기를.
<안녕, 당신>
제 글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이 밤이 너무나도 황홀해요.
글이라는 것은 그토록 아름답고, 찬란하여 나의 손톱까지 닳게 만드니
이 밤이 황홀하지 않다면, 대체 무어라 표현할까요?